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여자)악마와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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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암스테르담
작품등록일 :
2024.08.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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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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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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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DUMMY

“마녀사냥이다!”

“이게 얼마만의 구경거리야.”

“야, 야! 까치발 들지 마! 안 보이잖아!”


광장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붐볐다. 이만한 숫자가 어디에 숨어있다가 몰려나왔는지 신기했다.


나는 높은 단 위에 올라가는 여자를 멀리서 지켜봤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들려오는 단어가 어째 낯익었다.


“마녀사냥?”


제임스가 내 혼잣말에 관심을 가졌다.


“아, 예. 마법사님은 처음 보십니까?”

“저게 뭐 하는 건데?”

“관할 성당이 마녀를 체포하면 벌이는··· 행사 같은 겁니다. 사람이 죽는 걸 행사라 표현해도 되는진 잘 모르겠지만요.”


마녀사냥이라. 그거 마음에 안 드는 여자 데려다가 죽이는 기괴한 풍습 아닌가.


역사서에서 봤던 마녀사냥을 떠올리자, 루시아가 부정했다.


-그건 아니야. 마족의 씨앗을 품은 인간 여성 작령자를 죽이는 교회법이지. 교회법은 나름대로 절차도 있고 억울하면 항소할 수도 있어. 마녀는 마족과 엮여 있는지라 빠져나갈 틈이 없긴 하지만.


최소한 지구의 종교개혁 시기에 자행됐던 주먹구구식 이단 학살은 아니란 뜻.


의문이 해소된 나는 턱수염을 만지며 다시 이름을 고민했다.


“에밀리아··· 쟤는 독일어 이름이네. 제임스는 영미권이고. 윌리엄도 영어인데? 뭐 어떻게 지어야 한담.”


상인들마저 마녀 화형을 구경한답시고 뛰쳐나가서 시장은 휑했다. 몇몇 상인들만 가판대에 앉아서, 동료들 상품을 누가 훔치지 않는가 감시하고 있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본 후, 결국 이름 짓기를 포기하고 제임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임스, 괜찮고 무난한 이름 하나 추천해줘.”

“네? 제가 감히 어떻게······.”


제임스는 나를 굉장히 어려워했다.


애가 싹싹하고 잘생긴 외모이기는 한데 낯가림이 너무 심하다.


-마을 사람 일곱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 마법사가 편하면 이상하지 않아?


루시아의 말대로, 가까워지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그런데 이름은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이 안 난단 말이지.


“그냥 해봐. 골라주는 게 아니라 추천하는 거잖아. 마음 편하게 해. 마음에 안 들면 안 쓸 테니까.”


재차 부탁하자 제임스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름 하나를 내놓았다.


“한스··· 어떠십니까.”

“한스? 추천한 이유가 있어?”

“예. 제 아버지 이름입니다.”


자기 아빠 이름을 마법사한테 추천하다니. 얘도 가만 보면 취향이 이상해.


‘어때?’

-한스? 괜찮은 것 같은데. 무난하게 많이 쓰는 이름이야.


좋아. 한스로 정했다.


“앞으로 한스라고 불러.”

“예? 그렇게 단번에······.”

“마음에 들었거든.”


사실 아무거나 상관없다.


제임스는 혼란스러워하다가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한스 님.”

“너, 돈 있어?”


제임스가 흠칫했다.


그의 순진한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삥 뜯으려는 거 아니니까 말해봐.”

“은화 두 닢 있습니다.”

“그걸로 네가 쓸 여행 물품 좀 사둬. 무기는 도끼랑 단검 있으니까 됐고 방어구는··· 내가 하나 마련해줄 테니까 그거 차고 다녀.”


은화 두 개로 방어구까지 장만하기엔 빡빡하다. 어차피 에카르트 상회 지점에 가면 노인의 편지를 대고 두둑한 금화를 받을 수 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제임스는 감격한 눈망울로 허리를 접어댔다.


‘이 친구 좀 부담스러운데.’

-네가 참아.


야영용품들을 주로 담으면서 장비 상점에 도착했다.


-갬비슨이 싸고 좋아. 잭체인 있으면 그것도 입혀.


상인에게 갬비슨이 뭐냐고 물어보니 두꺼운 천 옷을 가리켰다.


‘저건 천 옷에 철 조각 덧댄 거잖아. 가죽 갑옷이 초보 여행자용 아니야?’

-갬비슨 쓸 만해. 가죽 갑옷은 너무 비싸고 유지보수 비용도 장난 아니라고. 감당 안 될걸.


가죽 갑옷 비용은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이었다. 패스.


-얼뜨기, 촌놈, 바보.


루시아가 놀리는 건 애써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제임스에게 튼튼한 갬비슨을 사 입히고 팔을 보호할 잭체인도 구매했다. 방패도 하나 쥐여주니까 좋아 죽으려고 한다.


“얼마요?”

“은화 세 닢만 주시게.”


값을 치르고 상점을 나가려는데 제임스가 말을 걸었다.


“한스 님은 장비 안 차십니까?”


마법사는 그딴 것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루시아가 괜찮은 의견을 냈다.


-인간 작령자들 앞에서도 내 힘을 꺼내 쓰려면 그들의 시야를 가릴 게 필요해. 커다란 망토나 로브 같은 거 입자. 기왕이면 칼도 하나 마련하고.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롱소드와 시커먼 로브를 구매했다. 은화 두 개를 더 지불하고 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와··· 그렇게 입으시니까 진짜 마법사 같으십니다.”


제임스가 내 차림새를 보고 감탄했다.


루시아도 얄밉게 쫑알댔다.


-진짜 어둠의 마법사 같다. 되게 사악해 보여.

‘네가 골라줬으면서.’

-너 사악한 거 맞잖아. 아주 잘 골라준 거지.


로브 후드까지 뒤집어쓰면 완벽히 악당 마법사 분위기를 풍겼다.


새카만 로브 속 살짝씩 드러나는 시체 같은 몰골의 불법 마법사라니.


‘이거 완전 악마 숭배자잖아?’

-악마 아니라 마족.

‘이거 완전 마족술사 패션이잖아?’

-그 정도는 아니거든. 이렇게 많이들 입어.


루시아와 티격태격하며 걷다 보니 활활 타오르는 광장 중앙이 보였다.


와아아

죽어라


로브의 색상처럼 새까만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저주가 뒤섞인 광기의 현장. 마족을 잡아 죽이는 것이 기쁜 건지, 그냥 사람 하나 불태우는 행위가 즐거운 것인지는 그들 자신도 모를 터.


이는 현대인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타인의 불행을 즐긴다. 또는 도덕적 잣대를 강제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그들이 혹시라도 논란에 휩싸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깎아내린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 그냥 인간은 다 똑같다.


똑같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그저 똑같은 광기에 지루함을 느꼈다. 하품이 나왔다.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게 없구나.


“네년 엄마가 저기서 죽어가는 마녀라며?”

“이 불길한 새끼! 뭘 꼬나봐!”

“눈깔아, 마녀 새끼야.”


광기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대화 소리만 들어도 골목 너머의 상황이 대강 파악됐다.


‘보통 엄마가 마녀면 자식도 죽이지 않아?’

-교회법은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아. 오히려 철저히 배제하지. 귀족이 정적이나 평민들한테 연좌제를 적용하려 들면 지역 주교가 나서서 막기도 한다더라.


그토록 사람 잡아 죽이는 일에 진심 같던 교회가 막상 연좌제로 발생하는 억울한 피해는 막는단다. 세상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씨발! 얌전히 따라오라고!”

“이년이 말귀를 못 알아먹네. 눈 병신에 귀까지 병신이야?”

“근데··· 이래도 돼?”

“상관없어! 지켜줄 부모도 없는데, 어른들이 신경이나 쓰겠어?”

“하, 하지만 사제님이 뭐라고 하실 텐데.”

“걱정하지 말라고, 이 겁쟁아. 우리만 입 싹 다물면 돼. 그런 적 없다고 하라고! 누가 마녀의 딸이 하는 얘기를 믿어줘?”


과격해지는 욕설과 분위기. 혈기 왕성한 소년들은 위험한 짓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커다란 광기 속에는 늘 작은 광기들이 득실댄다. 그중 작은 광기 하나가 내 귀에 들린 건 하찮고 의미 없는 우연일 뿐. 그저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무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라는 것.


빵을 꺼내 씹었다.


우물우물


이것도 며칠 내내 씹어대니까 고소하니 씹는 재미가 있었다.


제임스가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저기, 한스 님.”

“왜.”

“저쪽에··· 안 들리십니까?”

“들리지.”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쩌라고. 내 일 아니잖아.


표정의 뜻을 이해한 제임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마법사는 정의를 알고 진리를 탐구하는 분 아니었습니까?”

“정의를 실천하란 말은 없는 것 같은데. 그건 기사 나리들이 할 일이지.”

“아이는 잘못이 없잖습니까.”


제임스가 내뿜는 기세가 점차 불순해졌다.


“샘 할아버지께서 교회는 연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는 억울하단 걸 아버지 월트께서도 알고 계신 거겠지요.”


하. 같잖은 놈 같으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제임스, 애를 구하고 싶으면 네가 해. 징징거리면서 남한테 조르지 말고. 네놈이 나불대는 정의는 어디 구걸해서 얻어지는 건가? 그딴 게 정의면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제임스에게 손을 저어주고 뜯던 빵을 계속 먹었다.


제임스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뒤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도끼를 뽑아 드는 뒷모습이 정녕 일을 저지를 생각 같았다.


한숨이 나왔다.


‘에휴.’

-기사답네.

‘이곳 기사는 바보들을 지칭하는 단어야? 뇌에서 이성이 담당하는 부위를 칼로 도려낸 놈들?’

-불의를 참지 않고 영광과 명성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게 기사의 의무니까.

‘참~ 낭만적이다.’


루시아는 잠깐 말이 없다가 슬쩍 부추겼다.


-가만히 있을 거야?

‘나보고 어쩌라고. 자기가 바보짓 한다는데.’

-노인이 기사로 만들어달라고 협박 편지까지 보낸 것 보면 제임스를 각별히 아끼는 거잖아. 적어도 네가 데리고 다니는 동안의 안전은 책임져야지.

‘편지에 그런 조항은 없었어.’

-에카르트 상회에 가서 무난히 정착하려면 살려놓는 게 좋을걸. 앞으로 우리 생활과 안전을 위해서 말이야.


합리적인 말이지만, 나는 말 속에 숨겨진 루시아의 속내를 읽어냈다. 그녀는 제임스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의 어느 면이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쯧.”


혀를 가볍게 차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젯밤 내린 빗물이 다 마르지 않아 진흙이 신발에 짓이겼다.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제임스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야, 너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얌전히 꺼지는 게 좋을 텐데.”

“그만둬.”

“네가 뭔데? 딱 봐도 촌에서 온 물정 모르는 새끼 같은데 꺼져!”

“여기는 네놈이 영웅 놀이할 곳이 아니야~ 이 촌놈아.”


모퉁이를 돌아서자, 여성 명의 소년들이 제임스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제임스는 소년들보다 체격이 월등히 컸고 도끼도 쥐고 있었으나, 소년들 역시 날붙이를 하나씩 들고 있어서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 광경이 너무나 우스웠다.


도끼를 든 사내한테 고작 장난감 칼 같은 것들로 대들겠다고? 도끼가 밥으로 보이나.


‘저거 제임스 도끼에 썰리면 과다 출혈로 뒤질 텐데 무슨 깡으로 대들지? 이래서 내가 예의 없는 애새끼들을 싫어해.’

-그래도 죽이면 안 돼. 도시민 아이들이면 귀찮아질 거야. 이번에는 먼저 덮치겠다고 덤빈 것도 아니니까.


소년들이 나를 보고 소리 질렀다.


“넌 또 뭐야!”

“저 촌놈이랑 한 패냐!”

“쟤 데리고 썩 꺼져!”


녀석들은 기세등등하게 나왔지만, 검은 로브 아래로 드러난 내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단숨에 제임스를 지나쳐 소년들 무리에 뛰어들었다.


펄럭

퍼억


로브 자락이 펄럭이고, 주먹에 처맞은 놈이 진흙탕을 뒹굴었다.


펄럭이는 로브 밑에 숨은 루시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외쳤다.


-치! 어차피 제임스 도와줄 거였으면서!

‘네가 설득해서 도와준 거란다, 멍청한 악마야.’


곧장 그 뒤에 서 있는 놈의 모가지를 잡아서 들어 올리고, 손목을 때려 나이프를 떨궜다. 무력화시킨 놈은 뒤쪽으로 던졌다.


“넌 누구, 누구야!”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순식간에 동료 둘이 당한 소년들은 겁먹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예의 없는 애들이네. 여기도 소년법 같은 게 있니? 없을 텐데 뭘 믿고 나대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도끼에 썰릴 뻔한 거 살려준 거야. 형한테 감사해해야지, 싸가지없는 애새끼들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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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8. 개소리 그만하고 24.09.05 16 0 12쪽
17 017. 울상 짓는 로버트 24.09.04 17 0 12쪽
16 016. 감사해라 24.09.03 21 0 12쪽
15 015. 반가운 목소리 24.09.02 19 0 12쪽
14 014. 시간 끌기 24.09.01 20 0 12쪽
13 013. 루시아 코는 개코 24.08.31 24 0 12쪽
12 012. 방 빼 24.08.30 26 0 13쪽
» 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24.08.29 20 0 12쪽
10 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24.08.28 23 0 13쪽
9 009. 마법사님 맞죠 24.08.27 25 0 13쪽
8 008.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 24.08.26 27 0 15쪽
7 007. 붉은 염료 24.08.25 29 0 15쪽
6 006. 톰 아저씨는 수상해 24.08.24 31 0 14쪽
5 005. 최후의 수단이다 24.08.23 30 1 14쪽
4 004. 열려라 참깨 24.08.22 34 0 16쪽
3 003. 계약서 작성 24.08.21 42 0 13쪽
2 002. 엿 드세요 24.08.21 52 0 13쪽
1 001. 나도 납치당했다니까 24.08.21 8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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