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여자)악마와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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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암스테르담
작품등록일 :
2024.08.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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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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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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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감사해라

DUMMY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 이름을 불렀다.


“루시아.”

“보고 싶었지? 그리웠지?”


용병 무리 후방에서 나타난 루시아가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한 대 쥐어박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억지로 웃었다.


“서 있을 힘도 없어.”

“걱정 말라구! 내가 금방 구해줄게!”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자, 뒤편에 있던 용병들 몇이 당황하며 루시아에게 창끝을 돌렸다.


어쩌다 보니 마족 계약자와 정체 모를 소녀에게 포위된 형국. 당황하던 고참 용병이 나름 근엄히 루시아를 꾸짖었다.


“죽기 싫으면 물러나라!”


루시아는 후드를 내려쓴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물러나지 않는다면 같은 악마 숭배자라 간주하고 찌르겠다!”


창을 겨누긴 했으나 어린 소녀를 협박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용병들이 고참에게 눈짓을 보냈다. 허나, 고참은 단호했다.


“셋 세겠다!”

“뭘 세?”

“둘, 하나!”


고참은 마지막 숫자를 셌음에도 물러나지 않는 루시아를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창을 내질렀다.


진짜 찌를 줄 몰랐던 용병들이 화들짝 놀랐다.


“스벤! 미쳤어?”

“닥쳐! 쟤는 숭배자랑 같이 다니던 여자애야! 혹시 몰라!”

“확실하지도 않은데 어린애를······!”

“씨발! 그러면 지금 어쩌자고! 내 손에 죽기 싫으면 입닥쳐!”


스벤의 카리스마에 동료들은 입을 다물었다.


“당황하지 마! 다시 악마 숭배자를 경계해!”


스벤은 루시아를 해치웠다고 생각해서 찔렀던 창을 회수했다. 푹 하고 창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으니 소녀는 죽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희망에 불과했다.


“나 두고 어딜 경계해?”


다시 내 쪽을 바라보려던 스벤의 어깨를 검은 손이 짓눌렀다.


달짝지근한 바람이 여기까지 확 불어닥치고, 루시아의 여린 외형이 새카만 물질로 뒤덮였다. 그녀를 덮은 검은 물질이 부풀어 올라 거대한 무언가가 되었다.


외형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검은 물질이 일렁이는 와중에, 루시아의 두 눈만큼은 붉게 빛났다. 그걸로 저 괴생명체가 루시아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것이 마족의 본체.


“컥, 억.”




루시아에게 목을 붙잡힌 스벤이 발버둥 치더니, 곧이어 머리가 터졌다. 뜨끈한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바닥엔 눈알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용병들은 스벤의 살점과 피를 뒤집어쓰고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사자 앞에 선 토끼처럼 제자리에 굳어있을 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공포에 짓눌린 용병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외쳤다.


“으, 으아악! 악마다!”


그리고 시작된 학살. 지상에 강림한 마족의 진정한 힘이 열두 명의 용병들을 휩쓸었다.


“끄아악!”

“살려줘!”


루시아는 건장한 장정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다뤘다. 발로 짓밟아버리고 벽으로 밀어 터뜨렸다. 몸통과 다리를 분리하고 팔다리를 뽑아 여기저기 내던지기도 했다.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 무기를 버리고 도망쳐 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딜 가?”


루시아는 기다란 팔을 뻗어 등을 보인 녀석들을 말 그대로 부서뜨렸다. 인간들은 으깨져서 흉측한 고깃덩어리로 전락했다.


생명들이 사그라든다. 너무도 쉽게. 너무나 하찮게.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루시아?”

“아, 미안해. 오랜만에 나왔더니 상쾌해서.”


다수가 결집한 집단에게 작령이 통하지 않는다면, 루시아가 한 것처럼 강력한 물리력으로 분쇄하면 된다. 인간인 나에게는 명백한 한계가 있지만 마족인 루시아는 본체 자체가 강하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순식간에 인간 열둘을 고기와 뼈로 만든 루시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피와 시체가 널브러진 한가운데서 기지개를 켜며 다가왔다.


“흐아암.”


하품하는 루시아에게 눈을 흘겼다.


“계약자가 죽을 뻔했는데 어째 너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앗··· 저 녀석들 피해서 흡수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 오, 이게 네가 해치운 기사야?”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기사의 시체를 발견한 루시아가 엄지를 내밀었다. 급하게 말을 돌리는 뉘앙스가 풀풀 풍겼다.


“우와, 깔끔하게 따버렸네. 나는 네가 쓰러져있을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온 거였는데. 살려주려고!”


루시아는 기사의 시체를 쿡쿡 찔러대며 연신 감탄했다.


그 모습에 픽 웃었다. 루시아가 잘못한 게 아니라 화는 안 났다.


“말 돌리지 말고. 죽는 줄 알았어. 다음부터는 옆에 붙어있어라.”

“넵!”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루시아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얏!”

“이건 소심한 복수.”

“치- 내가 일부러 그랬나. 얘들 먹어도 되지?”

“응, 빨리 흡수해.”


루시아는 기사 머리통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검은 기운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다가 사라졌다.


“우엑, 역시 기사의 영혼은 별로야. 탄 고기 먹는 느낌이라니까.”


영혼을 불살라서 괴력을 얻는 구조다 보니 그만큼 영혼의 질도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루시아는 내가 처리한 나머지 시체들의 영혼까지 죄다 흡수했다.


“끝!”

“얼마 모았어?”

“본체 꺼내고 싸운 거 제외해도 7,400! 이렇게 많이 덤벼주니까 배가 든든하다. 맨날 이러면 좋겠다!”


만족스럽게 헤헤 웃는 루시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돌아다니며 흡수한 마나가 흘러들어왔다. 시원한 느낌과 함께 기력이 차올랐다. 어깨를 짓누르던 탈력감이나 폭발의 후유증도 씻은 듯이 나았다.


‘이제 살 만하네.’

-고생했어.

‘그보다 로버트 살아있지?’

-응? 어떻게 알았어?


루시아가 놀란 눈을 떴다.


나에겐 탐지 능력이 없었으니 놀랄 만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추리였다.


기사는 로버트를 알고 있었다. 나를 로버트가 고용한 불법 마법사라고 확신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로버트를 노리고 계획된 습격.


원한 관계라면 기사 혼자 쳐들어와서 로버트만 죽이고 사라지면 될 일이다. 아니면 용병을 두셋 정도 매수해서 암살을 기도하든가.


다른 방법도 많겠지만, 핵심은 굳이 용병대 내부에 사람을 십수 명이나 심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이렇게 사전 작업에 공들이는 이유는 보통 납치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납치하기 위해서는 변수를 최대한 제거해야 하니까.


마구잡이 우당탕탕 납치도 납치의 한 방법이지만 프로페셔널한 수단은 아니지.


-근데 지금 도망간다.

‘어디로?’


루시아가 왼편을 가리켰다.


-저쪽.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허겁지겁 달려다가는 로버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지인데 열심히도 달린다.


‘잡아야 해.’

-달려가서 잡자.

‘오케이.’


루시아를 업고 신체를 강화한 뒤 무서운 속도로 로버트를 뒤쫓았다.


타다닥


수풀을 찍어대는 빠른 발소리에 로버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얼씨구,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양반일세.


-너도 뒤에서 누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온다고 생각해 봐.

‘기사가 달려오는데 무섭긴 하더라.’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로버트를 따라잡았다.


엎어진 로버트가 눈을 질끈 감고 다급히 말했다.


“흐, 흐엑! 살려줘! 도망치려던 생각은 아니었네! 우리, 말로 하자고, 응? 말로 함세, 웰팅엄! 자네들이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어. 정말 오해야!”

“진정하십시오, 로버트 씨.”

“···어?”


죽은 기사의 이름이 웰팅엄이었나 보다. 역시 기사와 로버트는 아는 사이였다.


의외의 목소리에 고개를 치켜든 로버트가 어버버하며 말했다.


“한스 씨? 한스 씨 맞습니까? 정말로 한스 씨예요?”

“예, 맞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살아계셨어요? 분명히 웰팅엄이 처리하러 나갔는데······.”


그러니까 이 약아빠진 상인은 내가 웰팅엄에게 걸레짝이 되는 틈을 타서 도망갔다는 거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네.’

-알고 있겠지만 죽이면 안 돼.


당연하다. 살려줬으니 뭐라도 털어먹어야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겠나. 안 그래도 동행 비용으로 은화 열 닢 뜯긴 것도 억울한데.


로버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안 죽어서 아쉬우십니까?”


정신이 돌아온 로버트가 횡설수설을 멈추고 눈알을 굴렸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머리 굴러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그가 더 머리를 굴리기 전에 문서를 내밀었다.


“이것부터 열어보십시오.”


제임스를 부탁한다는 노인의 편지와 같이 동봉되어 온 문서였다. 로버트는 떨리는 손으로 문서를 열어 달빛을 비춰 읽어 내려갔다.


등에서 내린 루시아가 손을 잡고 질문했다.


-저건 왜? 저 인간이 능구렁이 노인네랑 안 친할 수도 있잖아. 에드먼드를 싫어할 수도 있고. 변수는 최대한 차단하겠다지 않았어?

‘내가 기사랑 용병 열여덟을 죽였다는 걸 설명할 방법이 없어. 내 외형상 기사라는 변명이 먹힐 리 없고 기사임을 증명할 수단도 없으니, 결국 불법 마법사라고 의심할 거야. 미리 밝히는 게 나아.’


문서에는 내가 불법 마법사라는 사실과 제임스를 부탁한다는 안부, 그리고 불법 마법사임에도 에카르트 상회에서 고용하고 보호해주길 청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원래 에드먼드라는 상인에게 전달해야 할 문서였으나, 기사를 살해한 업적을 써먹는 동시에 로버트한테 구명의 은혜를 입히려면 그가 봐야만 했다.


루시아는 걱정되는지 마땅치 않다는 기색을 흘렸다.


-그렇지만,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로버트가 그 노인네랑 원수 관계면?


그러면 일은 더욱 간단해진다.


‘죽이고 남은 돈 털어서 튀면 돼. 시체까지 싹 다 태우고 도망가면 누가 살아 나갔는지도 몰라서 도시에서 수배령을 때릴 수도 없을 테지.’

-사악해.


감탄하는 루시아. 사악하다는 소리는 이제 칭찬이었다.


물론, 로버트가 다른 마음을 품고 에뮐렌에 도착한 다음 나를 불법 마법사로 신고할 수도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수배령이 떨어지고 교회의 추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난 중세 시대 길드의 배타성을 믿어.’

-배타성?

‘저들끼리 이권을 수호하고 배신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는 습성 말이야.’


상회라는 조합이 지구의 중세 길드와 비슷하다면 배타성까지 유사할 터. 길드란 것들이 보통 깡패 엇비슷한 집단이니까.


-하긴, 배신하면 죽이고 말도 아니더라. 살벌하던데 뭘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지.

‘비슷하네.’


그렇다면 로버트는 확실히 나를 신고하지 못한다. 만일 신고한다면, 나를 상회에 추천한 노인은 물론이고 지목을 받은 에드먼드 그리고 에카르트 상회 전체가 휘말릴 여지가 있다.


이게 배신이지, 아니면 뭐야.


게다가 로버트는 외부 조직에 쫓기는 모양이었으니 상회의 보호가 더더욱 절실한 처지일 터.


‘나중에라도 로버트가 이상한 낌새를 풍기면 그때 가서 죽이지, 뭐. 에뮐렌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리저리 떠 봐도 되고. 시간은 많으니까.’


어떻게 봐도 내가 유리하다.


마침 문서를 다 읽은 로버트가 나와 루시아를 올려다봤다.


“서, 설마······.”

“그 문서의 작성자와 아는 사이입니까?”

“예! 물론이죠. 샘은 우리 상회의 전설입니다!”


이 자리에서 로버트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다는 안건은 패스. 노인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이제 구명의 은혜를 입힐 차례였다.


“웰팅엄 경과 배신자 용병들이 덤비길래 다 죽였습니다.”

“어우, 예······ 에? 네? 뭐라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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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7. 울상 짓는 로버트 24.09.04 16 0 12쪽
» 016. 감사해라 24.09.03 21 0 12쪽
15 015. 반가운 목소리 24.09.02 18 0 12쪽
14 014. 시간 끌기 24.09.01 20 0 12쪽
13 013. 루시아 코는 개코 24.08.31 24 0 12쪽
12 012. 방 빼 24.08.30 25 0 13쪽
11 011. 예의 없는 애들이 싫더라 24.08.29 19 0 12쪽
10 010. 원치 않는 제자 또는 종자 24.08.28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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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7. 붉은 염료 24.08.25 2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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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계약서 작성 24.08.21 4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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