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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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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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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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DUMMY



24.




나는 앞서가는 신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 남은 선명한 쇠사슬 자국에서 그가 꽤나 오랜 시간 갇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망할 영감탱이가 산적에게 쉽사리 잡힐 인물이 아닌데···.'


본래 신의는 지금쯤 산서성 오태산 기슭의 백운곡에서 병자를 돌보며 의술을 펼치고 있어야 했다. 그의 첫 별호인 '백운신의(白雲神醫)'도 그곳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왜 오태산이 아닌, 이 먼 대별산까지 와서 산적들에게 붙잡혀 있었던 걸까? 의문이 무겁게 머리를 짓눌렀다.


'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그때, 내 곁으로 남궁연이 다가왔다.


"무결아, 이쯤에서 잠시 쉬자. 모두 지쳐 보인다. 소리가 잦아든 걸 보면 당숙부님도 곧 돌아오실 것 같아."


남궁연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만연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간단한 전투를 비롯하여 제대로 쉰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 근처에 자리를 잡도록 하죠."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느니, 저 멀리서 다가오는 남궁검영의 모습이 보였다. 수백의 산적을 상대하고도 그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남궁검영이 남궁연에게 물었다.


"연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게 구출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기 공터에서 쉬고 있습니다."


"다치진 않았느냐?"


"네, 당숙부님께서 시선을 끌어주신 덕분에 저희는 큰 어려움 없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남궁검영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이제 연이 너도 제법 무사 티가 나는구나. 훌륭하다."


"아닙니다, 모두 당숙부님 덕분입니다."


"후훗, 그래."


남궁검영은 남궁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는······."


나는 남궁검영의 눈을 마주하며 조용히 두 눈을 반짝였다. 남궁검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대주님!"


비록 짧은 칭찬이었지만, 남궁검영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이어 남궁연이 물었다.


"당숙부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날은 어둑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피로에 지쳐 있었다. 거기다 부상자도 적지 않으니, 이대로 산을 내려가는 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남궁검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들었다.


"으흠···.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구나. 밤중에 이 험한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리다. 우선 산채로 돌아가 오늘 밤을 보내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마을 사람을 데려다주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산채로 돌아왔다. 산채 입구에 다다르자,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냄새가 몰아쳤다. 어찌나 심한지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우욱···."


누군가 헛구역질을 하며 비틀거렸고.


"우웨에에엑."


앞서 걷던 마을 사람들 중 몇몇은 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구역질을 했다.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과 경악이 가득했다.


산채 곳곳에는 산적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피는 작은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고, 널려있는 살점과 뼛조각들은 마치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그들의 시체는 한결같이 일도양단 되어 있었는데, 그 참혹한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그 어떠한 전장도 이보다 더 끔찍하진 않았으리라.


나는 본능적으로 남궁검영을 바라보았다. 혼자서 이 참상을 만들어 낸 그를 보며, 새삼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시체는 한데 모아 태우고, 잠잘 공간을 마련해라."


남궁검영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움직였다. 몇몇 마을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시체를 방치한 채 잠들 수는 없었다.


곧 시체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차가운 밤공기는 서서히 타는 냄새로 물들었다. 짙어진 연기가 산채를 뒤덮고, 을씨년스러운 밤은 한층 더 깊어갔다.


쉴 공간이 마련되고 나서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신의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 후,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이용해 간단한 응급처치를 했고,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사람들에게는 나뭇가지와 낡은 옷가지로 즉석에서 부목을 만들어 덧댔다.


신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때 약초를 좀 더 캐올 것을 그랬어···.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옆에서 부러진 팔로 신의를 돕던 장정 하나가 그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의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무슨. 풍렬이 자네는 저기 가서 쉬고 있게. 그렇게 무리하다간 영영 팔을 못 쓸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매번 신세만 져서 어떻게 하죠."


"아닐세. 오히려 내가 신세를 졌으면 졌지. 자네가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천검봉에서 떨어져 죽었을 거야."


신의의 말에 풍렬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제 도움이 없었더라도 무사하셨을 겁니다. 의원님같이 훌륭한 분을 하늘이 데려갈 리가 있나요. 그런데 괜히 저희 때문에 산적 놈들에게 고초를 겪으시고,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신의는 고개를 저으며 풍렬을 부드럽게 바라봤다.


"아니야. 그런 말 말게. 어떻게 내가 생명의 은인인 자네를 버리고 마을을 외면할 수 있겠나?"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검봉의 약초를 캐간 사람은 신의였군.'


대화를 들어보면, 이 인연으로 천검봉에 자주 찾아와 약초를 캔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남궁진묵이 내게 건넸던 약이 생각났다. 나는 품 안에 고이 간직했던 꾸러미를 꺼내어 신의에게 내밀었다.


신의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꾸러미를 받아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상처에 좋은 약초가 담긴 꾸러미입니다. 그거면 부족함 없이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신의는 조심스럽게 꾸러미를 풀었다. 그의 눈빛에 놀라움이 서렸다. 약초의 향기와 그 희귀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허어! 이렇게 귀한 것을 내어주어도 되겠습니까?"


"눈앞에 아픈 사람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의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귀한 약초까지···. 공자님의 은혜에 이 위모(某)는 정말 감격했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자, 나도 약간의 어색함이 밀려왔다. 신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뭔가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말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부터 돌보는 게 우선입니다. 그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신의는 나를 잠시 더 바라보다가 곧 꾸러미를 소중히 쥐고 서둘러 아픈 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도 자연스레 한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도왔다.


"공자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혹시 무사가 아니라 의원이 아니십니까?"


"세가의 의당에서 일하다 보니,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의당주님이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 공자님의 솜씨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지금 하는 건 모두 신의에게 욕을 먹어가며 배운 것들이었다. 따져보면 신의는 지금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흙먼지를 털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휴우."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저··· 공자님. 아까 얼핏 듣자하니, 남궁세가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신의는 안도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말을 이었다.


"다행이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실 예정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조금 날카롭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신의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사실 저도 남궁세가로 가는 길입니다. 이번 일도 있고 해서 함께 가면 어떨까 해서요."


그때, 옆에 있던 남궁연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러시군요. 마침 저희도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세가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 남궁세가로 가시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신의는 주위를 둘러본 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는 이로부터 들은 바로는, 남궁세가에 특이한 병을 앓는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부족하지만, 제가 그 병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는 중입니다."


남궁연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혹시···?"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산서의 위중락(魏重洛)이라고 합니다."


"산서의 위중락이면··· 설마, 백운신의?!"


"최근 들어 과분한 이름을 얻게 되었지요."


남궁연이 자세를 바로잡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 병을 앓고 있는 자가 제 동생입니다. 저희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이곳 대별산으로 약초를 찾으러 온 것이고요."


신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떤 약초를 찾고 계신 겁니까? 듣자하니, 보통의 병이 아닌 듯싶은데···."


"구지선엽초입니다."


신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혹 구하셨습니까?"


남궁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신의는 자신의 옷 속을 뒤적이더니 조심스럽게 천 조각을 꺼내 펼쳐 보였다. 그 속엔 다름 아닌 구지선엽초가 담겨 있었다.


"생각이 같았나 봅니다. 저도 그 병의 증상을 듣자마자 구지선엽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별산에 구지선엽초가 있다는 걸 알고 오셨습니까?"


"그것은 여기···."


남궁연이 대답하려는 순간, 멀리서 여인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의, 의원님! 여기 좀 와주세요!"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소예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얕은 숨소리만이 간신히 들렸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나는 당황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등에 기대어 편안히 잠들어 있었던 소예였거늘. 어째서 갑자기 이런 상태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신의가 급히 소예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졌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참 가혹하시군요. 이 어린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다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마 이대로라면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신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을지 모르나, 내부 장기가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아마도 산적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옆에 있던 여인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끌려오던 중에 산적들이 이 아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제가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나는 분노와 참담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예는 아무런 죄도 없이, 이 불행 속에 휘말려 들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의에게 소리쳤다.


"그래도 명색이 백운신의라고 불리시는 분 아닙니까? 무언가 다른 방도가 없습니까?"


신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께서 제게 주신 약초들은 모두 외상에 쓰이는 것이고, 이 아이의 내상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멍하니, 소예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녀린 호흡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 무력하게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걸까?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신의에게 서둘러 물었다.


"혹시, 이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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