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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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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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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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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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DUMMY

-


백단이 중경으로 되돌아오자 만백성이 그를 우러러보았다.


재앙과도 같은 몽골군의 습격을 홀로 물리친 그는 큰 공을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귀환하는 승장僧將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한없이 무無에 가까웠다.


만백성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시신들 사이로 걸어가 그들의 몸에 박힌 화살과 검 등을 빼 원래 형태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은 그저 하염없이 울며 그와 함께했다.


“아이고! 아바이님!”


“카무이 중 카무이님···.”


어째서 큰 족장 혹은 왕(아바이)인 백단이 손수 이런 일을 하냐고 말리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시신을 정성스레 수습하는 그의 모습에서 경외마저 느꼈다. 마치 고귀한 성자 같은 분위기랄까.


그렇게 백성들과 함께 모든 시신을 복원한 백단은 천단을 가져왔다. 그리고 모든 시신을 감쌌다. 일만구의 시신을 비단으로, 그것도 천잠사로 감싼 것이다.


“아바이님···. 이런 모든 이에게 천단을···.”


“아무 말 하지 말라.”


그 기상천외한 광경에 한 표사가 기어코 말을 걸자 백단이 담담히 말했다.


“그 누구도 장례 때 수의로 비단을 입지 못한다면, 나는 그 나라의 왕이 되지 않겠다.”


“아아···.”


표사는 감읍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귀족도 아닌, 일반 백성의 장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움의 극치였으나 백단은 이것조차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모든 시신을 가지런히 놓고 장작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일만여구의 시신을 모두 감쌀 정도로 기를 펼친 다음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불에도 강한 천잠사가 녹을 정도로 고열을 일으킨 백단은 꼬박 하루를 지새웠다.


―――그렇게 하루.


모든 시신이 한줌 재로 화했을 때는 그는 검댕과 재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백성들은 검댕으로 얼룩진 백단의 전신을 황급히 닦아주면서 재로 화한 시신들을 하나둘씩 수습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각각의 재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아. 이것은?!”


“보석? 시신을 태운 재 속에서 보석이?!”


그것은 보석이었다.


백단이 하루를 꼬박 시신을 불태운 결과, 처음부터 끝까지 극 고온으로 타오른 시신들이 일종의 사리―보석화한 것이다.


“사리舍利다···.”


단백표국의 소속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사리라고 착각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사리의 일종은 맞았다. 사리가 형성되는 원리와 유골을 화장하는 과정에서 보석으로 성형하는 원리는 얼핏 유사했으니까 말이다. 원리적으로는 동등했다.


“아아. 백단님···. 아바이님은 전륜성왕이셨구나!”


그들은 곧 백단이 부처의 현신, 혹은 전륜성왕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순한 무림인을 넘어 어떤 거대한 존재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신이 보석이 되다니···. 아아. 이것은 기적이야.”


단백표국이 아니더라도 아이누인들은 난생처음 사리(혹은 유골성형보석)을 보자 단체로 뒤집어지며 놀랐다.


그들은 백단이 기적을 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정 신의 현신이라고 생각했다.


“전륜성왕님···.”


“카무이 중 카무이시여···.”


살아남은 단백표국의 사람들과 아이누 부족들이 백단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념이 작은 반딧불이와 같이 그에게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는 무심하게 그 의념을 무시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백성들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백단은 재를 향해 한쪽 팔을 뻗으며 담담히 읆조렸다.


“나에게 절을 하기보다, 죽은 이들을 위무하라.”


“아아. 전륜성왕님. 자비로우신 분.”


“예. 카무이시여···.”


백성들은 백단의 명에 따라 사리를 옮겨 천단으로 감쌌다.


백단은 천단으로 감싼 그들의 사리를 그가 가져왔던 온갖 도자기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형상의 도자기 하나를 골라 넣었다.


그리고 손수 돌을 잘라 석탑을 세워 안치했다. 그다음 거대한 돌을 반듯하게 잘라 비석을 세웠다. 검을 들어 죽은 사람의 수만큼 별을 그렸다.


검은 비석 위에 일만개의 별이 아스라이 피어올랐다. 백단이 검을 역수로 쥐어 땅에 박고는 정성스레 절을 올렸다.


한번. 두 번.


백성들도 그를 따라 비석을 향해 절을 올렸다.


“잊지 말라.”


백단이 절을 한 자세 그대로 백성들에게 말했다.


“이 비석을 보며 죽은 이들을 기억하라. 그리고 또 잊지 말라.”


백단이 이를 악물며 일어나 몸을 돌렸다.


“너희를 지키지 못한 나의 죄를.”


“아닙니다! 그것이 어찌 아바이의 죄입니까!”


“맞습니다! 저 사악한 몽골군이 습격한 것이 어찌 아바이의 죄란 말입니까!”


백성들이 백단의 말에 반박하며 소리쳤다.


“아바이는 저희를 구해주셨습니다!”


“···죽은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백단이 죽은 자들의 사리가 안치된 석탑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지키지 못했다.”


―――아바이(왕)된 자로서 백성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왕.


“그게 나다.”


“···그렇다면 그 죄를 함께 짓겠습니다.”


백성 중 하나가 그를 향해 땅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아바이가 어제 죽은 이들을 지키지 못해 죄를 지었다면, 아바이를 따르는 저희 역시 죄를 지은 겁니다!”


“맞습니다! 아바이가 죄인이라면 아바이를 옹립한 저희 역시 죄인입니다.”


하나둘, 수만 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박으며 그에게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파도波濤와 같았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인파人波 말이다.


“저희는 절대로 오늘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다.”


백단이 차마 머리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며 말했다.


“정말로, 고맙다.”


그 모습을 간신히 기절에서 깨어난 희령과 하라, 저 멀리서 숲에 숨어있던 비녀가 지켜보고 있었다.


하라가 조용히 붓을 들어 공책에 한 줄을 적었다.


[그리하여 아바이가 우시니, 만백성이 함께 울었다.]


-


그렇게 중경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아바이께서 죽은 이들을 보석으로 만드셨다더라!”


“카무이 중 카무이가 그들의 영혼을 보석으로 만들어 별처럼 영원히 빛나도록 만들었데!”


“죽은 이들을 우시며 자신을 한탄하셨다고 하더라!”


“자비 · 자애로우신 분이셔.”


그것은 일종의 전설과 같았다. 아니, 전설이다.


백단이 죽은 이들을 사리화―보석화한 것은 중세인들이 보기에 거의 기적과 같았다.


그들은 곧 그것이 영혼이 보석화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귀히 여기며 중경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단기간에 세워진 석탑과 일만개의 별이 그려진 정숙하지만 화려한 검은 비석을 보고 돌아가 다시 전설을 전했다.


그렇게 소문은 돌고 돌아 백단은 일종의 반 신령, 혹은 반신적 존재로 여겨졌다.


그가 힘(?)으로 억지로 복속시키고 있던 부족들이 진심으로 그를 믿고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 말고도 그들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는데―――


“나도 죽으면 불에 태워줘.”


“죽으면 나를 불에 태워라. 보석이 되어 너희와 함께하겠다.”


―――화장火葬 문화의 확산이었다.


백단이 중경에서 치른 장례식은 곧 아이누 부족 전체에 퍼져 전설처럼 회자되며 자신도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길 바랐다.


훗날 그들은 다비식을 참고해 새로운火葬 화장 기술을 만들어냈다.


불에도 버티는 천단으로 몸을 감싼 다음 천단조차 녹을 정도로 초고열에 몸을 불태워 유골을 사리―보석화 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석의 일부를 도자기에 넣어 석탑이나 땅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일부는 장신구로 만들어 대대로 물려주었다. 그렇게 점차 세대가 지나 보석이 늘어나자 그들은 불교의 염주와 닮은 장신구를 만들어 보석을 꿰어 물려주는 풍습이 생겼다.


그렇게 발해국의 장례 문화는 다른 국가와 매우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백단이 일으킨 나비 효과 가운데 하나였다.


-


백단은 죽은 백성들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곧바로 최고 회의를 열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희령,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은 하라, 저 멀리 도망갔던 비녀.


거기에 더해 그는 또 다른 인물들도 소집했는데 바로 석공세가와 화산세가, 천단파의 가주들이었다.


정확히는 그들 중 대표를 임시로 뽑게 해 그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해남파 소속 표사들 중 대표 한명도 정해 회의에 소집했다.


백단은 희령, 하라, 비녀, 그리고 중경의 양대세가 가주, 유일 문파의 가주, 해남파 대표를 보며 원탁에 턱을 괴고 말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것 같다.”


“······.”


―――그걸 이제 알았냐?


라고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그들을 이끌던 왕이라도 그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왕이 바로 백단이었으니까.


···그들이 전부 덤벼도 감히 범접도 못 하는 강자인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간략하게나마 행정조직을 만들어 국가를 이끌어야겠다.”


“행정조직 말이야? 군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붕대로 전신을 휘감은 희령이 겨울 날씨에 꽁꽁 언 달걀을 얼굴에 문지르면서 백단에게 물었다.


“곧 몽골군이 쳐들어올 텐데···. 행정부터 살피는 건···.”


“희령아.”


백단이 싸늘한 표정으로 희령을 바라봤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그의 시선에 희령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알았어.”


희령이 의기소침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백단은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그녀를 위로하듯 덧붙여 말했다.


“네 걱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가 원탁을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지도의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우리가 벌린 일이 꽤 많아. 사람은 적은데 점령(?)한 땅은 많지.”


백단이 남쪽으로 확장해나가며 점령한 땅은 넓었다. 명목상의 점령지를 제외하면 대략 15,000km2 정도.


그러나 중경의 인구는 이제 겨우 100,000명이었다. 이것도 알음알음 합류하는 아이누 부족을 합한 수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적을지 모른다. 그들의 행정력은 인구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었다.


“앞으로 체계적으로 국가를 관리해야해. 아무리 어설픈 조직이라도 만들어서라도.”


도시 국가를 관리하는 건 백단의 힘만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제대로 땅이 넓힌 순간 백단 혼자서는 그 넓은 땅을 다 관리할 수 없다.


“먼저 희령아. 너는 남경의 건설을 책임져라.”


“내가?”


“그래. 남경은 제2의 수도가 될 곳이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완공은 해야 해.”


백단은 남경의 완공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았다.


“그곳이 완성돼야 만약을 대비할 수 있다. 희령아. 너는 내 후계다.”


“···!”


백단의 말에 회의에 모인 모두가 경악했다.


“오, 오빠. 지금 그 말은···.”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네가 뒤를 이어라.”


“오빠···!”


“반박은 받지 않겠다.”


백단이 기를 일으키며 말하자 희령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원탁에 앉은 남은 6명을 보면서 물었다.


“이견이 있나?”


“없습니다.”


“좋다.”


여섯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에 그는 웃으면서 다음으로 석공세가와 화산세가의 가주를 보았다.


그들은 각기 남성과 여성이었는데 이제 갓 스무살쯤 되어 보였다.


“너희의 이름이 어떻게 되지?”


“예. 저는 석공도都라고 합니다.”


“저는 화산설雪입니다.”


“······.”


둘의 이름을 들은 백단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뭔 놈의 이름이 다 외자···. 아니 이름이 다 왜 이래?’


크흠! 백단은 잠시 헛기침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 석공도. 너는 이제부터 건설부 장관이다.”


“건설부 장관···.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대충 도시와 마을, 도로를 건설한다고 생각해라.”


백단은 석공도를 보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가장 먼저 도로를 완성해라. 그리고 이 지도에 새롭게 찍힌 점들을 따라 도시를 건설해.”


“도로와 도시를 말입니까?”


“그래. 나는 중경의 인구를 다 아래로 흩어낼 생각이다.”


백단은 본래 중경을 중심으로 국가를 성장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습격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또 습격이 오면 몰살당할 수 있다.’


그는 최대한 백성들을 균등하게 도시 겸 역참, 그리고 양 수도에 나눌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도로가 완공되어야 했고, 그다음으론 도시가 건설되어야 했다.


“첫 순위는 앞서 말했듯 도로다. 너는 도로를 완공하고 필요하면 도로를 추가로 건설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화산火山···. 설雪···.”


“······.”


“크흠! 너는 합류하는 구이 부족들에게 말과 무공을 가리켜라.”


“말과 무공을 말입니까?”


“그래. 너희 화산세가는 가장 기초적인 무공을 잘 다루지 않느냐?”


“그거야···. 삼매진화가 주특기니까 그렇긴 하죠.”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산설이 말했다.


“그러니 너희는 이곳에 정착해 도시를 완성해라.”


백단은 그렇게 말하고 그녀에게 사할린의 한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은 호박이 발견되는 해변이 있는 장소였다.


“이곳에 나는 특별시를 만들 생각이다. 너는 이곳의 건설과 함께 이곳에서 구이들에게 말과 무공을 가리키라. 그리고 완공된 도시와 예정된 정착촌으로 사람을 보내라.”


“알겠습니다.”


화산설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천단파.”


“예.”


“너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저는 그냥 아이(ay)인데요?”


“그래. 아이. 천단의 생산을 맡아라.”


“그건 이미 하고 있는 것이?”


“내 말은, 내가 키운 참나무에 천잠들을 모조리 퍼트려 양잠하라는 거다.”


“······.”


아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천잠사와 천단은 물물교환에도 이용되고 있으니까, 너희는 적극적으로 천잠사와 천단을 생산해 차질 없게 준비해라.”


“예···.”


백단은 마지막으로 해남파 소속 표사를 보며 말했다.


“너희는 세가를 만들어라.”


“예?”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해남파 소속 표사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앞으로 어업을 발전시키고, 발전된 어업을 기반으로 양식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바다에 특화된 세가가 하나 있어도 좋겠지.”


‘당장 양식업을 신경을 쓸 수 없어.’


몽골군의 습격이 예정돼있는 이상, 그는 더는 양식업을 관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배를 보급하고, 바다에 친숙한 세가 하나를 만들어 어업, 더 나아가 양식업의 발판 정도만 만들어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참에 해남파 소속을 하나로 묶어 중경의 새로운 해남파를 만들기로 했다.


“너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아 또 하나의 특별시이자 세가를 일궈라.”


백단이 지도를 따라 손가락을 쭈욱 그었다. 그곳은 사할린의 남쪽 중 남쪽.


21세기의 나가하마 촌이 위치한 장소였다.


“너희는 도시와 세가를 일궈 배를 만들어 각 도시와 정착촌에 보내 뱃길을 어업과 뱃길을 활성화해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새로운 세가를 만드는 거니 새로운 성이 필요하겠군.”


“네? 굳이 그럴 것이···.”


“음. 여기는 호수와 만이 많으니까···. 그래. 해만海灣. 해남파와 비슷하게 해만으로 하자.”


“······.”


“대답.”


“예···.” 


해남파, 아니 이젠 해만세가가 되어버린 표사가 명령을 받들자 백단은 하라를 바라보았다.


“하라. 너는 나를 계속 따라다닐 거지?”


“그렇습니다.”


하라는 붓질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저는 당신의 전부를 기록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래. 너는 나를 따라다녀라.”


백단도 역사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하라는 그냥 둘 생각이었다.


‘나중에 하라를 통해 사관 제도도 제대로 만들면 좋겠네.’


오히려 그녀를 통해 사관을 전문적으로 육성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비녀.”


“응. 아바이.”


비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는 곰을 모아라.”


“어? 곰을? 얼마나?”


“성체 곰은 전부.”


백단이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북쪽을 노려봤다.


“다 자란 곰은 야생 곰이라도 잡아서 데려와.”


-


백단은 생각했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군대를 만들기엔, 시간도 인력도 부족해.”


군대는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몽골군의 습격이 예정되어있는 이상,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반년에서 일년일 것이다.


그 안에 몽골군에 맞설 군대를 만드는 건 사실상 무리다.


“···그리고 무기도 딸리지.”


그들은 철기도 아닌 석기石器를 다루는 석기 왕국이다.


당장 무기의 질조차 밀릴지인데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몽골 놈들이 활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힌단 말이야.”


고려나 조선이나 활로 유명했지만, 몽골은 궁기병이 유명했다.


그들의 기마 궁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그에 반해 아이누인들이 다루는 활은 기껏해야 석기 부족 수준의 기술로 만든 원시 활이다.


‘케이블-백드 보우로 뭘 하라고.’


부족한 장력을 보완하기 위해 아교 등으로 힘줄 등을 덧댄 활은 나름 쓸만하지만 제대로 된 몽골군 앞에선 힘도 못 쓸 것이다.


그래서 백단은 ‘사람’으로 군대를 만드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렇다면 사람을 안 쓰면 돼.”


그는 몸을 돌려 도열해있는 곰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기? 그따위 것도 필요 없어!”


곰은 그야말로 최강의 포식자다.


곰이나 기린 정도를 제외하면 감히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포식자는 호랑이나 사자가 유일하다.


그저 살아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하는 천연의 포식자! 그게 바로 곰이다!


거기에 곰은 지구력이 우수해 조금 110km로 달려도 10초 뛰면 지치는 치타 따위보다 오래 달릴 수 있다.


오래 달리고 오래 싸울 수도 있는데 나무도 잘 타고 수영도 잘한다. 심지어 근력도 세서 나무는 가볍게 부러뜨리는 것이 곰이다!


“살아있는 흉기 그 자체를 다루면 되는데!”


백단은 곰을 무기화할 계획이었다.


그는 옆에 서있는 하라에게 물었다.


“중경의 철기는 모두 모았어?”


“예. 아바이의 말대로 모두 녹이고 접합해 곰의 발톱과 갑옷으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안장과 등자도 제작 중입니다.”


“거기에 기수들이 입을 갑옷도 확실하게 만들라고 해. 특히 투구도 신경쓰고 천단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튼튼하게 만들라고 해.”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다음으로 백단은 곰들 앞에서 긴장한 채 서 있는 비녀를 보며 물었다.


“비녀야. 곰을 타기로 한 사람은 얼마나 모였냐?”


“그···.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 부족 사람만 오백명이 모였어.”


과연, 비녀의 곁에는 곰 말고도 오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부족장이었던 포로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다.


“곰의 수는?”


“오백마리 정도. 이나마도 아성체까지 포함해서 데려왔어.”


“잘했어. 숫자는 딱딱 맞아야 하니까.”


백단은 비녀를 칭찬해주고서 키로로 부족민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부터 곰을 타는 기수가 된다.”


“예! 아바이!”


“너희는 무기 없이 곰을 타, 고삐 하나로 곰을 제어하고 무기로 다루는 방법을 익힐 것이야.”


백단은 우월한 무기와 사람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너희는 곰기병이 된다.”


곰 자체를 무기로 다루는 전문 기병을 만들어 질로 양을 압도할 생각이었다.


-


그렇게 백단은 곰과 곰을 탈 기수를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곰에게 갑옷과 안장과 등자를 입히고 고삐를 메어 사람을 태웠다.


“떨어트리면 죽는다.”


그러면서 백단은 끝까지 곰에게 협박하는 걸 잊지 않았다.


“쿠어헝!”


곰은 비명을 지르며 등에 태운 사람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다리와 고삐로 곰의 움직임을 읽어라. 너희와 곰이 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고삐로 제어해봐라.”


백단은 고삐 하나로 곰을 타고 달리고 앞발을 휘두르도록 명령하고, 점프하는 등 다양한 명령체계를 만들어 그들에게 학습시켰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을까? 그들은 곧 고삐 하나로 곰을 능숙하게 타고 다니며 명령을 내려 눈앞의 통나무를 부수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굉장해···. 이게 키문카무이의 힘.”


“우리와 키문카무이가 일체화된 느낌이야.”


그렇게 훈련하던 중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키로로 부족은 백단에게 가장 먼저 복속하면서 무공을 배워왔던 만큼 어떤 아이누 부족보다 무공을 잘 다뤘다.


물론 그 실력은 이류가 고작이었지만 어쨌든 스타트가 빨랐던 건 사실.


그들이 기를 다루며 곰을 타는 연습을 하자 곧 그들은 자신의 기를 곰에게 흘려 넣는 법을 익힌 것이다!


기수의 기를 받은 곰들은 더 가벼워지고 강력해진 근력으로 더 빠르게 달리고 바위조차 부쉈다.


“호오?”


백단은 곧 그들이 새로운 무공을 창시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아예 곰기병이 군대의 주축이 될지도 모르겠군.’


곰을 전문으로 다루며, 곰 자체를 무림인의 병장기처럼 강화해 함께 싸우는 기병.


일명, 곰기병 부대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


백단은 곰기병을 훈련하면서도 방어에도 전혀 소홀해 하지 않았다.


그는 오전에는 곰기병을 가리키고, 오후에는 자율 훈련을 맡긴 다음 성벽을 축조했다.


“가로 베기.”


그의 검 한방에 나무가 쓰러지며 절벽이 갈라진다.


백단은 허공섭물로 잘린 나무와 돌들로 성벽을 축조하고 중경에서 성벽까지 이어진 도로를 건설했다.


오직 순수하게 그의 힘만으로 벌인 대역사大役事였다.


다행스럽게도 백단은 거의 무한한 내공을 다룰 수 있었고, 검짓 한방으로 100리(10km)나 되는 크레이터를 만들 수 있는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엄청난 대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다.


삼개월쯤 지났을까? 중경의 북쪽에는 몽골군을 막을 기다란 장벽이 세워졌다.


“이 장벽을 앞으로 백리장성이라 부르라.”


그렇게―――···.


훗날, 발해국의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백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긴 30km짜리 장벽은.


첫 번째 중경, 두 번째 도로에 이은 세 번째 불가사의. 백리장성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

채색 + 도시 위치.png

[중경 현재 판도]


(살짝의 어레인지를 추가로 가미)


회색 : 니브흐족&윌타족이 숨어있는 곳. 동쪽이 윌타, 서쪽이 니브흐들이다.


연두색 : 주인공이 몽골군을 몰아내면서 통제력을 확보한 장소.

(유감스럽게도 주인공은 아직 이곳의 지력을 모른다.)


적색 : 중경. 수도.


주황색 : 남경. 제2수도. 석공세가의 본거지.


녹색 : 참나무&양잠 구역.


노란색 : 특별시1. 화산세가의 본거지.


연남색 : 어업으로 먹고사는 곳.


남색 : 특별시2. 해만(···.)세가의 본거지.


연보라색 : 야인 아이누 부족들이 사는 곳. 명목상의 점령지.


사실상 아이누 부족들은 전부 이주 중이라 반 무주지에 가까움.


흰색 : 도시도 정착촌도 발해 참나무도 없는 진짜진짜 무주지.


빨간점 : 도시&도시 예정지(정착촌)

전체 도로 + 뱃길.png

[주인공이 인력이란 인력은 모조리 갈아넣어 만든 도로]


현시점에 완공된 도로의 상황.


붉은 선 : 포장이 완료된 도로.


(석공세가는 오늘도 운다)


보라색 : 도로 포장 예정지.


(석공세가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갈색 : 추가 도로 건설지.


(석공세가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파란색 : 뱃길.


검은 선 : 백리장성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곰으로 검기, 아니 수기를 펼치며 날뛰는 대환장의 부대!

이야. 이건 굉장하네요. 이건 몽골군이라도 못이길듯.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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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39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8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1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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