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먹는 용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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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줏단지
작품등록일 :
2024.07.2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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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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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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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저주 (1)

DUMMY

[호오···별의 별 게 다 있구료. 확실히 세월이 많이 흐른 모양이군?]


생가를 이리저리 훑는 흑운은 신문물이 신기한 듯 했다.

특히 그가 눈독을 들인 건 포장된 돈까스 였다.


[이건 무엇인데 종이 쪼가리에 고기가 그려져 있는게냐? 혹시 요즘은 종이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느냐?]

“종이는 그냥 내용물을 표기한 거고, 안에는 내용물이 따로 있어요.”

[그래? 거 어디 요즘 시대는 어떤 것을 먹는지 한 번 내와 보거라.]


마치 주인인양 구는 게 여간 꼴같잖은 게 아니었다.


“계약상 내가 그쪽한테 음식까지 갖다 바쳐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요.”

[거 째째하게 구는구만? 몸도 약해빠진 것이 속도 좁아 터졌느냐?]


저게 진짜 뚫린 입이라고···.


[게다가 내가 너보다 몇 곱절은 더 먹었으니 웃어른이 아니냐? 모름지기 이 나라는 웃 어른을 공경하는···.]

“놀고있네. 네가 뱀새끼지 사람새끼야? 어디 인간들끼리 나누는 사상을 저한테 들먹이고 앉았어?”

[···네 놈 말이 가다 넘어졌느냐? 왜 그리 짧지?]

“내가 굳이 너한테 존대할 이유가 없잖아?”

[이 놈!! 내가 너한테 내려진 저주를 풀어주지 않았느냐!]

“어, 너 말 잘했다.”


큰 소리 치는 흑운에 발작하듯 지천이 몸을 일으켰다.

그 기세가 사뭇 대단해서인지 흑운도 잠깐 움찔했는데, 내려다보는 지천의 눈빛은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그 썩을 놈의 저주 때문에 내가 평생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

[···그건 백도사 때문이 아니···.]

“그러니까! 왜 선조때 일을 들먹이면서 그걸 나한테 책임을 묻냐고 이 뱀새끼야! 내가 그 때 살아 있었어!?”

[어허! 본디 조상의 업은 자손들이 닦아야 하는···.]

“XX하고 자빠졌네. 그럼 네가 용이 못 된 것도 네 뱀 조상들한테 업보를 받았나보지. 그걸 왜 남한테 화풀이를 하더니 지금와서는 주인행세를 하고 지X이야, X랄은?!”


애시당초 자신은 피해자다.

물론 처음에야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그리고 타고난 팔자니까 그러려니 했다지만, 솔직히 억울한 건 사실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5대째 선조라면 남보다 못한 사이임에도 그 책임을 고스란히 자신이 져야 하는데,

그 와중에 모든 책임을 저에게 전가하며 노예 다루듯 하는 꼬락서니도 기가 차다 못해.

지금까지 쌓인 울분을 고스란히 흑운에게 내던졌다.


“잘 들어 먹어. 우린 계약관계고, 나도 나 살자고 너를 용으로 만들어준다고 약속은 했어. 하지만, 그게 갑을 관계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오히려, 지금 네가 나한테 피해보상을 해줘야 할 판이잖아? 막말로 나는 이 일에 핏줄인 거 빼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데 저주에 휘말린 거야!!”


그러니까!! 갑을을 따지면 네가 나한테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할 을이고! 내가 갑이야—!!!

온 마을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고함에 흑운은 제법 놀란 듯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토록 속 시원하게 소리를 질러본 게 얼마만일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그···이, 일단 진정하고 앉···앉아라.]

“앉아라?”

[···앉아 봐.]


처음 만났을 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살짝 당황한 모습.

그제야 자리에 앉은 지천이 밥상을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말해두겠는데, 지금 내가 죽으면 당신도 죽는거잖아? 반대로 묻겠어. 당신이 죽으면 난 죽어?”

[···그렇지는···않지.]

“그럼 당신을 나를 끝까지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네.”

[그···렇지?]

“앞으로 말 잘들어. 소멸되기 싫으면.”

[···예.]


기싸움은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맹약으로 묶인 관계에 모로 따져보나 어쨌든 자신이 더 보호받아야 할 입장이었으니,

게다가 아무리 영물이라고 한들 한국인의 종특인 쏘아붙이는 화법에 면역이 없는 흑운은—


[···뭔가 잘못 된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맞는 말 같다며 반박하지 못 했다.


“후우···뭐, 좋아. 일단 나도 아까 그 이상한 걸 토해내고 났더니 배가 고프니까 돈까스···먹자고 먹어.”


기선제압에 성공했으니 적절하게 당근을 줄 필요가 있었다.

태도를 바꾼 제 모습이 영 적응이 안되는 듯 한 흑운은 얌전히 밥상머리에 앉아 요리하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고슬밥에 따끈하게 구운 에어프라이어표 돈까스와 집 반찬까지 골고루 차리니,


[진수성찬이 따로없구나···어찌 이리 반찬이 뚝딱 나오지? 솔직히 말해라. 너도 도술을 부릴 줄 아느냐?]

“도술은 무슨.”


냉장고가 없던 시대여서 그런지 뚝딱 나오는 반찬들이 퍽 신기한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엔 살짝 주눅들었던 흑운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솜씨가 대단하구나. 어린 인간이 제법이야.]

“어리긴, 이젠 나도 스무살이나 됐는 걸.”

[···스무 살? 근데 어찌···그리 왜소 하지?]

“네가 내린 그 저주 때문에 운동 한 번 하면 항상 다치기 일쑤였거든.”


매번 나오는 병원비에 정말 집안을 거덜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충치도 혹시나 생길까 단 것도 잘 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정말로 그 놈의 저주 때문에 즐기지 못하고 산 것들이 태산같았다.

야영때 크게 다치고 수학여행땐 납치를 당하다보니, 중고등학교 땐 그런 행사때마다 항상 집에만 있었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진지하게 홈스쿨링을 하던, 검정고시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정도니까-

물론, 그 덕에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긴 했으니 전화위복인 셈.


“밥도 먹었고 하니 이 계약에 대해서 몇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어.”

[어어, 뭐든 물어보도록 하라.]


밥 맛이 좋았는지 제법 호의적인 태도였다.

지천이 묻고 싶은 건 세 가지 정도였다.


“일단, 첫 번째로 용이 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한 건데?”

[음···용이 되기 위해선 여의주가 필요하지.]

“여의주? 드래곤볼 그거 말하는 건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만···자, 이게 여의주다.]


흑운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 투명한 구슬이 생겨났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구슬은 마치 손바닥 위에 있는 듯 없는 듯 했는데, 아래 쪽에만 검은 빛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타고난 힘이 저주고, 독이기 때문에 용이 되어도 흑룡이 되지. 그래서 여의주도 검은 색이다.]

“···그치만 이건.”

[그래, 승천에 실패할 때 아무래도 여의주 역시 처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구나.]


본디 꽉 채운 밤하늘 같은 검정색이었을 여의주는 거의 5퍼센트만 남은 듯 바닥만 검게 물들었다.

흑운의 말에 의하면, 여의주의 완성도는 곧 이무기의 힘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지금 네 힘은 고작 이 정도라는 거네?”

[크흠! 이 정도라도 웬만한 힘은 다 쓸 수 있다!]

“할 수 있는 게 뭔데?”

[뭐···일단 네가 악귀같은 것들에게 당하지 않게끔 보호해줄 수도 있고···.]

“그건 이 팔찌가 해준다며.”

[···날씨도···한 몇 분 정도는···아! 그리고 원하는 상대에게 저주를 내릴 수도 있고···또···.]

“그만, 됐어. 결국 하등 쓸모도 없다는 거 아니야.”


용이 될 몸이라길래 상당히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무능력함에 혀를 차니, 흑운이 답지않게 시무룩해졌다.

아무래도 저 역시 능력이 없어진 것에 조금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둘째, 다른 사람들한테도 당신 모습이 보이는 거야?”

[내가 이래보여도 영물이자 신이 될 몸인데 아무에게나 보이겠느냐! 영적인 힘이 있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다!]

“영적인 힘이라면 어느 정도의 영적인 힘?”

[굳이 따지면 신을 받은 제자들 정도겠지.]


한 마디로 무당정도가 아닌 이상 흑운의 존재가 남들 눈에 보일리는 없다. 오케이.


“그럼 마지막 질문. 본래 뱀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사람같잖아. 어떤게 진짜 모습이야?”

[진짜 모습은 뱀이지만, 신이 되면 이 모습에서 더 품위있게 바뀌고 본 모습도 용이 될 게다.]

“그렇군···근데 왜 아까는 뱀의 모습이었어?”

[그건 봉인에서 풀린지 얼마 안되어 힘이 없었고, 그나마 네게 내렸던 저주의 절반을 가져와서 이 정도···.]

“잠깐, 그럼 지금 네 힘이 내 저주를 빨아들여서 올라간 거라고?”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 흑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천에게는 아주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럼 지금 이 여의주의에 찬게 나한테서 저주를 흡수해서 그런거라고!?”

[···그렇다만?]

“···미치겠네.”


그토록 평생을 괴롭혔던 저주가, 고작 5퍼센트밖에 안되는 힘이라니.

아니 그럼 대체 본래는 얼마나 강력한거고, 그 힘을 다시 모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저주를 빨아들여야 하는거야.

앞으로의 생활이 그려지는 듯 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계약 위반한다고 튈까? 어차피 이 팔찌도 있는데···.’


흑운이 직접 채워준 초를 변형시킨 이 팔찌가 현재 흑운의 힘보다는 세다는 건데.

그렇다면 계약을 위반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생각으로 정신이 사나운 찰나.

어느 샌가 일어선 흑운이 장지문을 벌컥 열었다.


“? 뭐하는 거야?”

[저주의 냄새가 난다.]

“어?”


저주의 냄새라니? 그러고보니, 문을 열자마자 어디선가 노린내 같은 것이 풍겨왔다.

흑운을 따라 장지문을 나서니, 저 멀리 장례를 치루고 돌아오는 듯한 상복을 입은 무리가 보였다.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못해 살짝 두려워하는 기색이 비췄는데,


‘···뭔가 이상하다?’


상복을 입은 무리 중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은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였다.

보통 할머니는 누군가 부축을 해주던가, 상주가 제일 앞서서 돌아가지 않나?

그런 의문이 생겨남과 동시에 제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작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많이 발전했다 싶었건만···여전히 사술이 성행하고 있었군.]

“···사술?”

[그래, 저 집 안 말이야.]


아주 사특한 기운이 가득해···그것도 온 가족들 모두에게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흑운의 옆 얼굴은 예상외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저주를···내리는 존재라더니···.’


어쩐지, 저주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험악한 얼굴이어서-

흑운이 저주를 지배하는 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


“아이구, 지천이 왔구나? 벌써 초하룬가?”

“네네, 어제 왔어요. 아저씨는 잘 지내셨죠?”

“뭐, 한달만에 본 건데 나빠질 게 뭐가 있겠냐~!”

“아이구! 우리 지천이 왔어~?”

“잘 지내셨죠. 할머니?”

“그려그려,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네?”

[···뭐, 너 여기 다 구워 삶았냐?]


흑운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반응했지만, 지천에게는 꽤 익숙한 풍경이다.

매년 어김없이 초하루마다 방문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근방 주민들은 제법 친근하게 안부를 묻곤 했다.


“아이고, 몸 약한 꼬마구나. 아저씨가 옥수수 가져다 줄까?”

“아줌마네 집에 가래떡 있는데 먹으련?”


가뜩이나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동네에 어린 아이가 홀로 삼일씩 지낸다는데,

누가 이를 경계하겠는가? 차라리 동정을 하면 했지.

게다가 마을로 오는 이유도 몸이 약해서 요양을 위해 매번 방문한다고 일러두니.


“아휴, 불쌍한 것. 얼마나 몸이 아프면···.”

“요즘은 맞벌이 해야하니까 부모도 가슴이 찢어질게야.”

“그러니까~! 아휴, 맨날 애 두고 집 갈 때마다 차 안에서 막 울더라니까?”


외지인을 배척하는 풍토가 있다지만, 사연있는 사람을 그것도 몸이 약한 아이를 이용해 먹을 사람은 없었다.

외려 다들 뭐 하나 챙겨주지 못 해서 안타까워할 정도였는데,

그 중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제법 비싼 옷과 차를 타고 다니는 집 안이 하나 있으니.


“황씨 할머니네 였어요? 상 난 집?”


황씨 할머니라고 부르는 집.

동네에서도 눈에 띄는 푸른 언덕에 지어진 집으로 보기에도 부티가 나는 철문까지 단 집이었다.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과 척을 진 건 아니었다.


“그려, 아이고 황씨도 고생이야. 정말.”

“그러게 말여, 남편 다음에 아들에, 며느리, 거기다 이번엔 큰 딸이었다며?”

“자식 먼저 보내는 것도 참 서러울텐디···. 저 착한 양반한테 하늘도 무심혀.”

[착해? 평판이 꽤 좋은가 보군.]


흑운의 말대로 황씨 할머니, 그러니까 황춘봉의 평판은 마을 내에서 좋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성모급이었다.

농작물 피해때는 앞장서서 주민들을 도와줬고, 먹을 게 생기면 나눠주는데다.

선물 받은 것들을 필요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씀씀이까지, 뭐 하나 밉보이는 게 없었다.

물론, 이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도 적잖았지만, 황춘봉의 성격도 나름 만만찮았다.


“누굴 호구로 아는겨?!!! 다 퍼주니까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지!?”


정착하자마자 마을의 큰손이었던 그녀가 대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으니,

마을 주민들 역시 애걸복걸하며 황씨에게 사과하기 일쑤였다.

그럴때면 외려 춘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얼굴로,


“나는 좋은 마음에 도와주고 싶은데 그걸 이용해먹으려고하니 내 속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겠어?”


하며 하소연을 하기 일쑤니, 이럴때마다 욕을 먹는 건 그녀의 등을 처먹으려던 마을 주민 몇과 이장이었다.

입김이 쎈 편이었던 황씨와는 그렇게 많은 접점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몇 번 맛 좋은 음식이라면서 먹으라고 가져다 준 적 있었지.’


물론, 반찬 뚜껑을 열자마자 풍기는 누린내와 쉰내에 몇 번이나 갖다 버렸지만-

아무튼 마을 내에서 황씨의 평판이 좋은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근데, 참 희한하지?”


물론, 평판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황씨에게 의문을 표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마을 주민 중에서도 수다스럽기로 유명한 계영숙 댁, 어디선가 이상한 소문을 물어오기에,

주민들 사이에서도 소식통으로 통하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가 이상혀?”

“아니, 글찮어? 황씨 할매 만날 몸 아프다고 하면서도 장을 치루고 보면 그렇게 몇 대접씩 밥을 먹으니까~”

“잉? 그랬어?”

“그랬대두? 내가 지나가면서 봤잖아~ 만날 밥맛 없다고 누워지내는 양반이 꼭 먼저 보낸 자식새끼들 대신 먹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먹더라니까?”

“으휴! 너무 뭐라 그러지 말어! 이것아! 자식 먼저 보낸 어미가 얼마나 서럽겠어. 그러니 대신 먹을 수도 있지!”

“아니···내가 뭐 그거 가지고 뭐라 그랬나? 그냥~ 좀 이상하다는 거지···.”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물론 제가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자식같이 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남 일이라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처해본 상황이 아닌 이상 함부로 재단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황씨 할머니네 집에···이상한 냄새가 많이 나긴 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건 아무리 봐도 저주의 기운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황씨의 집에서 누린내는 물론, 거무튀튀한 기운이 풍겨나왔다.

그 기운은 지천의 눈에도 비췄는데, 이는 아무래도 맹약으로 인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며,

지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수다스러운 주민들 속에서 자리를 피했다.


“근데 저주인거 알았으면 그냥 먹어치우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그렇게는 또 안돼.]

“왜요? 조건이라도 있어요?”

[그래, 저주는 무조건 어떤 식으로 행했는지 내용을 알아야 하는 거야.]


본디 저주는 오래 전부터 사술, 또는 주술로 분류된 비방술이기도 했다.

이는 언제나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거나, 혹은 아무도 모르게 행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그 이유가 왜인 줄 알아?]

“음···밤이라서 기운이 더 센가?”

[그것도 반절은 정답이야.]


음의 기운이 가득찬 밤에 행하는 저주가 더 잘 먹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지.]

“···신의···눈을?”


저주는 애초에 악한 마음으로 행하는 사술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좋은 일은 남들이 보던 상관없지만 나쁜 일을 행할때는 숨어서 하곤 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저주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저주를 했다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행한 사람이 돌려받는 거고.]

“아···그래서 저주하면 자기도 돌려받는다고 하는 거구나.”

[그래, 당한 사람은 알게 되니까 결국 돌려받을 수 밖에 없지.]


과연, 심오한 과정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잠시, 지천의 걸음이 멈췄다.


[왜 그래?]

“그럼 내용만 알아내면 된다는 거죠?”

[···응?]

“마침 저기 내용을 알만한 친구가 보여서요.”


지천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 곳엔 웬 여자 아이 하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은 다름 아닌 상복. 그리고 떠는 모습을 보자니.


“알 것 같은데 한 번 캐볼까요?”

[···너 생각보다 거침이 없구나?]


그쪽이 죽을 뻔한 경험을 여러 번 해보면 내 마음 알걸요? 지천은 성큼성큼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은 아이에게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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