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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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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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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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4.




자정이 넘은 시각.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어느새 멈추고, 희미한 달빛만이 산길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이미 비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다들 서둘러라."


그 빛을 따라 한 무리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 녹아든 듯 숨죽여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


―스스슥.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데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것은 가히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들은 모두 온통 흑의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다들 속도를 줄여라. 여기서부터 걸어간다."


이들의 정체는 피안혈교의 암영단(暗影團).


그림자라는 이름 그대로 그들의 존재는 한낱 소문으로만 들려올 뿐, 실제로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목격한 이는 모두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암영단의 단주인 은형귀마(隱形鬼魔)가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수하들을 부드럽게 독려했다.


"청운표국(靑雲鏢局)의 표행단이 코앞에 있다. 정신 바짝 차려라. 이번 목표는 무극선령환! 그 보물이라면 올해 혈제엔 우리 암영단이 혈염단(血炎團)의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합비로 향하는 청운표국의 표마차에 인세에 보기 드문 보물이 있다는 급보. 혈제를 앞두고 교주에게 진상할 보물을 고심하던 암영단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은형귀마 휘하 열댓 명의 단원이 강한 열망을 드러내며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앗, 따가! 또 찔렸네. 뭔 놈의 산에 이렇게 가시덤불이 많담. ······하, 아버지도 참, 고작 이딴 임무가 훗날 무슨 도움이 된다고. 교주님 눈에 띄려면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겠구만."


꼭 분을 바른 것처럼 얼굴이 허여멀건한 단원 하나가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지엄한 명령체계를 가진 암영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백면(白面)의 단원이 친분이 있는 부단주 원후랑(猿侯狼)에게 조용히 물었다.


"부단주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적은 고작 표국의 표사 나부랭이들. 절정고수도 둘, 셋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굳이 이런 가시덤불 길로 갈 필요가··· 다른 단원들도 괜히 고생만-"


"혈수백면(血手白面), 네 이놈!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은형귀마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방금까지만 해도 단원들을 부드럽게 독려하던 그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


"사자박토, 역용전력(獅子搏兎 亦用全力)이라고 했거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청운표국이 남궁세가가 운영하는 표국이란 걸 모르지는 않을 터. 아무리 그래도 오대세가의 수좌라고 불리는 남궁세가다!"


은형귀마의 추상같은 목소리에 혈수백면은 물론, 다른 단원들마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무극선령환이 어떤 보물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겠느냐? 적을 머저리로 보는 게냐!"


혈수백면이 깜짝 놀라 입을 뻐금거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호통이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 그게···."


지금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은형귀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검병(劍柄)을 잡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꼭 저 검을 그대로 들어올려 자신의 목을 내려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주변 단원들의 시선도 마뜩잖다. 불만이 가득한 눈치.


'서, 설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임무 중 '실수'로 사망자가 나오는 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아니던가.


혈수백면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변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단주님.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냥···."


그러나 은형귀마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냥이라니! 이 임무는 우리 암영단의 명예가 걸린 중차대한 일이다. 너 혼자라면 아무런 상관없다. 임무 중 죽든 말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네 녀석의 경솔한 생각이 암영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게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단주 원후랑이 혈수백면을 뒤로 물리며 은형귀마를 말렸다.


"단주님, 진정하십시오. 이러다 놈들에게 다 들리겠습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지 않습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지요."


"용서? 내 아무 말 하지 않으려 했다만 도저히 안 되겠다. 도대체 너는 어찌 저런 놈을 이번 작전에 포함시켰단 말이냐. 설마 이번 임무가 우리 암영단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잊은 게야?"


원후랑이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삼혈사님께서 부탁을 해오는 바람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


"단주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놈이 삼혈사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저번에 우리 암영단이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이번 임무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여 경험이라도 쌓게 하고자···."


은형귀마가 짙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탐탁지 않은 얼굴로 혀를 찼다.


"쯧, 삼혈사도 어쩔 수 없는 아비였구나. 내 익히 소문을 들어왔지만, 저렇게 철딱서니가 없어서야···. 호부견자(虎父犬子)가 따로 없어."


"그냥 여기에 남아 후미를 지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되었다. 알아서 하겠지. 따로 신경 쓸 필요 없다. 내버려둬라."


혈수백면에게서 눈을 뗀 은형귀마가 저 너머의 숲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모두들 준비해라."


그 말에 암영단은 일제히 검은 복면을 꺼내 썼다. 흑의무복에 복면까지 더해지자, 그들의 모습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다.


잠시 후, 조심히 야영지에 다가가던 은형귀마는 이상한 낌새에 의아한 탄성을 내뱉었다.


"으음?"


30명이나 되는 표행단치고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단 두 명이 야영을 해도 돌아가면서 번을 서기 마련이거늘.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은형귀마가 척후조에게 지시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척후가 다시 돌아와 보고했다.


"경계가 느슨한 것은 비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저기 진흙으로 엉망이 된 옷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어제 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은형귀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군. 이번 표행을 이끄는 이는 벽파도(劈破刀) 곽기룡이라고 들었거늘. 철두철미한 성격인 그가 이럴 리가 없어."


이어서 원숭이처럼 긴 인중을 가진 원후랑이 말했다.


"안휘성에 들어오니, 안심이 되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구화산에서 합비까지 대략 열흘 거리. 이제 다 왔다고 방심을 한 게지요."


"으흠, 그래도 혹시 모른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으니, 주변까지 샅샅히 더 살펴보아라."


은형귀마의 명에 따라 암영단의 척후조가 다시 한번 신속히 흩어져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더 살펴봤으나 별다를 건 없었다. 겨우 찾아낸 것은 고작 철질려 몇 개였다.


"정말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조잡한 철질려를 뿌려둔 것을 보면요. 아마도 근처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이나 쫓을 요량으로 대충 뿌려둔 것 같습니다."


은형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원들에게 말했다.


"좋다, 다들 신속하게 움직여 보물부터 확보하라. 그것이 최우선 사항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행사에 단 한 사람도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야."


""네!""


"그럼, 모두 죽여라."


그 순간, 암영단이 벼락처럼 야영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



자정이 넘어가자, 피안혈교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은밀히 접근해오는 그놈들을 향해 표행단은 신호에 맞춰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아아아!!!"


과거엔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라 허둥지둥하며 많은 사상자를 냈다. 몇몇 고수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고, 다들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오늘은.


분명 과거와 달랐다.


"네 이놈들!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습격을 해오는 것이야! 우리가 바로 대 청운표국의 표행단이다!"


벽파도 곽기룡의 목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리며 표행단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에 표사들도 다시 한번 크게 화답했다.


"우와아아아아!!!"


다만, 표사들의 위풍당당함과는 달리 쟁자수들은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무결이가 한 말이 참말이었어. 설마 했는데 말이야···."


"이걸 어떻게 알았던 거지?"


"걔가 원래 눈치가 빠르잖아. 아무튼, 대단한 놈이라니까."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그놈이 이걸 어떻게 안단 말이야? 뺀질뺀질 높은 사람 비위나 맞추면서 거저먹기만 하는 놈이···."


"지금 그게 중요해? 무결이 아니었으면 자다가 다 뒈졌을걸?


"아니, 내 말이 틀려? 의심스럽지 않아? 뭔가 이상하잖아."


"어이, 장 씨. 잡소리 하지 말고, 박도나 똑바로 들어."


늘상 겪어왔던 일처럼 덤덤히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몇몇 쟁자수들은 겁에 질려 다리를 후들거렸다.


저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대비를 했다손치더라도, 이런 실전은 언제나 긴장될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적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표행을 하며 마주치는 일반적인 산적이나 비적 떼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였다.


"보,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은데?"


"저런 놈들 처음 봐? 다 똑같은 도적놈들이여. 새까만 옷 입었다고 다를 것 없어."


"아니여. 습격해온 시간대하며 복장까지. 적당히 돈 몇푼 뺏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어. 분명 철저히 계획하에 표물을 노리고 온 것이 분명혀."


쟁자수를 이끄는 상자수인 노씨가 제대로 봤다. 역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보는 눈이 달랐다.


"이거 완전 좆돼부렀네. 집에는 노모와 아이들이 나만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젠장할."


"시부럴것! 역시 돈 많이 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여기서 전부 다 뒈지겠네."


"아이고, 이 사람아. 이럴수록 대범하게 나가야지. 약해 보이면 그냥 죽는 거여. 심호흡하면서 마음 좀 진정시켜."


"후욱후욱, 씨, 씨부럴 놈들아. 드루와, 드루와!!!"


"···너, 너무 흥분하지는 말고."


투박한 박도를 들고 두려움에 떠는 쟁자수들 사이, 곽기룡이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모두 각자의 위치를 지켜라. 절대 물러서지 마라. 내가 그 누구보다 가장 앞에 설 테니!"


그런 곽기룡의 뒤로 추양건도 어느새 검을 꺼내 남궁연의 옆을 지켜 섰다. 그의 몸에서 전에 없던 살기가 번뜩였다. 초절정고수다운 기세가 물씬 풍겼다.


남궁연 역시 침착하게 검을 빼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나는 표행단에서 시선을 떼고, 피안혈교의 마인을 바라봤다.


복면 사이로 보이는 형형한 눈빛들.


비록,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여느 무력단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자루의 검으로 우리의 목숨을 결정하는 명부의 판관.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소름 돋도록 똑같았다.


"흐읍."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전장의 기운을 삼켰다. 아직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나. 벌써부터 피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회귀 후 처음 겪는 실전인 건가.'


전장을 휘감는 저릿저릿한 살기에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두려움이 아닌, 반가움이었다. 과거의 과오를 바꿀 기회. 예전에는 울고불며 추하게 도망치기 바빴지만, 오늘은 기필코 다르리라.


"무결아!"


내가 공포에 질렸다고 생각한 걸까. 남궁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혀, 형님···."


남궁연의 따스한 말에 목소리가 떨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걱정을 먼저 하다니.


그래, 이거였다. 이래서 내가 지난 30년 동안 미친놈처럼 복수를 하고 살았지.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절대 떨어지면 아니 된다."


"알겠습니다.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그래, 너도 조심해. 정신 똑바로 차려서 우리 함께 남궁세가로 가자꾸나."


"네!"


회귀를 하고 지난 일주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이젠 그 결과를 지켜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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