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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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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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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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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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DUMMY

-


곧 백단은 중경의 모든 백성을 동원해 천잠이 튼 고치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번식을 위해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수확해서 실로 만들라고 전해라.”


“예. 아바이.”


그들은 고치를 물에 끓여 번데기를 죽이고 삶은 고치를 걸러내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백단이 국가를 건국하겠다고 준비해왔던 대비가 빛을 발했다.


그는 하라가 필사적으로 보호했던 서책을 뒤져 하나의 책을 찾았다. 그가 국가를 건국할 무렵, 부족한 기술력을 메꾸려고 가져왔던 온갖 기물의 설계도가 기록된 서책이었다.


“그래, 이거야!”


그는 서책을 펼쳐 하나의 기물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물레방아를 닮은 거대한 물레의 설계도였다.


“수력 방적기!”


원나라 시절, 중국의 많은 기술이 소실되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의외로 많은 기술적 발전도 있었다.


본디 문명이란 언제나 퇴보와 진보를 반복하는 법. 원에서 개발한 이 방적기는 수력으로 움직이며 하루 100근의 실을 생산한다.


“단점이라면 긴 실만 뽑을 수 있어서 면화나 다른 실 못 뽑는다는 점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그들은 넘치는 게 천잠사다.


실이란 게 애초 천잠사 밖에 없다. 아니, 천잠사만 생산해낼 것이다.


‘모든 백성이 명주(비단실)를 사용하는 국가! 모두가 비단을 입는 국가!’


천잠과 천잠사를 발견한 순간 백단의 머릿속에 다른 직물(목화 따위)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오직 천잠사만 생산해 만인에게 입힐 생각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게 또 수력으로 움직인다는 점인데···.”


‘여긴 겨울이 되면 강이 언단 말이지.’


이 방적기는 기본적으로 수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가 자리잡은 곳은 사할린.


냉대 습윤 기후의 척박한 땅답게 겨울이 되면 강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수력으로 움직이는 방적기는 강이 얼어붙으면 사용할 수 없다.


“그럼, 사람을 쓰면 되겠군.”


그러나 백단은 이 문제를 아주 심플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의 백성 전부 기氣를 다루고 무공을 쓸 줄 아는 무림인이다!


한명한명이 최소 3~5명의 효율을 보여주는 최상의 노동력!


그는 여름에는 수력을, 겨울이 되면 인력을 써서 실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러니 너희는 겨울이 되면 직접 실을 뽑아라.”


“······.”


중경의 백성들은 또 추가된 일거리에 침묵했다.


어쨌든 중경은 천잠사가 양산되었다.


“세상에···. 이 실을 봐. 아름다워···.”


“거기다 엄청나게 질겨! 봐! 기를 두르지 않으면 칼로도 안 잘린다고!”


“최소 검기상인에 다다라야 자를 수 있는 실이라···. 굉장해···. 이게 천잠사.”


수력과 인력으로 무한정 뽑히기 시작된 천잠사는 곧 중경 백성을 매료시켰다.


단백표국 시절에 있던 사람들이야 원래 비단 귀한 줄 알았다. 거기다가 이건 그냥 명주(비단실)도 아닌 천잠사였다.


비단 중 비단. 명주 중 명주. 최고 중 최고.


최고급 비단실이 바로 천잠사였다.


그들은 천잠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사실에 경악하고, 또 감동했다.


“내가 비단실을 사용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의 왕···, 아바이는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들은 백단이 일거리를 늘려 그들을 굴렸지만, 결과적으로 천잠사를 양껏 보급해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이는 키로로 부족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 실은 뭔데 이리 곱지?”


“그동안 썼던 메밀이나 잡풀이랑 차원이 달라!”


“이런 실이 있을 줄이야. 이건 정말 카무이모시르(신들의 땅)에 있을법한 실이군.”


그동안 그들이 사용해왔던 실은 메밀이나 기따 잡풀을 이용해 만든 섬유&실이 고작이었다. 그랬던 그들에게 천잠사는 그야말로 천상의 실이나 마찬가지. 키로로 부족은 천잠사에 매료되어 푹 빠졌다.


그렇게 천잠사가 양산되자 백단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방적기로 실을 양산했으니 이제 방직기를 만들어 천을 양산하기로 한 것이다.


“너희 중 베틀을 만들 줄 아는 자들이 있느냐?”


“예. 아바이. 저희가 만들 줄 압니다.”


“그래. 그러면 너희는 이걸 만들어라.”


백단은 베틀을 만들 줄 아는 기술자들에게 자신이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황했다.


“저, 아바이. 이 괴악한 그림은 뭡니까?”


“베틀이다.”


“이게요?”


백단이 보여준 그림은 붓으로 베틀의 흉내만 낸 괴악한 그림이었다!


그들은 백단의 그림 실력이 조용히 함구하면서도 어찌어찌 이것이 베틀을 묘사한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곧 그가 그린 그림이 보통의 베틀과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 이 나무토막 같이 생긴 것은 뭡니까?”


한 기술자가 베틀 그림 옆에 실을 엮은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것은 ‘나는 북’이라고 한다.”


“이게 북이라굽쇼?”


그는 일반 베틀이 아닌, 플라잉 셔틀의 그려 보여준 것이다.


‘플라잉 셔틀은 직조기의 혁명이었지.’


베틀은 의외로 오랫동안 정체되어있던 기술 중 하나다. 먼 과거 베틀의 초기 형태가 만들어진 뒤 자잘한 개량이나 형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 기술 자체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중 17세기 존 케이가 나는 북―플라잉 셔틀을 개발하고 직조기의 성능은 혁신적으로 향상되었다.


‘바로 북의 자동화지.’


플라잉 셔틀은 ‘북’을 자동화시켜 천의 생산 속도와 품질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백단은 일반 베틀이 아닌 플라잉 셔틀을 도입해 중경의 직조 기술을 다른 국가보다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했다.


“나는 북이요? 이건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


백단의 당당한 대답에 기술자들은 침묵했다. 그들이 황망한 시선으로 백단을 바라보자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알려줬으니 이제 너희들이 그걸 개발해라.”


“······.”


백단은 플라잉 셔틀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정작 그 원리에 대해 몰랐다. 그가 플라잉 셔틀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역사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게 전부였다.


‘기껏해야 사진 몇장 본 게 다니까.’


그저 북을 날게 해서 자동화시켰다는 것만 알 뿐 결국 백단도 플라잉 셔틀의 원리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왕이잖아?’


왜냐하면 그는 ‘왕’이었으니까!


그는 손가락 하나, 말 한마디로 1,000명이 넘는 백성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절대 권력자! 그것이 바로 백단!


‘그럼 그냥 기술자들을 굴려서 만들면 되지.’


그는 기술자들을 굴려 플라잉 셔틀을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발명이란 게 발상의 전환이니까. 나는 발상을 줬으니 만드는 건 기술자들이 하겠지.’


놀랍게도 백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플라잉 셔틀을 만드는데 스프링이나 베어링이 들어간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나는 북이라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게 플라잉 셔틀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으냐?”


“그, 그것이···. 저희도 이런 건 처음 보는 지라. 못해도 1년은 주셔야···.”


“한 달 안에 끝내라.”


“······.”


―――라고.


대지를 부수는 영물 곰조차 맨손으로 때려잡았으며.


검으로 하늘과 구름을 가르고, 대지조차 조각내고.


주먹질 하나로 바위와 산을 부수며.


손짓 한 번으로 돌을 녹이고, 강을 얼려버리는 그들의 왕이 말했다.


“예···.”


기술자들은 울상을 지었으나 항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플라잉 셔틀 개발에 착수했다.


-


“이걸 어떻게 만들지?”


“끄응···. 일단 한번 이 모양대로 만들어보세.”


“···이 그림대로? 그럼 베틀이 아니라 나무 조형물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도 유일한 설계도가 이것뿐이지 않은가?”


“하아. 어쩔 수 없지.”


기술자들은 일단 백단이 그려준 ‘조악한’ 그림―설계도를 따라 베틀을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그들은 베틀의 형체를 취한 조악한 무언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허어. 이건 그냥 베틀···. 아니 조악한 베틀이나 다름없군.”


“도대체 북을 왜 나무토막으로 분리한 거지?”


그들은 백단이 그려준 설계도를 보며 만들어진 조악한 베틀(의 형체를 한 나무 조형물)을 보며 골머리를 앓았다.


“응? 그런데 여기 이건 뭐지?”


“어? 그러게.”


그러나 그들은 곧 백단의 설계도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마치 홈이 파인 나무 막대 같은데?”


“그러게. 마치 마차가 다니는 로路와 비슷하군?”


“···아! 그럼 이렇게 만들어보면 어떻겠나?”


“호오?”


그들은 처음의 실패에서 백단의 설계도에서 기존 베틀과 다른 점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들은 기술자였다. 여러 번 베틀을 만들었던 만큼 그들은 특유의 눈썰미로 그의 설계도에서 여러 특이점을 찾아냈다.


“한번 시험해보자고.”


그들은 한 달 동안 총 13개의 베틀을 만들며 백단의 설계도에서 여러 특이점을 찾아 기존 베틀에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헉헉. 저희가 어떻게든 개발했습니다요!”


그리고 한 달 후. 그들은 정말 플라잉 셔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오오! 장하도다!”


백단은 돌로 만든 옥좌에서 일어나 한달음에 베틀로 달려갔다.


“허. 허어···.”


“어떻습니까!”


기술자들이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자, 네놈 말···. 아니 아바이 명대로 한 달 만에 만들었다!’


‘우리도 놀랄 만큼 대단한 작품이라고!’


그들은 기술자 특유의 자긍심을 가지고 그의 칭찬을 기대했다. 그렇게 1분 같은 수초가 지나고 백단이 입을 열었다.


“조악하군.”


“······.”


“쯧. 내가 생각한 북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는데.”


백단은 한 달이나 잠도 못 자며 베틀을 만든 기술자들의 노력을 단 두마디로 깎아내리고 무시한 것이다!


기술자들이 침묵하거나 말거나 그는 그들이 만든 (자칭) 플라잉 셔틀을 살펴봤다.


그것은 기존의 베틀과 비슷했지만 일단 1.5배는 더 커 보였다. 위에는 프레임 같은 뼈대가 세워져 있었고 (하도 넘쳐나서) 천잠사를 꼬아 만든 밧줄이 걸려 있었다.


베틀의 아래쪽에는 발로 밟는 페달이 두 개 있었고 그 페달을 밟을 때 줄이 당기며 날실이 엮인 틀을 위아래로 당겨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날실에 씨실을 엮는 부분에는 홈이 파인 나무 막대로 가로로 놓여있었는데 일종의 기차 선로 같은 역할을 하는 듯싶었다.


그 옆에는 씨실이 묶인 북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북의 양 끝에는 줄이 묶여 있었다. 그 줄을 왼손과 오른손으로 잡아당겨 선로를 따라 좌우로 실을 손쉽게 꿰도록 만든 것 같았다.


그것은 기술자들의 역작이었다.


스프링이 없으니 선로를 파, ‘나는 북’의 경로를 제어하고 프레임에 걸린 줄을 이용해 일종의 지렛대처럼 날실이 걸린 프레임을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비록 스프링과 베어링이 없어서 17세기의 그것보단 못할지언정 현시점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역작.


놀랍게도 그들은 백단의 설계도에서 여러 특이점과 새로운 발상을 발견해내 진짜 플라잉 셔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 베틀보다 몇 배는 효율 좋은 베틀! 그것이 그들의 작품!


그러나 백단은 그걸 몰랐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플라잉 셔틀은 사전이나 역사책에 보다 진보된 형태의 플라잉 셔틀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의 플라잉 셔틀이 나오지 않자 그는 실망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비록 첫 작품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는 이조차도 시행착오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이 베틀을 계속 개량하면 어떻게든 더 나은 베틀을 만들어내겠지.’


백단은 기술자들이 들었으면 뒷목을 붙잡을만한 경악스러운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효율은 어떻냐?”


“기존보다 세배는 빠르고 반곱절은 더 큰 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빠르고 더 크게 만들 수 있게 개량해라.”


“······.”


“왜? 못하겠느냐?”


“하,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것도 기존 베틀보다 좋으니 일단 시범적으로 백대는 만들어 보급해라.”


“······.”


“한 달이면 되겠지?”


“······.”


―――라고, 하늘도 가르고 (중략) 그들의 왕이 말했다.


그렇게 중경에는 백단의 명 아래 개발된 플라잉 셔틀이 


그렇게 베틀은 점차 개량되어 기존보다 십수배는 빠르고, 세배는 큰 천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오! 이것봐 천이 이렇게 쉽게 짜여!”


“어머나! 이렇게 쉽게 천을 만들 수 있을 줄이야!”


“과연···. 아바이께서는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천을 짤 줄 아는 여인이나 아낙네들은 백단이(아니라 기술자들이었지만) 개발한 베틀의 성능에 감탄하며 비단을 짜내기 시작했다.


곧 중경에는 천잠사로 만든 비단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옷은 모피 옷에 비단으로 바뀌었으며 중경 사람 모두가 비단을 걸치고 비단으로 이부자리를 만들고 천잠사로 모피나 옷을 꿰맸다.


모두가 귀족 같은 생활하는 그 모습을 보며 백단은 혀를 찼다.


“쯧. 결국 17세기의 그것만큼 도달하진 못했군.”


“······.”


백단은 끝내 플라잉 셔틀이 그가 생각하던 모습, 최소 17세기의 기술로 만들어진 그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 정도 급의 플라잉 셔틀을 만들려면 단순한 개량을 넘어 스프링과 베어링도 있어야 했지만 백단은 그걸 몰랐다.


기술자들은 울고 싶었으나 감히 그의 앞에서 쓴소리할 수 없어 속으로 울었다.


“아. 이참에 전문적으로 천을 생산하는 조직을 만들면 좋겠군.”


백단은 그 즉시 천을 짜는 아낙네와 여인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천을 짜는 조직을 새롭게 신설하고자 한다. 그러니 너희가 그 조직이 돼라.”


“예···?”


“너희에게 이제부터 천단天緞씨를 하사한다. 앞으로 천단파로서 열심히 천을 짜렴.”


“······.”


난데없이 여자들을 불러 모아서 성을 하사한 백단!


졸지에 성이 바뀌며 가문을 이루게 된 여인들이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


“저는 여인인데요?”


“저는 이미 결혼했는데요?”


“그래서 어쩌라고.”


“······.”


“저 무림에 아미파峨嵋派도 있지 않으냐. 여인으로 구성된 조직이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지. 그냥 제2의 성, 문파 명이라고 생각하고 천이나 짜렴.”


“······.”


발해국에서 비단을 전문적으로 다루며 실을 다루는 문파, 천단파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


그렇게 다시 1년이 돌아 1342년이 되었을 때 중경의 풍경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그들은 전부가 천잠사로 만든 비단옷(천잠보의)을 걸치고 있었고, 추위를 막기 위해 모피로 만든 망토나 겉옷을 둘렀다.


한탄 이부자리부터 실조차 천잠사를 사용했고, 그들이 신(발)은 모두 가죽신이었다.


심지어 발해 참나무의 코르크를 이용해 깔창까지 깔았으니 동시대 어떤 신발들보다 부드러웠다.


그들은 전부 석재벽돌로 지어진 튼튼한 벽돌집을 가지고 있었고, 집에는 누구나 다 온돌을 가지고 있었다.


연료도 이탄을 캐내서 잘 말린 다음 도토리 껍질을 섞어 만든 연탄 대체품을 써서 장작이 필요하진 않았다.


먹을 것도 풍족했다. 그들은 모두 닭을 기르고 있어서 달걀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또 도토리도 있었다. 처음에야 그들이 가축 사료라고 무시했던 도토리는 정말 다재다능한 요리 재료였다.


보존성도 높아 1년 내내 보관할 수 있었고, 가루로 만들면 국수나 빵을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아니면 날 것 그대로 조림이나 국(스프)을 끓여도 되었다.


도토리에서 기름도 나오니 계란이나 이따금 사냥해온 고기를 마음껏 요리해서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에겐 소금도 필요 없었다. 해변에는 퉁퉁마디가 너무 잘 자라서 그냥 빵이나 국수를 만들 때 잘라 넣거나 즙을 내어 간을 맞췄다.


따로 소금을 캐내거나(암염) 끓일(자염) 필요가 없던 것이다.


모두가 귀족같이 옷을 입었고 귀족처럼 먹고살았다.


그 모습을 본 희령과 하라는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어? 이게 왜 되지?”


“이게 된다고?”


그들은 백단의 온갖 실책과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 국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백단이 몇번이고 실책을 저지르고, 그들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왕이었다면 이미 몇번이고 반란이 일어나 죽을 수도 있던 상황. 오직 백단이 ‘강했기에’ 간신히 유지될 수 있었던 조직.


―――그것이 바로 중경이었다.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며 미래를 대비하던 그들은 중경이 너무 발전해서 도리어 깜짝 놀랐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런데 중경이 너무 잘 됬다. 아니 달리다 못해 날아올랐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떡락하던 코인이 10,000%의 수익률을 보이며 껑충 뛴 것만 같은 상황!


“망했어야 했는데···.”


분명 망했어야 했는데 중경은 이상하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희령과 하라는 제가 입은 천잠사로 지어진 제 옷을 보며 허탈해했다.


그들이 입은 비단···, 천잠사로 지은 천단天緞옷은 귀한 옷이 아니다. 적어도 이 중경에서는 그랬다.


이곳에선 누구나 천잠사와 천단을 손에 얻을 수 있었고, 누구나 천단으로 지은 옷을 입었다.


“이게 왜 되지?”


희령은 왜 이렇게 중경이 잘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라는 조용히 침묵하며 하늘의 운기를 읽었다.


‘이런 미친···.’


백단에게 몰려드는 운기를 보며 속으로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왕이 되겠다는 욕망 하나로 천지의 운기를 모조리 뒤틀어 자신에게 집약시키다니!’


하라는 백단의 운기를 읽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었다.’


백단은 왕이라기엔 너무 포악했고, 무능했으며,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 결과 인과가 쌓여 그는 결과적으로 왕이 되는 데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오직 운!


‘왕이 돼서 부귀영화를 누린다.’ 라는 욕망 하나만으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발상, 문제를 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운기를 뒤틀었다고 한들, 그 운조차 꺾어버릴 만큼 실수와 실책을 남발하면 운조차 그 사람을 보호하지 못한다.


운이 아무리 좋아도 삽질만 하면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백단은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실책처럼 보였던 그 모든 선택이 ‘이상하게 잘 된 것이다.’


‘마치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것처럼’


하라는 몰랐으나 백단은 그래도 ‘현대인이었던’ 사람이다.


21세기를 살아왔던 만큼 그들과 지식의 ‘질’ 자체가 달랐고, ‘발전된 체제’를 ‘경험’했었다.


그 결과 백단은 그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어도’, 아무리 ‘실수해도’ 궁극적으로 ‘정답’으로 나아간 것이다.


현대인의 지식과 단순한 욕심으로 인한 운명의 개변.


이 둘이 조합되어 백단은 어떻게든 성공해낸 것이다.


‘하지만···.’


하라는 그의 운기에 몰려오는 불행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곧 시련이 온다.’


백단에게서 비롯되어, 그가 원인이 되어 곧 재앙이 닥칠 기미가 보였다.


‘백단. 당신은 이겨낼 거죠?’


하라는 백단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어떻게든 재앙을 이겨내 이 중경을 어엿한 국가로 만들어낼 거라고 믿었다.


-


하라의 예측대로 곧 중경에는 시련이 찾아왔다.


“우리는 더는 참을 수 없다!”


중경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손에 횃불과 석제 창을 들고 백단의 저택으로 달려와 아우성쳤다.


“이게 무슨 일이냐!”


옥좌에서 오늘도 왕이 되는 상상을 하며 자화자찬하던 백단은 난데없는 반란 소식에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 과연, 그의 백성들이 횃불과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 너희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냐!”


백단은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에게 못 해준 것이 있느냐!”


그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성들에게 외쳤다.


“너희에게 비단옷을 입혀주었지, 식량 걱정도 없애주었지, 너희에게 단단하고 안전한 석제 집까지 지어준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나한테 반란을 일으키는가!”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자 백성 중 한명이 앞장서 나왔다.


“왕, 아니 아바이시여! 저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외치곤 자기 눈 아래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 눈그늘(다크서클)을 보십시오!”


과연, 그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거뭇거뭇 진하게 드리워 있었다.


“아바이! 저희는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아닙니다! 저희도 사람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옳소! 옳소! 옳소이다!”


그의 외침에 군중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곧 군중 사이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절을 하며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아바이께 석공石工씨를 받은 사람입니다. 아바이. 제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어···. 돌 자르지 않느냐?”


“예! 돌을 자르집요! 하루 천개가 넘는 돌을 자릅니다!”


그가 굳은살이 박힌 손을 펼치며 그에게 외쳤다.


“그뿐입니까? 이 쓸데없이 크게 지은 성읍에 맞춰 어떻게든 건축물을 채워넣기 위해 매일같이 땅을 파고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돌을 자르고, 건물을 짓고, 도로를 팝니다! 도무지 쉴 틈이 없습니다!”


그가 말을 멈추자마자 군중에서 또 다른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에게 화산火山씨를 받은 사람이었다.


“아바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얼마나 많은 돌을 굽고 녹이는 아십니까?!”


그가 화상으로 얼룩진 팔과 갈색으로 그을린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하루 생산되는 사암 벽돌만 10,000개가 넘습니다! 그걸 전부 굽습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더 거대한 돌들도 굽습니다. 저희는 가마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번엔 천단天緞 씨를 하사받은 아낙네들이 나와 소리쳤다.


“저희가 하루 짜는 비단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저희는 이렇게 일만하고 못삽니다!”


“도토리 수확도 힘듭니다! 도토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언제 저희가 다 옮깁니까!”


“누에를 끓이는 건! 닭들을 관리하는 건 또 어떻습니까!”


“허, 허어···.”


이것은 명백히 백단의 실책이었다.


그는 그들이 기와 무공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그들을 마구 굴렸다. 한명이 3~5명의 노동력을 발휘하는 고품질 인력으로 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배는 효율이 좋은 건 결과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게 있다면 그가 벌인 일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사람은 여유가 필요하다. 백단은 왕 ‘놀이’에 너무 심취해 이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그, 그렇구나···.”


백단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깊이 자책했다.


“내 그만 너희의 고충이 많음을 잊고 있었구나···.”


‘내 실수다. 나는 왕이면서 백성의 힘듦을 간과하고 말았어.’


백단은 권력과 재물, 미녀를 누리고 싶은거지, 폭군(이미 훌륭한 폭군이자 독재자였지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는 왕으로서의 의무(제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한다)를 잊고 만 것이다.


“일단···. 너희의 일을 줄이도록 하겠다. 지금 하는 일을 각자 절반으로 줄이라.”


백단은 이마를 짚으며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덧붙였다.


“너희의 고충을 함께 짊어질, 너희의 일감과 노동을 줄일 방법을 내 찾겠다. 그러니 나를 믿고 당분간 기다려라.”


“저희가 그 말을 어찌 믿습니까!”


군중이 소리쳤다.


백단은 말없이 검에 손을 올렸다.


“······.”


싸악―――. 그 순간 아우성치는 군중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믿어라.”


“하. 하하! 믿습니다! 아바이!”


“아바이의 현책!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반란은 종식되었다.


물러나는 군중을 보며 한숨을 쉰 백단의 등 뒤로 붓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하라가 공책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하라야. 뭐하니?”


“기록 중입니다.”


“······.”


오늘도 백단의 흑역사는 늘어만 간다.


-


그때, 그 시각.


백단의 도토리 숲에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거대한 신형은 도토리를 손으로 퍼서 제 입에 욱여넣어 한입에 삼켰다.


꿀꺽! 그리고 다시 퍼 올리며 한입에 삼키는 신형.


그 신형의 이름은 바로 곰이었다.


“꾸엉.”


도토리를 먹는 곰의 뒤로 다른 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영역이 겹칠까 봐 서로 피하던 곰들도 이곳에선 신기하게 온순해졌다.


왜냐하면···.


“싸우면 안 돼!”


비녀가 그들을 통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곰들이 싸우지 않게 잘 다독이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먹을 건 많으니까 많이 먹어!”


수십마리의 곰들은 맛있게 도토리를 먹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후후. 슬슬 주인공의 업보 스택이 쌓이는군요.

주인공이 저지른 만행은 훗날 크게 되돌아올 예정입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요.


앞으로 주인공이 만들어갈 '비정상적'인 나라를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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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40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9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30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2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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