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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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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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17.




"네놈이 백무결이냐?"


나는 천천히 검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엔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는 마치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도 되는 양, 오만한 눈빛을 숨기지 않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는 바로 남궁태 대장로의 아들이자,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는 남궁정(南宮楨)이었다.


"제가 백무결입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내 물음에 남궁정은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렸다. 그 미소에는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


"역시···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군."


어찌 모를 수 있으랴. 남궁정은 강호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오룡삼봉(五龍三鳳) 중 한 명이 아니던가. 물론, 남궁연이 본격적으로 강호에 나선다면 모두 부질없어질 이름이 되겠지만.


"유명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남궁세가에 몸담고 있으면서 '창룡검(蒼龍劍)'이라는 별호를 모를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절정에 이르기까지 두문불출(杜門不出)한 남궁연과 달리, 남궁정은 어린 시절부터 강호를 누비며 여러 명성을 쌓아올렸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은 모두 남궁태의 철저한 계획이었던 것 같다. 남궁정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봐야겠지.


"창룡검이라,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별호야. 앞으로 이 별호 뒤에 왕(王)이나 제(帝)라는 글자가 붙으면 더 좋겠군."


남궁정은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왕이나 제라···.'


나는 공명심에 찬 남궁정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대단하신 창룡검께서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건지요? 혹시 전에 보낸 이들의 복수를 하고자 오신 것은 아닐진대."


남궁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답했다.


"그놈들이 한 짓을 내가 사주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런 비겁한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너와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싶어서 찾아왔다."


일단 뒤통수를 쎄게 후려쳐 놓고 역공을 당하니. '사실 내가 그런 거 아니었어.' 뭐,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건가?


"정정당당?"


"그래, 정정당당. 나는 앞으로 나와 겨룰 백무결이란 경쟁자를 보려고 찾아온 거야. 타인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널 보고 싶었거든."


나는 뜻밖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경쟁자라니? 남궁연도 아닌 내가?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역시, 직접 보니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군. 찾아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


남궁정은 내 전신을 천천히 훑어보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께서 왜 널 경계하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 확실히 보통이 아니야. 몸이 탄탄한 것은 어릴 적부터 외공 수련을 따로 한 덕인가? 으흠, 그렇다고 하기엔 내공도 이미 상당한 수준이고··· 아까 잠깐 본 운검초도 이미 보통은 넘었어. 분명 한, 두 해 수련해서는 이런 경지에 오를 순 없겠지."


"······?"


남궁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훗, 모르는 척 하는 건가?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 또한 너의 전략일테니.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신중함."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남궁정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사람처럼 제 할 말만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그런 얕은 수는 통하지 않을 거다. 나는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가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허···."


"경쟁자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앞으로 많이 바쁠 것 같군."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했는지, 남궁정은 내게서 몸을 돌렸다.


"아, 내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나만 더 당부하마. 우리 둘 중 누가 후계자가 되든, 정정당당하게 겨루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피해는 없었으면 해. 내 목표는 남궁세가의 이름을 강호에 드높이는 것이지, 이런 권력다툼으로 가문을 망가뜨리고 싶진 않으니까."


참 어이가 없네. 갑자기 나한테 후계자라니···. 전의 두 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명색이 남궁세가인데, 정상인 놈이 하나도 없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마. 그럼 기대하지. 앞으로 좋은 승부를 펼치자고."


나는 멀어지는 남궁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놈이 차기 유력 후계자라니, 남궁세가의 앞날이 어둡다, 어두워."



***



노을이 서서히 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의당 일을 마치고 잠룡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룡각에 다다르자, 남궁휘가 밝은 미소를 띠며 나를 맞이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징계를 받으셨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그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 그놈들이 먼저 도발을 해오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이거 참, 동생보기 부끄럽네."


남궁휘는 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부끄럽다니요, 형님. 그놈들이 감히 누님에게 불경한 말을 내뱉었지 않습니까? 아마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이 대응했을 겁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흠칫하며 놀랐다. 불경한 말이라니? 남궁휘는 도대체 어디서 그 말을 들은 거지? 그놈들이 스스로 불리한 이야기를 떠벌릴 리도 없고,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이 일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는데···.


상념에 빠진 내게 남궁휘가 물었다.


"형님, 소제가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든지."


남궁휘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께서 의당주님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뭐?"


나는 다시금 놀랐다. 도대체 잠룡각에 누워만 있는 휘가 어디서 이런 소문을 들었단 말인가. 나도 오늘에서야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다급히 입을 닫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아닌 겁니까? 제법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는데, 형님의 표정을 보니 아닌 모양이군요."


내가 추측하기로 이 소문의 근원지는 아마 남궁태일 것이다. 저번 회의 때 의당주님이 날 대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문을 의도적으로 흘려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깔기 위함이겠지.


그나저나···.


"휘야, 너는 잠룡각에만 있으면서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듣는 거야? 나보다 네가 더 소문이 빠른 것 같아."


내 물음에 남궁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 방법이 있지요."


"방법? 그게 뭔지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될까?"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다.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이것이 이 험난한 강호에서 오랫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진리다.


"별거 없습니다. 형님과 똑같지요."


"똑같다···고?"


"그래도 오랫동안 세가에 살았는데, 그 정도의 귀는 제게도 있답니다. 형님만큼은 아니겠지만요."


"나만큼은 아니다라···. 역시 그건 휘 너였구나?"


내가 반문하자, 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많이 놀라셨습니까?"


"어, 조금."


어쩐지···. 최근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과 다르게 잡음이 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보통 이런 현상은 나 말고 누군가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당연히 남궁태 파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설마 휘일 줄이야.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궁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후훗, 처음에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형님이 이러한 일을 하고 계실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그런데 조금 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누님을 위한 것이 더군요."


병약하여 잠룡각에만 있는 줄 알았던 휘가 이렇게 능동적으로 음지에서 활약을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의외였다.


"이거 한방 먹었네. 내가 아주 대단한 아우를 두었어."


"그렇습니까? 그래도 형님만큼은 아닙니다. 저는 평생을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것을 형님은 불과 한 달 만에 이룩하지 않으셨습니까?"


남궁휘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은 중요치 않다, 휘야. 중요한 것은 그 결과와 진심이야.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내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나를 믿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감사하다."


"형님의 진심을 봤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끼이익.


조용하던 잠룡각의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단정한 자태로 들어선 이는 다름 아닌 남궁연이었다.


"두 사람은 나만 빼놓고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어?"


남궁연의 목소리에 남궁휘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누님, 오셨습니까? 백 형님과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남궁연은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 눈빛에는 나름의 애정이 묻어났다.


"그래? 무결아, 너는 근신이 끝났으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왔어야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레 답했다.


"힘겹게 찾아가니, 누님께서 무공 수련에 너무 열중하시느라 이 동생을 보지도 않으시더군요.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휘를 찾아온 겁니다. 주변에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던가요?"


나의 역공에 남궁연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 그건···."


여기에 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누님, 이제 무공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적당히 좀 하십시오. 그러다가 시집도 못 갈까 걱정입니다."


남궁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절정의 경지면 지금도 용, 봉이라 불리는 후기지수 중 최고입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시려는 건지···. 용봉지회에 나가면 어디 남자들이 무서워서 말이라도 걸겠습니까?"


그 말에 남궁연은 당황하며 발끈했다.


"무섭긴 누가 무섭단 말이야! 무섭다는 사람이 매번 무결이랑 함께 나를 놀려먹어?"


남궁연의 격한 반응에 남궁휘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그러나 웃음도 잠시, 휘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끄으윽."


나는 황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휘야, 괜찮으냐?"


남궁휘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괘, 괜찮습니다. 요즘 들어 발작이 자주 일어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참을 만합니다."


"으흠···."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발작이 잦아진다는 것은 남궁휘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


며칠 얼굴을 보지는 못 했지만, 최근 들어 표정이 밝아지고, 안색도 좋아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결코 많은 게 아니었어···. 천기영혈탕을 조금이라도 빨리 완성하려면 하루빨리 구지선엽초를 구해야 한다.'


휘를 위해서라도 조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궁연은 함께 남궁휘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조용히 잠룡각에서 나왔다. 아픈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것 뿐이었다.


잠룡각을 벗어나며 남궁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님, 절정에 오르면 세가의 임무를 받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데, 그것이 정말입니까?"


남궁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임무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긴 해. 그런데 그건 왜?"


"휘를 보니,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궁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젠가 하남의 대별산(大別山)에서 몸에 좋은 약초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비된 기혈을 풀어주는데, 무척이나 효능이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먹은 무극선령환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 약초가 휘의 병세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이야? 그 약초가 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꽤 신빙성 있는 정보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제가 나서서 그 약초를 찾아오고 싶지만, 현재 세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혹 괜찮으시면 누님께서 그쪽 방면으로 저를 데리고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궁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가 한번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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