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여자)악마와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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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암스테르담
작품등록일 :
2024.08.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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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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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DUMMY

“마법사님이시죠?”


물론 작령자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족을 부리는 거니까··· 마족술사? 마술사?


-그딴 단어는 없어.

‘마술사는 멋이 안 나긴 하네. 모자에서 토끼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마족술사라고 해야겠다.’

-아오.


그건 그렇고, 내가 마법사라고 의심할 만한 짓을 이 도시에서 했던가.


-이 도시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야. 기억 안 나? 마을에서 노인 뒤에 서 있던 젊은 애.


톰과 아내의 시체를 보고 벌벌 떨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건장한 체구에 맞지 않게 사슴 같은 눈망울이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던 청년.


어, 이름이 기억날 것 같기도 하고.


‘제시카?’

-너무 여자 이름이잖아.


내가 말했으나 좀 어색하긴 했다.


기억이 날까 말까 하는 도중에, 청년이 선수를 쳤다.


“저는··· 제임스입니다. 이전에 머무셨던 마을에 있었던 자경단의 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제임스. 거의 기억났는데 아깝다.


-집중해. 복수하러 왔을 수도 있어.


루시아의 경고를 듣고, 무심하게 턱수염을 긁었다.


“죽은 자들의 복수라도 하러 왔나?”


마을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쫓아왔나.


헛웃음을 지었다.


“낭만 있긴 한데, 나를 먼저 조지려 한 건 윌리엄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었어. 난 억울해.”


발걸음을 옮겨 골목에 다가갔다. 제임스가 달려들면 골목 안쪽으로 유인해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 노인네랑 각별한 사이 같던데. 이렇게 죽여도 돼?

‘그건 더 문제 안 일으키고 마을을 떠나는 것에 대한 거래였지, 저놈 목숨을 보장해주기로 한 약속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빨리 끝내고 영혼 흡수하자.


왠지 신난 듯한 루시아를 제쳐두고, 며칠 전에 치른 전투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한 번 해봤다고 벌써 익숙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제임스가 황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윌리엄, 그 자식이 마법사님을 해코지하려 했던 것 압니다. 복수하려고 따라온 게 아닙니다!”

“윌리엄처럼 꽃 찾으러 온 것도 아니면 왜 쥐새끼처럼 따라왔어?”

“꽃, 꽃이요? 윌리엄이 꽃을 찾으러 갔습니까?”


제임스는 뚱딴지같이 나온 단어를 되물었다.


-너만 아는 유머 좀 그만해.

‘쩝. 이런 고급 유머 없이 여기 인간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그건 너만 아는 유머잖아.


이상하게 루시아로부터 씹덕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흠··· 나만 아는 걸 재밌다고 떠들어댔으니 씹덕이 맞으려나? 우리 동네에선 유명하다고. 억울함이 끊이질 않네.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꽃은 네가 신경 쓸 거 아니고, 왜 뒤를 밟았냐?”

“그게··· 저도 마나와 소통하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 개소리야.”

“···정확히는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기사가 되고 싶으면 기사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종자부터 시작해야지.”

“저는 평민이라서 어떤 기사님도 종자로 안 받아줍니다······. 제발, 마법사님께서 도와주십시오.”

“미친놈인가.”


이해 자체가 안 될 수준으로 어이가 없으면 화보다 물음표가 먼저 떠오른다.


기사? 그건 작령자도 아니라면서.


-맞아. 기사는 작령자가 아니라서 마나를 다루진 못해. 그냥 본인 영혼을 태워서 신체를 강화하는··· 어딘가 미친 놈들 같은 느낌이랄까? 성기사는 은총을 다루는 성직자라서 또 다르지만.

‘그런데 왜 나한테 와서 가르쳐달라는 거야. 나는 영혼 분신자살법 같은 건 몰라.’

-작령자가 유도해 줄 수 있어. 충분한 마나와 경험 많은 마법사가 있으면 기사 같은 열화 작령자들을 양산할 수 있지. 작령보다 저급한 방식이긴 하지만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어서, 인간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아.


자기 영혼을 태워서 신체를 강화한다니. 무슨 광전사도 아니고.


기사의 매커니즘은 루시아의 설명 덕택에 이해했으나,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그래서 내가 왜?


“내가 받아줘야 할 이유는 뭔데?”

“여기, 여기 샘 할아버지께서 이 편지를 가져다주시라고······.”


제임스가 품속에서 꾸깃꾸깃한 편지를 꺼내어 내밀었다.


빨리 처리하려고 했더니만 귀찮게 됐다.


편지를 낚아채서 달빛에 비춰 보니 글자가 드러났다. 노인의 글씨체는 생각보다 정갈해서 알아보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끄응. 영어 독해를 토익 치고 몇 년 만에 해보는 거지.’


띄엄띄엄 영문을 읽어나가니, 루시아가 답답함을 못 참고 나섰다.


-그거 줘봐. 해석해줄게.

‘나도 할 줄 알아.’

-그 속도로 다 읽으면 해 뜨겠다.

‘그 정도는 아닌데.’

-내놔!


하는 수 없이, 골목의 어둠에 숨은 루시아에게 편지를 넘겼다.


편지를 받은 루시아가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 있어?’

-혹시 모르잖아!


그렇게 루시아가 중얼중얼 편지를 읽어줬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제임스를 기사로 만들어준다면 ‘에카르트 상회’에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뜻이다.


‘뭔 소리지? 들어도 의문 해소가 전혀 안 되는데.’


기사가 대충 영혼 분신자살자라는 건 알겠다. 이 도시에 들른 로버트가 에카르트 상회의 일원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왜 내가 이 귀찮은 짐덩이를 떠안고 에카르트 상회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행히 루시아는 노인의 계략을 단번에 파악했다.


-약아빠진 노인네 같으니. 아무래도 네가 마법학회 소속이 아닌 마법사라고 생각했나 봐.

‘학회 소속이 아니면 어떻다고.’

-마법학회의 인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마법을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마족을 연구한 죄랑 동급이야. 두말할 것 없이 사형.

‘그것도 교회법인지 뭔지에 의한 죄?’

-맞아.


잡아다 죽이는 이유도 가지각색. 이곳 교회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듯했다.


편지를 내려다봤다. 노인의 덤덤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제대로 속았구나.


‘하,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협박 편지네. 그 인간, 참 재밌어, 재밌네.’

-어떡할래? 에카르트 상회는 일개 왕국과 견줄 만한 단체야. 계속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큰 조합이랑 붙어먹는 쪽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아. 그러면 먹고 살 걱정도 덜고, 확실한 수입처도 생기니까.

‘걔네는 교회법도 씹고 나를 보호해주려나? 불법 마법사는 사형이라며.’

-그렇긴 하지만, 세상 굴러가는 게 원칙 다 지키면서 흘러가진 않으니까.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게 있는 법이지.


어둠의 마법사들도 있다는 소리.


-불법 마법사들은 숫자도 워낙 많고 마족보다 덜 위협적이라 판단했나 봐. 마족 계약자라는 사실만 잘 감추면 돼. 마족은··· 네가 국왕의 비호를 받을지라도 교황청이 성기사단을 보내 때려 부술 정도로 민감하거든.


바퀴벌레처럼 득실대는 불법 마법사들 대신,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마족을 토벌하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한 모양.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살 구멍이 보였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네. 그 영감이 내 앞에서도 당당했던 이유가 있었구먼?’


내키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해인 건 아니었다. 적당히 이용당해 주면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을 수만 있다면야.


-에카르트 상회에 인맥이 있고, 외지인인 너를 바로 꽂아 넣을 영향력이 있다는 건 보통 노인네가 아니란 뜻이지. 금화 두 닢도 그 인간한테는 큰돈이 아니었을 거야. 자, 편지 여기.


편지를 뒷짐 진 손에 끼워 넣은 루시아가 심장으로 돌아갔다. 어둠에 반쯤 몸을 감추고 있는 덕에 편지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제임스에게 들키지 않았다.


나는 뒷짐을 풀고 제임스를 쳐다봤다.


“편지 내용 봤어?”

“아, 아뇨! 안 열어봤습니다. 밀랍 봉인도 그대로였잖습니까.”


제임스의 동공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이렇게 겁 많은 놈이 기사가 되겠다고? 그거 칼 휘두르고 망치로 두들겨 패서 사람 죽이는 직업이잖아.


노인이 사람 보는 눈은 없는 게 확실하다. 이런 놈은 총을 쥐여줘도 눈 감고 쏠 인간군상이다. 사람을 죽여본 적 없고, 죽일 각오도 되어 있지 않은 얼뜨기.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진지하게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니까 아무렴 상관없었다.


경험 많은 작령자인 루시아가 알아서 해주겠지. 에카르트 상회로 가면 충분한 마석을 어떻게든 제공한다고 편지에서 약속받기도 했으니.


-기사로 만드는 거야 마석만 충분하면 가능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 어쨌든 가능하단다.


“기사로 각성시켜줄게.”


제임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한테 고마워할 거 없고, 네 할아버지한테 감사해해.”

“네! 감사합니다!”


제임스가 허리를 수도 없이 접어댔다. 기사가 되고 싶은 열정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뒷짐을 지고 여관으로 걸어갔다.


“뭐해? 안 따라오고.”

“아, 예, 예! 갑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제임스가 내 꽁무니를 따라왔다.


“그나저나 왜 내가 마법사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윌리엄 패거리를 순식간에 죽이셨으니까요.”

“기사일 수도 있잖아?”

“음······.”


제임스가 어색하게 나를 쳐다봤다.


-지금 네 몰골을 봐. 어디 칼 휘두르는 기사로 보이겠어? 그나마 마법사가 말이라도 되지.


이거, 만나는 사람마다 뭐라 하니까 거울 한번 봐야겠다. 내 상태 얼마나 심각한 거야.




그때 루시아가 무언가를 깨닫고 급히 숨을 들이켰다.


-···어라, 그러면, 그 노인네도 설마······.

‘그렇겠지.’


그녀의 추리를 긍정했다.


보기보다 추리력이 좀 떨어지는군.


영감이 나를 불법 마법사로 인지했다는 루시아의 해석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챘던 사실을 그녀에게도 말해줬다.


‘내가 불법 마법사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기사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던 거야. 지나가던 기사님 컨셉이 자신한테 먹혔다고 생각해서 내가 안심하도록.’

-와, 늙은 인간들 진짜 무섭다.


루시아가 진저리 쳤다.


동의한다. 그 영감만 한 능구렁이가 또 없을 것이다.


‘마법사··· 또는 기사이셨소, 라고 했지. 분명.’


노인이 밀폐된 톰의 집에서 부는 바람을 보고 했던 말이었다.


‘다급히 기사를 덧붙인 거였어. 나를 불법 마법사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정체를 들켰다고 생각해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걸 막고 싶었겠지.’


지금 회상하니까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첫눈에 나를 불법 마법사로 확신했다. 그리고 재치를 발휘하여 ‘기사’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나한테’ 열어두었다.


하지만 예리한 눈썰미와 뱀같이 교활한 처세를 발휘한 노인조차 하나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짜란. 사실은 마족술사였답니다.’

-그런 거 없다고······.

‘뭐 어때. 내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이는 거지.’


루시아의 불평은 사소하게 일축했다.


내 직업명은 이제부터 마족술사다. 영웅은 아니고 용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고 기사도 아닌, 존재만으로 범죄이며 죄악인 악마를 부리는 인간.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사람.


이것이 내가 평생을 숨기고 살아가야 할 업보이자 능력이었다. 나를 지켜줄 방패이면서 나를 찌를 창. 양날의 검 같은 인생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거창해졌지. 한숨이 나왔다.




*




다음날, 제임스를 데리고 시장에 나섰다. 계획대로 여행 물품을 구비하고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움직였다.


막 여관에서 나왔을 때 제임스가 우물쭈물하며 질문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합니까?”

“마법사님이라고 불러.”

“그러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루시아도 귀를 쫑긋하고 관심을 표했다.


-그래! 정신없어서 물어볼 기회를 놓쳤는데 마침 잘 됐다. 너, 이름 뭐야!

‘득달같이 달려드는구먼.’


흥분해서 날뛰는 루시아를 진정시키며 생각에 잠겼다.


한국 이름을 여기서도 쓰기엔 좀 부적절하다. 서구권 이름을 대충 지어낼 필요성이 있다. 반드시 영미권 이름일 필요는 없는 것이 에카르트, 프런부르크 같은 독일식 작명들도 드물지 않게 보였기 때문.


뭐라고 할까나. 무난한 이름이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또 너무 특색 없는 이름 말고 적당한 걸로.


전혀 없는 작명 센스를 발휘하고 있자니, 광장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졌다.


“사악한 행위를 저지른 마녀 에밀리아! 마녀를 아버지 월트께서 보시는 이 자리, 이곳에서 신성한 교회법에 의하여 처단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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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감사해라 24.09.03 20 0 12쪽
15 015. 반가운 목소리 24.09.02 18 0 12쪽
14 014. 시간 끌기 24.09.01 20 0 12쪽
13 013. 루시아 코는 개코 24.08.31 24 0 12쪽
12 012. 방 빼 24.08.30 25 0 13쪽
11 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24.08.29 19 0 12쪽
» 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24.08.28 23 0 13쪽
9 009. 마법사님 맞죠 24.08.27 24 0 13쪽
8 008.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 24.08.26 2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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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04. 열려라 참깨 24.08.22 34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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