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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잎
작품등록일 :
2024.07.26 19:47
최근연재일 :
2024.09.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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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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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 주 (8)

DUMMY

쾅! 쾅! 쾅! 우수수.


“부서졌나?”


신소율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떨어져 내리는 도끼 사이를 훔쳐봤다.


함정에, 함정을 파놓은 기습.

마녀, 근접 직업, 블러드 메리, 심지어 자신조차 사다코를 위한 연출이었다.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4차 직업 인형사만이 잠시나마 료스알프 영웅을 잡아놓을 능력이 있다.


하지만 정면에서 나선다면 사다코라도 헬라의 그림자를 잡는 건 무리다.

사다코의 실 그림자가 일곱 개나 사용됐지만, 단 한 개만 성공했을 정도니까.


잠시 후, 도끼가 모두 떨어져 내리고 공중에 떠 있는 헬라와 메리가 보였다.


블러드 메리가 던전 주인의 손짓에 거울 속으로 돌아왔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숨도 참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휘잉.

바람이 불어오자, 헬라가 들고 있던 강철 검의 절반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쨍그랑.

부러진 검날이 바닥에 닿은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우아아아!”

“이겼다! 이겼어!”

“승리했도다!”


기쁨 가득한 우렁찬 외침은 주변으로 퍼져갔고, 싸움에 열중하던 다른 사람들과 알브도 환호성을 듣고 전투를 멈췄다.


“뭐야? 이겼어? 이긴 거야?”

“이겼대! 와아!”


뒤늦게 소식을 접한 마법사와 궁수도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인간들이 왜 이러지?”

“글쎄요, 일단 헬라 씨에게 돌아가죠.”


던전 전투가 끝난 것도 아닌데 마치 다 이긴 것처럼 기뻐하는 인간의 행동에, 알브들은 의아해하며 헬라한테 모였다.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도 신소율은 헬라의 오른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사람들은 검의 파괴를 이벤트 완료로 착각한 것 같은데··· 아쉽게도 아니다.


“그럴 만도 하지. 칼 하나 부수려고 고생을 있는 대로 했으니까.”


두 번째 내기는 칼을 부수는 게 아니라, 헬라의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만드는 것.


그런데 부러진 강철 검의 손잡이를 아직 헬라가 쥐고 있다.


신소율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불안하게 왜 저러냐?”


알브는 손이 두 개다.

헬라가 부러 진 검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새로운 검을 잡고 날뛰면··· 망했어요!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인정하기 싫지만 그건 맞는 말이다.


“던전 부하들은 주인을 닮아.”


침입자들이 정면에서 덤벼들어 어려운 목표를 달성했다.

사다코를 닮은 헬라라면 인간들의 노력을 인정하겠지.


신소율을 닮은 드래곤들이라면 고생한 사람들에게 집으로 보내주겠다며 숨결을 뱉겠지만!


저벅저벅.

헬라가 공기를 밟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자기 앞에 내려선 헬라에게 신소율은 툭 뱉었다.


“이 정도 했으면 그만 칼 놓지?”

“세 번째 내기를 보고 싶다.”


신소율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헬라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귀찮게 시리. 대신 넌 이제부터 나서지 마, 오케이?”


헬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칼이 부러진 순간 자신은 졌으니까.


패배를 인정한 헬라가 세 번째 내기를 언급한 건, 그저 인간들이 보여줄 무언가를 더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다.


“뭐야,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닌가 봐.”

“아, 힘 빠지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기뻐하던 사람들은 급격히 침울해졌다.

이건 마치 퇴근 시간이 다 돼가는데 상사가 잔업을 던져줄 때의 기분!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 내리는 걸 느낀 신소율은 서둘러 프로젠을 봤다.

일단 세 번째 내기를 듣고 나서 대중을 다독거려야겠다.


“야! 세 번째 내기.”


이 전투가 미치지 않는 바깥쪽.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과자를 먹으며,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고 있는 아이 셋을 지키던 프로젠이 고개를 돌린다.


“삼촌분, 더 하실 겁니까?”

“내 꼴을 보고도 묻냐?”


흙먼지가 가득한 머리카락. 얼굴에는 진흙. 입고 있던 옷은 찢어지고 구겨져서 너덜너덜하다.


신소율은 팔을 들어 주변 사람들을 가리켰다.


“인간적으로, 아니, 알브적으로 이 꼴 좀 봐. 이게 사람이야? 거지 떼지. 양심 있으면 적당히 하자.”


인간 무리를 살펴보던 프로젠은 고개를 숙여 러즈를 쳐다봤다.


“왜?”

“러즈 매니저의 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하얀 눈 모자를 쓴 소나무가 많아! 꽁꽁 언 개울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밤이 되면 맛있는 스튜 냄새가 마을을 채워. 아! 엄마, 아빠는 지붕을 청소해, 굴뚝 청소부거든!”


오랜만에 마을 생각을 해서 그럴까?

러즈가 즐거운 미소로 재잘거렸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프로젠이 매니저에게 물었다.


“마을로 돌아가고 싶나요?”

“···응!”


러즈를 따라 미소를 지은 프로젠은 고개를 들어 삼촌분을 봤다.


“세 번째 내기를 정했습니다.”

“지껄여 봐.”

“이곳에 모인 인간, 알브가 종족을 떠나 환호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십시오.”

“?”

“?”

“?”


드디어 마지막 내기!


프로젠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뭔 무대?”

“몰라, 새로 나온 던전인가?”

“콜로세움처럼 알브와 일대일 전투 하라는 거 아냐?”

“어! 그거 일리 있다.”


감을 못 잡다 못해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사람들과 달리, 신소율은 금방 이해했다.


“인큐버스다운 내기네.”


세 번째 내기는 말 그대로 최고의 무대.

인간, 알브. 두 종족이 만족할 만한 공연을 하면 된다.


히죽!

“겁나 쉽지!”


신소율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비한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마이크 좀.”

“자기가 노래 부르게?”

“그것도 괜찮지만, 아쉽게도 여기 무대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으니까.”


나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너 안 할 거면 내가 부를까?”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뭔 소리야?”

“그게 아니면 왜 홧김에 이벤트를 망치려고 해?”


퍽!

나비의 사파이어 지팡이가 남자친구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대단하군!”


그 동작이 깔끔해서 헬라가 감탄을 자아냈다.


“흥!”


남자친구를 보내버린 나비는 마이크를 주고 휙 몸을 돌렸다.

삐졌나 보다.


신소율은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여자친구는 나중에 풀어주기로 하고, 일단 투사들 사이에 서 있는 가면 쓴 여성, 사다코를 찾아갔다.


도리도리.

신소율을 보자마자 고개를 젓는 사다코.


“진짜? 정말? 내가 부탁해도?”


사다코는 신소율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그건 분명 세 번째 내기를 달성하기 가장 빠른 길이지만···.


사다코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요.”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신소율이 순순히 물러나자 사다코는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닌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은 신소율이 말했다.


“대신 나비에게 노래시키자. 나비의 가공할 노래 실력이라면 듣는 관객들이 기절할 테니까, 그 틈에 인질이라도 잡고 프로젠을 협박하면 되겠지!”

“풉.”

“아, 하지만 나비 노래를 듣고 하나와 러즈가 충격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귀마개 있으려나?”

“알았어요.”


협박 같지 않은 협박에 사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대와 스태프는 내가 섭외해 놓을 테니까, 넌 배 위에 올라가서 목이라도 풀고 있어.”

“네, 소율 씨도 조심하세요.”

“응? 뭘 조심해?”

“물!풍!선!”


신소율의 머리 위로 이번 전투에서 가장 거대한 물의 공이 떨어져 내렸다.


     *     *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다.

무대는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미남 해적선의 뱃머리로 정했고, 관객들은 뱃머리가 잘 보이는 근처 언덕에 모여 앉았다.


“야, 프로젠이 말한 무대가 진짜 무대였나 봐.”

“그러게, 뭐 이런 흐름이 다 있냐? 바이킹 타다, 대판 싸우다, 이제 공연이라니.”

“근본 없는 흐름이 신소율 답지만!”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주머니에서 맥주를 꺼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분! 잠시 쉬는 시간을 통해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준 어비스의 검사, 헬라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헬라 님!”

“반갑다.”


DR 방송사 아나운서 애쉴리는 막간의 틈을 이용해 겁도 없이 헬라에게 접근했다.


‘인터뷰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리셋해도 이득이지!’


다행히 전투 때와는 다르게 옆집 아저씨처럼 쉽게 인터뷰에 응해줬다.


“헬라 님! 정말 전율적인 검술을 선보이셨는데요, 실례가 안 된다면 레벨이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4,400.”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상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B랭크 공략자가 700을 겨우 넘어간다.

물론 지옥 군주 수르트는 레벨이 5,179였지만, 수르트는 어디까지나 이벤트성에 가까운 보스.


그에 반해 헬라는 사다코가 키운, 미궁 어비스에 소속된 던전 부하다.

환생으로 사다코가 어비스를 되찾으면 4,400레벨의 헬라를 자유롭게 부려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44? 44?!”

“미친?! 우리 4,400레벨한테 덤빈 거였어?!”


뒤늦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한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됐다.


세 번째 내기를 위해서 신소율은 생활직업을 찾았다.


“미용사, 스타일리스트, 재봉사 직업 계십니까?”


소리치면서도 큰 기대는 안 했다.

생활직업은 전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전투 직업만 즐기기에 생활직업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미용사 한 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한 건데···.


“저요! 저 스타일리스트에요!”

“저는 미용사입니다!”

“저 재봉사예요!”

“오!”


의외로 직업 별로 다 있었다.


-전투력 약체인 생활직업이 미궁까지 따라왔네?

-전투 직업들은 모르겠지만, 생활직업 사이에서 미남 해적선 완전 핫 해. 레벨 업 하기 좋거든!


생활직업은 전투는 물론 작업으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작업일수록 획득 경험이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미남 해적선에는 테이아에서 만나기 힘든 왕족 신분이 무려 7명이나 있었다.


바로 세이렌 일곱 자매들!


만든 과자와 빵을 왕족이 먹어 줄 때마다,

공주의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마다,

직접 재단한 옷과 구두를 인어공주들이 신는 것만으로,

제빵사와 요리사, 미용사와 재봉사는 경험치를 쑥쑥 얻는다.


“아! 그래서 아까 대장장이도 있었구나?”

-무엇보다 세이렌 공주들은 공주병 말기라서 사람 참 많이 부려 먹어!

-···그거 좋은 거야?

-좋지! 경험치를 쉴 새 없이 주니까!

-완전 노다지죠. 노다지!

-우리 생활 직업한테는 거의 보물 던전입니다.

“고등어 공주들이 도움이 된다니··· 역시, 어른들 말 틀린 것 하나 없어! 개똥도 쓸데가 있네!”


세이렌 일곱 자매에 대한 신소율의 평가가 1 올라갔다.

덕분에 현재 호감도는 1.


신소율은 생활 직업들에게 부탁했다.


“선박 2층 여자기숙사에 가면 사다코가 있을 겁니다. 예쁘게 꾸며주세요.”

“맡겨주십쇼!”


생활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의욕이 넘쳤다.


신소율에게 러즈 이벤트는 공유받았지만, 레벨이 낮아 전투를 구경만 하던 자신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벤트에 기여할 수 있다니!


가위, 바늘, 천, 화장품.

각자의 무기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해적선에 탑승했다.


여자 기숙사에 들어가자 사다코가 앉아 있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가면을 쓰고 전투를 치르면서 지저분해진 사다코의 머리를 미용사가 다듬어 놓으면,

재봉사가 재단해 놓은 옷 수십 벌을 꺼내 사다코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았다.


코디는 구두, 목걸이, 귀걸이, 팔지, 리본을 골라주고,

화가가 청순하면서 도발적인 화장을 하면 완성!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사람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흰머리가 너무 많아.”

“주름을 숨기기 힘들어.”

“조금만 젊었다면!”


현재 가상 나이로 환갑을 넘긴 60대 할머니 사다코.

연세가 있는 육체다 보니 메이크업이 조금 벅찼다.


그러는 동안 무대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감사해요.”


사다코는 인사를 하고 2층 여자기숙사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


계단을 내려가는데 음정 박자를 무시해서 원곡을 알 수 없는 노래가 들린다.

뱃머리로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그녀다.


“끄윽!”

“살려줘! 머리가 멍해.”


주변에 상어 투사와 꽃게 쌍검사가 양손으로 귀를 막고 갑판에 주저앉아 있다.


“후후.”


사다코는 웃음이 나왔다.

연인은 닮는 걸까?

신소율도 그렇지만, 나비도 만만치 않게 재밌는 사람이라고 사다코는 생각했다.


나비의 뒤쪽에서 한숨을 쉬던 신소율이 사다코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미안. 나비가 너 오기 전에 분위기 띄우겠다고 뛰쳐나가더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분위기를 띄우기는커녕, 관객들이 늪지대에 들어온 사람처럼 가라앉고 있다.


“괜찮아요.”

“천사네. 본 무대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 할래?”

“바로 갈게요.”

“알았어, 무대 연출은 내가 맡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질러.”


“잊지는 마! 내 사랑은!”


“···저것도 치워줄게. 야, 어부!”

“네, 선장님! 그물 분산!”


신소율이 소리치자 오징어 어부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물을 던졌다.


“엄마얏! 이게 뭐야!”

“대어다, 끌어당겨라.”


질질질.

그물에 잡힌 나비는 뒤쪽으로, 사다코는 웃음을 꾹 참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둥둥, 지잉.

사다코가 걸어오자 선박 한편에서 대기하던 음악가 다섯 명이 드럼과 기타로 반주를 시작했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사다코는 기분이 묘했다.


‘무대로 가고 있어.’


어비스의 달빛도시에서도 노래를 불렀지만, 그때는 익숙한 관객, 던전 부하들 앞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 사람들 앞으로 가고 있어.’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른 게 언제였을까?


‘신기해.’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서면 심장이 떨릴 거라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지금 이 감정은 그거다.


‘두근두근한 기대감.’


사다코는 갑판을 굴러다니는 마이크를 집었다.

나비가 그물에 끌려가면서 놓친 마이크다.


“후후.”


나비와 신소율을 생각하자 사다코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정말 상념에 잠길 시간을 안 준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걸까?’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다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자.”




뚜벅뚜벅.


“오! 사다코 나왔다!”


미남 해적선 근처에 있는 언덕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뱃머리에 선 사다코를 발견했다.


“근데 사다코가 노래를 잘해?”

“몰라, 들어본 적 없는데?”

“신소율이 자신 있게 세운 걸 보면 좀 하는 거 아냐?”

“많은 건 안 바라니까, 제발 나비 누님만큼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기대감, 불안감, 공포.

여러 감정을 담아 사다코를 보는 관객들.


사다코도 관객들에게 시선을 줬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용서할게요.”


[노화의 저주가 축복으로 변합니다.]

모든 회복 속도 +40%

체력 +3%

근력 +2%

내구 +1%


사다코의 흰머리가 먹물에 담근 것처럼 검게 물든다.

주름으로 자글자글하던 피부도 아기처럼 탱탱하게 펴졌고, 조금 구부정하던 허리도 일직선이 됐다.


“오오! 할머니가 젊어지고 있어!”

“용서 기술이잖아?”


3차 직업 대마녀의 기술, 용서.


대상의 저주를 축복으로, 혹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는 거꾸로 기술이다.

사다코에게 걸려있던 노화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다.


변화가 생긴 건 그녀만이 아니다.


“소율아?”


무대 뒤쪽에서 그물을 빠져나와 남자친구의 멱살을 휘두르던 나비는, 원형탈모의 중년 남자친구가 사라지고 7살 또래의 소년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아, 저주 풀렸네?”


동반자 기술을 통해 사다코와 저주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사다코의 저주가 풀리자 신소율에게 걸린 노화도 사라졌다.


“꺅! 귀여워!”


여자친구의 품에 안긴 신소율은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살폈다.


“꿀꺽!”

“세상에···.”

“와···.”


관객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 있다.


“진짜 예쁘다!”

“여신님!”

“신소율이 한 말이 정말이었잖아?!”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부챗살처럼 뻗은 속눈썹. 그 아래 빨려들 것 같은 두 개의 검은 다이아몬드.

무대에 여신이 서 있다.


맨 얼굴을 드러낸 사다코가 드디어 앵두처럼 붉은 입술을 열었다.


“듣고 있나요, 내 마음을.”


끼익.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던 신하나와 티아마트가 공중에 정차했다.


“사다코 이모다!”

“노래 잘 부르는 인간이다.”


정신없이 놀던 아이와 드래곤도 멈춰 세우는 고운 목소리가 뱃머리에서 들려온다.


“보고 있나요, 내 눈물을.”

“······.”


‘제발, 나비보다는 잘 불러라.’라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관객들은 말을 잃었다.

잔잔하지만 그래서 더 감미롭게 들리는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뜨니 노래가 끝나있었다.


짝짝짝.

깊은 여운에 잠겨 있는 관객을 깨운 건 신소율의 박수 소리.


그제야 정신을 차린 관객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우아아!”

“앵콜! 앵콜! 앵콜!”

“사다코! 사다코!”


마이크를 든 신소율이 무대로 나오면서 말했다.


“이야, 귀가 황홀하다는 게 뭔지 알려주는 무대였습니다. 그렇죠?”

“네!”

“하하, 노래는 정말 국경도, 종족도 초월하네요. 알브가 던전을 나올 정도니까.”

“···헉?!”

“따, 딸꾹!”

“이, 이런!!!”


몇몇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면서 반사적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뒤를 돌자 언덕, 나무, 초원, 땅은 물론, 공중에도 료스알프, 서큐버스, 흡혈귀, 그라이아이, 드베르그가 가득!


“어비스의 알브가 전부 나왔나?”

“이 정도 숫자가 다가왔는데 전혀 몰랐어···.”

“세상에, 여기서 싸움 나면···.”


인간 세력은 1분 안에 전멸하겠지.

사람들은 얌전히 무기를 집어넣었다.


신소율은 태연하게 사다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두 번째 노래를 부르기 전에 무대의 여신이자 어비스의 가수, 사다코 씨와 잠시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다코 씨.”

“···네.”


개인 방송과 광고에 이어 이제는 진행자 자리도 넘보는지, 능숙하게 진행하는 신소율 때문에 사다코는 잠깐 당황했다.


“오랜만에 컴백 무대였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컴백이요?”

“쉿! 그런 설정이야, 너무 캐묻지 마.”

“후후.”


사다코가 미소를 짓자 주변에 후광이 비친다.

무대 뒤에서 무대 연출을 맡은 사진작가의 직업 기술이다.


“자, 두 번째 노래는 어떤 곡으로 준비했나요?”

“소율 씨, 몇 곡이나 불러야 해요?”

“아까 찾아보니까 콘서트는 보통 20곡은 질러야 한다고 하던데?”

“······.”

“하하하, 농담이야. 3곡만 더 가자.”


사다코는 안도하며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     *


무대의 여신의 컴백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어비스 던전 소속 보스, 올해 최고의 아이돌 프로젠이 패배를 인정합니다.]

승부 : 알브와 내기 승리


[승부 조건 달성!]

[어비스를 공략했습니다.]

던전 수준     999(Y급 99일)

공략자 레벨    240

수준 차이 가산점  759%


남은 체력 가산점  28%


기본 경험     3,000만÷999명

총 가산점      787%

획득 모험 경험   266,366


[축하합니다!]

공략 불가 판정을 받았던 6대 미궁.

그중 가장 깊은 지하에 자리 잡은 던전, 어비스를 공략했습니다.

테이아의 모든 주민이 미궁 공략자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업적 어비스 공략!]

던전 어비스를 공략했다.

리셋 점수 +2


[추가 보상]

올해 최고의 아이돌 프로젠이 행운의 소녀 러즈에게 소속됩니다.


[누나의 첫사랑 달성!]

이벤트 수준       800

공략자 레벨       240

수준 차이 가산점  560%


시간 가산점      99%

기여도 가산점    200%


기본 경험    3,000만÷999명

총 가산점        859%

획득 모험 경험  287,987


매니저 러즈의 고용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보상 2배 적용

올해 최고의 아이돌 프로젠의 고용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업적 해피 엔딩(3) 달성!]

해피 엔딩을 본 이야기가 세 개다.

조건 : 이벤트의 해피 엔딩을 봤다.

리셋 점수 +1


“와우! 어비스 공략이랑 해피 엔딩이다!”

“으하하! 근식이한테 자랑해야지!”

“대박이다, 업적을 두 개나 얻다니! 빨리 리셋해서 쇼핑하고 싶어!”

“크크, 내가 리셋 시켜 줄까?”

“됐네요!”


콘서트 관람에, 이벤트 달성, 그리고 업적까지!


이렇게 좋은 날 사람들이 그냥 헤어질 리 없다.

뒤풀이로 즉석에서 도시락과 맥주를 꺼내 저녁을 먹었다.


“사다코 노래 실력, 진짜 출구 없지 않냐?”

“얼굴도 진짜 여신급.”

“신소율이 반할 만하네!”

“그래봤자 차였지만.”

“푸하하!”


헬라의 전투력과 레벨도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사다코!


평소에는 개미 목소리에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니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음침하다고 소문난 그녀가,

설마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과 외모를 가진 여신이었을 줄이야!


“사다코 누님! 사인해 주세요!”

“저희랑 같이 던전 공략해요!”

“저희 팀에 들어와 주시면 공주님처럼 모시겠습니다!”

“미안해요.”


미남 해적선을 내려오기 무섭게 사다코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사람들의 부탁에 곤란해 보이면서도 일일이 거절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 있다.


“즐거워 보이는군.”


료스알프 영웅, 헬라는 어비스를 공략한 인간 세력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니 던전이 공략당한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즐거워야지. 안 그러면 내가 욕먹을 텐데.”


클라라가 구워주는 조개구이를 먹으면서 신소율이 대꾸했다.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달성했지만, 리셋한 사람만 삼백 명을 넘는다.

그에 반해 어비스 측은 사망자 0.


알브는 100명 남짓한 인원만 전투에 참여했지만, 전부 보스급으로 평균 레벨이 1325.

반대로 인간은 천 명 넘게 참가했지만, 평균 레벨은 알브의 절반도 안 되는 320이다.

피해가 없을 수 없다.


“리셋한 사람들이 얼마나 화를 낼까! 홧김에 인터넷에 ‘신소율 재수 없어!’라는 댓글을 달지도 몰라!”


리셋과 헬라보다 시청자의 비방이 훨씬 살 떨리게 무서운 신소율이다.


“소율아 이것 봐라!”


남자친구의 공포를 모르는지 옆에서 맥주를 마시는 나비가 자꾸 자랑했다.


[업적 레벨 업 800 달성!]

직업 레벨을 800 올렸다.

리셋 점수 +1


[업적 이벤트(50) 달성!]

이벤트를 50번 달성했다.

리셋 점수 +1


“나 업적 두 개다! 부럽지? 부럽지?”


눈웃음으로 가득한 여자친구의 얼굴에 신소율의 입가가 헤벌쭉 벌어졌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잘난 척했다면 재수 없었을 텐데, 쓸데없이 예쁜 얼굴로 쳐다보니 마냥 웃음이 나왔다.


여자친구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방금 획득한 업적은 치웠다.


[업적 생존력(10%) 달성!]

전투를 치르면서 생명이 10% 아래로 떨어진 순간이 20번이나 된다.

리셋 점수+1


[업적 운수 좋은 날(10만) 달성!]

한 시간 동안 10만의 피해를 입었다.

리셋 점수 +1


헬라한테 탈탈 털렸더니, 매 맞는 업적이라고 불리는 생존력과 운수 좋은 날을 얻었다.


“아, 맞다.”


신소율은 문득 생각나서 나비에게 물었다.


“집에는 언제 찾아갈까?”

“끙···.”


기분 좋아 보이던 나비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가기 싫어! 근데 이벤트도 끝나서 이제 변명할 것도 없는데···.”


얼마 전 신소율은 여자친구의 어머니에게 초대를 받았다.

예비 장모님의 부름이니 신소율은 시간을 내서라도 방문하려 했지만, 정작 김소혜가 시간을 질질 끌었다.


“빨리 방문해서 인사드리고 오는 게 낫지 않아?”

“흥! 너는 안전하니까 그런 말을 하지!”


왠지 심통이 난 여자친구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결국 나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이번 주말에 갈까?”

“토요일? 일요일? 토요일에는 하나랑 수족관 가려는데.”

“수족관? 앗싸!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 주에 가자!”

“아니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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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9월 둘째 주 (1) NEW 19시간 전 13 1 14쪽
» 9월 첫째 주 (8) 24.09.18 13 2 24쪽
110 9월 첫째 주 (7) 24.09.18 12 2 15쪽
109 9월 첫째 주 (6) 24.09.18 15 2 13쪽
108 9월 첫째 주 (5) 24.09.18 13 2 12쪽
107 9월 첫째 주 (4) 24.09.17 17 2 14쪽
106 9월 첫째 주 (3) 24.09.17 12 2 14쪽
105 9월 첫째 주 (2) 24.09.17 12 2 15쪽
104 9월 첫째 주 (1) 24.09.17 1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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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8월 넷째 주 (3) 24.09.17 1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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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8월 넷째 주 (1) 24.09.16 20 2 14쪽
99 8월 셋째 주 (3) 24.09.16 23 2 16쪽
98 8월 셋째 주 (2) 24.09.16 19 2 12쪽
97 8월 셋째 주 (1) 24.09.16 20 2 19쪽
96 8월 둘째 주 (3) 24.09.15 22 2 20쪽
95 8월 둘째 주 (2) 24.09.15 19 2 17쪽
94 8월 둘째 주 (1) 24.09.14 21 2 14쪽
93 8월 첫째 주 (2) 24.09.14 20 2 20쪽
92 8월 첫째 주 (1) 24.09.13 26 2 16쪽
91 7월 넷째 주 (3) 24.09.13 23 2 13쪽
90 7월 넷째 주 (2) 24.09.12 23 2 19쪽
89 7월 넷째 주 (1) 24.09.12 28 2 14쪽
88 7월 셋째 주 (7) 24.09.11 28 2 16쪽
87 7월 셋째 주 (6) 24.09.11 25 2 14쪽
86 7월 셋째 주 (5) 24.09.10 2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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