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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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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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18.




마교(魔敎).


저 멀리 신강에 위치한, 그 이름만 들어도 천하의 무인들 모두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악귀들의 집단.


한때, 천하를 피로 물들이며 잔혹한 기세로 무림을 지배했던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공포의 대명사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무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남궁무상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먼 산자락을 응시했다. 그의 왼손이 무의식중에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곳에는 과거 마교와의 결전에서 얻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욱신거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창밖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이 남궁무상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악몽과도 같았던 그날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혈육의 피로 붉게 물든 대지, 창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울려 퍼지던 지인들의 비명과 절규 그리고 마교도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


흉참한 마교도들 앞에 하나둘 쓰러져 가는 세가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졌다.


"아, 아···."


귀를 틀어막아도, 눈을 감아도 소용없었다. 이 끔찍한 기억은 마치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처럼 그의 가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남궁무상은 자신을 괴롭히는 심마(心魔)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없이 검을 휘둘렀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수련에 매진한 덕에 제법 어린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그 심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탁.


남궁무상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차가 마치 얼어붙은 자신의 마음과 같다고 느껴졌다. 언제쯤, 이 심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추 호위는 지금쯤 도착했겠지."


마교의 준동에 대비하기 위해 추양건을 숭산(嵩山)으로 보낸 지 벌써 칠주야.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에 무림맹 창설을 제의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앞으로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그날의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무림맹이 만들어 져야 했다.


하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남궁무상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아버지, 저 연입니다."


조용히 문이 열리며 남궁연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것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 연아.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찾아왔느냐?"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너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느냐. 속 시원하게 말해보거라."


"그것이······."


남궁연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백무결에게 들은 이야기를 남궁무상에게 빠짐없이 전했다.


"······그게 정말이냐?"


"네, 아버지. 분명히 대별산의 깊은 숲속에 휘의 병을 낫게 할 영초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휘의 병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지라,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대별산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분명 놀라운 소식이건만, 남궁무상은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으흠....'


남궁휘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강호 전역을 샅샅이 뒤졌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대별산이라니···.'


대별산이라고 하면 합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 이 중요한 소식이 지금까지 세가에 전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산서성의 백운신의(白雲神醫)가 가문으로 오고 있는 이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딸을 대별산까지 보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연아, 내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지금 이 시점에 너를 대별산으로 보내는 것은 무리다.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할테니, 이만 물러가도록 해라."


"예? 자, 잠시만요. 아버지! 왜 허락하실 수 없다는 겁니까? 휘를 구할 방법이 있다니까요!"


"저번에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 그때 뭐라고 했었지? 분명히 마지막이라고 말했었다. 다시는 이런 고집부리지 않겠다고."


"그, 그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가의 여러 사람들이 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다려 보자.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남궁무상이 부드럽게 타일렀으나, 남궁연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동생이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 저번 무극선령환을 잊으셨습니까? 그때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하셨지만, 결국 구했습니다. 여기로 가져오진 못했어도요."


남궁연은 그때가 떠오르는지, 눈을 질끈 감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져야 본전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대별산은 금방 다녀올 수 있습니다. 재빨리 가서 확인해 보고, 아니라면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으흠······."


남궁무상은 얼마 전에 있었던 습격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비록 큰 피해 없이 무사히 벗어났다지만, 만약 그때의 상황이 조금만 달랐다면 사랑스러운 딸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딸을 다시금 그런 위험 속으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남궁무상의 대답이 없자, 남궁연이 다시 한번 간청했다.


"아버지가 어떤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휘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봐야죠. 최근 휘의 발작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제발, 제발 허락해 주세요."


그 말에 남궁무상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노심초사 백운신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사실을 딸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가문의 정보가 새어 나가는지 알 수 없는 지금에서는.


"나도 웬만하면 너를 보내주고 싶지만, 이번엔 널 지켜줄 추 호위도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너 혼자서 어떻게 거기까지 갔다 온단 말이냐. 위험하다. 허락할 수 없다."


"아버지, 제가 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도 꽤 오래 지났습니다. 감히 아버지 앞에서 고수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강호에서 절정이면 충분히 손에 꼽히는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저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남궁정은 이미 그 이전부터 강호를 주유했습니다. 벌써 창룡검이라는 별호와 오룡삼봉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아직도 세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지요."


"······."


남궁무상은 고뇌에 빠졌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딸을 보호하고자 하는 아버지와, 한 명의 세가원으로서 그녀를 인정해야 한다는 가주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침묵이 흐른 뒤, 남궁무상은 마침내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연아,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오너라. 다만, 이것만은 명심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비로소 남궁연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안전하게 다녀오겠습니다. 꼭 그 영초를 구해오겠습니다."


남궁무상은 기뻐하는 딸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 나도 부탁이 하나 있다. 너 혼자서는 안 된다. 내가 믿을만한 사람을 붙여줄 테니, 같이 다녀오거라."



*



그렇게 남궁연이 집무실을 떠나고, 남궁무상은 곧바로 남궁검영을 불렀다.


"가주님, 부르셨습니까?"


남궁검영이 집무실에 들어서자, 남궁무상은 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이런 상황이네."


남궁검영은 잠시 말을 잃고 눈썹을 찌푸렸다.


"대별산이라뇨? 말도 안 됩니다. 거기는 저희 창천대가 몇 번씩이나 샅샅이 뒤졌습니다. 가주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헛소문일 겁니다!"


"그래서 나도 의아해. 그곳에 휘를 낫게 할 영초가 있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지."


남궁검영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백무결, 그 아이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까? 저는 그 말이 너무 의심스럽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 아이가 꽤나 영특해. 세가에 들어오기 전, 여기저기를 떠돌며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하네. 아마 그 과정에서 들은 소문도 적지 않을 게야."


"······."


"나도 이런 이야기가 의심스럽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나. 부탁함세, 검영이."


"가, 가주님···."


남궁검영은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함께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이런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 이건 연이의 성장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 말에 남궁무상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남궁검영이 지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나는 늘 불안해. 남은 두 아이마저 지키지 못 할까봐."


남궁검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모님의 일은······.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남궁무상은 그제야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검영이. 자네가 함께라면 마음이 놓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남궁검영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다만, 문밖으로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들어올 때와 다르게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



다음 날.


의당에서 잡무를 보고 있을 때, 남궁진묵이 나를 불렀다.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이번에 연이와 대별산에 간다고 들었다. 거기에 휘를 낫게할 영초가 있다지? 혹 그것의 이름을 들었느냐?"


"네, 구지선엽초라고 휘의 마비 증세에 도움이 되는 영초라 들었습니다."


"구지선엽초! 그래, 그 물건이라면 충분히 휘를 낫게 할 수 있겠구나."


남궁진묵의 눈동자에 어딘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건 아마도 의당의 당주로서 휘를 고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어르신, 제가 꼭 영초를 구해와서 휘를 낫게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론이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자, 여기 받아라."


남궁진묵은 내게 작은 목함을 내밀었다. 나는 그 목함을 바라보며 순간 멈칫했다. 이 작은 상자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별 거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소천단(小天丹)이다."


그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소천단이요?"


남궁진묵은 마치 오다 주운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내게 건네줬지만, 소천단은 결코 이런 대접을 받을 물건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요상단(療傷丹)으로는 쓸만할 것이다. 아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영약이란 단순히 내력을 증진하는 데만 쓰는 게 아니다. 주화입마나 내상 같은 위급 상황에서 요상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기도 했다.


무릇 무림인이란 무공을 위해서 양잿물도 마시는 족속이다. 그런데 날 위해서 이런 귀한 걸 선뜻 내어주다니···. 남궁연 이후로 이런 감동을 또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여기, 이것들도 함께 가져가거라."


이어서 남궁진묵은 내게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금창약(金瘡藥)과 여러 약재들이 담겨 있었다. 모두 긴 여행길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다. 그냥 몸 건강히 잘 다녀오기나 해라."


남궁진묵은 파리를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일견 무심한듯 보이는 그의 행동 속에서 나를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네, 알겠습니다. 꼭 건강히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남궁진묵의 따스한 마음을 느끼며, 반드시 구지선엽초를 손에 넣고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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