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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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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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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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07.




"끄으응."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좁은 천장, 비단으로 덮인 푹신한 침구 그리고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금장 장식들.


―덜컹!


눈이 겨우 익숙해질 즈음, 이 모든 것들이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여긴 분명 마차 안이었다. 그것도 제법 고급스러운.


'암영단은 잘 마무리되었나 보네. 지금은 남궁세가로 가는 길인 건가?'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나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온몸이 굳은 듯,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서, 설마?'


번뜩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줄기로 쭉하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필이면 은형귀마의 장력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은 건가? 그래서 중요 기혈에 문제가 생겼고? 그 부작용으로 온몸이 마비된 건가? 괜히 나섰나? 내가 주제도 모르고 설친 건가? 회귀라는 일생일대의 기회에 들뜬 나머지, 자만에 빠져 이 사달을 만든 걸까? 젊은 혈기에 흥분해서 병신짓을 했고, 결국 병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어떻게든 잘될 거란 생각이 내 몸을 지배했었나 보다.


"이런 젠장!"


이번 위기를 멋지게 넘기고 남궁세가에 도착해, 보란 듯이 한 자리 차지한 다음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탄탄대로처럼 펼쳐졌던 찬란한 내 인생이 한낱 백일몽이 되어버렸다. 그 상실감에 불에 데인 듯 가슴이 쓰라리고 아려왔다.


"아, 안돼!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그래도 잘한 거야. 남궁연이 은형귀마의 장력을 맞아 죽기라도 했으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 그리고 내가 누운 이곳을 봐. 이 얼마나 화려한 마차야. 내 평생 이런 마차에 타볼 일이 있겠어? 이것만 봐도 남궁연이 얼마나 날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잖아. 남궁세가에 도착하면 생명의 은인이라며 앞으로 더욱 극진한 대우를 받을 텐데, 이거 완전 러······.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촌각도 되지 않을 잠깐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이리저리 바뀐다.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경박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아마도 추측해 보자면 지학의 어린 몸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노쇠한 정신이 활기 넘치는 육체에 끌려가는 듯한 기분. 들끓는 혈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크흠, 큼···. 조금 자중하자."


나는 잠시 숨을 돌리며 놀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하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은 잊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지.


그러다 불현듯, 이 사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기혈이 놀라 마비 증상이 올 수도 있다고 했었지."


신의의 어깨너머로 배운 의학 지식이 한줄기의 빛처럼 떠올랐다. 아마도 이 지식이 나의 활로를 뚫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라면 충분히 몸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나는 곰곰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신의가 분명히 그랬어. 갑작스러운 마비 증상이 있을 때, 자신의 내공을 이용해 주요 경혈을 자극하여 기혈의 흐름이 막히는 것을 경계하라고."


나는 신의의 가르침대로 지난 일주일 동안 간신히 모은 기운을 곧장 십이경근(十二經筋)과 사지백해(四肢百骸)로 흘려보내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응? 뭐, 뭐지?'


의식을 통해 하단전을 더듬어 본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공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콩알만 하던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집채만 하게 변해, 하단전에 묵직하게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내 내공이라고······?'


내 부름에 따라 단전에서 퍼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용처럼, 천천히 그리고 강렬하게 내 몸을 휘감았다.


온몸 가득 느껴지는 충만감에 손발이 떨리고 전율이 일었다. 가히 상상도 못 할 수준. 회귀 전 절정일 때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내공이었기에, 나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종종 강호의 절세고수들이 죽음의 위기를 겪고 나서 깨달음을 얻곤 한다던데, 지금 내가 딱 그런 상태인 걸까?


"그래, 그러면 이게 말이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없었다. 정말 그럴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살아생전 한 번도 겪기 힘든 죽음의 위기를 나는 무려 두 번이나 겪었으니. 뭐, 실제로 한 번은 죽기도 했고···.


내 나이 15세.


지금부터 다시 부지런히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남들에 비해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난 30년의 경험이 있으니, 몇몇 부분에서는 또래들보다 월등히 빠를 수 있겠지만, 내공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내공이란, 그 어떤 재능이나 노력으로도 단축할 수 없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니까.


이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남궁연만 봐도 알 수 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왜 제자들을 젖먹이때부터 조기교육을 하겠는가. 오랜시간 숙성되어야 명주(名酒)가 되듯이, 내공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그 깊이를 가지게 된다.


나는 명문대파의 상승 내공심법을 익힌 것도 아니었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무공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극선령환 같이 대단한 영약을 지원해 줄 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열심히만 하면 절세고수는 못 되더라도 남궁세가에서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나의 특이체질이 무공을 배우는 데에 발목을 잡더라도 지난 30년간의 경험이, 절정이었던 내 기억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내 몸속에 흐르는 막대한 내공은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고민 따윈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명문세가 자제들과의 10년 차이? 우습지도 않다. 오히려 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지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해 보고 있을 때.


―드르륵.


마차의 문이 열리며, 머리맡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무결아, 깼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남궁연이었다. 마차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찾아온 모양이었다.


"네, 형님."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남궁연을 바라봤다.


겉으로 볼 때 상처 하나 없는 게 나름 내가 은형귀마를 잘 막아선 것 같았다. 혹시나 장력의 여파에 휘말려 다친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음, 나쁘지 않아요. 다만, 몸이 안 움직여서 문제긴 하지만요."


"뭐? 몸이 안 움직여서 문제야? 푸, 푸흡."


몸이 안 움직인다는 게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모르겠다. 이게 웃을 일이야? 나는 얼마나 심각한데!


남궁연이 마치 그렇다고 대꾸하듯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그거 다른 게 아니라, 마차가 너무 많이 흔들려서 혹시나 너에게 충격이 갈까 고정해 놓아서 그래."


"네에? 고정이요?"


고개를 살짝 내려보니, 이불과 끈으로 꽁꽁 싸매진 몸이 보였다. 아, 그런 거였어? 이렇게 민망할 때가 있나.


"이제 네가 깨어나기도 했고, 길도 괜찮은 것 같으니까 풀어줄게."


어쩐지··· 사지마비라고 하기엔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잘 움직이고, 내공의 수발에 전혀 이상이 없더라니.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연달아서 벌어진 덕분에 내 정신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민망함을 감추려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전 또 몸이 안 움직여서 사지마비라도 된 줄 알았어요.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했는데, 이거 정말 다행이네요."


내 농담 섞인 말에 남궁연의 고운 아미가 하늘로 치솟았다.


"사지마비라니!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말이 씨가 된다는 거 몰라? 그리고 걱정을 하긴 왜 해. 내가 있는데! 네가 다쳤다고 널 모른 채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아?"


화를 내는 남궁연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더 예뻐 보인다. 날 바라보는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는 게 아마도 날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나 변태인가 왜 이런 게 좋지?'


생전 처음해보는 경험, 그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따뜻한 진심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형님은 괜찮아요? 어디 안 다치셨어요?"


"난 괜찮으니까 네 걱정부터 해.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 그걸 왜 몸으로 막아서고 그래. 크게 다쳤으면 어떻게 하려고."


"형님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나가더라고요."


"그, 그랬어?"


"둘 다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후후,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모두 잘 해결됐어. 다친 사람이 제법 많긴 하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은 없으니까, 큰 피해 없이 잘 막아냈다고 볼 수 있겠지."


"정말요? 휴우, 다행이다."


남궁연뿐만 아니라 표행단 모두에게 새로운 삶을 줬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사실 지난 30년은 내게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지도, 누군가의 복수를 하지도, 그렇다고 뚜렷하게 무언가 남기지도 못한 나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약간의 사고는 있었지만, 회귀하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켰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내 노력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단 말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지난 일주일간의 그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놈들을 놓친 건 아쉽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아, 다 잡진 못했구나. 자백침혼분이 있어서 충분히 일망타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쉽네.


남궁연이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직 많이 힘들 텐데, 조금 더 쉬고 있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날 부르고. 이제부터 내가 다 해줄게."


뭐? 전부 다 해줘? 후후.


나는 머쓱함에 느릿느릿 턱을 긁었다.


"아휴, 괜찮은데. 뭘 또 그렇게까지."


"아니야, 생명의 은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뭐 필요한 건 없어? 목 마르지 않아? 물 한잔 가져다 줄까?"


"아이고,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럼, 염치 불고하고 편히 쉬고 있겠습니다. 아, 형님! 이왕이면 시원한 걸로 부탁드릴게요."


"그래, 알겠어. 쉬고 있어."


"네, 감사해요."


아직 부상의 여파가 어떤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얻은 게 너무나 많았다.


남궁연의 은인이라는 칭호와 더불어 그녀의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막대한 내공까지.


사라진 줄 알았던 찬란한 미래가 다시 선명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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