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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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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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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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06.




지난 밤.


나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야영지 주변 이곳저곳에 독을 뿌려뒀다.


그동안 구화산 인근에서 구한 자미화의 꽃잎과 백령초의 뿌리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재료를 더해 특정 비율로 혼합하여 만든 독이었다.


일명 자백침혼분(紫白沈魂粉).


처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무거워지고, 점차 움직임이 둔해지며, 종국엔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신경독의 일종.


흡입 후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온몸으로 독이 다 퍼지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미 나는 암영단의 습격 경로를 알고 있었기에 하독(下毒)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증상이 발현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였지.


"이놈들!!! 감히 독을 쓰다니. 그러고서도 네놈들이 정녕 정파라 칭한단 말이냐!"


암영단 누군가의 말에 곽기룡이 복부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대꾸했다.


"아닌 밤중에 습격해 온 놈들이 할 말은 아니구나! 그리고 누가 독을 썼단 말이냐! 증좌가 있느냐? 어디서 독에 걸려 와서는 도대체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느냐!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따로 없구나, 이놈들아!"


곽기룡의 일침에 한여름날 냉수를 들이켠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아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아무리 배에 구멍이 났더라도 할 말은 해야지.


"제, 젠장할!!!"


"다, 단주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 자신만만하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암영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주춤주춤 검을 휘저으며 물러서기만 할 뿐. 놈들의 얼굴에 어느새 절망이 서렸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사실 별거 아닌 독이다. 잠깐 몸이 무거워질 뿐이니,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


"하, 하지만···."


은형귀마의 독려에도 단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었다. 초절정고수인 그에겐 그다지 큰 영향이 없을지 모르지만, 일반 단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았던가.


보잘것없는 쟁자수의 박도에 목이 떨어진 절정고수를.


임무 중 사망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개죽음을 당하기 위해 지금껏 열심히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언제 자신도 그런 뭣 같은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암영단의 움직임은 더욱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때였다.


"모두 힘을 내라! 지금이 기회다!"


사기충천한 곽기룡의 외침에 표사들이 더욱 기세를 올렸다. 표행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어딜 가시려고?"


"이, 이놈이!"


"받아랏!"


갈 길이 급한 은형귀마를 추양건은 끈질기게 물고 놔주지 않았다.


―챙챙챙!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우리의 승리인 것은 명약관화했다. 자백침혼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 위력을 발휘할 테니까.


"고죽촌의 장 씨가 절정고수를 죽였다!"


"겁먹지 마라! 놈들은 중독됐다!"


"쌩쌩한 놈은 내버려 두고 움직임이 느려진 놈 위주로 공격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는 표행단의 기세에 급해진 것은 은형귀마였다. 이제 절정고수의 숫적 우위는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한낱 쟁자수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실정.


그때.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전장을 흔들었다. 모든 사람이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크흑, ······이 지독한 놈."


소리의 정체는 은형귀마였다. 추양건을 떼어내기 위해 무리하게 장력을 내뿜은 것이었다.


위급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비장의 한 수였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내상을 입었는지, 그의 입에선 연신 피가 흘러나왔다.


은형귀마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이쯤 하는 게 어떻겠나? 그쪽도 피해가 제법 커 보이는데. 우리가 이대로 먼저 물러남세."


"다 죽어가니, 이제야 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갈 때는 아니-"


가쁜 숨을 몰아쉬던 남궁연이 손을 들어 추양건의 말을 끊었다.


"아저씨, 이쯤 하죠. 많이들 다쳤습니다."


"하지만, 도련님···."


남궁연이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극선령환을 안전하게 남궁세가로 가져가는 것. 더 이상의 전투는 필요하지 않았다.


싸움이 길어진다면 분명 이기겠지만, 그와 비례해 표행단의 피해도 더욱 커질 뿐이다. 암영단의 섬멸이 목표가 아닌바,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알겠습니다."


남궁연의 단호함에 추양건이 검을 집어넣고 뒤로 물러났다.


"선배님,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역시 남궁세가군. 양보해줘서 고맙네. 다들 철수해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남궁연이 포권을 하자, 은형귀마 역시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해왔다.


그런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설마?'


나는 뭔가 불안한 마음에 조금씩 남궁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상대가 먼저 항복했다지만, 그래도 피안혈교의 마인이다.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놈들이 모인 미친 집단. 저놈들의 입에 발린 말을 순진하게 다 믿으면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 내가 몇 발짝 뗐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너 하나라도 챙겨 가야겠다."


돌연 은형귀마의 몸이 포권을 하는 남궁연을 향해 쏘아졌다.


설마 이런 대단한 고수가 이렇게 비겁하고, 치졸한 짓을 할 줄은 몰랐기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당황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썅!!!"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궁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었다.


"무, 무결아!!!"


―퍼엉.


그렇게 남궁연의 목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



―퍼엉.


은형귀마가 허공을 유영하는 백무결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이런, 실패인 건가."


그의 얼굴에 아주 잠깐 당혹감이 떠올랐지만, 금세 냉철함을 되찾았다.


"어쩔 수 없지. 모두 신속히 퇴각하라!"


은형귀마의 말에 암영단이 썰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저놈들이!!!"


"게 섰거라!!!"


몇몇이 분노에 찬 외침을 내뱉었지만, 작정하고 후퇴하는 암영단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표행단 내에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추양건이 급히 남궁연에게 다가갔다.


"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추양건의 목소리는 자책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드높은 무위를 가졌지만, 강호행은 이번이 고작 세 번째. 누구보다 남궁연의 안위에 신경 써야 하는 자신이지만, 얕은 강호 경험으로 인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 실책입니다. 전투가 끝났다고 너무 방심했습니다. 절대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남궁연은 고개를 저으며 위로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저씨는 잘못 없어요. 그저 제 지시를 따랐을 뿐이죠. 그, 그런데······."


남궁연은 고통에 찬 얼굴로 쓰러진 백무결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며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결이가. 이 작은 몸으로 절······."


자신을 구하고자 무공이라곤 일초반식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절세고수의 장력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이 안타까운 사실에 남궁연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살려야 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백무결의 상태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은형귀마의 장력에 적중된 몸은 새파랗게 멍들어 있었고, 숨결은 이미 삼도천에 한 발을 담근 사람처럼 가늘고 희미했다.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다고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도 이십리는 더 가야 합니다. 지금 상태라면 아마도 그 전에······."


어느새 전장을 뒷수습하고 돌아온 곽기룡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순간.


뭔가를 떠올린 남궁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곧장 표마차로 향했다.


얼떨결에 백무결을 받아든 추양건이 그 의미를 깨닫고 곧장 남궁연을 만류했다.


"도련님,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이 방법밖에!"


"절대 안 됩니다. 어떻게 구한 영약인데요. 거기다 지금 상태를 봐선 치료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여기서 무극선령환을 사용하면 작은 도련님이······."


추양건의 제지에도 남궁연의 눈빛은 단호했다.


"절 구하려다 이렇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모른 척하라는 말입니까?"


추양건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어디서도 이런 영약을 구할 수 없습니다. 휘 도련님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란 말입니다!"


그 말에 지금껏 단단했던 남궁연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추양건의 옷깃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흑, 흐윽. 저도 알고 있다고요. 그렇다고 그냥 못 본 척 넘어가요? 이렇게 해서 영약을 남궁세가로 가져가면 과연 휘아가 좋아할까요? 자신을 살릴 영약을 찾아왔다고? 분명 그 애라면 절 나무랄 것입니다. 왜 날 위해 그런 짓을 했냐면서! 그리고 이렇게 구해온 물건은 절대 먹지 않겠다고 하겠죠. 차라리 죽겠다면서!"


남궁연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추양건을 올려다보았다.


"그, 그건···."


추양건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말리지 마세요. 영약은 언제든지 다시 구하면 됩니다. 분명 휘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결이는 아닙니다.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요."


결단을 내린 남궁연은 눈물을 닦고는 다시 표마차로 걸어갔다. 그리고 표물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작은 목함을 꺼내 들었다.


추양건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남궁연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못내 안타까운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이 영약을 구하기 위해 고생했던 지난 1년이 빠르게 지나갔다.


"······후우, 알겠습니다. 도련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놈들이 완전히 떠났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남궁연은 추양건의 손에서 백무결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무극선령환이 든 상자를 열었다.


그안에는 천고의 보물, 여벌의 목숨이라 불리는 무극선령환이 고급 비단을 몸에 감고 자리 잡고 있었다.


남궁연은 떨리는 손으로 무극선령환을 집어 들었다. 은은한 선향이 코끝을 스치고, 따뜻한 기운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무극선령환을 기절한 백무결의 입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제발··· 제발 살아줘, 무결아."


그 마음이 통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백무결의 창백했던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호흡은 점점 안정되어 갔고, 제멋대로 오르내리던 가슴도 점차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정말 다행이야, 무결아."


남궁연은 백무결의 작은 몸이 다시금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동안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상황이 얼추 정리되는 듯 하자, 옆에 있던 곽기룡이 조용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우선, 가까운 마을을 찾아서 재정비를 하도록 하죠. 다친 사람들이 많으니, 치료부터 하고 모두 안정이 되면 그때 다시 움직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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