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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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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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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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DUMMY

-


‘나는 ‘왜’ 왕이 되었는가?’


-


―――백단의 머리 위에 광배光背가 떠올랐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넘실거리던 기가 가라앉았다.


무림인으로서의 기도, 일반인인지조차 흐르는 기조차 말이다.


그의 머리 위, 정확히 뒤통수에만 광배 하나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이다.


평범한 무림인이 보기엔,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모습.


일반인이 보기에도 자포자기한 모양새. 그러나 기량이 수위에 든 자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뭔가 위험하다고.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것은 야생에서 자라와 직감이 뛰어난 비녀였다.


그녀는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백단에게서 ‘공포스러울 위협’을 느끼고 도망쳤다. 원시 무공에 가까운 것을 몸에 익혔으면서도 평범한 여성처럼 달리다가 넘어져 구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도망쳤다.


다음으로 이상을 느낀 것은 하라였다.


그녀는 백단의 전신에서 가라앉은 기에 의아해하는 순간, 그의 곁을 흐르는 ‘운기運氣’가 거세게 요동치는 걸 보고 기겁했다.


―――운명이, 바뀐다.


‘아니.’


―――운명이 되었다.


풀썩, 자연스레 힘이 빠진 하라가 붓과 공책을 놓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 번째로 이상을 느낀 것은 더르넛이었다.


“어엇. 어?”


그는 무장으로 기를 다룰 줄 알았다. 뭐, 이 세계의 무장이 기를 못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만.


어쨌든 천호장쯤 되면 대다수는 절정에 이른 무인들이다.


거기에 그들은 군軍 특유의 기교 혹은 기량, 전술에 능했다.


대결과 싸움이 다른 것처럼, 상대가 강한 것과 죽이는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그는 초절정의 무인이라고 해도 자신 있었다. 그래 있‘었’다.


광배를 띄운 백단을 보기 전까지.


‘저, 저게 뭐지? 투먼(만호장)에도 저런 건 본 적 없어!’


무공을 배운, 절정에 오른 더르넛이라지만 저것은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검기를 검사로 자아내는 것이 절정. 검사로 검강을 직조하는 게 초절정.


그리고 초절정은 새외를 포함해 전 무림에 고작 100명이 전부였으니까.


절정은 흔하다. 그러나 초절정은 흔하지 않다. 아무리 원나라 왕실에 100명의 초절정에 대응하는 만호장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그는 백단이 다다른 경지를 몰랐다.


초절정에도 ‘급’이 나뉜다.


초절정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다다르는 경지.


일부 절정 무인들이 검강을 ‘흉내’내는 것처럼 초절정이 ‘화경’을 흉내내는 경지.


―――화경의 ‘편린.’


그래도 천호장이라고 나름 산전수전 겪은 그의 직감이 경고한다.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그, 그대를 보았으니 되었네.”


더르넛은 말의 고삐를 잡고 황급하게 말 머리를 돌렸다.


그에 백단이 고개를 삐딱하게 까딱거렸다.


“약조를 지키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이것으로 대가를 치른 셈하세.”


그렇게 말하고 더르넛이 말을 돌려 도망쳤다. 그는 ‘후퇴! 후퇴에!’ 라고 외치면서 군사를 이끌고 성벽의 구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백단이 걸음을 옮겼다.


-


‘내 인생에 후회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내 인생에 미련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


자박―――.


백단의 발치에 뭔가가 채였다.


“······.”


그가 고개를 내리자 보인 것은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너는 이제부터 석공石工씨다.’


그가 성을 하사할 때 가장 앞장서서 성을 받았던 석공세가의 일원이었다.


그는 가장 앞장서 성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석공세가의 임시 가주 역할을 했다.


그래서 백단 앞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이리 치이고 저리 구르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죽은 눈에 지친 표정을 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지은 성벽과 건물을 볼 때면 뿌듯하게 바라보며 몇시간이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온종일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게 내가 만든 거야! 라고.


그가 목이 꺾여 죽어있었다. 죽었으면서 눈을 뜬 모양새가 끝까지 반항한 모양이다.


천잠보의를 뚫을 수 없으니 목을 가격해 죽인 듯싶었다. 그의 알몸이었는데 천잠사로 지은 옷이란 걸 알자 병사들이 벗긴 것 같았다.


백단이 그의 목을 가지런히 돌려놓고 눈을 감겨주었다.


자박―――.


“······.”


다시 한번 백단의 발치에 뭔가가 채였다.


이번엔 화산火山씨였다. 그는 가마를 만들어낸 두 화산씨 중 하나였다.


그도 무공을 배운지 비교적 오래되어서 그런걸까. 석공씨와 함께 싸운 것 같았다.


화산씨는 눈에 화살이 꿰뚫려 죽어있었다.


백단이 그를 가지런히 눕혀주었다.


자박―――.


“······.”


이번엔 천단파天緞派의 여성 중 한명.


그녀 역시 전라였는데 혀를 깨문 흔적이 보였다. 흉한 짓을 당하기 전에 먼저 목숨을 끊은 것 같았다.


백단이 제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가려주었다.


자박―――.


“······.”


그의 앞엔 전신이 화살투성이인 전前 키로로 부족장 포로가 보였다.


포로는 천잠보의가 어색하다고 모피옷을 주로 입고 다녔었다. 그는 화살로 피어난 꽃처럼 전신에 화살이 박혀 죽었다.


포로는 마치 백단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양새로 눈을 감고 있었다.


백단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위문하며 그를 넘어갔다.


투욱―――···.


“······.”


마지막으로 그의 발에 챈 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의 시신이었다.


키로로 부족의 소년은 수레바퀴보다 커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수레바퀴에 묶여있는 자들처럼 목이 꺾여 죽어있었다.


“아···.”


백단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고갯짓에 뒤통수의 광배도 따라 하늘을 마주 보았다.


“너희가 나의 후회이자 미련으로 남았구나.”


―――하늘은 빌어먹게도 맑았다.


-


‘그리하여 나는 인생(역사)에 의미를 남길지니, 더 나아간 삶(전설)을 살리라.’


-


다시 백단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을 때는 이미 더르넛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케흑! 크륵!”


백단의 발치에는 그의 애마가 한줌 핏덩이로 화해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더르넛을 들어 올렸다.


“쏴! 쏴라!”


“밍간을 구해라!”


궁기병―케식들이 다급하게 백단에게 활을 쏘았으나 화살은 그의 몸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말로 짓밟으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상체를 들어 머리를 짓밟은 말의 다리가 도리어 부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병사들이 창을 내질러도 부러졌고, 검을 휘두르면 부러졌다.


“검과 활이 통하지 않습니다!”


“젠장!”


백단을 공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병사들이 공격을 멈췄다.


천호장까지 인질로 잡힌 마당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크으윽!”


더르넛이 백단의 손목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나를, 죽이면···!”


더르넛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률律이, 깨진다!”


정수불범하수

井水不犯河水.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


관무불가침.

官武不可侵.


―――관과 무림은 서로 불가침이다.


1,000년을 이어온 중원의 현묵玄默이 깨진다.


“케헥! 케엑! 너, 너는 무림인다!”


더르넛이 점점 조여오는 백단의 손아귀에 더욱더 발악하며 살기 위해 외쳤다.


“나는 밍간(천호장/관官)이란 말이다! 무림이 어째서 유지되고 있는 줄 아느냐?! 다 황실이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중국의 수많은 왕조의 틈 사이에서 무림은 끝까지 존속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황실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황실은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제된 규율과 진형, 전술과 전략만 잘 조합하면 일반병사는 물론, 절정의 무인으로 초절정의 무인조차 죽일 수 있다.


아니, 당장에 그들의 이권을 조금만 건들면 그들은 금방 휘청일 것이다.


경제, 법률, 행정. 어느 것이라도 좋다. 조금만 거대한 손으로 톡 건들면 오대세가라는 대벌레들은 흔들릴지니.


언제나 개인의 힘보다 강한 것은 시스템(사회)의 힘이다.


“너는 천년의 률을 어길 셈이냐!”


―――너는 무림 공적이 될 셈이냐!


더르넛은 백단에게 그리 돌려 물은 것이다.


“그래.”


“커흐···.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기라도 한 걸까? 더르넛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률을 깰 거다.”


 백단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더르넛에게 고했다.


“내 백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따위 률. 몇번이고 깨주마.”


“커어헉!”


더르넛의 기도가 조여들었다.


“꼴에 무림인이라고 세상이 네 것과 같은가···.”


죽음을 직감한 걸까? 그가 입에 거품을 물면서 백단을 조롱하듯 말했다.


“어째서 무림인들은 왕국을 세우지 않았을까? 어째서 제국을 이루지 못한 걸까?”


크, 크크크···.


“너는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거품까지 물며 마지막으로 읆조렸다.


“투먼(만호장)께서 오실 것이다···.”


“언제든 오라고 해라.”


백단이 걸어오면서 죽은 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 중경의 미래를 ‘함께’ 그리지 못한 그들의 뒷모습에 그가 분노를 뿜었다.


“만명이던 십만명이건 모조리 죽여줄 테니까―――!!!!!”


백단이 더르넛의 목을 잡은 손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의 목이 찢어지며 바닥에 큰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었다.


눈조차 감지 못한, 절명이었다.


백단은 그의 목에서 분수처럼 치솟는 피에 전신이 물들어 붉게 변했다.


“허억!”


병사들은 그 모습에 겁먹는 한편, 백단의 잔혹한 처형 방식에 분노했다.


“피, 피를 땅에 흘리다니!”


“저저! 천벌 받을 놈!”


백단은 그들을 무시하고 검집에 꽂힌 검을 잡았다.


“가서 전해라.”


움찔! 검도 창도 활도 통하지 않는 괴물이 검을 잡았다. 그 사실만으로 그들은 몸을 떨었다.


“투먼이건, 만호장이건 얼마든지 오라고.”


그가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세계에 선언하듯 말했다.


“전부 죽여줄 테니까!”


―――그것은 선전포고.


“몇만, 몇십만이 오건! 전부 상대해주마!”


한 개인이 세계를 뒤흔든 제국을 향해 내뱉는, 전쟁선포.


병사들은 그의 말에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그에게 외쳤다.


“너는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은 더르넛의 시신을 황급히 챙기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백단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중경을 향했다.


-


무림벌채武林伐採. 파천자破天者. 백단白檀.


무림낙화武林落花. 천강아天罡我. 천려화天爈禍.


무림을 실질적으로 ‘멸망’시켰다고 평가받는 ‘무림 공적’의 이야기는 그렇게 그가 먼저 쏘아 올렸다.


-


그런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던 일련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중경을 습격했던 니브흐인 전사들.


전사들은 붉게 물든 백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붉은 악마다.”


“어쩌면, 저분은 신이 아닐까?”


“사람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저자는 파괴신이 분명하다.”


“저분은 제 부족인의 죽음에 분노하셨다. 저건 의기意氣가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할 종말의 현신이 분명해!”


“저분은 숲 신령의 아드님(곰)도 따르시는 분이다. 어쩌면 저분이야말로 신 중 신이 아닐까?”


그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백단을 더욱 두려워하며 악마에서 파괴&종말신으로 바라보는 자들.


오히려 그가 보여준 분노와 행동, 신화와 같은 무력, 광배에 감화되어 그를 추종하는 자들.


그들은 서로 나눠 수군거리더니 이내 서로를 노려봤다. 그렇게 잠시간의 대치가 있던 그들은 이내 서로 등지며 숲속을 내달렸다.


자신이 속해있던 부족으로.


이 신화와 전설을 전하기 위해.


-


―――그렇게 니브흐는 ‘둘’로 나뉜다.


‘북’과 ‘남’으로 말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로소 주인공이 니브흐족 '일부'를 손에 넣게 되었군요!

첫 시작은 역시 아이누, 니브흐, 윌타 이렇게 세 부족의 통합 수순을 밟아야겠지요.

그 전에 잠깐의 전투가 있겠지만요! 뭐, 금방 끝나고 금방 대체역사 타임으로 넘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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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건국기 33화. 발해 강철, 다가온 위기 24.09.17 25 1 18쪽
56 건국기 32화. 해군의 양성, 철 수확 24.09.16 21 1 19쪽
55 건국기 31화. 문화의 발전, 철광의 발견 +2 24.09.16 35 1 23쪽
54 건국기 30화. 사할린 공용어 24.09.13 41 1 25쪽
53 건국기 29화. 양식업과 언어 24.09.13 27 1 23쪽
52 건국기 28화. 양식업…을 시작하기 전에 24.09.13 30 1 13쪽
51 건국기 27화. 종이 = 꿀 24.09.12 36 1 16쪽
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40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8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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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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