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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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최근연재일 :
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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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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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DUMMY

-


키로로 부족(아이누 부족 일부)과 합류하고 중경의 인구는 단숨에 1,073명으로 늘었다.


물론 그사이에 여자, 노인, 아이들도 섞여 있었으나 백단은 개의치 않았다.


“너희 때문에 부서졌으니, 너희가 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저희가 저걸요?”


키로로 부족은 백단과 키문카무이, 희령과 하라와 비녀가 싸우면서 무너진 성곽과 도로, 집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저희는 돌을 만질 줄 모르는데요?”


“그럼 배워라.”


“예?”


“여봐라! 석공씨와 화산씨를 불러 이들에게 곧장 돌 다루는 법을 가르치라!”


“토인들에게 말입니까?”


“스읍! 차별하지 말라니까.”


“죄, 죄송합니다!”


백단의 명령에 의해 키로로 부족도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걸 배우면 돌을 자를 수 있게 된다고?”


“뭐라는 거야?”


“불도 뿜을 수 있고?”


“야. 얘 뭐라고 말하는 거냐?”


“글쎄? 아바이님에게 물어봐.”


“아니,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물론 의사소통은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나보고 통역을 해달라?”


“예.”


“······.”


백단은 명색이 도시국가의 왕이 되었으면서 통역으로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이미 300명이나 무공을 사용할 수 있으니 교관 역할의 사람도 부족하지 않았다. 표사들도 200명이나 되는 인원을 가리키기도 했으니 교육 경험도 부족하지 않았다.


곧 백단의 통역 아래 키로로 부족은 금방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


“오오! 돌이 손쉽게 잘려!”


“이것 봐! 내 손에 불이 나와!”


키로로 부족은 무공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신기해했다. 그들은 기를 다루며 강해진 근력과 손에서 피어나는 불꽃에 매료되었다.


정작 그 모습을 본 백단은 배가 아파 하루를 앓아누웠다.


“나는 시발 기 느끼는데 5년도 넘게 걸렸는데···.”


무협 세계 사람이라는 이유로 저렇게 쉽게 기를 느끼고 무공을 배운 것에 그는 회의감을 느꼈다.


어쨌든 무공을 쓸 수 있게 된 키로로 부족은 곧 노동력으로 치환되었다.


기를 다루면 여인도 성인 남성 못지않은 힘을 발휘한다. 60살 먹은 노인도 20살 못지않은 근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것 봐! 이 도구는 정말 날이 잘 드는걸!”


“세상에! 돌을 이렇게까지 가공할 수 있다니!”


“내가 써왔던 석기는 전부 쓰레기야!”


거기다 중경의 석기는 모조리 인공 규암이라는 최신 소재가 적용된 최첨단 도구!


더불어 백단의 간섭에 의해 현대의 인체공학적인 미려한 디자인까지 가미되어있었으니 그들이 그동안 다룬 석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압도적인 선진(···?) 문물과 무공에 의해 단 600명이 1,800명 이상의 노동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해졌다.


거기다가 본디 경지에 올랐던 고수도 있고, 백단도 간간히 공사에 참여하니 도시는 곧 한 달도 안되어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그마저도 20일 정도는 그들이 무공을 배우는데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백단은 말끔하게 수리된 도시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구나.”


‘현실판 심시티를 할 수 있다니. 역시 왕이 되길 잘했어.’


그는 묘하게 충족되는 권력욕에 기뻐하며 돌로 만든 옥좌에 앉아 턱을 괴었다.


‘그런데 뭐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백단의 목뒤가 어쩐지 싸했다.


‘뭔갈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백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에 주먹을 마주쳤다.


“아, 도토리.”


그는 식량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


누르간, 한자로는 노아간이라고 음차하며 불리는 지역을 다스리는 천호장(밍간).


더르넛은 심기가 불편한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탁상을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오지 않는군.”


그는 1년에 한 번 찾아뵙기로 한 백단의 사절이 오지 않아 불쾌해했다.


“설마 변고가 있는 건가? 사절이 짐승이나 토인에게 습격당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사할린섬은 야생 동물이 사는 척박한 땅이다. 저곳에는 곰도 늑대도 살며, 사나운 구이(아이누)나 일리유(월타)도 사는 땅.


그는 모피와 귀한 물건을 한가득 가져올 백단의 사절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탁상을 손가락으로 쳤다.


“좋아. 이번년은 봐주도록 하지.”


더르넛은 몰랐다.


설마 백단이 그를 까맣게 잊고 있을 줄은.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이미 그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사할린이 있을 방향의 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올해까지다.”


더르넛은 백단과의 약조를 잊지 않았다.


-


중경의 식량 문제는 키로로 부족을 받아들인 이후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


“세상에?! 도토리가 이렇게 지천으로 널려있다니!”


포로는 성안의 (백단이 마개조한) 신갈나무 숲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쳤다.


“포로. 도토리를 요리하는 방법을 아느냐?”


“그렇소···. 아니 그렇습니다. 큰 족장···, 아니 아바이. 중경 사람들은 도토리를 먹을 줄 모르는 겁니까?”


“그, 모른다만?”


“허···. 그러하면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이누 부족은 평소에 수렵채집을 하는 만큼 야생의 먹을 거리(도토리라던가, 도토리라던가, 메밀이라던가)를 요리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정확히는 먹을 수 있게 가공하는 방법에 통달해있었다.


그들은 도토리를 곧장 그물이나 소쿠리에 담아 찬물에 담갔다.


“이렇게 하면 쓴맛이 나는 성분이 날아가고 도토리에서 단맛이 올라오게 됩니다. 이후 껍질을 까고 먹으면 됩니다.”


그들이 알려준 방법은 전형적인 도토리의 쓴맛 제거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도 도토리묵이나 국수를 해먹을 때 도토리의 쓴맛을 뺄 때 주로 도토리를 물에 담가 뺐다. 백단은 문과면서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고 이마를 '탁' 쳤다.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아니, 이렇게 간단한 걸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습니까?!”


포로와 백단은 서로 다른 포인트에서 서로에게 놀랐다.


어쨌든 그렇게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좋았는데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토리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내는 과정에서 기름이 나온 것이다.


“어? 이 도토리는 왜 이리 기름지지?”


포로가 당황하며 기름과 함께 갈리는 도토리를 보며 당황해했다.


“으응? 도토리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아니, 도토리에서 기름도 나오는 거였어?’


당연히 그 소식은 백단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백단은 곧장 도토리를 가는 방앗간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과연, 곡식을 갈던 연자매(사람이나 가축의 힘으로 미는 거대한 맷돌 같은 것)에 기름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진짜 기름이네···.”


백단이 어처구니가 없어 기름에 손가락을 대어 한입 맛봐보았다.


과연, 기름은 기름인지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꽤 독특한 느끼함이 느껴졌다.


그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포로를 바라보자 포로가 다급하게 상체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도토리에는 원래 기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백단은 몰랐던 사실이었으나, 사실 도토리에도 기름이 함유되어 있다.


도토리가 인간에게 최초의 주식이었던 만큼, 도토리의 기름도 옛날에 인류가 많이 애용하던 상품이었다.


“이 도토리는 유독 기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독 기름이 많다?”


“보통의 도토리는 기름이 아주 조금 나옵니다. 아주 짜고 짜야만 간신히 나온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신갈나무는 더더욱 그런데···. 이렇게 기름이 나오는 도토리는 처음 봅니다.”


역시, 다시 말하지만.


백단은 몰랐다. 도토리가 나는 나무는 모두 참나무 속에 속한다.


참나무는 크게 ‘화이트 오크’와 ‘레드 오크’로 나뉘는데 각자 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화이트 오크의 도토리는 ‘5~10%’의 기름이 함유되어 있었고, 레드 오크에는 ‘10~30%’의 기름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갈나무는 전형적인 화이트 오크 중 하나였다.


본래라면 기름 함유량이 적었을 도토리. 그 한 톨을 백단이 강기로 휘감아 억지로 진화를 촉진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맛있게 자라나라.


그가 강제한 단 하나의 률에 의해 신갈나무는 도토리를 대추야자급으로 품게 되었고, 더 빠르게 자라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맛있게라 부분에서 신갈나무는 아주 단순한 진화를 택했다.


그것은 바로 ‘기름의 증가’.


신갈나무 아종···, 백단이 진화시킨 그 나무는 화이트 오크인데도 불구하고 레드 오크급의, 거의 3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기름 수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 그럼 이거 먹을 수 있냐?”


“예? 당연히 먹을 수 있지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또 역시나, 당연하게도.


백단은 몰랐으나 도토리 기름은 의외로 올리브 오일과 화학적 조성이 비슷하다.


올리브 오일로 할 수 있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토리 오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압착기를 만들면 식용유를 양산할 수 있다는 거잖아?’


백단은 그 즉시 현대의 지식을 이용해 기름 압착기(지렛대의 원리가 아닌, 회전식)를 만들어 기름을 짜내기 시작했다.


곧 중경에는 기름이 넘쳐나게 되었다.


대추야자급으로 도토리를 맺는 신갈나무 아종···, 아니 앞으로는 발해 참나무로 칭할 나무의 압도적인 도토리 수확량으로 자연스레 기름 생산량이 증가한 것이다.


“으아아! 힘을 더 줘!”


“더 주고 있어! 너야말로 더 힘을 줘서 기름을 짜내라고!”


물론, 그 덕에 도토리를 가공하는 과정이 하나 더 들어 노동력의 소비가 더 늘어났지만.


어쨌든 식량도 얻고 기름도 얻게 되었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


“그런데 도토리 껍질은 보통 어디다 쓰냐?”


“그거야? 장작을 보충할 때 씁니다. 보통은 이렇게 많은 도토리 껍질이 나지 않아서 마른 장작이나 ‘불타는 흙’이 부족할 때 사용하곤 하지요.”


“···불타는 흙이라고?”


백단의 고개가 끼끽, 돌아갔다.


“어, 어어?”


그 모습이 더없이 소름이 끼친 포로가 무심코 뒤로 한걸음 물러섰으나, 백단은 포로의 어깨를 잡아 강제로 멈춰 세웠다.


“불타는 흙이 뭐냐?”


“그···. 그것이 이 주변에 잘 나는 흙이 있사온데. 검고 축축한 것이 말리면 불에 타는 신기한 흙입니다.”


“말리면 불타는 흙이라고?”


‘그럼 그건 석탄이잖아!’


“당장 그곳으로 안내해라!”


불타는 흙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백단은 포로를 다그쳐 불타는 흙이 나는 습지를 찾았다.


그가 검을 뽑아 습지의 흙을 가볍게 퍼 올려보았다. 그러자 쿰쿰한 냄새 사이, 뭐랄까 숯 같은 냄새가 희미하게 맡아졌다.


“정말 석탄이야···. 이건, 이탄인가?”


놀랍게도 도토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백단은 이탄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그가 자리 잡은 땅은 이탄이 풍부하게 매장된 습지였다!


“이건 연탄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이탄은 거름이나 연탄으로 쓸 수 있어!’


오랜만에 발휘된 그의 현대인 지식!


백단은 곧장 사람을 시켜 이탄을 대량으로 캐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한하게 넘쳐나는 도토리 껍질을 섞어 연탄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었다.


“조금 불만족스럽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연료구나.”


백단은 도토리에서 식량과 식용유(기름), 연료까지 모조리 생산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건 일석이조를 뛰어넘은 일석삼조!


그야말로 우연의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산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곧 기분이 좋아졌으나 그의 호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쓴맛을 빼면 도토리를 담근 물은 가죽을 무두질할 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어? 가죽을?”


“예. 신기하게도 도토리를 담았던 물에 가죽을 무두질하면 부드러워지더군요.”


백단은 몰랐으나 도토리에는 탄닌이 있다. 그리고 탄닌은 고대나 중세에 가죽을 무두질할 때 흔히 사용하는 물질이었다.


현대에는 베지터블 태닝이라는 전통 기법으로 많이 알려진 방법이었다.


“그러면 썩어 넘치는 가죽을 모조리 재가공할 수 있다는 거잖아?”


백단이 도토리를 키우기까지 지난 1년간 중경의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잡아 온 온갖 짐승을 사냥했다. 그렇게 식량을 얻은 것까진 좋았으나 정작 제대로 무두질할 줄 아는 자가 없어 가죽은 거의 방치되고 있었다.


쌓여만 가는 가죽은 끝내 장작이나 부패를 막기 위해 땅에 파묻기까지 할 지경!


‘그런데 그 가죽을 가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일석이조도, 일석삼조도 아닌, 일석사조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그가 포로를 쥐고 달달 흔들었다.


“너희들 중 가죽을 다룰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느냐?”


“예. 저희 전부가 다룰 줄 압니다.”


“그럼 모두 모아라.”


백단은 그 즉시 키로로 부족에게 가죽을 맡겼다.


“허억?! 아니 무슨 가죽이 이렇게나···. 담비나 사슴, 순록부터, 늑대에 곰까지···.”


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가죽을 보고 경악했다. 이에 그들이 백단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짐승을 사냥하신 겁니까?”


“내 백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사냥했다.”


“허···.”


포로는 허탈한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썩어가는 가죽을 만졌다.


“이래서 이 주변 짐승들이 씨가 말랐구나.”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모르셨습니까? 저희가 이곳에 다시 올라온 이유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너희 왜 다시 올라왔냐?”


“작년부터 짐승들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산짐승들이 이상하게 북쪽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쳐 오더라고요.”


“······.”


“단순히 주위 식생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사람마저 습격할 정도로 포악하게 덤벼들기에 저희 키문카무이님이 그들을 막으셨지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분노하시어 북쪽으로 향하신 거지요. 저희는 그를 따라 움직였고요.”


“······.”


“근데 그게 다 아바이 때문이었군요.”


“그, 그만하라···.”


백단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이마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그···, 짐승들이 많이 아래로 내려갔느냐?”


“북쪽에 있는 짐승이란 짐승은 싹 다 도망쳐온 것 같던데요? 아마 저 아래 다른 부족들도 조만간 북쪽으로 올라올 겁니다.”


“······.”


백단은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가죽을 맡기고 창고를 나왔다.


스윽스윽.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붓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하라가 공책에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하라야. 뭐하니?”


“아바이의 전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지워라.”


“예. 아바이께서 이르길, 온갖 짐승을 몰살하다 못해 남쪽으로 쫒아낸 일에 대해 지우라 하셨다. 그리하여 본 사관은 지우라 명하신 걸 기록한다.”


“하아···.”


백단은 얼굴을 감싸 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의 목뒤에서 다시금 싸함이 몰려왔다.


“어? 뭐지?”


그가 뒷목을 잡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요새 왜 이러지. 자꾸만 이러네.”


백단은 뒷목을 탁탁 치며 ‘피곤한가’ 생각하며 가볍게 넘어갔다.


그는 더르넛을 끝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


그렇게 본격적으로 도토리를 가공하기 시작하자 중경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도토리가 많으니 기름과 장작이 풍부해 곧 도로의 석등을 모조리 밝힐 수 있었다.


가죽을 기름과 탄닌을 이용해 가공하니 곧 모피 옷이 넘쳐나 모두가 화려한 모피 옷을 입었다.


그렇게 탄닌을 빼고, 껍질을 까고, 기름을 짜낸 도토리는 가루가 되어 밀가루처럼 국수와 빵으로 재가공되었다.

“맛있어! 맛있어!”


“드디어 사람다운 음식을 먹는구먼!”


“이거 도토리잖아.”


“···그 사실은 잊자고.”


중경의 백성들은 오랜만에 도토리로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벌였다.


어떻게든 도토리를 주 곡식으로 만들겠다는 백단의 야심(고집)으로 대대적으로 펼쳐진 연회나 다름없었다.


물론 기름이 있는 만큼 고기나 물고기도 풍족하게 튀겨지고 구워져 올라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고기와 물고기에 질려있었다.


그래서 일단 국수와 빵을 먹긴 했지만, 정작 그 재료가 도토리라는 것에 떨떠름 해했다.


“그래도 가축의 사룐데···.”


“맛이 있으니까 됐잖아···.”


그들은 애써 도토리로 만든 국수나 빵이라는 사실을 잊고 음식을 먹었다.


“흑흑···.”


희령은 도토리로 만든 국수를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희령아. 어떠냐. 맛있지?”


“응···. 흐윽···.”


“그래. 도토리는 맛있다니까!”


백단은 희령의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토리가 이렇게 맛있다는 사실이 너무 분해. 이런 가축 사료조차 맛있게 요리해서 먹어야 된다는 사실이 슬퍼. 단이 오빠. 왜 도토리를 먹는 나라를 세운 거야. 키울 거면 곡식이라도 키우지···.”


“······.”


“도토리를 먹어야 살 수 있는 나라라니···. 흑흑. 우리는 이미 토인과 다를 바 없어···.”


“······.”


희령은 맛있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를 맛있게 요리해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슬퍼서 우는 거였다!


그렇다! 히령은 명색이 빙궁의 공주였던 여자! 그녀는 온갖 산해진미를 먹으며 자라왔던 명문가의 귀족 자제였다. 그런 그녀는 도토리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견디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백단은 그녀의 눈물 가득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우물우물!”


그 옆에선 곰 가죽을 뒤집어쓴 비녀가 맛있게 도토리빵을 먹고 있었다.


“맛있냐.”


“응! 맛있어!”


그러고 한입에 도토리빵을 다섯개나 욱여넣는 그녀는 영락없는 자연인 같았다.


그가 다시 희령을 바라봤다. 희령은 눈물을 흘리며 젓가락으로 조신하게 국수를 먹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비녀가 접시째로 빵을 와르르, 쏟아부어 삼키고 있었다.


“하···.”


그가 얼굴을 부여잡았다.


“인식이 바뀌려면 한참 걸리겠네.”


그는 끝까지 도토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으허헝!”


그 말을 들은 희령은 결국 대성통곡하며 책상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하라를 보며 한숨을 쉰 백단이 식탁에 올라와 있는 도토리 음식 외에 초록색 풀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함초 농사는 풍년이라 다행이네.”


―――놀랍게도 퉁퉁마디 농사는 풍년이었다.


백단이 그들이 사는 땅 전체를 소금밭으로 만들어버린 덕분에, 퉁퉁마디는 아주 풍성하게 자라서 해변가를 통째로 퉁퉁마디로 채울 정도였다.


오죽하면 백단에 의해 씨가 마른 주변 짐승들까지 그의 눈을 피해 퉁퉁마디를 먹으러 왔을까.


그렇게 그는 퉁퉁마디를 소금 대용으로 활용해 음식에 곁들여 먹도록 명했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군.’


백단은 엉엉 우는 희령을 뒤로하며 퉁퉁마디를 들어 올렸다.


“함초라···. 함초는 염생식물이지. 염생···. 해초···.”


잠시 퉁퉁마디를 보며 생각에 잠긴 백단은 머릿속에서 불현듯 어떤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비누!”


그가 식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맞아! 국가를 세웠으면 위생부터 개선했어야 했는데! 생각하지 못했어!’


그동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개고생하느라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생! 자고로 현대인 국가를 만들었으면 가장 먼저 비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해초 태운 잿물로 비누를 만들 수 있어! 그리고 기름은···!”


그가 식탁에 올라와 있는 도토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토리유油가 있다···.”


(백단은 몰랐지만) 도토리 기름은 올리브 오일과 화학적 조성이 유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을 수 있다. 친환경적이다. 안전하다.


“일석사조가 아니었어···!”


도토리는 일석사조가 아니었다. 일석오조였다.


-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잘 쳐줘야 도시 국가, 실상은 엉망진창 개인의 무력으로 유지되던 발해국의 전신前身이던 중경中京.


오히려 철기에서 석기로 퇴보하기까지 한 이 괴이한 문명인 조직을, 솔직히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이 집단을.


진정 일국의 왕국까지 성장···, 아니 산소호흡기를 붙여주다 못해 멱살잡고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도토리의 전설은.


동양의 올리브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후후, 이거죠. 자고로 대체역사하면 비누를 만들어야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넣었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비누를 만들 시도를 하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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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6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40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9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30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2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9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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