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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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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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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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DUMMY



16.




남궁찬과 남궁중호를 의당에 데려다 준 후, 나는 내 처소 앞에서 추양건과 마주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 아래, 바람은 차가웠고, 그와 나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추양건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날 바라보았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회의 결과가 어찌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아마도 남궁태는 더이상 이 사건을 키우지 않을 거다. 내가 아는 남궁태는 그런 사람이니까.


회귀 전, 자식을 잃고 미쳐버린 남궁무상을 대신해 남궁태는 남궁세가의 가주 자리에 올랐다. 그 이후로 남궁세가는 공명정대한 모습을 잃고, 오직 사리사욕만을 좇는 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덕분에 남궁세가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지만, 옛 명성은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이상 남궁세가를 오대세가의 수좌라고 부르지 않았고, '황금세가'라는 멸칭이 따라붙었다.


자신의 이익에 극도로 민감하고, 손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보지 않으려는 사람. 제 손에 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남궁태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파벌 싸움이 극심한 이때, 남궁태가 무슨 수를 쓸지는 너무 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남궁찬과 남궁중호, 그 두 놈을 나와 함께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내 잘못은 부풀리고 그들의 잘못은 축소시켰다. 손익 계산에 밝은 남궁태가 이것이 뜻하는 바를 모를 리 없을 테니까.


당연하게도 내 의도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회의 중반까지는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남궁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노련했다. 역시 남궁세가의 대장로답다고 해야 할까. 한순간의 틈도 놓치지 않았다. 나와 추양건을 그렇게 엮을 줄이야.


'그때, 의당주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덕분에 남궁태 입장에선 머리가 아플 것이다. 중도파였던 남궁진묵이 가주파가 되었다고 느껴질 터.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무너졌으니,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한동안 정신이 없을 것이다.


"······."


추양건과 나 사이 계속해서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마침내 추양건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그리 한 것이냐?"


심경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건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추양건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되물었다.


"왜 그리도 네놈에게 불리한 말을 했냔 말이다. 그놈들이 먼저 아가씨를 모욕하지 않았느냐. 분명 사실대로 말한다면 벌을 피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터. 어찌하여 굳이 그 험난한 길을 택했느냐?"


"이번 일은 제 잘못도 큽니다. 그들의 도발에 참지 못한 것은 분명 제 과오지요. 그리고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가씨를 모욕하는 말을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추양건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곤 이내 매섭게 번뜩였다.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묵직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게 진정한 네 속내더냐?"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기 어려워 고개를 숙이며 한층 더 차분하게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추양건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고들었다. 그는 나의 말을 곱씹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이번 상황을 초래한 건 분명 너의 책임이다. 어찌보면 네가 상황을 더 키운 부분도 적지 않······."


추양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추었다. 온갖 생각들이 복잡하게 그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니다. 되었다. 이번 일은 여기까지만 하자."


그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추양건은 뚜벅뚜벅 몇 걸음을 더 걸어간 뒤,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서, 내게 들리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잘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게 잘했다고 한 거야?'


나는 추양건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한편.


남궁태는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후, 어두운 얼굴로 방 안을 서성였다. 그의 얼굴엔 무거운 고민이 드리워져 있었다.


남궁승은 그런 남궁태를 주의 깊게 살피며, 말문을 열 기회를 엿보았다.


그렇게 일각쯤 흘렀을까.


참다못한 남궁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로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남궁태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깊은 눈빛으로 남궁승을 응시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남궁승은 그 말에 내심 당황하며, 억누를 수 없는 불안함을 담아 되물었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나도 이런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 의당주님께서 움직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상 그 무엇도 할 수 없음이야."


남궁승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


"으으, 대장로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우리 찬이가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요. 아비인 제가 그걸 보고도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남궁태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나도 원통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금 백무결을 건드리면 찬이와 중호도 위험에 빠질진대."


"그, 그렇지만···."


남궁승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번 항의하려 했지만, 남궁태의 서릿발 같은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자네는 아들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 지금이라도 가서 회의 결과를 뒤집고 오겠네."


남궁승은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물론, 대장로님께서 고심 끝에 우리 찬이를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남궁태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우려하는 바가 뭔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당주님께서 왜 갑자기 나섰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세. 괜히 섣불리 나섰다간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오늘 의당주님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나."


남궁승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만약 의당주님이 남궁무상을 지지하기로 마음을 먹으신 거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제껏 쌓아온 우리의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닙니까?"


남궁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정으로 그러하다면 무언가 다른 새로운 수를 찾아야지."


그의 눈에서 일순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렇지 않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네."


남궁태는 고민에 빠진 듯 생각에 잠겼고, 남궁승은 조금 더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용하시던 의당주님이 갑자기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 짚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백무결 그 아이와 무슨 연관이 있을거라 짐작하고 있네."


"연관이라면?"


"자네 백무결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나? 의당주님과 묘하게 닮지 않았던가?"


남궁승은 그 말에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그 아이가 당주님의 핏줄이라는 겁니까?"


남궁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렇게까지 싸고 돌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극선령환을 복용한 것도, 추양건을 사부로 붙여준 것도. 충분히 의심해 볼만한 부분이라 생각하네."


남궁승은 그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쩐지, 그 아이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모를 애틋함이 깃든 눈빛이었지요. 숨겨놓은 핏줄이라고 하니, 모든 게 이해가 됩니다. 간신히 남궁철, 그놈을 제쳤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엄청난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남궁태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네. 모든 건 필연이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나, 이미 남궁무상과 남궁진묵 사이 어떤 거래가 오고 갔을 지도 몰라. 그러니 더욱 신중히 행동하세. 경거망동했다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남궁승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절대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철저히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다음 날.


"일주일의 근신이라···."


어제의 회의에서 결정된 징계는 일주일 간의 근신과 그동안 의당의 잡무를 돕는 것이었다.


남궁무상은 나에게 더 큰 벌을 주고자 했으나, 남궁진묵과 남궁태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나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의당에서 일 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이번 처분은 표면적으로는 가혹한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나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최근 내 몸 상태를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너무 쉬웠단 말이야···.'


과거의 경험과 늘어난 내공으로 두 놈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쉬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남궁찬과 남궁중호는 일류 언저리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나는 고작 삼류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쉬웠다.


'이걸 무극선령환의 효능이라고 봐야 할까···?'


아무리 무극선령환을 복용해 내공이 늘어났다지만, 이것만으로 이 정도의 차이를 낼 수 없을 터. 무공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공의 고하로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예전과 달라졌어.'


마치 그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들이 어디로 피할지, 어떻게 공격할지,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할지가 선명하게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사건 이후, 며칠 동안 방안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으쌰."


나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털어내고자, 손을 뻗어 옆에 놓여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검파(劍把)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쨋든, 내게 득이 되는 일이지, 실이 되는 일은 아니니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처소 앞 뜰에 섰다. 그리고 추양건에게 배운 그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운검초의 검로를 새로이 그려나갔다.


―휘익.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수련 뿐. 다른 곳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는 근신 기간 내내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이번 싸움을 복기하고, 추양건에게 배운 그대로 수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등 뒤에서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이 백무결이냐?"


응? 뭐야? 또 맞으러 왔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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