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40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7.26 16:11
조회
10
추천
1
글자
13쪽

안 돼요!

DUMMY

"아이고, 어르신네 참 말씀도 마시라니깐요! 오늘 아침엔 제 손을 잡더니 으스러질 듯 꽉 쥐면서 주님의 신성이니 뭐니 하는 거 아니겠어요? 몇번 더 잡혔다간 주님이 아예 제 몸 안으로 쏙 들어오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 외에도 게레할드와 바실리쿠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이나 얼굴을 비추지 못했으니 서로간에 쌓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게레할드가 못 보던 얼굴이라며 바실리쿠스의 뒷곁에 앉아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반대편 우리 앞에 앉아서 닭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녀석을 일으켜 세운 뒤 게레할드의 앞으로 끌고갔다.




"영감님도 아시겠지만 어제 늑대들이 마을로 처들어오는 일이 있었잖아요. 그 때 저희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어린 늑대를 생포했죠. 알고보니 그 놈도 저희랑 같은 변신술사였어요. 바로 이 놈입니다. 성의 사람들한텐 잘 말해놨고요. 이대로 한 몇 주 있다가 은근슬쩍 보내버리면 될 거예요."




그 말에 게레할드는 불안한 지 눈을 부라렸다.




"늑대라고? 그러면 이거 협잡꾼 아냐?"




바실리쿠스는 코웃음을 쳤다.




"설마요. 이렇게 작은데. 이 바실리쿠스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 이런 생뼈다귀가 식구들을 건드릴 생각이나 할 수 있겠어요?"


"늑대들을 얕보다간 큰 코 다치게 될 거야. 자넨 녀석들이 얼마나 간교하고 똑똑한지 몰라. 내 말 잘 듣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녀석의 처분은 자네한테 맡긴다만, 절대 녀석이 혼자 있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돼. 내 말 알아듣겠나?"


"제가 그렇게 청승맞은 녀석으로 보이시나요? 그래도 영감님이 하는 말씀이니 새겨듣도록 하지요."




바실리쿠스가 읍하고 뒤돌아 닭장을 나가려는데 녀석이 따라오지 않고 우리 앞에 앉아있었다. 아단치며 다가간 바실리쿠스는 깜짝 놀랐다. 늑대새끼가 살결이 통통하게 잘 오른 게레할드의 닭다리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 굶주린 배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늑대 시절 버릇을 버리지 못한 녀석의 이빨은 잇몸까지 드러났으며, 침이 줄줄 새고있었다.




바실리쿠스가 다급히 녀석의 뒷목을 확 채어 밖으로 끌고나갔다.




'아이고, 이러다가 정말 뭔 사달이라도 나겠구만.'




문간을 나서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게레할드가 또 한 번 경고를 날렸다.




"그놈을 배고프게 만들어선 안 되네. 잊지 말게, 짐승을 길들이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바실리쿠스가 거기다 대고 소리쳤다.




"전 이놈을 기를 생각이 없다구요!"




바실리쿠스는 늑대의 손을 잡고 교회 앞의 좁은 광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낡은 나무로 기워 짠 테이블이 있고 의자와 죽이 담긴 질그릇이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꽉 닫힌 교회 식당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수녀가 눈구멍을 부드럽게 열고 눈을 마주쳤다. 바실리쿠스는 노크 소리를 들은 사람이 라랑튀아 수녀님라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다. 항상 꽁하고 이유없이 화나 있으며 지옥의 천벌에 기백번 튀겨삶아도 모자랄 저 다른 잡것들이랑은 다르게 라랑튀아 수녀는 시원시원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실, 바실리쿠스."




수녀가 말했다.




"축복이 그렇고 말고요, 수녀님! 수녀님처럼 똑똑하고 교양이 넘치시는 분은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능히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염치가 불구하나 하루 양식을 구걸하러 온 겁니다."




바실리쿠스는 눈구멍 너머에서도 라랑튀아가 아쉬운 웃음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요구를 거절할 때면 항상 저런 표정을 지었고, 그래서 이제는 눈가의 주름 갯수만 보아도 어떤 표정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안 된다, 바실리쿠스. 배급 시간은 이미 지났어. 먹고 싶으면 좀 더 빨리 왔어야 해. 이미 설거지를 시작했어."




바실리쿠스는 두 손으로 앞으로 모아 흔들어댔다.




"설마 주님의 어린 양 한 마리를 이렇게 굶기시려고요?"




바실리쿠스는 항상 이렇게 라랑튀아 수녀를 구워삶아먹곤 하였다. 라랑튀아는 아량이 넓고 훌륭한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허나 오늘따라 그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데 놀란 건 바실리쿠스 쪽이 되었다.




라랑튀아 수녀가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세상에, 바실리쿠스! 해도해도 너무하는구나. 항상 그렇게 당장의 순간만 모면하려고? 넌 다른 수녀 자매들에겐 찍소리도 못 하면서 항상 나만 보면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굴고 있어."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찾지 누구를 찾겠습니까?"




라랑튀아는 그 말에 조금 웃었다.




"오, 오, 어쩜 이럴까, 바실리쿠스! 주님은 너한테 재담꾼처럼 말하는 능력을 주셨어. 그런데 그 재능을 교단의 여인이나 구워삶는 데 쓰다니, 어쩌면 너에게 천벌이 필요할지도... 하지만 그런 말을 해도 소용 없어. 이제 이건 내 관할을 벗어난 문제야. 쿠미누스 사제님께서 어제 단단히 당부하셨거든. 앞으로 또 무슨 일이던 네가 요령피우면서 교회를 상대로 밥을 쉽게 얻으려고 한다면 절대 주어선 안된다고 엄명하셨어."




그 때 교회 안쪽에서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라랑튀아는 바실리쿠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눈구멍을 닫고는 뛰어갔다. 바실리쿠스는 급하게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화답은 오지 않았다.




'이를 어쩌지... 이러다가 이 늑대놈이 굶주리다 못해 한탕 난리를 피우면 그 책임은 모조리 나에게 있어!'




바실리쿠스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수녀님들! 아무나 수녀님들, 좀! 제 말을 들어주세요! 굶주린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쉬지 않고 정신없이 문을 쾅쾅 두드려대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수녀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또 어느 미친사람이 시끄럽게 난리를 치는 건가 싶어서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치지 않고 성가신 데다 주변 선배들마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결국 한숨 가득 쉬면서 성난 발걸음을 쿵쿵 거느리며 다가와 눈구멍을 홱 열었다. 그 바람에 나무 문구멍이 거의 망가질 뻔 했지만 망가지지는 않았다. 바실리쿠스는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는데, 단순 놀란 게 아니더라도 지금 문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보았더라면 결과는 같았으리라.




"켁! 발라리 수녀!"


"바실리쿠스! 사람을 보고 켁이라니,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예의라고는 없군요. 왜요? 왜 그렇게 멍청히 섰어요. 사람을 불렀으면 용건을 얘기하란 말이에요. 그렇게 요란하게 사람을 괴롭혔던 걸 보면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겠죠? 이봐요, 지금 사람 놀리는 거에요? 가뜩이나 바쁜데 왜 당신까지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예요? 바실리쿠스, 입이 있으면 말이나 좀 해보라고요. 아니.... 참 내... 이 돼지같은 놈! 너 지금 나를 놀리는 게지! 저런 놈은 어디 악마가 안 잡아가나? 이 할일 없는 놈아, 정 그리 심심하면 니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돼지새끼나 주므르러 갈 것이지 어딜 감히 교회 문간에 서서 수녀를 놀리느냐!"




바실리쿠스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가 그처럼 계속 멍청하게 서있었던 이유는 저 문 뒤에 서있는 사람이 수녀들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롭고(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성질이 불같다) 평소에도 그를 가장 업신여기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발라리는 바실리쿠스가 인사를 해도 무시하거나 남들한테는 다 인사를 하는데도 그는 무시할 때가 종종 있었다. 분명 바실리쿠스의 행동이 발라리의 성질을 건드린 게 틀림없다. 발라리는 바실리쿠스를 노려보고 몇번 더 빽빽거리다가 제 혼자 맥이 빠져서 한숨을 푹 쉬더니 눈구멍을 콱 닫고 돌아갔다. 바실리쿠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발라리 수녀가 지금쯤 멀리 갔을거라 생각이 들때까지 기다리고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다시 한 번 눈구멍이 팍 열렸다.




"왜요!"




이번에도 발라리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이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 듣기에 발라리 수녀는 나름 이름있는 귀족가문의 자제분이신데 부모에 의해 억지로 끌려왔다. 그래서 저렇게 철 지난 족제비처럼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죄송하지만요, 발라리 수녀님, 이런 말 드리기 정말 죄송하지만요,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건 알지만... 제발 부탁드리는데 죽 한 그릇만 주세요."




발라리는 바실리쿠스를 째려보았다.




"안 돼요!"




그녀가 눈구멍을 홱 닫기 전에 바실리쿠스가 말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자, 자, 잠시만요. 저 때문에 아니라 얘 때문이에요. 아침에 요 꼬맹이를 보셨죠? 제 조카요! 얼마 전에 가족들과 생이별한 불쌍한 아이입니다. 지금 배고프다고 아까부터 칭얼거리는데 당장에 뭘 먹일 수가 있어야죠."




발라리가 그 말에는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 품에 있는 것들을 먹이면 되잖아요."




바실리쿠스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치즈며 사과 따위를 꺼내들었다.




"고작 이 몇 품이 아이한테 밥이 된답니까."


"그럼 조카가 쫄쫄 굶을 동안 당신은 뭐 했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죽 한 그릇만 달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수녀님! 제가 언제 수녀님한테 오늘처럼 이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발발이 긴 적이 있었답니까. 평소에 수녀님이 저를 무시하는 거 잘 압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가 이렇게 수녀님한테 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부탁 하는 것도 아니고요."




발라리는 그의 애원을 듣고 자신의 행동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파왔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훑으며 미간에 주름을 썼다.




"내일 오면 안 돼요? 지금 한 그릇을 주고 설거지 하려면 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바실리쿠스는 돌파구를 발견하고 아주 화색이 됐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수녀님들한테 피해가 가도록 한 적 있답니까? 오늘 그릇을 받고 내일 가지러 올게요! 뿐만 아니라 그 받아간 그릇으로 내일 죽까지 받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설거지 두 번 할 걸 한 번만 해도 되죠!"




발라리는 고민하더니 이내 바실리쿠스에게 옆으로 돌아서 오라고 고갯짓을 했다. 그리고 눈구멍을 닫았다. 바실리쿠스가 소녀에게 쉿 하며 살금살금 옆으로 가자 허리께 정도 오는 좁은 구멍에서 미지근한 죽이 담긴 그릇이 홱 하고 튀어나왔다. 바실리쿠스는 냉큼 받아들고 늑대새끼와 함께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정말! 수녀님께서는 복 받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복이요!"




그렇게 말하는 바실리쿠스의 속은 기실 짯짯이 타들어간다.




'죽 한 그릇 받는 것도 이리 처량해서야...'




바실리쿠스가 시울 붉은 눈을 부벼대며 아이에게 어서 먹으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아이는 죽을 입에 대기는 커녕 냄새도 맡으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실리쿠스가 손수 숟가락을 들고 입에다 들이밀어주었다. 나중에는 아예 뒷머리를 잡고 은근히 힘을 가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전혀 먹으려 들지 않았다. 수어번 그렇게 하여도 고집을 부리니 바실리쿠스로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아까운 죽을 그냥 버리라는 거냐? 이 고집불통아, 여긴 네가 살던 그 짐승떼의 숲이 아니야! 너 지금처럼 고집부렸다간 봐라, 먹기 전까지 귀싸대기를 날려줄 테야! 내가 어디 못 하나 한 번 봐라. 응? 내가 못 할 줄 알아?"




그러면서 바실리쿠스는 교회 쪽 눈치를 보았다. 예상대로 발라리 수녀가 눈구멍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바실리쿠스는 아이한테마저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얘아, 지금 니가 이 밥을 먹어주지 않으면 내가 했던 노력들은 모두 허사가 되는 거란다. 이건 우리 모두가 맨날 먹는 거야. 너도 여기 살려면 이걸 매일 먹을 거고. 굶주리는 게 너한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잖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어서 끼니를 때우거라."




그렇게까지 말을 하자 아이는 겨우 몇 술을 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허겁지겁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의 얼굴에도 흐뭇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는 아까의 그 사과나 치즈를 몇 입 먹어두려고 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흉을 봤다.




"바실리쿠스 저 놈 조카한텐 꿀꿀이죽을 주고 자기는 맛있는 사과를 먹다니, 역시 저 자식은 사람이 덜 됐어!"




바실리쿠스는 밥맛이 뚝 떨어져서 이번에도 굶었다. 아이는 사과를 심지까지 맛있게 먹고 씨를 골라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매춘하는 개 인간 (4) 24.07.31 8 1 11쪽
20 매춘하는 개 인간 (3) 24.07.31 6 1 12쪽
19 매춘하는 개 인간 (2) 24.07.30 6 1 11쪽
18 매춘하는 개 인간 (1) 24.07.30 5 1 12쪽
17 반딧불이가 많은 숲 (3) 24.07.29 4 1 11쪽
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6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8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6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6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2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6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