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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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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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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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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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11.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의당으로 향했다.


멀쩡한 몸으로 방구석에서 마냥 남궁무상의 지시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남궁휘가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을 본 이상, 더욱더.


'분명해. 신의는 남궁휘를 만났어.'


걸음을 옮기는 동안 어제 본 남궁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기영혈탕(天氣靈血湯)은 남궁휘의 증상을 정확히 반영해 만들어진 약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의가 이야기 했던 내용들과 이리 똑같을 리 없었다.


'신의가 남궁휘의 치료에 실패했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그런 광적인 집착이 생긴 것인가?'


진저리 같은 전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지어 나갔다. 그 이유인즉슨, 천기영혈탕에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휴, 그 고약한 영감탱이가 날 얼마나 괴롭혔으면 아직도 어제같이 생생해.'


신의는 천기영혈탕의 완성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런데 하필 그 공을 내 몸으로 들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더욱 억울한 것은 온갖 실험을 다 해 끝끝내 천기영혈탕을 완성했지만, 이것이 쓰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심원고혼에 걸린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의는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 긴 세월 동안 이걸 붙잡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지난 30년간 내가 남궁연의 복수를 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의당 앞에 도착한 나는 상념을 지우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짙은 약재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남궁휘의 처소에서 맡았던 냄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의당의 당주인 남궁진묵(南宮鎭默)은 약초를 고르던 손길을 멈추고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외모와 그 미소가 정말 잘 어울렸다.


"무결아, 잘 왔다. 몸은 좀 어떠하냐?"


남궁진묵의 말투에는 친근함이 묻어났다. 어제 치료를 받으며 그와 어느 정도 안면을 텄고, 짧은 시간 동안 뜻이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르신이 세밀히 봐주신 덕분에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하하, 그러냐? 그래도 며칠 더 쉬면서 정양을 하지 않고."


"처소에만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서요.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치료가 더 늦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미 몸은 완벽히 회복된 상태였다. 무극선령환이 어떤 보물인데, 아직도 아프겠는가.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구나. 그럼 이렇게 의당으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내가 너에게 해줄 것이 없는데."


"어제 어르신께서 절 신경 써주신 것이 생각나서 겸사겸사 도와드리면 좋을 것 같아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남궁진묵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도와준다니 그게 무슨···?"


"의당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라도 한 손 보태면 도움이 좀 될 것입니다."


어딜 가나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언제까지 남궁연의 은인이라는 것을 우려먹을 순 없다. 이제 남궁세가에 도착한만큼 미리미리 눈치 살살 봐가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재치 있게.


남궁진묵은 나를 바라보며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기특한지고. 그런데 의당의 일이란 게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단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제가 표국에서 일하기 전에는 의원에서 일을 했습니다. 웬만한 약초들의 분류와 관리, 기본적인 탕약을 다루는 법까지 통달했다고 자부하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 몸을 고쳐준다는 신의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잡일까지 도맡아서 했던 나다. 이런 작은 의당의 일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남궁진묵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통달이라··· 그게 정말이더냐?"


"예, 한번 믿어보시지요."


내가 굳이 의당에서 일하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남궁휘를 살리기 위해 천기영혈탕의 재료를 구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앞으로 지낼 남궁세가에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이곳 의당은 규모는 작으나 남궁세가의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소다. 이름난 무림세가인 만큼, 임무나 수련 중 부상을 입는 자들도 많고, 세가 안에서 일을 하는 자들도 병에 걸리면 수시로 들려 치료를 받곤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소문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의미.


정보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이지.


오가는 대화 속에 흘러나오는 자잘한 소문들을 모아 중요한 단서로 엮어내는 것이 정보 수집의 핵심이고, 이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정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과거 30년간 그 누구보다 뛰어난 쥐였다.


남궁세가에서 내 능력을 제대로 보이려면 정보가 모이는 이곳에 내가 있어야만 한다.


"좋다, 그렇다면 너의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자꾸나. 이쪽으로 오거라."


"알겠습니다."


남궁진묵은 나를 의당의 구석진 창고로 이끌었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수많은 약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서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약초들은 이번에 새롭게 멀리 서역에서 구해온 것들이다. 각각의 효능과 사용법을 기록하며 따로 서책으로 정리를 하고 있지만, 그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라 아직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네가 이 약초들을 분류해 주길 바란다."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초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양이 꽤 많긴 하지만,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남궁진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몸도 좋지 않은데,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하도록 해라. 그것만으로도 내게 크나큰 도움이 될테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나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약초들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눈으로 관찰하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따라, 오래된 기억을 서서히 불러왔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감각이 되살아나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보자, 인삼 뿌리는 혈액 순환을 돕고 기운을 보충해 주는 효능이 있다고 했었지. 보관 시에는 습기를 피해 밀봉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여기 이 통에 넣으면 되겠어."


나는 신의의 어깨너머로 익힌 지식뿐만 아니라, 몸으로 익힌 경험도 함께 떠올리며 약초들을 분류해 나갔다.


"그리고 이건 황금초네. 예전에 신의 영감탱이가 내가 상처가 나고, 열이 났을 때 먹였었지. 그렇다는 건 해열과 소염 작용이 뛰어난 약초라는 뜻. 음한 기운이 있는 약초들이니, 차가운 곳에 보관하고 다른 약재들과는 겹치지 않도록 따로 두어야 해."


나의 지식, 경험 그리고 서책의 내용과 대조하여 그 많던 약초들을 순식간에 분류를 해나갔다.


그렇게 몇 시진이 흐르고.


나는 손끝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남궁진묵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다 마쳤습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남궁진묵은 한참 동안 꼼꼼히 내가 분류한 약초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은 점점 밝아졌고, 결국엔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대단하구나. 훌륭하다. 몇 년을 일한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아니, 나은 정도가 아니다. 너 혼자서 능히 몇 사람의 몫을 하는구나."


눈이 초롱초롱해진 남궁진묵이 날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단 말이냐! 무결아, 내 제자가 되어라. 그러면 남궁세가에서도 더욱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내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너의 성이 '남궁'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뛰어난 무공을 사사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혹 운이 좋아 상승 무공을 사사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곳 남궁세가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기란 불가능하단다."


남궁진묵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확신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이곳 의당은 다르다. 네가 나의 제자가 된다면 향후 이곳을 너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나는 정중히 사양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신 제가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들러서 오늘처럼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진묵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그 아쉬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나. 네 뜻이 그리 강경하다니. 그러나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내게 말해라. 우리 의당의 문은 늘 네게 열려 있으니."



***



나는 며칠 동안 남궁진묵을 도우며 천기영혈탕의 재료를 꼼꼼히 점검했다.


'인삼, 강황, 당귀, 구기자는 충분하고, 천혈초와 역사초도 그럭저럭 모자라진 않아. 역시 문제는 구지선엽초가······.'


구지선엽초(九枝仙葉草).


아홉 개의 가지에 선기가 어린 잎사귀를 가진 이 약초은, 오직 천지 간의 기운이 가장 맑고 순수하게 모이는 곳에서만 자란다고 전해진다.


많은 영약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감히 돈으로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각 문파 간 전쟁이 벌어질 정도.


이렇듯 구지선엽초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지만, 나는 예외였다. 구지선엽초가 자생하는 곳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고생을 하면서 내가 직접 땄는데, 잊을 리가 있나.'


다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지금 내가 남궁세가의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분명 남궁무상은 내 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있으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남궁세가 내의 금지(禁地)는 차치하고, 지금 나는 세가 밖으로 단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이에 지난 며칠간 의당의 일을 도우며 정보를 수집한 결과, 내가 외부로 나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소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야 내 입맛에 맞는 임무를 맡을 수 있고, 그 핑계로 마음껏 외부로 나갈 수 있을 터.


"절정···, 절정이라···."


무릇 절정고수라 함은 남궁세가 내에서도 몇몇 손꼽히는 고수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 이건 강호 전역을 훑어봐도 똑같다. 왜 절정의 뒤에 '고수'라는 말이 붙었겠는가.


그런데 세가 밖으로 나가려면 최소 절정이 돼야 한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였다.


'만약, 내가 절정고수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여기 남궁세가에 갇히게 되는 건가?'


물론, 과거 내가 배웠던 무공을 되살려 다시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순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익힌 무공은 운검초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이리저리 떠돌던 낭인들과 혈교의 마인들에게서 주먹구구식으로 배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렀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은 무슨 노력을 해도 뚫어낼 수가 없었다. 무언가 내 발목을 꽉 붙잡고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의 나는 한계가 명확한 근본 없는 사파 무인이었단 말이다.


거창하게 회귀까지 했는데, 다시 그 무공을 익혀 겨우 절정에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은가. 최소 초절정. 아니, 그 위를 노려봐야지.


아무튼,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서는 안된다. 남궁세가의 체계적인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인데······.'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날.


드디어 추양건이 나를 연무장으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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