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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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최근연재일 :
2024.09.17 00:32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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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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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DUMMY

-


백단의 첫 비누 시연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그는 ‘인체에 무해한’ 비누를 제작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어떻게든 비누는 만든다!”


비누는 위생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1요소다. 손 씻기, 목욕, 빨래에 설거지 등! 비누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현대인이 과거로 오면 가장 먼저 비누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비누만 있으면 국가의 위생은 극적으로 높아진다. 그것만 있으면 병으로 죽는 사람이 (과장 섞어서) 10분의 1로 줄어든다.


거기다가 비누는 중경의 특산품이 될 수 있다.


“비누는 교역 물품으로 유용할 수 있어.”


훗날 그는 일본과 조선, 명나라에 칭신稱臣하여 조공무역(감합무역勘合貿易)을 행할 셈이었다.


그렇기에 백단은 비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양한 비율로 퉁퉁마디 잿물과 도토리 기름을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시험하고자 했다. 그러나 백단의 신체는 너무 강력(?)해서 어떤 비누라도 소용없는 강철같은 몸!


그는 자기 몸으로 비누를 시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누를 대신 시험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원자를 받겠···.”


“아바이가 우리의 손을 녹이려 한다!”


“모두 도망쳐!”


“······.”


중경 백성들은 그가 연설하거나 말거나 전력으로 기를 운용해서 그의 저택에서 도망쳤다.


비누가 비녀의 손을 녹이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에게 비누는 피부를 녹이는 산성 물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걸 시험하겠다는 건 곧 사람의 피부를 녹이겠다는 의미! 그의 백성들은 감히 왕명조차 거부하고 제 손을 지키기 위해 도망친 것이다.


한순간에 황량해진 장원을 바라보는 백단.


그 뒤에서 얌전히 붓질하는 하라.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 희령.


“어쩔 수 없군.”


결국 백단은 비누를 실험하기 위해 필사의 대책을 시행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저택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제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며 피부를 기로 재생시키고 있는 비녀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아바이?”


그런데 갑자기 방문을 열고 백단이 들어오자 그녀는 당황했다. 백단은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간 다음 손목을 붙잡았다.


“아, 아바이?! 여, 여기서 이러면···.”


그의 적극적인 대시(?)에 비녀의 볼이 빨개지며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


백단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 물이 담긴 그릇에 담갔다.


“아바이?”


비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그가 품에서 비누를 꺼내 들었다. 비누를 본 그녀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미안하다. 비녀야.”


백단이 물이 묻은 그녀의 손에 비누를 묻혔다.


치익! 피부가 녹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꺄아아악! 내 손이 녹는다!”


“큭! 이 비누는 실패군!”


백단은 조합에 실패한 비누를 던지고 다시 새로운 비누를 꺼내 들었다.


“그럼 이번엔 이거다!”


치익!


“꺄아악!”


그렇게 비녀의 방에선 한동안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


백단이 14개쯤 되는 비누를 시험했을 때 참지 못한 비녀는 도망쳤다.


그는 그녀를 하루도 빠짐없이 쫒으며 비누를 시험했다.


잠을 자는 그녀의 위에 비누를 녹인 물을 부어보기도 하고, 빵에 비눗물(···?)을 발라보고 빵을 집었을 때 그녀의 손을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누를 녹인 물을 계단에 몰래 놔 그녀의 발을 담가보기도 했다.


비녀는 점점 수척해져 갔다.


손과 발은 피부가 녹아 얼룩져있었고, 생기가 넘치는 머리카락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푸석푸석해졌다.


물론 그녀는 기를 다룰 줄 아는 무림인(비슷한 사람)이기에 그 정도 상처는 금방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단은 그녀가 상처를 재생할 틈조차 주지 않고 비누를 시험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희령과 하라가 백단을 말려보려고 했으나···.


“그럼 너희도 같이 실험할래?”


“미안. 비녀! 힘내!”


“그리하니, 본 사관은 이 사실을 적는다.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백단의 말 한마디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비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으아아! 다들 너무해!”


“오빠. 얘가 뭐라는 거야?”


“아바이. 이년···, 아니 비녀가 뭐라는 겁니까?”


“아주 좋다는데?”


“아니야! 아니라고! 으허헝!”


그렇게 장장 일주일.


“성공이다!”


백단은 1,000개가 넘는 비누를 비녀의 몸을 통해 시험했다. 그리고 드디어! 인체에 무해한 비누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그 즉시 백성들을 다시 모아 말했다.


“드디어 내가 피부가 안 녹고, 인체에 무해한 비누를 만들었으니 이를 시험해보고···.”


“모두 도망쳐! 아바이가 다시 한번 우리의 피부를 녹이려 한다!”


“꺄아아악!”


“으아! 모두 흩어져!”


삽시간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장원에서 도망쳐 뿔뿔이 흩어졌다.


“······.”


텅 비어버린 정원을 보며 백단은 조용히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왕 생활 힘드네.’


―――왕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


어쨌거나 백단은 비누를 만들어냈고 이 유용함을 백성들에게 전파할 의무가 있었다.


그는 도망친 백성들을 찾아 억지로 비누를 사용하게 했다.


“잠자코 비누를 손에 발라라!”


“꺄아악!”


갑자기 비누를 손에 바르게 된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으며.


“자! 어디 한번 빨래해보거라!”


“안돼! 내 옷이···!”


유일하게 남은 천 옷이 비누에 적셔진 청년은 입에 거품을 물었으며.


“자! 너도 비누를 발···.”


“아우?”


“···너는 일단 넘어가자.”


도중에 만난 어린아이에게는 비누를 강요하지 않고.


“자! 비누를 발라!”


“아아. 아버지. 아직 불혹도 안되었건만 소자 먼저 가옵니다.”


지나가던 중년 남성을 비눗물에 그대로 담가버렸다.


하라는 그 모습을 보며 빠짐없이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어? 내 손이 뽀송해졌어?”


비누를 손에 바른 여인은 부드러워진 제 피부에 깜짝 놀라 했고.


“옷이 하얘졌어?”


“어떠냐. 비누의 세척력이!”


“이거 갈색으로 염색했던 거였는데···.”


“······.”


남성은 하얗게 변한, 제 옷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으며.


“피부가 젋을 때처럼 탱탱해지다니!”


“이게 비누의 효과다.


중년의 남성은 탱글탱글해진 제 피부를 보며 깜짝 놀랐다.


백단은 다시 중경의 백성을 불러 모아 이들을 보여주며 비누의 안전성에 대해 설파했다.


“자. 다들 보았느냐. 비누는 무해하다.”


그는 그 산증인인 백성 일부를 보여주며 직접 비누를 시연케 했다.


그들은 깨끗해진 손과 부드러워진 피부, 깨끗해진 옷, 말끔해진 석제 식기를 보여주며 비누의 세척력을 과시했다.


“세상에. 손과 발의 기름때까지 씻겨나가다니!”


“저것 좀 봐. 옷이 저렇게 하얘진 건 처음 봐!”


“식기가 깨끗해졌어!”


백성들은 곧 비누의 효과를 보고 감탄했다. 백단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뒷짐을 지며 근엄한 척 그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비누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겠지?”


“예. 아바이.”


“자. 그럼 이 비누를 만드느라 고생한, 우리 비녀에게 박수 한번 주자꾸나.”


백단이 한걸음 몸을 옆으로 옮기자 수척해진 비녀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초췌한 안색에 방금까지 비누에 대해 놀라 하던 중경 백성들은 전부 침묵했다.


“······.”


비녀의 모습은 정말 처참했기 때문이다.


“비녀의 도움 덕분에 다행히 인체에 무해한 비누를 만들 수 있었다.”


―――비녀에게 인체실험을 했다.


“그래서 안전한 비누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지.”


―――그래서 완성한 게 이 비누다.


“그러니 모두 비녀에게 감사를 표하도록 해라.”


―――비녀가 아니었으면 너희였다. 그러니 감사해해라.


“······.”


그들은 백단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백단은 그들에게서 박수 소리가 안 들리자 칼을 뽑아 가볍게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구름이 갈라졌다.


“박수.”


“가, 감사합니다! 비녀님!”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아! 역시 카무이의 따님!”


백성들은 박수를 치며 비녀를 찬양했다.


“흑···.”


그 갈채 속에서 비녀는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렸다.


“아바이. 나빠. 나. 아바이 싫어.”


비녀는 백단이 싫어졌다.


그녀가 백단을 사랑하게 되는 건 좀 더 이후의 이야기다.


-


비누의 보급이 시작되자 도시는 금방 청결해졌다.


어디선가 나던 꿉꿉한 냄새는 사그라들고, 모두 부드럽고 고소한 비누의 향기를 달고 살았다.


이참에 백단은 목욕탕까지 건설하기로 했다. 그렇게 비누와 목욕탕으로 도시의 청결과 위생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비누가 있으면 당연히 목욕탕도 있어야지.”


“목욕탕을 만들자고?! 그 음란한 곳을?! 안돼! 절대로 안 돼!”


희령은 백단의 말을 듣고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남녀가 함께 씻는 공간이라니! 불결해! 거기다가 물도 잘 갈지 않을 거 아니야! 끔찍해! 더러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오빠!”


중세에 공중목욕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고대 로마에도 있었던 것이 목욕탕이었고, 저 핀란드에서는 사우나도 있었다.


그러니 이 시대가 그렇듯 목욕탕은 그리 청결하지 않았다.


물은 잘 갈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요, 음식 반입은 기본에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중세의 신학자들이나 유학자들의 목욕탕의 문란함과 폐해를 지적하며 없애려 노력했다.


그리고 진짜로 없엤다.


그러나―――


“무슨 소리니. 희령아. 남녀가 왜 같이 씻어? 물은 왜 안 갈아?”


“에?”


―――백단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가 아는 목욕탕은 현대의 청결한 목욕탕이 기본!


그는 당연히 남녀를 구별하고 특히 청결을 신경쓸 예정이었다.


“당연히 남녀를 분리하고 서로 띄어놓아야지. 그리고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어···.”


졸지에 백단에게 수상한 눈초리를 받은 희령은 억울했다!


“아니 나는···!”


“됐다. 너도 슬슬 20살이 다 되어 가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지. 크흠. 나는 모르는 척해줄게.”


“이익!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희령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어쨌든 백단은 공중목욕탕을 신설했다.


“내가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니, 너희는 이를 이용하며 몸을 청결히 유지하렴.”


“씻으면 씻는 거지 왜 목욕탕을 사용해야 합니까?”


이 시대 중세인이 그렇듯 왜 목욕탕을 사용해서 씻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진 백성 한명이 질문했다.


“그게 청결하니까.”


그리고 백단은 심플하게 한마디로 대답했다.


“···예?”


“그러니 목욕탕을 사용하렴.”


놀랍게도 백단은 왜 목욕탕을 사용해야 하는지, 왜 목욕탕을 이용해 씻으면 더 청결하고 유용한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 왕이잖아?’


그는 귀찮게 목욕탕의 필요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며 납득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냥 명령하면 끝인데 뭘 그래?’


그러기엔 너무 귀찮았던 백단이었다!


그는 목욕탕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납득시키기보단 그냥 명령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그게 더 편하니까!’


이래서 사람은 과거로 트립하면 왕이 되어야 한다.


“아. 이참에 목욕탕 청소 인원도 뽑을 거니까 그리 알고. 알아서들 정해놔라.”


“···저희는 이미 돌을 가공하고, 돌을 굽고, 가죽을 무두질하고, 도토리를 수확하고, 기름을 짜내고, 가루 내고, 연탄을 만들고, 오물을 수거하고, 함초를 기르고, 비누까지 만드는데요?”


놀랍게도 중경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을 고작 1,000명 남짓한 인원이서 해결하고 있었다.


가축이라고는 닭밖에 없었고, 그들 전부 기氣를 사용할 줄 아는 무림인이니 힘으로 어거지로 해결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림인이 일반인의 3~5배의 노동력을 보여주더라도 한계는 있는 법!


그들은 점점 늘어나는 일거리에 치여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더 추가되다니!


“그럼 하나 더 하면 되겠네.”


“······.”


그러나 백단은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에게 백성이란 나라를 풍요롭게 만드는 ‘노동력’이자 ‘권력’, ‘사람답게 살게 해줄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너희 좋으라고 하는 거다. 그냥 받아들여라.”


“······.”


그렇다.


백단은 이미 권력에 심취한 지 오래였다.


그는 폭군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하는 일들이 다 국가나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게 묘했지만.


그렇게 중경 백성들의 일거리는 또 하나 추가되었다.


어쨌건 그렇게 목욕탕이 생기자 중경 백성들은 나름 그 효용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 말이야. 그동안 목욕탕이 왜 필요한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구먼.”


탕에 나른하게 누운 백성 한명이 말했다.


“뜨끈한 탕에 있으니 몸이 아주 쫘악 풀려. 피로가 그냥 날아가는 기분이야.”


“몸도 깨끗해지고, 말일세.”


곁에서 비누를 바르던 사람이 마저 대답했다.


백단이 강요해서 시작한 목욕탕 사업은 그렇게 백성들의 삶이 녹아들었다.


곧 그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면 목욕탕에서 씻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백성들의 위생과 청결도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젠장! 이것들이 목욕탕을 깨끗이 사용하라니까!”


정작 목욕탕을 청소하고 물을 가는 사람은 고통스러웠지만.


위생이 개선되었으니 나름 싼 대가···라면 대가였다.


-


도토리의 혁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토리는 식량도, 기름도, 장작도, 가죽도, 비누도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소재까지 가져다주었다.


“히야. 이 나무의 수피는 아주 튼튼하고 부드럽군요.”


백단이 만든 발해 참나무는 굴참나무 급으로 코르크층이 발달했다. 물론 진짜배기 코르크나무에 비하면 수율은 낮았지만, 코르크는 그 자체로 효용이 많았다.


“이건 신(발)의 재료나 단열재로 쓸만하겠는데요?”


“그래?”


자연스레 코르크 채취도 활발해지며 그들의 신발도 개선되었다.


넘쳐나는 가죽으로 자연스레 가죽신들도 양산되었는데, 거기에 코르크 깔창(중창)이 더해진 것이다.


“확실히 신발이 부드러워?”


“이거, 신기해!”


“과연···. 이렇게 부드러운 신발이라. 거기다가 물도 안 들어옵니다.”


곧 중경의 모든 백성은 가죽신에 코르크 깔창까지 더한, 중세 최고급 신발을 신게 되었다.


중경은 알게 모르게 도토리나무로 인해 초고속으로 발전했다.


단순한 의복문화부터 식량, 위생, 수많은 목재 기구들까지 모두 도토리가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심지어 장작에 가죽 무두질에까지 도토리의 부산물이 이용되니 그들은 정말 도토리 하나만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


1,073명의 모든 백성이 귀족들이나 입는 모피 옷에 깔창까지 있는 가죽신을 신고, 풍부한 기름으로 풍요로운 식생활을 누렸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아바이님! 아바이님!”


“무슨 일이냐.”


오늘도 옥좌에 앉아 왕 흉내를 내며 자화자찬하며 하라에게 실시간으로 흑역사가 갱신되고 있던 백단에게 다급하게 표사 한명이 달려왔다.


“그, 그것이 큰일 났습니다!”


“큰일? 그게 무엇이냐.”


백단은 어쩐지 뒷목이 싸해짐을 느끼며 그에게 물었다.


“그게···! 도토리 숲에···!”


“도토리 숲에?”


“천잠天蠶이 고치를 틀었습니다!”


“뭐라?!”


백단이 눈을 부릅뜨며 옥좌의 팔걸이를 악력으로 잡아 부쉈다. 그만큼 놀랐기 때문이다.


툭! 하라가 경악한 표정으로 붓을 떨어뜨렸다. 옆에서 도토리빵을 슬픈 눈으로 보고 있던 희령도 입을 떡 벌렸다.


“천잠?”


유일하게 천잠에 대해 모르는 비녀만이 빵을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 당장 그곳으로 안내해라!”


“예!”


백단은 희령과 하라, 비녀를 이끌고 황급히 도토리 숲으로 향했다.


그러니 과연, 그는 도토리 숲에 수많은 고치를 튼 산누에나방의 고치를 목격했다.


“저, 정말 이게 천잠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예전에 천잠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종···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이건 분명 누에의 한 갈래, 특히 천잠이 틀림없습니다!”


표사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천잠은 보통의 누에와 달리 자연에 사는 영물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누에와 달리 온갖 풀을 먹지요. 그리고···.”


“부연 설명은 되었다! 이게 정녕 천잠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저 광택을 보십쇼. 저 담록색. 은은히 흐르는 광택. 누에와 닮은 고치. 저건 천잠이 분명합니다!”


“허, 허어···.”


천잠이 무엇인가?


천잠은 쉽게 말해 무협지 속 누에다.


일반 누에가 아닌 영물에 반열에 든 누에가 천잠이다.


천잠사는 그 천잠에 튼 고치를 끓여 얻은 명주(비단실)로 만든 비단을 말하는데 기가 잘 통하고, 불과 물에도 강하다. 거기다가 강철만큼 질겨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조차 없는 실이다.


오죽하면 천잠사로 지은 옷을 천잠보의라 하여, 갑옷의 일부로까지 취급할까.


즉, 천잠사란 무협계의 탄소나노섬유나 마찬가지인 사기 실이란 의미다.


물론 천잠사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백단은 몰랐지만 본디 무협의 천잠은 실제 존재하는 누에의 근연종을 모티브로 창작된 종이다.


(뽕나무 잎을 먹는 종류의) 산누에나방이라 불리는 누에를 야생에 가까운 환경에서 키워내면 만들어지는 고치가 바로 천잠사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정말 야생에 가까운 산누에나방의 고치다.


참나무 잎을 먹는 진짜 야생 누에랄까. 그러나 그렇기에 이 무협이 가미된 평행세계에서는 진짜 천잠과 거의 유사한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슬쩍 고치에 검지를 대어 기를 흘려보내 보았다.


안타깝게도 고치 안의 누에는 거의 동물에 가까운 희미한 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짜배기 영물은 아닌 셈.


하지만 그가 실을 잡고 당겨보자 실은 끊기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힘을 주고 나서야 끊겨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떨어진 고치를 들어 삼매진화를 살짝 일으켜보았다. 고치는 불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연···. 영물 누에까지는 아니지만 실은 진짜 천잠사와 동등한 수준이구나.”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 천잠사로 이루어진 고치가 물경 십만이 넘었다.


“꿀꺽.”


백단이 침을 삼키며 고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순히 보물 천잠사가 아니었다. 저것은 그 자체로 국가의 미래.


앞으로 중경의 주 산업이 될 훌륭한 자원이었다. 국가의 미래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천잠사가 저리 많이···.”


“허어···. 아름답습니다···.”


“저거 맛있어?”


희령과 하라는 눈 앞에 펼쳐진 황금···, 아니 천잠사 고치에 감탄하고 비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당장 도시로 가 전해라.”


백단은 끓어오르는 흥분을 참으며 표사에게 물었다.


“명주를 만들 수 있는 자는 당장 이곳으로 모이라고!”


“너! 당장 가서 비단을 만들 수 있는 자를 불러와!”


“당장 여성들을 모조리 불러 모으십시오!”


천잠사가 양산이 된다? 이건 희령도 하라도 참지 못했다.


“예! 예!”


졸지에 왕과 최고 간부(···?) 두 명의 명령을 들은 표사가 도시로 황급히 달려갔다.


“크흐! 크하하!”


백단은 천잠사 고치들을 보며 광소했다.


“여기에 자리 잡길 잘했어! 아아! 암!”


‘사할린에 자리 잡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나라가! 어떤 국가가! 천잠사를 양산할 생각을 할까!”


중경은 도토리 하나로 모든 것을 이뤄낸 것이다.


“우리 국가는 최강의 국가가 될 것이다.”


백단은 상상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은 군대를.


모두가 방탄, 방검, 방염, 방수에 통풍까지 잘되는 천잠보의를 입은 군대를.


그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실실 웃었으나···. 그는 깨닫지 못했다.


중경에는, ‘아직’ 군대도 없다는 사실을.


표사들을 주먹구구식으로 이용하며 니브흐족의 습격을 방어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니 그 이전에 세금도 걷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된 행정 조직은커녕, 왕과 왕후(···?) 세명과 1,070명의 백성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백단은···. 끝까지 ‘더르넛(노아간도사)’을 기억하지 못했다.


-


···이래서 먼 미래에 학계에서는 도토리가 중경을 살렸다. 라고 평가한다.


사실상 도토리 아니었으면 진즉 멸망했을 나라였다고. 도토리가 살린 나라라고.


그래서 먼 미래의 학자들은 백단과 발해 참나무만 없었으면 3년도 안되서 멸망했을 거라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미래의 발해국은 이 사실에 반박하지 못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작가는 생각했습니다.

이왕 무협지 속에서 대체역사를 한다면, 무협스러운 치트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넣었습니다!


예! 주인공은 미래 지식(?)과 현대인 치트로 천잠사를 양산합니다!


일개 백성조차 천잠보의를 입고 다니는 대환장의 국가!

그정도는 되야 현대인이 중세에 세운 나라라 할만하지 않겠습니까!

이야. 현대인 사기네요. 현대인 천재론은 사기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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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건국기 33화. 발해 강철, 다가온 위기 24.09.17 25 1 18쪽
56 건국기 32화. 해군의 양성, 철 수확 24.09.16 21 1 19쪽
55 건국기 31화. 문화의 발전, 철광의 발견 +2 24.09.16 35 1 23쪽
54 건국기 30화. 사할린 공용어 24.09.13 41 1 25쪽
53 건국기 29화. 양식업과 언어 24.09.13 27 1 23쪽
52 건국기 28화. 양식업…을 시작하기 전에 24.09.13 30 1 13쪽
51 건국기 27화. 종이 = 꿀 24.09.12 36 1 16쪽
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40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8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2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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