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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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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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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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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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가 많은 숲 (1)

DUMMY

'클리셰가 분명 말했을 거야.' 그는 홀로 남게 되자 이렇게 생각했다. '녀석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듣고 있었지만, 식구들이 알게 되면 그건 분명 그애가 말해서 그런 거겠지. 지금도 동네방네 떠들고 있을 거야. 그 애는 입이 싸니까.... 맙소사, 지금 내가 누굴 탓하고 있는 거지?'




이제 바실리쿠스는 먹다 남은 돼지뼈에 파리와 구더기가 꼬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 어둠 속에 뭔가 다가오는 것들이 있는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그리고 이따금 사냥꾼들이 알려준 대로 인간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주변에서 흙과 풀을 뜯어내 온몸에 발랐다. 그 흙에는 깊은 땅속에서부터 빗기운을 맡고 정신없이 바깥 위로 올라오던 지렁이나 콩벌레들이 있었다. 오른손 아래 바닥엔 짐승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견제 할 때 쓰는 십자창이 한 치 흙 속에 묻혀있었고, 놈들이 다가오면 사정없이 찌를 것이다. 그의 시야는 깜깜한 밤에 적응되어서 나무와 풀들, 그리고 밤과 별과 달 사이의 있는 것들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빈 공간 속에 청소부 짐승의 안광이 번뜩인다면 그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러려면 반딧불이와 늑대의 눈깔을 잘 분간해야 하리라. 바람은 이쪽으로 가고 또 저쪽으로 호숫물이 일렁이는 것처럼 갔다. 젖은 흙냄새가 나고 또 먼 곳에서 몰려오는 기운에 새순이 몸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럽게 불어오는 바람마다 놈들이 멋대로 기어와서는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구석구석을 만지는 것 같았다.




바실리쿠스는 고개를 들어 언덕늪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확인했다. 언덕이 왕관처럼 쌓인 곳에 깊은 늪이 있는, 하루를 꼬박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바실리쿠스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곳에 갔던 게 언제적 일이었는지 떠올렸다. 이제보니 이 영지에 온 것도 꽤나 오래 전 일이다.




'늦기 전에 사제님을 모셔와야지.' 그가 생각했다.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뼈라도 회수를 해야겠는데. 늑대들이 뼈를 건드리기 전에 잽싸게 나서야 해. 하지만 그랬다간 놈들이 달아날 텐데 이를 어찌해야 하나. 한 번 삶은 거라도 일단은 뼈가 있어야 장례를 치르든 뭐든 하지.'




그가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등어리에 흙덩어리를 한 번 더 문지르고 있을 때 정체모를 그림자 하나가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 낌새는 즉시 바실리쿠스에게 감지되었다. 그는 손끝으로 땅을 두드려 창자루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방향은 늑대가 오리라고 예상했던 곳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이는 즉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감각은 전에 없이 날카롭고 예민해진 상태라서 지금 누군가 목을 조르러 까치발로 다가오고 있다 하더라도 사전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일단 동료들을 깨우지 않고 녀석에게서 주의를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확인했다. 늑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 늑대라면 늑대가 홀로 다닐 리는 없으니 이건 습격이고, 그렇다면 다른 방향에서도 시시각각 놈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동료들이 아니라 뼈를 지키러 뛰쳐나갈 것 같았다. 저 사람들도 스스로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조심스럽게 창의 손잡이를 잡아 천천히 끌면서 수풀 속으로 조심조심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몸에 흙을 더 문질렀다. 그리고 녀석이 다가오는 방향이 잘 보이도록 몸을 돌렸다. 녀석은 소리없이 풀을 밟으며 걸어가는 말 위에 오른 채 머리께로 내려오는 나뭇잎을 피하고 있었다. 놈은 혼자였다. 오늘따라 많이 돌아다니는 반딧불이가 희미하게 놈의 윤곽을 잡아주었다. 한 손으로만 잡은 고삐와 허리에 매달린 칼, 등에 걸터놓은 활이 눈에 띄었다. 아마 이곳은 벌레들이 번식하러 모이는 군락이리라. 그렇다면 달따라 나무의 수액이 풍부한 곳이다. 아까부터 풀벌레 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바실리쿠스는 녀석이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노라 판단했다. 놈은 주위에 무장한 사냥꾼들이 늑대를 유인하는 돼지뼈를 놓고 야영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앞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잠시 이곳에서 숨을 돌렸다가 녀석이 사라지는 즉시 뼈가 잘 보이는 곳으로 다시 나와 죽은 사람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생각이었다.




그 때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망할 반딧불이가 입에 들어갔어, 젠장."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실리쿠스는 다시 눈을 뜨고 그쪽을 째려보았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뭐하러 내 입에다 반딧불이를 집어넣었을까. 정말 신기한 노릇이야."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조금 더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니 뱃속이 너무 시꺼매서 그래. 하느님이 빛을 주신 것이다. 감사히 먹어야지."


"이 자식 또 헛소리 하고 앉았네. 그럼 이 숲에 반딧불이가 이리도 많은데 여기가 뭐 악의 구렁텅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들은 어느새 사냥꾼들이 매복한 공터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반딧불이가 아주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구부러진 풀잎이며 나무 둥치에 자란 버섯 위에 안착하는가 하면 조금 열린 꽃봉오리 속으로 한 번에 두세 마리씩 들어갔다. 마치 속세의 사람들이 모르는 겨레와 전통으로 오랜 옛날 전에 잡은 약속이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야만 해." 두 번째 목소리가 이빨 가는 소리를 냈다. "그래야 이 숲에서 놈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은 잠시 후 헛기침을 했다.




"너 너무 열내다간 돌아갈 머리도 안 돌아간다. 조금 차분하게 주위를 살펴 보라구. 그래야 뭐 어딘가 숨은 놈이라던가 그런 걸 보게 되겠지. 너 지금 계속 앞만 보고 있구나. 그러다 뒤에서 목이 졸리는 거야. 봐봐, 바람의 정령님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잖아."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고 바람을 느껴보았다. 확실히 바람은 조금 전보다 차가워져 있었다. 그에 따라 세상이 젖는 냄새도 또렷해졌다. 그는 시기가 너무 늦어서 도르헤 영감이 비를 맞지 않을까 두려웠다. 영감은 노망이 들었어도 비가 오는 날이면 얌전히 집안에 누워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먹은 날에는 누군가의 집 지붕 아래에서 홀로 떨었고, 감기에 걸리면 노망이 심해져서 오직 죽은 사람들만이 기억하는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뜬 꿈에 헛소리처럼 내뱉곤 했었다.




'영감님은 추운 걸 싫어해. 맞아, 추운 걸 싫어했지.'




말을 탄 남자가 적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놈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못하다면 정령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야."


"돌았군. 완전히 돌았어."


"나는 맹세를 했고, 그걸 지키러 가야지....? 이봐, 왜 그래!"




남자의 말에 그때까지 눈을 쉬고 있었던 바실리쿠스는 그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저기 있는 놈들의 모습이 달에 비춰 전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말 위에 오른 채 무장한 전사는 다름아닌 자기가 타고 있는 말한테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바실리쿠스는 그들이 서있는 곳에 도르헤 영감의 시신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말은 그 뼈가 발에 걸리자마자 걸음을 멈춘 것이다. 전사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더니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죽은 뼈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짚었다. 이내 하늘로 고개를 올렸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속삭였다.




"...바실리쿠스."




바실리쿠는 심장이 섬짓해졌다.




".....바실리쿠스, 너 어디 있냐?"




사지가 뻣뻣해졌고, 바실리쿠스는 지금 자기가 저 목소리의 주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그래서 더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처벌하러 사람을 보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답하지 않고 수풀 속에 숨은 채 그들이 그저 떠나 주기만 바라며 호흡하는 소리마저 죽여버렸다.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 그들은 바실리쿠스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명확한 확신있는 걸음걸이였다. 바실리쿠스는 두 눈을 꽉 감았다. 자신의 눈동자에 반사된 빛이 그들의 눈에 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발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멈췄다. 세상이 조용해졌고,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사람과 말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실리쿠스는 그들이 이미 자신을 찾아냈고, 알아서 눈을 뜰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절망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들이 그가 있는 곳을 단번에 알아낼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은 눈을 뜨자마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주위에 너무나 많은 반딧불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온몸에 흙을 뒤집어썼고, 나무처럼 죽은 듯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자냐?"




그레코르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은 바실리쿠스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달빛에 좀먹히는 어둠으로 단단히 가려져있었고, 두 눈은 그늘 아래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그레코르는 바실리쿠스에게서 눈을 때지 않은 채 무릎에 손을 짚으며 일어났다.




"일어나."




바실리쿠스는 면목이 없어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건 뭐냐?" 그레코르는 바닥에 놓인 창자루를 발로 툭 걷어찼다. "이걸로 형 찌르려고?"




차인 건 창인데 바실리쿠스의 손도 같이 밀려났다. 바실리쿠스는 깜짝 놀랐다. 몸이 긴장한 탓인지 손에 창자루를 꽉 쥐고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얼른 손을 놓고 일어났다. 그레코르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도르헤 영감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바실리쿠스는 도르헤 영감의 부러진 갈비뼈 부분을 아주 가까이서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하기 전부터 아이처럼 훌쩍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낼 수록 그는 점점 더 울었다. 끝에 가서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목 메인 목소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차마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레코르는 그쯤하라 하고는 손수건을 건내주었다. 바실리쿠스는 고맙다고 하면서 받았다.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고 나서 그레코르는 그 손수건을 도로 받아 속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바실리쿠스를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좀 조심하지 그랬냐..."




바실리쿠스는 더 울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와 그의 친구가 어떻게 바실리쿠스를 달래주었으며 적어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는지는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가 마침내 진정하자 그레코르는 마을의 온 식구들이 이미 알고 있으며, 자신도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널 찾으러 온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바실리쿠스는 더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지옥에 가게 되는 건가요? 형님은 저한테 벌을 주려고 오신 거죠? 아플까요? 많이 아플가요? 저는 얼마나 아프게 되는 거죠? 영감님처럼 목숨을 내놓아야 하나요?"




바실리쿠스의 시선은 아까부터 그레코르의 허리춤에 달린 쇠칼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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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7 1 12쪽
»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8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7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8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10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3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10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9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1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3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8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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