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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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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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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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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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DUMMY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부댓자루를 지고 가라 하면 부대를 찢어먹고, 장작을 좀 패라 하면 도낏날을 날려먹고, 말 털이나 좀 골라 주라고 하면 생채기를 내놓으니 말이야. 그러더니 오늘은 또 문간이나 좀 지키라고 창날을 쥐여주었더만 이런 좀도둑 꼬맹이 하나도 능히 막아내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잠만 자고 있었다니. 이건 필시 일을 하기 싫은 마음으로 나에게 놓는 배짱이 분명해. 나는 오늘부터 너를 나와 같은 인간, 주님 따라 빚어진 몸으로 취급하지 않겠어. 오늘부터 너는 짐승이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왜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짐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후의 변론을 주마, 바실리쿠스. 할 말이 있느냐?"



바실리쿠스는 똥내나는 돼지우리 한구석 짚더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다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그는 취해있었다. 하지만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에게 할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쿠미누스 사제님, 당신은 나에게서 그 어떤 장점도 찾아볼 수 없노라는 식으로 말을 하시지만, 이런 저에게도 한 가지 장점은 있습니다. 이 장점에 대해서라면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이 교구의 주교도, 교황도, 심지어 황제나 주님조차도요."



"호오? 그것은 무엇인가, 바실리쿠스! 그것이 그대의 최후변론인가?"



"그렇습니다, 사제님. 사제님은 저 같은 놈에게도 언제나 잘해주셨어요. 하지만 저의 가치를 알아보는 현안은 지니지 못하셨군요! 아,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저희는 아들과 아버지와도 같은 관계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 기회를 날려버린 건 사제님이시죠."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구나, 바실리쿠스. 그리고 그건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어. 내가 사제가 아니었다면 너의 사지는 이미 분질러졌을 것이야. 허나 그러한 술수는 성공을 맺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인내심은 드넓은 대양과도 같거든! 너는 아무리 발버둥친다 하여도 결코 내가 죄를 짓도록 유도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그 드넓은 대양으로 제 말을 조금만 더 들어주시렵니까, 쿠미누스 사제님? 이제부터 제가 가진 단 하나의 놀라운 장점을 사제님께 말씀드리려는 순간이거든요."



"말하게."



바실리쿠스는 다시 한 번 땅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또 한 번 손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의 팔꿈치는 또 한 번 진흙땅에 처박혔다.



"저는... 크흠! 큼!"



쿠미누스는 그 모습을 보고 뒷짐에 손을 진 채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



"그렇지, 바실리쿠스. 자네에겐 돼지로 둔갑하는 능력이 있어! 어쩌면 이 돼지우리야말로 자네에게 아주 알맞는 장소일 듯 하군. 돼지치기가 아닌 돼지로써 말이야! 바실리쿠스! 내 말이 맞지? 너는 돼지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 거지? 지금 너는 돼지로 변신한 게 틀림없어!"



바실리쿠스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사제님에겐 당할 수가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돼지로 변하는 능력이 있어요, 사제님! 돼지뿐만 아닙니다. 소, 개, 닭, 염소, 양, 무엇이든 주문만 하세요! 저는 인간의 모습을 벗고 동물로 변신하여 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자리는 돼지우리다, 바실리쿠스!"



쿠미누스의 우렁한 선고가 내려짐과 동시에 바실리쿠스는 벌벌 떨며 구석으로 넘어갔다.



"바실리쿠스! 너는 이제부터 가레랑 영주님의 돼지집에서 살아가는 거다! 너에게는 삼시세끼 돼지여물이 제공될 것이며, 진흙으로 씻어야 하고, 또한 잠을 잘 때에도 돼지랑 같이 자야 한다! 네놈한테는 사람으로써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야! 대답하거라, 바실리쿠스 돼지! 알아들었느냐!"



"꿀꿀."



"으음!"



쿠미누스는 게으르게 구석으로 드러눕는 바실리쿠스를 뒤로 한 채 돼지우리의 문을 열어놓고 교회로 들어갔다. 바실리쿠스는 그가 저 멀리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근처의 암퇘지에게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스승님!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러셨어요! 하마터면 쿠미누스 사제님한테 들킬 뻔했어요! 제가 남들보다 먼저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그리고 자는 척을 해서 남들의 시선을 끌었기에 망정이지, 단체로 쫒겨날 뻔했잖아요!"



방금 전까지 여물통에 든 꿀꿀이죽을 허겁지겁 먹어대던 암퇘지는 바실리쿠스에게로 뒤뚱뒤뚱 몸을 돌렸다.



"저 놈이 갔냐?"



"네! 아주 그냥 쌩 하니 가버렸네요. 참 잘하셨어요. 손바닥이 발바닥처럼 날강날강해질 정도로 빌어서 겨우 얻어낸 위병 자리인데 스승님때문에 거기서마저 쫒겨나면, 이번에는 진짜로 쿠미누스 사제님이 저를 인간돼지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구요."



그러자 돼지는 눈꼽 비비 낀 눈을 함뿍 뜨더니 땅바닥으로 침을 퉤퉤 뱉었다.



"망할 쿠미누스! 돼지로 변한 인간보다도 더 돼지같은 땡중 사제놈, 너 하나를 씹어먹기 위해 저 지옥 밑바닥 루치페르는 아구지를 늘려대고 있을 거다! 저 놈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얘, 바실리쿠스야, 너도 기억하지 않니? 우리가 이 성에 처음 왔을 때 저놈이 나한테 어떻게 굴었었는지 말이야. 정말 수치스러웠어! 그 놈이 그 때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네가 좀 말해보라구!"



"뭐 그 시절에 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지만 스승님이 하도 말하니 이젠 외울 정도죠. 하하, 도야지 좀 보게나, 통통배가 튼실한 것이 배따구에 기름 좀 치면서 살았겠는걸! 아이 똥냄새야! 하면서 스승님의 뱃구레를 찰싹찰싹 때려댔죠."



"내 평생에 그처럼 수치스러운 처사는 없었어! 이 모든 것이 우리 변신술사들의 숙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원한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두고 봐, 내 언젠가 놈에게 반드시 철저하게 복수하고야 말겠어! 못하면 나는 그날부터 인간이 아니라 돼지고기다, 돼지고기 수육이다!"



"스승님의 개인적인 원한은 제쳐두자구요. 지금 저는 제 개인적인 삶을 걱정하는 것만 해도 바쁘다구요. 스승님, 아직도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스승님때문에 몽땅 망쳐버린 일을 항의하러 온 거라구요!"



바실리쿠스의 스승 민토네는 뿌뚱한 두 눈을 화짝 홉뜨고 바실리쿠스를 쏘아보았다.



"니 일은 평소 니가 되먹지 못하게 처신하고 다니니 그리 된 건데 공연히 나를 욕할 건 뭐냐?"



"아이 참, 그래도 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되려 저를 욕하시려고요? 정말 성인군자 납셨네! 스승님, 계속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신다면 정말 돼지가 되고 말 걸요!"



그러자 구석에 서있던 말레이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 참, 바실리쿠스 오빠! 스승님한테 그만 대들고 조용히 좀 해요! 오빠때문에 소리가 바깥으로 다 세어나가잖아! 그리고 스승님! 스승님도 잘한 거 하나도 없어요! 한낮에 돼지우리에서 변신 풀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게 말이나 돼요? 바실리쿠스 오빠 말대로 진작에 발견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전부 다 들통날 뻔했어!"



민토네는 뾰로퉁해졌지만 말레이카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없어서 툴툴거리기만 했다.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변신술사들의 세계를 잘 몰라. 들켜도 다 방법이 있다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천년만년 사람의 가축으로 일 하지 않고 주는 여물만 받아먹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겠니."



"아무튼 조용히 좀 해요. 난 지금 겨울에 도축을 대비하는 것만 해도 머리 아프니까."



그러자 바실리쿠스는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말레이카 사매가 없었다면 정말 어찌 되었을까 몰라! 이렇게 곤란한 계산도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내니까 말이야. 난 정말 사매한테는 못 당하겠어. 그렇죠, 스승님? 저 녀석 말하는 것좀 보세요. 어찌 말하는 것마다 계산이 밝고 똑 부러지는지, 주님의 축복을 타고났어, 정말."



말레이카는 돼지 엉덩이를 움직여 방귀를 뽀옥 뀌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말한다고 뭐가 떨어질 줄 알아요? 오빠는 오빠 일이나 잘 건사하세요. 사제님이 오면 이번에는 발바닥이 손바닥처럼 되도록 싹싹 빌으란 말이에요."



"그래야지! 그래야지!"



바실리쿠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말레이카는 그 모습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정말 아까 쿠미누스 사제님께서 돼지니 뭐니 하는 말을 할 때부터 정말 간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 비밀을 알게 되었냐 조마조마하는 마음뿐이었다니까요. 사실 나는 그때부터 지금부터라도 변신을 풀고 용서를 구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바실리쿠스 오빠를 놀리는 말이었네요!"



민토네와 말레이카가 까르륵 웃으며 골려대자 바실리쿠스는 화가 대빨 나서 외쳤다.



"다들 내가 찍 소리 못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무슨 천치에 순 바보인 줄 아는가본데, 어디 두고 봐! 이번에야말로 쿠미누스 사제 그 양반을 아무 말 못하는 벙어리처럼 만들어 본때를 보여줄 심산이니까! 두고 보라구!"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쿠미누스 사제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바실리쿠스! 네 이놈 바실리쿠스야! 바실리쿠스!"



사제가 우리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바실리쿠스는 문간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무슨 일이죠, 쿠미누스 사제님?"

"능글맞은 바실리쿠스! 너 벌써 내가 한 말을 까먹은 거냐!"

"....꿀꿀. 꿀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쿠미누스 사제님."

"오냐, 바실리쿠스, 긴 얘기지만 들어봐라. 나는 사실 아까 너의 그 말이 아주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그래서 우리를 나와 교회로 걸어가는 동안 너와 나의 관계를 심사숙고하게 되었어. 내가 그동안 너의 진정한 면목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바실리쿠스, 그 마음이 나를 대장간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가레랑 영주 소속의 대장장이 불루무스는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쿠미누스 사제 같이 생긴 게 걸어오는 게 보이자 벌써부터 또 무슨 트집을 부릴 작정일까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쿠미누스 사제가 생 억지를 부리면서 방금 전까지 빨갛게 달궈서 두드리고 있던 말 편자를 가리키며 이걸로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다.



불루무스가 대번에 안된다고 하자 쿠미누스의 얼굴에 사제답지 않은 심술이 울컥울컥 솟아나는게 보였다.



"그건 왜지, 대장장이? 설마 나의 요구가 말 편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말 너무하십니다, 쿠미누스 사제님. 이걸 제 힘 써서 만들고 사제님께 홀랑 줘버리면 저는 편자 하나를 더 만들어야 하고 제 일만 늘어나는 셈인데 다짜고짜 그렇게 요구하시니 제가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합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쿠미누스가 카악 소리를 냈다.



"이 새끼! 너 지금 내가 만만해보여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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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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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4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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