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여자)악마와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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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암스테르담
작품등록일 :
2024.08.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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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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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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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마법사님 맞죠

DUMMY

톰과 아내까지 다 처리했다.


죽이는 건 너무 과한 처분 아니냐고? 무슨 소리야. 죄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라, 루시아가 배고파서 영혼을 상납했을 뿐이다.


-넌··· 사악해.

‘루시아, 너만큼은 나를 친절한 계약자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사악해!

‘얼마 모였어?’


윌리엄의 시체를 뒤적여 찾은 단검을 챙기며 물었다.


영혼 흡수를 끝마친 루시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 한 2천일 치 모았어.

‘단위가 너무 커지네.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어떤 생각?

‘2천 원이라고 하자. 만 개가 넘으면 만 원.’


루시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의문을 드러냈다.


-뭐가 다른데?

‘내 고향에서 쓰던 화폐 단위야.’

-자기만 익숙한 거 쓰겠다는 소리잖아.

‘꼬우면 네가 아이디어 내보든가.’


부루퉁한 루시아를 보며 큭큭 웃었다.


-아이디어는 나중에. 바깥에 있는 사람들 정리하고 빨리 마을을 벗어나야 해.

‘그래. 슬슬 일어나볼──’


문이 덜컥 열렸다.


루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곁에 달라붙었다.


나는 실실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문을 열어젖힌 노인을 응시했다. 내게 조용히 머물다 가라고 충고한 노인이었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는 루시아.


“조용히 나가긴 글렀네.”


그 욕설에 나도 동의했다.


루시아는 등 뒤로 가서 나를 끌어안았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합이 척척 맞았다.


-필요하면 신호 줘. 길을 막는 놈들만 잽싸게 죽이고 튀자.

‘준비하시고──’


뒷말을 이어 붙이려 할 때, 노인이 뒤돌며 버럭 소리쳤다.


“어서 애들을 물려!”


잠시 드러난 틈으로 훤칠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충격과 공포에 빠진 전형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임스, 애들을 끌고 내 집에 가서 가만히 있어라! 다른 애들 입단속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마! 누가 와서 물어봐도 내 이름 대면서 쫓아내라! 애들도 다른 데로 새지 못하게 하고!”


노인은 속사포로 지시한 다음, 그 청년을 밀어내고 빠르게 문을 닫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지원 병력을 부르려는 속셈일까.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은 없다. 곧장 숨통을 끊고 도망가면 된다.


나는 슬며시 일어섰다. 등에 손을 붙인 루시아가 천천히 따라왔다.


“어르신, 이렇게 다시 뵙습니다.”


손목을 풀면서 노인에게 다가갔다.


“말씀대로 조용히 머물다 가려고 했는데, 이거 참 면목이 없습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군.”

“음, 그렇습니까? 몰골을 확인할 거울이 확인할 거울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윌리엄은 죽였나?”

“제일 먼저 죽었습니다. 유언은 아마··· ‘분명 식사에 독초를 탔는데’였을 겁니다. 제대로 안 들어서 정확하진 않습니다.”


노인의 코앞에 멈춰 서서 힘을 끌어올렸다.


루시아가 입바람을 불어 기력을 넣어줬다.


-이제 백 단위로 말할게. 2천.


밀폐된 공간에서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렸다. 루시아가 배부르게 식사를 마쳐서인지 힘이 넘쳤다.


기현상을 목격한 노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마법사··· 또는 기사이셨소.”


노인이 순식간에 말투를 바꾸었다. 태세 전환이 빠른 늙은이 같으니.


“눈치가 빠르십니다.”

“나를 죽일 셈이오?”

“정체를 알아채셨으니.”

“후회할 것이오. 뒤처리를 어찌하려고 그러시나. 이만큼 죽였으면 곱게 떠나시는 게 어떻소.”

“당한 건 내 쪽인데 어째 말에 뼈가 있으십니다. 저녁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 늙은 목을 콱 움켜쥐면 머리통이 터질 것이다.


뭐, 악감정은 없습니다. 재수가 안 좋았다고 생각하쇼.


손을 뻗으려는 순간, 노인이 품속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냈다.


“금화로 바꾸면 두 닢 정도 되는 돈이요. 이거 갖고 떠나시오.”


오두막에서 훔친 돈이 은화 열 닢이다. 그런데 금화 두 닢이라니. 금화면 이게 얼마야.


-일반 병사 일당이 보통 동화 두 개야. 금화 하나의 가치가 은화 스무 닢이니까··· 병사의 240일 치 일당 정도.

‘평범한 노인네가 건네기엔 엄청나게 큰돈이란 거네.’

-엄청.


이 노인, 보기보다 굉장한 재력가다. 아무리 목숨이 왔다 갔다 할지라도 이만한 거금을 선뜻 건네기란 어렵다.


나는 빤히 무거운 주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죽여서 빼앗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해두겠소.”

“어르신의 무얼 믿고?”

“당신처럼 뛰어난 실력자가 억하심정을 품으면 지금보다 더한 재앙이 찾아오겠지. 오늘밤의 일은 명백히 우리 마을의 몇몇 멍청이들이 꾸민 일이오. 그들에게는 마땅한 벌을 내릴 테니 부디 용서하시게.”


마을 전체가 꾸민 일이 아니란다.


물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말을 지어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죽인 놈들과 마을 사람들이 정말 한패가 아니라면 조용히 빠져나갈 기회였다.


‘어떻게 생각해?’

-네 얼굴을 봤잖아. 수배될 수도 있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미 살인을 저지른 상황에서 내 얼굴을 본 목격자를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단 말이지.’


이 노인의 당당한 기품이 마음에 걸렸다. 살기 위한 블러핑으로 간단히 치부하기 힘들었다.


노인의 얼굴 근육은 떨리지 않았다. 분명 기이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있을 텐데 표정에선 공포나 위기감이 없었다. 거짓말하는 자라고 볼 수 없는 평온함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이 노인 한 번 믿어봐?’

-너, 내 말 안 듣지. 이럴 거면 왜 물어봤어.

‘조용히 움직일수록 좋아.’

-7명을 그 자리에서 죽여놓고?

‘그땐 선택지가 없었잖아.’

-진짜 속내를 말해보시지, 계약자?


루시아는 내가 변명하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나도 끝까지 숨길 생각은 없어서 순순히 실토했다.


‘내가 마나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너무 당당해. 사람이라면 마땅히 무지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이 노인은 그런 두려움이 전혀 없어. 마법사나 기사를 상대해 본 노인이야.’

-마법사와 기사를 상대하고서도 살아있는 걸 보면, 순 사기꾼은 아니겠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루시아는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주머니를 챙겼다.


“주모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겁니다. 어르신이 여태껏 살아계신 이유는 기사와 마법사를 상대로 거짓말하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있음이겠지요. 약속을 믿고 떠나겠습니다.”

“믿어줘서 고맙소. 마나와 소통하는 분을 속일 배짱 큰 놈은 없을 거요.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소.”


노인은 고개를 까딱 숙이고는 떠났다.


나도 떠나기 전, 간단하게 피딱지를 씻어내고 톰의 방을 살펴 멀쩡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후에 위층에서 짐을 챙겨 피비린내가 가득한 톰의 집을 나섰다.


새벽녘이 밝아왔다. 넓은 마을은 7명이 죽은 것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고요했다.


오직 내 발걸음 소리만 자박자박 울릴 뿐이었다.




*




“여기가 프런부르크.”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도시 외곽을 둘러봤다.


성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판자촌들은 나름의 생활권을 형성했다. 성벽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병사들의 검문을 거쳐야 하는 듯했다.


‘못 들어가려나?’

-상황이 괜찮으면 돈 좀 찔러주고 들어갈 수 있을걸.

‘상황이 안 괜찮으면?’

-판자촌에서 지내야지.


전쟁한다고 들었는데 이 도시는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다. 여기도 징집한다고 뒤통수쳐서 끌고 가려 하면 곤란한데.


루시아가 잠깐 쏙 나왔다가 도시를 살펴보고 들어갔다.


-여기서 오래 머무르진 못하겠다.

‘왜?’

-도시치고 너무 작아. 네 걱정대로 추격대가 붙는다면, 여기 있다간 금방 들통나.


큰 도시로 가는 길을 찾아봐야겠다. 될 수 있으면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도 구해보고.


우선 검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도시에 새로 몰린 인파가 많아 줄이 길었다.


줄이 줄어들고, 해가 지기 전에 차례가 왔다.


“통행증.”


창을 든 병사가 손을 내밀었다.


“이걸로 되나?”


나는 그 손 위에 통행증 대신 은화 한 닢을 올려놨다.


병사는 은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길을 텄다.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통과!”


생각보다 쉽게 도시에 들어왔다.


-성당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근처엔 가지 않는 게 좋아.


루시아는 마족답게 교회를 싫어했다.


-그리고 큰 도시로 가는 상단이 있으면 참가하자. 다 같이 움직여야 안전해.


루시아의 힘 정도면 웬만한 맹수는 어렵잖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마나는 아껴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런 점에서 상단에 꼽사리 끼자는 건 좋은 생각이다.


괜찮은 여관을 찾아 방을 구했다. 하루 숙박비 겸 식비로 동화 두 닢을 건네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왔다.


-너무 늦었는데 왜 나가?

‘정보 구해야지.’

-이 시간에?

‘원래 정보는 밤에 구하는 거야. 다 방법이 있어.’


이 밤중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어디냐.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딸랑


술집 문을 열어젖히자, 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음~ 이 만취해서 떠들어대는 소음. 북적북적하니 분위기 좋다.


바에 가서 주인장에게 맥주 하나를 주문했다. 곧이어 맥주가 나오고, 은화 한 닢을 튕겼다.


“거스름돈은 됐어.”

“···타지에서 오셨군.”


주인장이 행색을 훑어보며 은화를 챙겼다.


술집에 앉아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차림새가 나와 별다를 건 없었다.


“많이 티나?”

“이 도시에서 돈을 헤프게 쓰는 인간들 얼굴은 다 아는데, 그쪽은 처음 봐서.”


유머를 좀 아는 주인장이다.


픽 웃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큰 도시로 가는 상단을 찾고 있어.”

“일주일 뒤, 에뮐렌으로 가는 상단이 있을 거요.”

“낄 수 있을까?”

“용병으로 참가할 생각은 아니신 것 같은데.”


그가 내 얼굴을 슬쩍 살폈다.


한 달간 굶은 나의 몰골을 루시아가 표현하기론 이제 막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 같다고 했으니, 주인장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용병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면 집어치우란 뜻.


밍밍한 맥주를 꿀꺽 넘기고 입가를 닦았다.


“큰 도시로 가야 해서 말이야.”

“에카르트 상회의 로버트 씨가 이번 상단을 이끌 테니 그에게 가보시게. 그리 박한 사람은 아니라 약간의 돈을 주면 상단에 끼워줄 거요.”

“로버트 씨는 어디 가면 볼 수 있어?”

“원한다면 연락을 넣어주겠소.”


은화를 하나 더 튕겼다.


주인장은 잽싸게 은화를 낚아챘다.


“이틀 뒤 저녁쯤에 다시 찾아오시구려. 그때까지 답장을 받아놓지.”

“고마워, 이 집 맥주 맛이······.”


솔직히 별로다.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보다 못하다.


하지만 친절한 주인장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으니.


“참 좋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니까 당연하지.”

“번창하길.”

“더 안 마시고 가시려고?”


주인장이 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호구 잡았다는 그의 속내를 읽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도착해서 피곤해.”

“쩝, 어쩔 수 없지. 오랜만에 서커스단이 도시에 왔으니 관심 있으면 가보시게.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을 터야.”


손을 흔들어주고 술집을 나왔다.


연락은 부탁해 뒀고, 이틀 뒤에 오라고 했으니 하루가 비었다.


여관으로 가는 길에 일정을 고민했다.


‘하루 동안 뭐 하지?’

-해 뜨면 도시 한 바퀴 둘러보고, 여행 물품도 구하고, 서커스도 보면 되겠는데?


서커스 구경을 은근히 기대하는 말투.


‘서커스 보고 싶어?’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


이럴 때면 취향 참 애 같다.


‘그래, 그래. 보러 가자. 나도 궁금하다.’

-애 아니야.

‘마족 기준으론 애라며.’

-이걸 또 그렇게 받아친다고?


그때,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루시아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경고했다.


-누가 접근한다.


힐끗 뒤돌아봤다.


어떤 남자가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다가오다가, 내가 뒤돌자 멈춰섰다.


‘작령자인가?’

-평범한 인간이야. 그런데 도시에선 함부로 작령하면 안 돼. 어디서 작령자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

‘방법은 있지.’


범죄를 저질러도 안 들키면 무죄인 법.


달빛이 비치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서 한 번에 처리해야겠다.’

-좋은 생각이야.


괴한이 달려드는 즉시, 골목으로 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나를 뒤쫓던 괴한이 이상한 소리를 나불대기 시작했다.


“당신, 당신··· 마법사님이죠?”


뭐야, 이 당황스러운 전개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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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감사해라 24.09.03 20 0 12쪽
15 015. 반가운 목소리 24.09.02 18 0 12쪽
14 014. 시간 끌기 24.09.01 20 0 12쪽
13 013. 루시아 코는 개코 24.08.31 24 0 12쪽
12 012. 방 빼 24.08.30 25 0 13쪽
11 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24.08.29 19 0 12쪽
10 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24.08.28 23 0 13쪽
» 009. 마법사님 맞죠 24.08.27 25 0 13쪽
8 008.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 24.08.26 27 0 15쪽
7 007. 붉은 염료 24.08.25 29 0 15쪽
6 006. 톰 아저씨는 수상해 24.08.24 31 0 14쪽
5 005. 최후의 수단이다 24.08.23 30 1 14쪽
4 004. 열려라 참깨 24.08.22 34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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