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맹약
지금 눈 앞의 순간도 꿈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그도 그럴게, 10척이 넘는, 작은 산만한 크기의 몸집을 가진 용이 세상에 존재할리가.
있었다면 이미 동물사전이라던지, 뉴스에 먼저 나오거나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을까 싶다.
[설마 백도사 네 놈이냐?]
“백···도사라뇨?”
[하! 외면이 젊어졌는데 머리는 노망이라도 났느냐? 감히! 나를 몰라 봐?!]
너 때문에 봉인 당해 이 모양이 이 꼴이 되었는데?!
‘그것’이 소리 지를 때마다 커다란 먹구름에서 벼락이 쩌렁쩌렁 내리쳤다.
아무래도 저 먹구름의 정체는 저 뱀인지 용인지 모를 것이 불러온 게 분명하다.
게다가 백도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님 중에 도사라는 칭호를 가진 분이 계셨던 모양인데.’
비상식적인 상황이어서 그런건지 머리는 오히려 침착했다.
비구름까지 만들어내고 인간의 언어가 통하는 게 그냥 짐승일리가 없다.
아마도 [영물] 이라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으니 자신에게 해를 끼칠리는···.
[내 이 봉인이 풀리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네 놈의 모가지를 꺾고 비틀어! 온 사방을 네 놈의 피로 물들이고! 사지를 비틀고 잘라 물고기들의 먹이로 줄 것이다!!!]
“···X됐네.”
예상과 달리 화가 잔뜩 난 존재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가득했다.
‘도망쳐? 아니면 말로 설득해 봐···?’
간신히 떠올린 해결책은 애석하게도 상대에게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도망치자니 얼마 못 가 금세 잡힐 것 같고, 말로 설득하자니 흥분한 상대를 진정시킬 자신이 없다.
게다가 생존을 위한 본능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절대로 이 집에서 벗어나면 안돼!!]
라는 목소리가-
나름 그럴듯한 게 저리 쩌렁쩌렁 소리치며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도 덤벼들지 않았다.
요컨대 이 집이 자신을 지켜준다던지, 혹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던지···일단 확신이 필요했다.
“저기요.”
[저기요?! 감히 네가 나를 부르는게냐!? 낯짝도 두껍기도 하지!!!]
“아까부터 말은 많으신데 왜 아무것도 안하세요?”
[···네가 진정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실수했다. 노려보는 눈동자가 몸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제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을 정도의 살의.
살면서 누군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확신하는 눈을 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도발해서 확인해보려던 건데 너무 성급했어···!’
안 그래도 개복치만큼 약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정말로 죽나보다 싶었건만,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없다.
“···?”
[건방진 것···감히 인간 주제에 나를 두 번이나 우롱하려 들다니···!!]
이거···아무래도 도발에 실패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토록 인간이 어쩌구, 교활하다며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것’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몸을 일으키니, 눈으로 제 행동을 쫓으면서도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설마.’
곧장 시선은 방 안에 켜둔 촛대로 향했다.
여전히 오색 빛을 내뿜는 밀랍초, 하지만 불을 붙인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녹아내리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많은 사건사고에서 살아남은 제 감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관련된 거구나.”
곧장 밀랍초를 잡아들고 다시 툇마루로 나오자.
올곧을 정도로 노려보던 ‘그것’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이노옴···.]
“···역시, 이거구나. 이게 있으면 날 건들 수 없는거지?”
[다···알면서도 나를 놀리는 게냐!! 아직까지도 나를 우롱하다니!! 이 씹어먹을 놈!! 죽일 놈!!!]
‘그것’이 울분을 토해낼 때마다 천둥을 동반하여 빗줄기가 세차게 몰아쳤다.
일단은 재난상황이라고 선포되기 전에 ‘저걸’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 진정하세요.”
[진정?! 진정 못 해! 백도사···!!]
“전 백도사가 아니에요.”
[···백도사가···아니라고?]
그제야 멈칫한 ‘그것’은 제쪽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영롱하다는 감상밖에 나오지 않는 눈동자에는 곧 의문이 떠오르는 듯 하다.
[분명 백도사의 피냄새가 나는데, 백도사가 아니라고···?]
“백도사가 누군지는 몰라도···아마···저희 집 안에 계셨던 조상이실 거예요.”
[···조상이라니, 그 말은 지금 백도사가···타계했다는 게냐?]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찢어 죽이겠다며 그토록 치를 떨던 ‘존재’가 조상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에,
‘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는 거야?’
[어찌하여···어찌하여 끝까지 나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가···백 도사···.]
그 영롱하던 눈동자에서 연신 수정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마치 ‘그 존재’의 마음을 대변하듯 부슬비로 바뀌어 땅을 적셨다.
그것도 한참동안이나—
*
[···그러니까 네가 현손자라는 게로군.]
진정한 ‘그 존재’는 산만하던 몸집을 줄여 생가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위협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아마 이 녹지 않는 밀랍초를 들고 있는 이상 제게 해를 끼칠 수는 없을 터.
아버지에게 들은대로 꽤 한 5대 쯤부터 전해내려온 생가라고 하니, 제 호칭은 현손자가 되었다.
“일단···그쪽은 정체가 뭔가요?”
[···이무기니라. 용이 될 수 있었던···.]
“이무기?”
용이 되기 위해 수련하고 하늘로 승천한다는 영물의 한 종류. 뱀과 용의 딱 중간인 존재였다.
이무기의 말에 의하면 [백도사]라 부른 제 현조할아버지와는 꽤 긴밀한 사이였던 듯 했다.
[대단했지. 근방 만물에겐 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공부를 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정말 인간같지 않은 이였지.]
“그런 분이셨구나.”
이무기가 말하길 [백도사]는 날씨의 흐름을 읽고 지리를 읽으며 주술에도 상당히 능통하다고 한.
그야말로 도사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라 칭했다.
그래서 이무기 역시 자존심을 꺾고 [백도사]에게 가르침을 얻어 용이 되기 위해 수련했는데,
[그 망할 영감탱이···.]
“지금까지 이야기만으로는 그렇게 화를 낼 이유를 모르겠는데요.”
[모르긴!! 네 핏줄인 그 노망난 늙은이가 감히 내가 용으로 승천하려는 그때!!]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하여 드디어 용이 되고자 승천하던 이무기에게 도사가 소리쳤다.
“···저기!! 뱀이다!!”
이무기가 승천할 때 뱀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천상에서 승천을 막는다.
수련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리고, 다시 승천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그럼 내가 화가 나겠느냐! 안 나겠느냐!?]
“날만하네요.”
물론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눈 앞의 이무기에게 맞장구를 친다.
[승천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땅으로 추락한 나를 간사한 술수로 저 초에 봉인해버린게지!]
“아···!”
그래서 초에 불을 붙이자마자 나타났던 거구나.
하지만 왜 하필 초에 봉인 한 거지? 상관이 없지 않나 싶을 때 제 생각을 읽은 건지 이무기가 먼저 답했다.
[간단하지. 저 초가 용의 형상을 띄고 있었으니 말이야.]
“한 마디로 용 모양이면 뭐든 봉인이 가능했다는 건가요?”
[그래, 하필 초였던 이유는 아마, 그 도사님이 맨날 하던 말 때문일게다.]
백도사가 생전에 하던 이야기는 향은 삿된 것을 쫓아내고, 초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눈 역할이 된다 했다.
영적인 힘을 가진 물건이니 그만큼 봉인하기 쉬운 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근데 너는 왜 벌써 몇 해 전에 타계한 백도사의 생가에 온게지?]
“아 그게···실은 제가 몸이 많이 안좋거든요.”
이무기도 과거사를 이야기했으니 제 상황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남들한테 숨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듣던 이무기는 묘한 눈길로 제 몸을 위아래로 훑는 듯 하더니,
[그렇군, 그 늙은이가 내 승천을 방해한 이유를 알았다.]
“네?”
[내 힘을 탐 낸 게로군.]
이건 또 무슨 헛소리여? 의아한 듯 바라보니 이무기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본디 나같은 영물들은 각각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 이를 테면, 불을 다루거나 혹은 병을 고치는 힘을 가진 존재도 있지.]
오래 전에는 그런 영물들과 계약을 하고 그 힘을 빌려 명의나 장수, 경국지색으로 불리던 존재가 다분했다.
시대가 쇠퇴하며 영물들 역시 수가 줄어들었으니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럼 그쪽 힘은 뭔데요?”
[저주다.]
“···예?”
생각지도 못 한 단어가 나오는 순간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무기의 힘은 비술, 즉 저주를 다루는 힘이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악한 감정을 실체화 시켜 다루는 능력인 것 같았는데,
[백도사는 오래 전 부터 악인들을 정화하고 싶어했지. 그러기 위해선 내 ‘저주의 힘’이 필요했을게야.]
“···오히려 저주를 없애야 하지 않나요?”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고 아느냐?]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하던가?
악한 기운 역시 저주로 다스리면 오히려 정화가 되는 기이한 힘을 실현하고 싶어했다.
[나 역시 그에게 감화되어···백도사를 도우려고 했지.]
“······.”
[그래서 더 배신감에 치를 떠는게다. 저를 도우려던 나를 저버리고 능력만 취한 그 역시 결국 인간이었던 게야.]
으득 이빨을 씹는 이무기의 미간이 험악하게 찌푸려진다.
그 이야기만 들어서도 그가 얼마나 제 현조할아버지를 믿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여하튼, 백도사도 몰랐을게야. 이무기의 승천을 방해하면 그 집안에 저주가 내려진다는 걸.]
“그치만 저희 집안에선 저만···.”
[나중에야 알았겠지. 집안 자손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최대한 힘을 써본 거겠지만, 이무기의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리가 없어. 이건 천명(天命)이나 다름 없으니까.]
간신히 막아내던 힘은 대가 이어질수록 약해졌을거고 때마침 지천이 그 저주를 받은 거라고—
이야기를 듣던 지천은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그럼 이 저주를 그쪽이 다시 가져가면 되잖아요.”
[···내가 저주들을 풀려거든 너는 내가 용이 되는 일에 일조해야한다.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저주를 풀어주지.]
“···용이···될 수 있으면 되는 거죠? 제가 뭘 도와야 하는데요?”
[그건 계약을 하겠다 하면 일러주겠다.]
이거 사기 아니야? 보통 이용약관도 미리 알려준다음에 싸인하라고 하는데···.
하지만 아쉬운 건 자신이었으니 여기서 안한다고 할 수도 없는 터.
게다가 제 집안 어르신이 저지른 일을 처리해야하는 일이니···.
“좋아요. 그 계약 하죠.”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백 지천 입니다.”
[좋다···백가의 지천아—]
순간 지천의 주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알 수 없는 한기가 집 주위를 감쌌고, 지천의 옆에 있던 용 초의 불도 검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이 순간부터 맹약하노라— 나, 흑운은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을 때까지 백가의 지천의 저주를 풀어내고 명다리를 이어주리니, 이에 백가의 지천은 성심성의껏 나 흑운의 승천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라—]
“윽···!”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회오리치는 아지랑이가 마치 제 몸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 올리는 것 같은 느낌.
[입 벌리거라.]
“아···아아···!!”
[그래, 좋구나. 아주 많은 양이야.]
입을 벌림과 동시에 찐득하고도 검은 액체가 열기구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런 게 내 몸 속에 있었다고!?’
대체 얼마나 큰 저주였던건가? 보살이 평생 운이 사고수밖에 없다고 할 법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웠건만, 입 밖으로 나오는 액체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토악질하고 싶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오는 액체에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럼, 오랜만에 취해보도록 하지.]
저주의 독을—
몸집을 키운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더니 그 큼지막한 액체를 한 입에 집어 삼켰다.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오르던 지천의 발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커헉! 큽···허억···! 우욱···욱···!!”
[으음, 맛이 좋구나. 대대로 농축되어 온 나 흑운의 힘인가. 백도사 집안의 기운까지 머금어 아주 양질이로군.]
흡족한 말투의 흑운에 눈물 콧물 쏙 뺀 지천이 그를 흘겨봤는데,
“?!”
눈 앞에 있던 것은 용같은 존재가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옷을 입은 장정이었다.
허리 끝까지 내려오는 칠흑같은 머리와 사슴처럼 난 뿔, 여전히 날카로운 눈동자와
핏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피부,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잘 돌려받았다. 내 힘은.]
“하아···하아···그럼···제 저주는 풀린···건가요?”
[절반 정도는?]
“···절반이라뇨?”
이건 계약이랑 다르지 않나?! 이래서 약관을 먼저 읽어보고 동의를 했어야 했어!!
울분을 토하는 지천에 흑운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분명 처음에 말했을텐데? 저주‘들’이 내려진다고?]
“···뭐라고요?”
[네게 내려진 두 번째 저주는 불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아니···무슨 그 따위 저주가 있어요?”
[있지? 네가 다칠때마다 주변 사람은 안다치고 너만 다치는 게 그 이유란다.]
그야말로 언럭키의 인간화가 바로 자신인 셈.
일전에 보살이 했던 부모님의 액운까지 뽑아먹는다는 말이 이걸 뜻하는 것 같았다.
의도치 않게 두번째 저주를 확인한 지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분명 저주를 모두 풀어준다고···!”
[저주를 풀어준다고 했지. 저주들이라곤 안했다? 게다가 너는 내게 도움을 주겠다지 않았느냐?]
“이거랑 그게 무슨 상관···!”
[간단히 말해 네 불운이 끌어당기는 건, 비단 불운 뿐만이 아니다.]
“···그럼요?”
[남이 받은 저주까지 모두 다 지.]
흑운이 씩 웃으며 답했다.
[네 저주로 다른 인간들에게 붙은 저주까지 모두 끌어모아 내가 취할 것이야. 그럼 내 힘은 점차 돌아올테고···.]
“그 힘으로 용이 되시겠다는 건가요? 용이 저주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거예요?”
[물론이지. 모든 신들이 선한 힘만을 가진 건 아니다.]
자연에도 독과 약이 있듯, 용이든 신이든, 독과 저주를 다루는 존재도 분명 존재했다고,
그리고 흑운이 되려는 용은 바로 저주와 독을 다루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일렀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하지. 백 지천.]
“···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떡하려고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딱 소리를 내며 흑운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불꽃을 일렁이던 용의 초가 팔찌로 바뀌어 제 손목에 채워진다.
[구욷~~~이 백도사의 물건을 쓰고싶지 않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그 노인네가 쓰는 도술은 확실히 강하거든.]
“요점만 말해요.”
[···너 백도사의 자제가 맞긴 하구나? 까탈스러운게 그 노인네를 떠올리게 하는군···.]
이어진 흑운의 설명에 의하면, 백도사의 초는 삿된 것을 쳐내는 힘이 있으니,
다른 사람의 저주가 아무리 끌어당겨지더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라고···.
[게다가 안전장치는 그것 뿐만은 아니야. 네가 만일 죽으면 나 역시 소멸하도록 계약을 한 게다. 우린 이제 운명 공동체라고? 어때? 이 정도면 안심되지 않느냐?]
웃는 꼴을 보아하니, 아까 전 할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연극인 것 처럼 느껴졌다.
여하튼 확실히 저주를 풀어준 후부터는 몸 상태가 평소보다 월등이 가뿐해진 게 느껴졌다.
남은 저주까지 풀고 살기 위해선 저 역시 흑운의 도움이 필요할 터.
“운명공동체니까 허튼 짓 하지마세요.”
[걱정마. 천상의 신을 걸고 한 맹약이니, 허튼 짓은 하지 않을거야. 장담해.]
“···허튼 짓을 하면···그땐 내 목숨으로 당신 협박할 거니까. 각오하라고.”
제 말에 잠깐 입을 다문 흑운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씹어먹고 싶다는 듯 으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간 흑운이 중얼거렸다.
[역시 백도사의 핏줄 답구나. 배짱이 여간 내기가 아니야···.]
한 입에 잡아 먹고 싶을 만큼 맑은 영혼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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