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먹는 용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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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줏단지
작품등록일 :
2024.07.29 17:43
최근연재일 :
2024.08.13 11: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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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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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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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자연스러운 이치

DUMMY

춘봉이 죽고난 후 마을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줄초상이 다 난디야?”

“내 말이 그 말이여? 그거 들었어? 저 집 식구들 죄다 구급차 불러놓고 아무도 집 안에 안들어갔다잖어~”

“내가 가다 보니께, 다들 뭔 일인지 들어가보지 않고 구급차 올때까지도 마당에 서 있었다잖어~!”


춘봉의 사망소식을 듣고 돌아온 유나 부녀 역시 자초지종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했던 건,


“구급대원들이 송장 치우는 와중에도 황씨 야긴 안하고 다른 야기만 혔대.”

“뭔 이야기?”

“자꾸 애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나? 뭐라나?”


의문스러운 사고 이야기는 씁쓸함과 찝찝함을 남기고 사라졌다.

한편, 지천을 데리러 온 아버지는 웅성거리는 마을 분위기에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마을에 무슨 일 있었어? 어르신들 다들 왜 저러셔?”

“상 치룬 집에서 또 상이 났대요.”

“아, 그래? 아이고 저 집에 무슨 마가 꼈나보다. 그래서 넌? 다친 곳 없고?”

“멀쩡해요. 밥도 잘 해먹었고, 운동도 하고 했더니···.”


짐을 트렁크에 싣던 아버지는 제 말에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운동을 했다고? 네가?”

“그···산보 정도요. 심한 건 아니고.”

“근데도 안 다쳤어?”

“음···그러게요.”


대답 하면서도 은근히 허공에 떠 있는 흑운을 바라보니, 그는 입모양으로 왜 쳐다보냐며 구시렁 거렸다.

그럼에도 정말 다치지 않은 건가 하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어? 시골 요양이 좋긴 좋은가보다···.”

“나중에 아빠도 와서 쉬었다 가요. 엄마 몰래.”

“아서라, 등 가죽 벗길 일 있냐. 네 엄마가 그걸 퍽이나 좋게 보겠네. 자, 더 챙길 거 없지?”

“네···아, 잠시만요?”


평소처럼 최소한의 짐만 챙기고 돌아가려고 하니 손목의 팔찌가 얕게 진동했다.

뭐 놓고 간 게 있었나 할 때, 팔찌는 다시 한 번 한쪽 방향으로 몸을 당기더니 들어선 곳은 바로 창고.


‘여기에 챙길 게 뭐가 있···.’


의아함도 잠시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마냥 책 한권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먼지를 풀풀 풍기는 책을 주워들으니 꽤 오래된 고서처럼 보였는데,


“이 책 챙기라고 여기까지 끌어당긴 거야?”


헌책방에 팔아도 외려 돈을 주고 처분해야할 정도로 상당히 낡은 책.

하지만 밀랍초 처럼 따로 쓸 일이 있겠거니 하며 가방에 책을 챙겨 넣었다.

문 단속까지 철저하게 한 후 차에 올라타자 그제야 아버지도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나저나 이번엔 진짜 표정이 좋네. 아들?”

“···제가 그래 보여요?”

“어, 맨날 세상에 무슨 재미도 없단 식으로 돌아가더니만 이번엔 표정이 많이 밝네. 좋은 일 있었어?”


그 물음에 대답 대신 뒷좌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히야···요즘 마차는 말이 없이도 달려가는구나. 참으로 좋은 세상이로다.]

“재밌는 일은···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아리송한 제 대답이 긍정적으로 들린 듯 아버지의 표정에도 미소가 걸렸다.

기분좋게 달려가는 부자의 차 뒤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언뜻 비췄는데,


“음? 이 마을에도 네 또래 같은 애가 있었구나?”

“제 또래요?”


그제야 사이드미러로 확인 한 건, 제가 탄 차쪽으로 달려오는 조유나.

저주는 이미 풀렸고, 막상 만나봤자 아버지가 이해 할 수 없을 대화만 나눌 게 뻔한데다-

춘봉의 죽음은 곧, 남은 가족들이 재산을 가지고 싸울게 분명했기에 복잡한 가정사에 더는 끼여들 생각은 없었다.


“아아 상 치룬 집 애 인 것 같은데요?”

“그래? 근데 왜 이쪽으로 오는 거 같지?”

“설마요. 그냥 너무 슬퍼서 아무도 없는 곳 찾나보죠. 혼자 감정 정리하려고.”

“그렇겠구나. 아이구, 어린 게 딱하기도 하지. 그래 우리도 눈치껏 얼른 자리 피해주자.”


라며 엑셀을 밟는 아버지에 작게 실소가 터질 뻔 했다. 눈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이젠 더 이상 할머니 때문에 가족들이 죽어날 일이 없을테니, 유나 역시 겁먹고 떨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날 밤, 흑운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근데 저 할머니가 죽어서도 저 아기들 처럼 원한을 품으면 어쩌죠?”

[아서라, 저렇게 죄 많은 할망구는 원한 품을 시간도 없을 거다. 저승차사 셋을 골려먹었으니 죽어서도 계속 고통받으면서 포승줄에 묶여 이승 구경은 죽어도 못할테니-]


의도치 않게 춘봉의 마지막까지 알게 된 지천이었기에 안도감은 배가 되었다.

속 편하게 차에 기댄 지천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 옆에서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허, 이 놈 보게? 정말로 편하게 자잖아?’


평소 같으면 생가에서 할 일이 없이 잠만자서 오는 내내 눈 한 번 감지 않던 아들이었건만,

이번에는 정말 평온하게 잠에 취한 모습이 아무래도 좋은 일이 있긴 했던 모양.

아버지 역시 아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마을을 빠져 나갔다.


“허억···허억···허억···하아~~!!”


시골 길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은 유나는 지난 번 보다 얼굴색이 밝아졌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할머니의 그림자가 사라지니, 기묘해하면서도 친척들 모두 안도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도사님···하아···하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온 지천이 머무는 생가였지만, 말도 없이 떠나는 그가 야속했다.

하지만 매달 한 번은 방문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마당에 그대로 돌아설 수 없던 유나는 생가 문틈 사이로,

작은 편지봉투를 집어넣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간다.


*


지난 삼일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일상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여전히 챗바퀴 흘러가듯 하는 일상이었지만, 오랜 기간 봉인되어 있던 용에게는 아니었나보다.


[이거···아주 별천지구만? 고작 5대째 자손이 태어나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빌딩 건물부터, 수많은 자동차, 그리고 넘치는 인파까지···.

특히나 서울이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에 흑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내 일전에도 한양 땅이 그리 번창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 있나? 허 참!]

“웬만한 지역은 다 비슷하게 발전했어요.”

[그러냐? 이거야 말로 인간 승리구나 인간 승리!]


감탄한 흑운은 서울을 한 번 구경하고 오겠다며 창문을 벌컥 열었다.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어차피 애도 아닌데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니.


‘뭐, 딱히 상관 없겠지?’


기대감에 벅찬 얼굴로 마실을 나간 흑운이 돌아온 건 저녁 즈음이었다.

처음과 달리 약간 현타가 온 듯한 표정에 예의상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사연 많은 사람처럼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많이 발전했더군···시골이랑은 천지차이로···정말···정말 많이 발전했어.]

“근데 왜 실망한 것 같은 말투래요? 별로 였어요?”

[아니, 재밌긴 했어. 정말 천상에 닿을 것 마냥 높은 건물도 몇 번이나 보고···. 인간들이 입는 옷도 많이 변했더군.]


더불어 네모난 건축물에는 판때기가 달려 있는데 그곳에선 또 인간들의 모습이 나온다며-

마치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집필할 때, 이런 이질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파괴되었어. 자연이.]

“자연···아, 그렇긴 하죠.”


거의 발 디딜틈 없이 인구가 꽉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밀집지역.

그만큼 거주지와 기업체 등을 가득 모아놨으니 자연이 보존된 자리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예전엔 온갖 것들을 신으로 모시곤 했지. 아, 물론 그때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긴 했지만···.]


흑운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경험한 적은 없지만 미디어 매체를 통해 배운 것이 있으니 오래 전엔 거의 산과 들이었을 한국 땅.

그의 말마따나 온갖 장소에 자연이 가득했을 곳엔 분명 흑운이 봐온 신들이나 다른 존재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백도사가 한 말이 딱 맞군.]

“···저희 현조 할아버지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늘 입버릇 처럼 이야기 했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연은 사라지게 될 거라고-]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손에 모든 것이 잘려나가고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 당시 흑운은 그 말을 백도사의 몽상정도로 생각했더랬다.


[자네가 아무리 혜안이 뛰어나고 도사라 불릴만큼 이치를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한낱 인간이 아닌가?]


백년도 못 사는 인간이 아무리 혜안을 가져봤자. 신들이 가지는 혜안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이 용이 된다면 그 때 부여받을 예지력을 통해 도사가 한 말이 참인지, 몽상일지 가름할 수 있으리라-


[백도사는···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했다. 인간이 터를 잡고 군림하면 결국 자연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그러면 결국 신은 물론이고 인류 자체가 쇠퇴할 것이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군.]

“······.”

[근데 이게 참 재미는 있구나.]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현타는 대체 어디로 가고 이제는 뭔가 재밌다는 듯한 얼굴.


[백도사가 예견한 대로면, 인류가 쇠퇴한 후에 벌어질 일들이? 그게 맞아 떨어질 걸 생각하면 그것 또한 재미로다.]

“···그쪽, 저희 현조 할아버지를 꽤 좋아하시는군요?”


제 말에 흑운이 온 몸을 굳히더니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곤 부정했다.


[아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더냐!! 내가 그 놈을 왜 좋아해?!]

“아 이게 입덕 부정기라는 건가?”

[입도 부정하다니! 내가 어디가 부정하다는 게냐?!]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입덕부정기라고 음···요즘 말로는 좋아하는 데 아니라고 빽빽 우기는 걸···.”

[그러니까!! 누가 그 놈을 좋아하냐는 게야?!]


흑운이 소리를 침과 동시에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곧 폭풍이 휘몰아칠 것 처럼 흔들렸다.

뿔이 서서히 자라나고 눈빛은 호랑이 처럼 광이 돌았는데, 아무래도 또 다시 본체로 변할 기미가 보이기에-


“근데 왜 그렇게 할아버지 이야기로 즐거워하세요?”

[···뭐라?]


이럴 땐 미친 척이 최고야. 넌씨눈이 뭔지 정확히 보여주지.

최대한 덤덤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양 물어보니 변하던 모습이 그대로 멈췄다.


“그렇게 싫다면서 했던 말은 다 기억하고 지금도 맞아 떨어질지 기대하는 거 보면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한 건데?”


흑운은 대답하지 못 했다. 아니, 할 수가 없다는 표현이 정확해 보였다.

제 말에 스스로도 왜 그런지 답을 찾지 못 하는 것처럼 어리둥절해하더니 몸집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하늘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맑아졌는데,


‘확실히 용이 될 이무기라 다르긴 하구나···용은 천재지변을 조종할 수 있다더니.’


앞으로는 최대한 자극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지만, 흑운은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물론, 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괜히 더 자극하면 배로 화내겠지?’


하며 침묵하기로 결정한다.


*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간신히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


[네가 말한 그 입도부정하다는 거 말이다!]

“입덕 부정기요.”

[그래! 그거!]


자는 내내 연신 중얼중얼거리더니, 솔직히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닌가 의심도 했건만,

아무래도 자신이 자는 동안 변명거리를 찾다 마음에 드는 대답을 건졌는지, 의기양양한 얼굴로 흑운이 입을 열었다.


[백도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던 네 말은 틀렸도다!!]


별 다른 반응 없이 멀뚱히 바라보니 살짝 머쓱해하는 흑운이 다시금 설명을 이어갔다.


[보거라? 나는 놈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집안에 저주를 내려서 네가 피해를 봤지?]

“그렇죠.”

[이 정도로 증오하는 내가 어찌 그 놈을 좋아하겠느냐! 백 도사가 한 말을 기억하는 건, 나는 녀석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회의감을 느껴 인간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기껏 찾아낸 대답이 나는 인간들 전부가 싫어요! 라니 이쯤되면 흑운이 짠해보이기까지 했다.


“뉘예, 뉘예, 그러시군요. 잘 들었습니다.”

[바, 반응이 왜 그러지!? 아무튼 알겠느냐?! 나는 백도사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럼요. 싫어하시죠. 입덕부정기가 아니라 정말 싫어하는 겁니다요. 네~”


비아냥인 것도 모르는 건지 제 의견이 받아들여짐에 흑운은 상당히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도 그냥 넘어가야지 별 수 있나 싶던 그 때.


“입덕부정기? 싫어해? 뭔 소리야?”

“···아, 깜짝이야. 너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과 동기인 양강모가 서 있었다.

키도 멀대같이 큰 녀석이 언행이 어찌나 가벼운건지 입학과 동시에 과 전체를 먹어버린 초 인싸인 녀석.

같은 통학러에 집도 근처여서인지 유달리 제게 친밀감을 토로하는 동기이기도 했다.

까불거리며 다가온 강모는 제 어깨에 팔을 올리려다 잠깐 멈칫하더니,


“나 지금부터 네 오른어깨에 팔 올릴건데 준비 됨?”

“무슨 준비씩이나? 그냥 올리면 되는 걸.”

“안돼~ 안돼~! 너 개복치잖냐. 올렸다가 어깨 탈골되면 그거 내가 물어줘야 하는데 힘 꽉 줘!”


대체 제 이미지는 어떻게 되어먹었길래 팔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탈골된다고 믿는건지···.

물론, 어릴 때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크게 반박하지는 못하고 강모의 손을 잡아 제 어깨에 끌어내렸다.


“됐어? 안 빠졌지? 하여간 오버하기는···.”

“···오, 쒸···나 진짜 팔 빠지는 줄 알고 잠깐 겁먹었는데 이 정도는 괜찮구나···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미쳤나요?”

“난 언제나 모든 일에 진심이란다 친구야.”

“돌았나요?”


장난스럽게 시시덕거리는 강모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시골여행은 어땠어? 뭐하고 놀았냐?”

“여행은 무슨, 그냥 친가 방문한 거라니까.”

“하기사 여행갔다가 사고날지도 모르는데 네가 어딜 놀러간다는 게 연상이 안된다.”

“도대체 네 머릿 속에 나란 사람의 이미지는 뭔데.”

“개복치.”


이게 진짜 죽을라고···.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와중에도 옆에서 듣던 흑운은 그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다.

저를 놀리는 게 마음에 드는 것 처럼 강모의 등을 팡팡 두드리기까지 했다.


“? 방금 뒤에서 무슨 바람같은거 불지 않았냐?”

“모르겠는데.”

“···이상하네.”


손길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건지 고개를 갸웃거린 강모는 학교로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얼마나 대화 주제가 많은지, 강모가 기숙사가 아닌 통학이라는 게 새삼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기숙사였으면 룸메이트들이 기함하면서 귀마개를 끼우고 잤을 거야. 분명.’


하지만 수다스러운 만큼 정보도 다양했던터라, 흑운은 외려 흥미롭다는 듯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래서 발바닥에 티눈이 났을 때는 마른 대추에 씨를 빼내고 물에 불려서 티눈에 가져다 대면 빠진다 이거야.”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냐?”

“우리 형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허준 동의보감에서 봤어.”

“그 책을 아직까지 안 버리셨대?”

[호오, 그런 지식이···그 의원놈의 전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가? 대단하군.]


일부에게만 영양가 있는 대화를 하던 도중, 드디어 인문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랍쇼. 쟤가 여기 왜 있지?”

“또 누군데?”

“쟤 말이야. 쟤.”


강모가 가리킨 건 건물 옆 쪽, 흡연하는 무리가 모여있는 곳에서도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스포츠 머리의 남성.

어딘지 다부진 체격에 날렵한 얼굴이 제법 인기가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동기 중에 저런 얼굴이 있던가?


“체육대는 다른 쪽일텐데?”

“···너 체대 애들도 알아?”

“아니, 모르는데 저 사람은 유명하거든.”


난 또, 쟤라는 호칭을 쓰기에 당연히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냥 소문이 유명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외모도 제법 반반하고 키도 얼추 180은 가뿐히 넘어보이는데다 어깨도 넓으니 인기가 많을 수 밖에-


“너도 웬만하면 저 사람이랑 엮이지 말어. 질이 안좋아.”

“···어? 인기 많아서 유명한 거 아니었어?”

“우리 복치···진짜 학교 소문에 너무 둔감한 거 아니냐. 경영학과 개복치랑 체대 묻살도 모른다고?”


진짜 누구냐···경영학과 개복치라고 소문 낸 인간···잡히면 가만안둘 줄 알아···.

소문의 근원지일 누군가에게 경고를 날린 후에야 진정한 지천이 다음 단어에 대해 물었다.


“근데 묻살이 뭔데?”

“묻지마 살인.”


전혀 예상치도 못한 줄임말에 잠깐 당황한 것도 잠시. 장난은 아니었던건지 강모가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간다.


“이일해라고, 너도 알지? 작년 겨울쯤에 졸업생 살인사건.”

“아.”


그 당시 용의자가 저 녀석이야. 강모가 설명함과 동시에 제 시선도 따라 일해쪽으로 돌아갔는데,

멀었음에도 순간 마주친 그의 눈빛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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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서 24.08.06 108 3 15쪽
» 자연스러운 이치 24.08.06 124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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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번째 저주 (4) 24.08.04 133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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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첫 번째 저주 (2) 24.08.02 14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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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 꿈은 길몽 24.08.01 28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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