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여자)악마와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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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작품등록일 :
2024.08.21 00:43
최근연재일 :
2024.09.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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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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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철없는 조카

DUMMY

헨리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졸지에 로버트는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나와 헨리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됐다.


자, 어떻게 나올 테냐.


여기서 헛소리를 더 지껄인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것이다.


계획대로 에드먼드에게 가면 되니까 아쉬울 게 없었다. 아쉬운 쪽은 영문 모를 이유로 나를 붙잡으려 하는 헨리였다.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었으니, 제정신만 붙들고 있으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시간이 약간 흐른 후, 헨리가 숨을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어지간한 상인보다 예리하시군요. 좋습니다, 한스 씨. 계약기간을 얼마로 줄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헨리는 숙이고 들어오는 걸 선택했다.


좋아. 우위를 확실하게 잡았으니 속내를 들춰봐야겠다. 왜 이런 양보까지 내어주면서 나를 잡으려 하는지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 전에 질문이 있습니다. 왜 저를 채용하려 하십니까?”


돌직구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나의 직진 화법에 당해본 로버트가 눈을 끔뻑였다.


헨리는 부자연스럽게 입꼬리를 들썩이더니 낮게 웃었다.


“허허, 갑자기 들어오시는군요.”

“어려운 질문은 아닐 텐데요.”


그렇다. 순수한 의도로 채용을 권했다면 당황할 이유가 없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뱃속에 뱀을 키우는 상인들을 이끄는 헨리가 순수할까? 그의 천성과 관계없이, 헨리가 앉은 지부장이라는 자리는 능구렁이가 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는 이 말을 꽤 신뢰했다.


뱀들의 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헨리는, 그 속성상 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능구렁이를 나뭇가지로 쿡쿡 찔렀다. 감히 빠져나가지 못하게 궁지에 몰았다.


“설마 모리스 씨가 신의 없는 거짓을 말씀하진 않겠죠. 상인의 기본은 좋은 가격으로 거래를 타개하는 것보다, 다음 거래를 이어나갈 신뢰를 쌓는 데에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그럴싸한 거짓말은 집어치우란 소리였다.


머리 쥐어짜서 거짓말해봤자, 계약 끝나고 에드먼드에게 가면 그만이다. 이런 것도 모르는 인간이 지부장이 될 리가 없지.


헨리가 두터운 턱살을 만지며 웃었다.


“이거, 당해낼 수가 없겠네요. 다 눈치채신 것 같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지부는 한스 씨가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무쇠뿔 형제단’의 웰팅엄을 단신으로 죽일 실력을 갖춘 강자가 필요하죠.”


동네 아저씨 같은 인자한 표정을 한 헨리가 양손을 펼쳤다. 그리고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극비까지 털어놓았으니 그만 노려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스 씨가 그리 째려보시면 무섭습니다.”


내가 그랬나?


-거울 좀 보라니까. 네 인상 무척 더러워.

‘더럽다고?’

-···못생긴 건 아닌데 좀 소름 끼쳐.


귀찮아서 계속 미뤘는데 진짜 확인해 봐야겠다. 배 나온 아저씨한테 인상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라니, 충격이었다.


여하튼 헨리가 말한 대로라면, 무쇠뿔 형제단이라는 단체의 표적이 됐는데 내 힘이 필요하다는 거다.


‘무쇠뿔 뭐시기, 들어봤어?’

-아니, 처음 들어.


루시아가 모르니까 곧장 물어봤다.


“무쇠뿔 형제단은 뭡니까?”

“흉악한 범죄조직입니다.”

“빚이라도 지셨습니까?”


헨리가 넉살스럽게 손을 저었다.


“허허, 그럴 리가요. 거래에 있어서 마찰이 생겼는데 이게 잘 해결되지 않아, 오해가 쌓이고 쌓여 우리 지부에 해코지를 가하는 중입니다.”

“그러면 제 임무는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게 되겠군요.”

“정확합니다.”


싸울 적에 대한 정보도 주지 않고 대뜸 계약으로 묶으려고 했다니. 이래서 장사치들을 믿어선 안 된다.


내가 노인네한테 당하고 또 당할 줄 알았냐.


“무쇠뿔 형제단의 위험성을 알아야지, 정확한 금액 측정이 가능하겠습니다. 그전까지 계약은 미루는 걸로 하죠.”

“···정보는 저희 측에서 전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쭈, 어디서 또 날로 먹으려는 욕심을 부려? 이제 장사꾼은 절대 안 믿는다.


“제공해 주시는 정보는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제가 따로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알겠습니다. 한스 씨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인지라, 계약을 빨리 체결할수록 더 높은 값을 드리죠.”

“며칠 안에 오면 가장 높은 값을 주시겠습니까?”

“4일.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좋습니다. 그 안에 확답을 드리겠습니다.”


헨리의 시간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다.


무쇠뿔 형제단이라는 고급 정보와 많은 양보를 얻어낸 대가로 시간제한 정도야 받을 만했다. 깡패처럼 일방적인 이득만 얻을 수는 없으니까.


저녁 먹으러 왔는데 음식은 구경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먹은 게 없어도 든든한 기분.


만족스러운 기분을 만끽하며,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좋은 대화였습니다, 헨리 모리스 씨.”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어째 헨리가 이를 악무는 것 같지만 신경을 껐다.


이빨 상하면 자기 손해지.




*




“로버트.”


검은 로브를 쓴 한스가 나가자마자 헨리는 로버트를 노려봤다.


로버트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리스 님.”

“물정 모르는 불법 마법사라고 했잖나. 장난하나? 네놈 눈에는 저게 물정 모르는 마법사로 보여?”

“······죄송합니다.”


로버트는 로버트대로 억울했다.


분명히 프런부르크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저렇지 않았다. 그 증거로 동행을 명분 삼아 은화 열 닢을 뜯어냈다.


그만큼 한스라는 인물은 금전 감각이 무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금 보인 협상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에뮐렌 지부장 헨리 모리스는 만만한 상인이 아니거늘, 마치 애 다루듯 휘둘러서 이익만 쏙 뽑아서 가버렸다.


‘이럴 줄은 나도 몰랐다고!’


동행 값으로 은화 열 닢을 뜯긴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처신이었다.


한스에게 감쪽같이 속은 건 아닌가, 귀신을 본 건 아닌가 싶은 심정. 로버트는 울고 싶었다.


한스와 웰팅엄이 치고받느라 박살 난 상품만 얼마짜린데, 예상치 못한 한스의 대응에 헨리에게까지 머리가 깨지게 생겼다.


“젠장할.”


헨리는 살집이 가득한 주먹으로 식탁을 꾹 누르며 욕설을 씹었다.


“제길, 완전히 말려들었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야. 샘이 추천한 마법사답다. 절대 만만하지 않아.”


로버트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숨을 고르던 헨리가 식탁에서 손을 떼자, 로버트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웰팅엄을 쓰러트린 건 확실하나?”


하지만 날아온 건 매서운 주먹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평소에 잘못한 게 있으면 매로 때웠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헨리는 전혀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다. 차분한 눈빛이 로버트를 꿰뚫어버릴 듯 바라봤다.


“내가 묻잖아, 로버트. 저 초췌한 마법사가 웰팅엄을 죽인 게 맞아? 확실히 봤냐고.”

“확, 확실합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제가 웰팅엄의 시체를 확인했어요. 목이 깔끔하게 잘려서 죽었습니다. 시체는 불에 다 태웠고요.”

“만약 웰팅엄을 죽인 것조차 사실과 다르다면, 자네는 가벼운 근신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나중에 가서 딴소리 하지 말고 분명히 인지해 둬.”


로버트는 바싹 타들어 가는 목구멍으로 겨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답을 들은 헨리가 철푸덕 의자에 앉았다. 거대한 뱃살이 다리 위에 놓였다.


“식사를 내오라 하고, 자네는 퇴근해. 예기치 못한 습격에 고생했네.”

“아닙니다, 다 제 잘못──”




허리를 접으며 사죄하려던 로버트는 식탁 위에 무언가 얹어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묵직한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의아한 로버트에게 헨리가 무심히 말했다.


“이번 상행에서 웰팅엄에게 공격받은 건 내 탓도 있으니까 그걸로 손해를 메꿔. 충분할 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가 막막했던 로버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역시 엄하긴 해도 그를 챙겨주는 사람은 헨리 모리스뿐이었다.


헨리는 인상을 찡그리고 손을 저었다.


“빨리 밥 가져오라고 해. 징그럽게 울지 말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로버트는 문이 닫힐 때까지 고개를 숙여댔다.


문이 닫히고, 로버트가 전달한 지시를 듣고 식사를 가져온 직원이 들어왔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직원은 아까 한스를 이 방으로 안내한 사람이었다.


직원은 먹음직스러운 양고기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 그리고 빵과 버터를 내려놓았다.


찬 바람이 불었던 식탁은 금세 풍족한 음식들로 묵직해졌다.


포크와 나이프를 든 헨리가 양고기를 썰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밀폐된 방안에는 음식을 가져온 직원과 헨리 단둘뿐이었다.


직원은 자연스레 헨리의 맞은편에 앉으며 대꾸했다.


“로버트 아저씨가 맹인은 아니니, 웰팅엄의 시체를 착각했을 리는 없어요.”


헨리의 허락이 없었으나, 직원은 전혀 개의치 않고 큼지막한 양고기를 덜어갔다. 헨리도 그 행동을 꾸짖지 않았다. 헨리와 직원은 그럴 만한 사이였다.


헨리는 로버트의 얼굴을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설픈 놈의 착각 때문에 이미 한 번 물먹었어.”

“그자가 물정 모르는 연기로 로버트를 속일 수는 있겠지만, 웰팅엄을 마주하고 살아나오는 건 속임수로 가능한 게 아니에요. 헨리 삼촌도 아시잖아요? 웰팅엄이 얼마나 잔혹한 살인광인지.”


직원의 말이 맞았다.


웰팅엄은 기사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고 손속에 자비가 없기로 유명해서, 형제단의 지시를 받고 출진한 그와 마주하고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임무 중인 웰팅엄을 만나고도 살아있다는 건, 웰팅엄을 죽일 정도로 강한 마법사란 소리지.”

“맞아요. 로버트 아저씨가 가끔 순진하긴 해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의아한 부분이 있어요.”

“뭐지?”


직원은 빵에 버터를 바르고 입에 넣었다.


헨리는 직원이 빵을 다 먹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열심히 오물거리던 직원이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토록 강한 마법사가 어째서 마법학회의 인장을 받지 않았을까요?”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교황청이 마법사들에 대한 정책을 온건하게 바꾸면서 마법학회를 세운 이후로,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앞다투어 학회에 소속되길 원했다.


웰팅엄 같은 수준급 기사를 쓰러트린 실력은 충분히 학회가 탐낼 만한 인재였다.


“그러게. 학회가 가만두지 않을 인재일 텐데.”

“아마도 켕기는 게 있어서겠죠. 범죄자일 확률이 높아요. 어느 미친 마법사가 학회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고 나돌아 다니겠어요?”


직원은 나이프를 허공에 휘휘 돌리며 말을 이었다.


“진짜 미친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죠. 당장 마법학회 일원은 귀족과 다름없는데 고작 에카르트 상회의 지부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왜 하겠어요. 나 같아도 안 그러겠다.”

“···조합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하지 않았느냐, 아델 모리스.”


직원, 아니 아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부에서는 이름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네가 나를 삼촌이라 부르는 건 괜찮고?”

“그건 실수··· 하, 아녜요. 됐네요.”


헨리는 한숨을 내쉬는 조카를 쳐다봤다.


그녀는 셈이 빠르고 영리한 조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지부의 중요한 일을 헨리와 함께 논의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머리 좋은 상인들이야 에뮐렌 바닥에 얼마든지 넘쳐났다. 헨리는 같은 핏줄이라고 우대해 주는 성향도 아니었다.


헨리가 아델을 이토록 대우하는 이유는 단 하나.


어린 나이에 마법사의 재능을 발현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마법사로서.


방음이 완벽한 이 방에서 오갔던 대화를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던 것 또한 아델이 마법사라서다.


헨리는 고민 끝에 지시를 내렸다.


“아델, 네가 감시해 봐라.”

“아~ 이렇게 될 줄 알았네요. 연구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연구 보고일을 미뤄주마. 옆에 붙어서 이상한 낌새는 없는지,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연구 보고를 미뤄주겠다는 소리에 아델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 얼마나 미뤄줄 건데요?”

“···너 연구 제대로 안 했지.”

“헤헤, 그건 넘어가자구요. 일주일만 미뤄주세요! 그런 걸로 알고 가보겠습니다, 헨리 모리스 님!”


다급히 도망치려는 아델을 붙잡았다.


“잠깐.”

“에?”


아델은 헨리가 또 잔소리하는 줄 알고 입술을 삐죽였다.


너무 뻔한 표정이었다.


“잔소리하려는 거 아니다.”

“앗, 들켰네요.”

“숨길 생각도 없었으면서. 아무튼 붙어서 감시하되, 조심해라. 선은 넘지 마.”


한스가 능숙하게 협상하는 모습에서 떠올랐던 불길함. 그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경험 많은 상인의 감은 한스를 위험인물로 분류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직감은 명백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라.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일을 더 만들어선 안 돼. 알겠지?”

“걱정 마세요. 그럼 가볼게요.”


연구 마감일이 미뤄져서 좋다고 나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헨리는 미간을 꾹 눌렀다.


“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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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9. 철없는 조카 24.09.06 16 0 14쪽
18 018. 개소리 그만하고 24.09.05 16 0 12쪽
17 017. 울상 짓는 로버트 24.09.04 16 0 12쪽
16 016. 감사해라 24.09.03 20 0 12쪽
15 015. 반가운 목소리 24.09.02 18 0 12쪽
14 014. 시간 끌기 24.09.01 20 0 12쪽
13 013. 루시아 코는 개코 24.08.31 24 0 12쪽
12 012. 방 빼 24.08.30 25 0 13쪽
11 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24.08.29 19 0 12쪽
10 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24.08.28 22 0 13쪽
9 009. 마법사님 맞죠 24.08.27 24 0 13쪽
8 008.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 24.08.26 27 0 15쪽
7 007. 붉은 염료 24.08.25 29 0 15쪽
6 006. 톰 아저씨는 수상해 24.08.24 30 0 14쪽
5 005. 최후의 수단이다 24.08.23 30 1 14쪽
4 004. 열려라 참깨 24.08.22 33 0 16쪽
3 003. 계약서 작성 24.08.21 41 0 13쪽
2 002. 엿 드세요 24.08.21 52 0 13쪽
1 001. 나도 납치당했다니까 24.08.21 8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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