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최근연재일 :
2024.09.17 22: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81,328
추천수 :
1,520
글자수 :
133,319

작성
24.08.25 20:20
조회
5,213
추천
90
글자
13쪽

3화

DUMMY



3.




안휘성의 구화산(九華山)은 자연의 장엄함과 고요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불교의 사대 성산중 하나인 이곳은 수백 년 전부터 강호의 인물들이 숨어들어 은거하던 명산으로, 무림의 전설이 깃든 땅이기도 했다.


깊은 산골짜기마다 무공 비급과 절세 고수가 숨어 있는 비동(秘洞)이 즐비하고,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로 여기서 구한 절세 비급으로 누가 고수가 됐다나 뭐라나······.


남궁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타고 있는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말 구화산에 그런 곳이 있다고?"


나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현재 나는 말을 타고 있고, 남궁연은 걷고 있었다. 표사는 걷고, 쟁자수가 말을 타는 모순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다친 다리를 이끌고 내가 저기 쟁자수들과 함께 걸어야 할 터인데, 남궁연이 굳이 나를 말에 태우겠다고 우겨서 이렇게 되었다.


우리 형님께서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 정말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절대 내가 편하게 가고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또 이런 은혜를 모르는 모리배는 아닌지라,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형님께서 지루하시지 않게 매화자(賣話子)처럼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옆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연에게 말했다.


"어? 형님, 설마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조금 허탈하다고 해야 하나. 태어나서 16년을 안휘성에 살았는데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건지······."


나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했다.


"그럴 수도 있죠. 형님은 이번에 처음 강호행을 나왔다면서요. 남궁세가가 좀 대단한 가문이에요? 큰 세가의 일원으로 배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으니 어쩔 수가 없죠. 보통 이런 이야기들은 저잣거리에서나 떠도는 법이니까요."


혀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말이 술술 나온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존댓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다. 벌써 이 몸에 완벽히 적응했다. 이건 모두 내가 말을 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 확실히 너는 지금껏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랑은 다른 것 같아. 아는 것도 많고, 재밌고···."


그럴 수밖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길거리를 떠돌며 살았다. 안 해본 일 없이 온갖 일을 다 했고, 정말 많은 경험했다. 세가 안에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자란 남궁연과는 본질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나 할까.


뭐, 이렇게 말하면 또 너무 불행한 과거가 아닌가 싶지만, 그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빠른 눈치를 물려주신 부모님 덕에 여기저기 빌붙어 그럭저럭 살았으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런데 이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어디 촌에서 왔고, 네가 안휘 사람인 줄 알겠어."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앞으로 저도 여기 안휘에서 지낼 테니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 안휘 사람이라고 해주세요."


"뭐라고? 하하하."


남궁연이 히죽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휘아가 정말 좋아하겠어."


휘아? 오래전에 병으로 죽었다던 남궁휘(南宮輝)? 아! 회귀했으니, 지금은 살아있겠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네? 뭐라고요?"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아참,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그 자미화(紫微花) 말이야. 왜 볼 때마다 자꾸 꽃잎을 따는 거야? 그리고 또 그 이상하게 생긴 뿌리들은 뭐고?"


"아, 이거요? 다 쓸데가 있어서요."


"쓸데가 있어? 어디에?"


"못된 놈들 혼내주려고요."


"응? 못된 놈들을 혼내줘?"


"네."


남궁연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이고, 형님. 이 아우만 믿으세요. 이것들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겁니다.


"네가 다 생각이 있겠지만, 그런 이유라면 내가 알려준 무공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형님이 알려준 무공도 제가 열심히 하고 있죠. 보여드릴까요?"


나는 곧장 말 위에서 그녀가 일러준 운검초(雲劍初)를 시전했다.


남궁세가에서 처음 검을 배울 때 필수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무공.


─슈슉슉.


내 손 위에서 검이 춤을 춘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펼쳐지는 검초는 비록 기초적인 초식이었지만, 그 속에는 분명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검법의 묘리가 모두 담겨있었다.


운검초라는 이름 그대로 구름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검의 궤적에 남궁연이 입을 떡 벌렸다. 경악이라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뭐, 뭐야? 언제 이렇게 늘었어? 매일 뭔가 주물럭거리면서 놀기 바쁘더니."


지난 30년간 운검초만 휘둘렀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지. 운검초쯤은 이젠 눈감고도 펼칠 수 있다.


"왜 이렇게 놀라요? 기초무공이라면서요."


"무결이, 너 며칠 전까지만 해도 헤매고 있었잖아? 솔직히 내가 발로 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는 생각을···."


"아니, 발이라니! 그건 좀 심했다. 나 지금 상처받았어요."


"미안, 미안해."


분명 이전의 내 몸은 어떤 무공을 익혀도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없었다. 아니, 위력이 문제가 아니라 익히는 것부터 힘들었다. 이런 간단한 무공조차도 다른 사람의 몇 곱절은 걸렸으니까.


'······오죽하면 고금제일의 둔재라는 소리를 들었을까.'


남들이 쉽게 하는 기본 검초도 나에게는 그 어떤 상승 무공보다 버거웠고, 몸에 아무런 무리를 주지 않는 정종심법도 내겐 마공을 연마하듯 고통을 줬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신의가 내게 말했다. 너에겐 희귀한 병이 있으니, 자신의 연구에 도움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생각보다 병명은 간단했다.


내장역위증(內臟逆位症).


신체 내부에 있는 장기의 위치가 정상인과는 반대로, 정확히는 마치 동경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바뀌어 있단다. 물론, 혈도도 마찬가지.


내게만 그토록 무공이 어려웠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무공이 내게는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공을 익힐 수가 있나.'


그것도 모르고 주야장천(晝夜長川)으로 배운 그대로 무공을 익혔으니, 탈이 나는 게 당연했다. 세상 사람들 팔다리의 길이가 모두 다른 것처럼, 나는 내부 장기, 혈도들이 다른 거였는데···.


이런 간단한 이치를 깨닫고 나니, 그다음은 너무 쉬웠다. 기존의 무공을 정반대로 제 위치에 맞는 혈도를 찾아 돌리면 되었다.


덕분에 삼류 무사로 빌빌거리던 나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절정고수가 되었다. 그간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들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운검초도 똑같다.


"그래도 뭐, 알려주신 스승님이 대단해서 그런가?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이 팍하고 오더라고요."


나는 이 모든 공(功)을 남궁연에게 돌렸다. 앞으로 남궁세가에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할 텐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름칠을 해놔야지.


흑음천서로 30년을 살았더니, 이런 부분은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그래? 크흠."


나의 공치사에 남궁연의 콧대가 하늘로 솟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두런두런 한참을 이야기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먹구름으로 검게 드리워졌다. 자신의 웅장함을 자랑하던 구화산의 봉우리들도 언제부턴가 흐릿한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때처럼 비가 올 모양이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 갑작스레 굵어진 빗줄기는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대지를 세차게 두드렸다.


그때, 후미에 있던 표사 한 명이 뛰어왔다.


"곽 표두님!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냐?"


"바퀴가 도무지 빠지지 않습니다."


표물을 실은 마차의 바퀴가 진창에 제대로 빠졌다. 바퀴는 깊게 파인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말들이 힘겹게 몸부림쳤다.


쟁자수가 모두 달려들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진흙이 튀어 얼굴과 옷은 범벅이 되었고, 그들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이에 표두 곽기룡(郭起龍)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멈춰라!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모두가 급히 곽기룡의 주변으로 모였다. 긴급회의였다.


"여기서 마을까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는가?"


곽기룡의 물음에 길 안내를 맡은 표사가 나서서 답했다.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해시(亥時:밤 9시~11시)는 넘어야 마을에 도착할 것인데······."


곽기룡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심했다. 이 폭우 속에서 마차를 이끌고 밤늦게 이동하는 것은 명백히 무리로 보였다.


"으흠, 안전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야영을 해야겠군.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으니, 부표두는 표사 몇 명을 데리고 가서 근처에 야영하기 좋은 위치를 잡아보게. 나는 마차를 수습하고 천천히 따라갈 터이니."


"네, 알겠습니다."


부표두 구홍장(苟洪章)이 명을 받들어 표사 몇 명을 이끌고 앞서 나갔다.


구홍장과 표사들이 야영지를 탐색하러 떠난 뒤, 곽기룡은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곧 야영지에서 쉴 수 있을 것이다."


마차는 모든 사람이 달라붙어 한참을 낑낑대고 나서야 겨우 진창을 빠져나왔다.


"으아아, 죽겄다."


"이런 젠장할!


"비도 쏟아지는데 이게 뭔 일이당가."


그리고 때마침, 멀리서 부표두 구홍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두님! 이쪽입니다. 좋은 야영지를 찾았습니다!"


곽기룡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 그는 표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가자. 마차를 천천히 움직여 보자."


우리는 말들을 다독이며 비를 뚫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다들 힘을 합쳐 야영지를 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나는 비를 피해 자리를 잡고 앉아, 일행의 면면을 세심히 살폈다. 피안혈교가 들이닥치기 전, 표행단의 전력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빛으로 일행을 둘러보며 나름의 계산에 들어갔다.


'보자, 총인원은 30명이고. 그중 전력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절정고수인 표두 곽기룡과 그보다 살짝 실력이 못 미치는 부표두 구홍장 그리고 객원표사로 참석한 남궁연 또한 절정고수라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어서 저기 묵묵히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약간 맹하게 생긴 아저씨. 바로 우리 전력의 핵심인 추양건(秋陽健)이다.


쟁자수로 위장하고 있는 그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실력을 숨긴 초절정고수였다. 남궁세가에서 비밀리에 키운 고수로, 이번의 표행과 남궁연의 안전을 위해 붙여진 호위였다.


'으흠···.'


현재 우리 전력은 초절정 하나에 절정 셋 그리고 일류 다섯. 반면, 적은 내가 기억하기로 초절정 하나에 절정고수 다섯 그리고 대부분이 일류.


단순 숫자로만 생각한다면.


삼십 대 십오의 싸움이지만, 회귀 전의 결과는···.


초절정고수 둘은 서로 호각으로 싸웠고, 절정고수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궁연과 곽기룡의 선전으로 전투 자체는 비등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상대가 추양건의 약점이 남궁연이라는 걸 알아차린 후부터는 급격히 전세가 바뀌었다.


적들이 남궁연을 집요하게 노리며 위협적으로 몰아가자, 추양건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추양건이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남궁연을 대피시켰다. 자신의 목숨보다 남궁연의 안위가 더 중요한 추양건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어."


내가 회귀 전 경지를 모두 되찾았다손 치더라도, 전력 차이는 여전하다. 고작 절정 초입으론 이 전세를 바꿀 수 없을 테니.


이 말인즉슨,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거란 뜻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충분히 해볼 만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에겐 지난 30년간의 수많은 경험이 있으니까.


나는 결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흑음천서로 살면서 배우고, 익히고, 느꼈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이 표행을 무사히 끝마칠 것이며.


내가 세월을 거슬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이번 습격에 스러져 간 남궁연에게 없었던 미래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22시 20분 + 주말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8.25 1,775 0 -
24 24화 NEW +2 9시간 전 664 32 13쪽
23 23화 +3 24.09.16 1,639 51 12쪽
22 22화 +4 24.09.13 2,107 43 11쪽
21 21화 +3 24.09.12 2,091 42 13쪽
20 20화 +4 24.09.11 2,111 46 13쪽
19 19화 +6 24.09.10 2,241 45 12쪽
18 18화 +3 24.09.09 2,380 46 12쪽
17 17화 +4 24.09.08 2,589 53 13쪽
16 16화 +5 24.09.07 2,932 55 12쪽
15 15화 +5 24.09.06 3,049 58 11쪽
14 14화 +2 24.09.05 3,188 55 13쪽
13 13화 +3 24.09.04 3,213 60 13쪽
12 12화 +4 24.09.03 3,287 61 12쪽
11 11화 +2 24.09.02 3,378 58 12쪽
10 10화 +4 24.09.01 3,480 67 13쪽
9 9화 +2 24.08.31 3,559 64 11쪽
8 8화 +2 24.08.30 3,699 67 13쪽
7 7화 +3 24.08.29 3,930 65 11쪽
6 6화 +18 24.08.28 4,239 76 12쪽
5 5화 +2 24.08.27 4,311 87 12쪽
4 4화 +4 24.08.26 4,544 84 13쪽
» 3화 +4 24.08.25 5,214 90 13쪽
2 2화 +5 24.08.24 6,164 101 13쪽
1 1화 +6 24.08.23 7,307 11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