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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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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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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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10.




남궁세가주의 집무실인 명도각(明道閣)에는 그 이름과 다르게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무극선령환에 관한 건 세가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던 사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의 습격도 충격이었지만, 내부의 극비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건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궁무상은 굳은 얼굴로 추양건을 바라보았다.


"그래, 습격한 놈들의 정체는 알아냈는가?"


추양건은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교'라는 언급을 볼 때, 옛 마교의 잔당으로 의심됩니다."


"뭐라? 마교의 잔당?"


의외의 이름에 남궁무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렇습니다. 저와 맞붙었던 상대는 사용하던 무공으로 짐작컨데 과거 악명을 날렸던 은형귀마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은형귀마라니! 어허, 그 노괴가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


일순 남궁무상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과거 마교와의 치열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가. 그 아픈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 정도 급은 돼야 자네 상대가 될 테지.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군. 마교의 준동이라니···."


"정말 무서운 놈들이었습니다. 아마 습격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표행단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그때 습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게 백무결, 그 아이라 했던가?"


"······네, 맞습니다."


"자네도 알아차리지 못한 습격을 그 어린아이가 먼저 파악했다?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도 그 점이 의아해서 조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그놈들과의 특별한 연관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으흠, 그렇다면 마교의 간자는 아니라는 말인데···. 그 아이, 자네가 볼 땐 어떻던가?"


추양건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궁무상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모르겠다? 거의 반년을 함께 했다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뭔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말인가?"


"굳이 콕 집어 말하자면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속이 너무 영악하여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가 없다라···. 이것 참, 재밌구만. 자네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이라니."


남궁무상이 턱을 쓸며 고심했다.


"으흠, 내쫓자니 무극선령환이 아깝고, 품자니 찝찝하고. 이거 완전 계륵이군. 양건, 자네는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혹 좋은 생각이 있는가?"


추양건이 신중히 말했다.


"우선, 가내에 두고 꾸준히 관찰함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가문에 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도련님··· 아니, 아가씨에게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보이니까요."


남궁무상은 잠시 더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알겠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 아이의 거취는 앞으로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자네가 곁에 두고 꾸준히 지켜보게."


"네?"


추양건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남궁무상을 바라보았다.


남궁무상은 그런 추양건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말했다.


"영악하다는 건 그만큼 머리가 좋고, 오성(悟性)이 뛰어나다는 말이겠지. 이제 자네도 슬슬 제자를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지켜보면서 마음에 들면 제자로 삼고, 그게 아니라면 제자를 들이는 연습이라 생각하고 무공의 기초를 닦아주도록 하게. 그래도 우리 연이의 은인인데 원하는 바는 들어줘야지."


"끄으응···."


"그렇게 싫은가?"


"아니, 아닙니다. 다만···."


추양건의 생각을 읽은 남궁무상이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가 우리 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 아이가 일부러 무극선령환을 뺏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그동안 고생한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지."


추양건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궁무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닐세,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하지만 상황이 어찌 됐든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연이와 표행단을 구한 아이야. 그 공을 더 높게 봐주게."


"그러면 휘 도련님은···."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산서성의 알아주는 명의가 세가로 달려오고 있으니."


추양건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산서의 명의라면 차기 신의라 불리운다는? 그분에게 연락이 닿은 겁니까?"


"그래, 화산의 그 친구가 힘을 써줬어. 꽤나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순간 추양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일랑 하지 말고, 그 아이 자네가 맡아서 잘 한번 키워보게. 또 모르지, 자네처럼 우리 남궁을 대표할 고수가 될는지."



***



의당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앞으로 묵을 방으로 안내받았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혹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제게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짐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물건들을 정리하며 잠시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남궁연이었다.


그런데 평소의 남궁연이 아니었다. 남장을 벗어던지고 마치 원래의 미모를 내게 뽐내기라도 하듯 예쁘게 차려입고 내게 다가왔다.


'우와.'


남궁연의 미모에 무심코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어, 형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남궁연이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뭐? 형님? 너 난 줄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이러고 온 게 놀랍지 않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아하하, 원래 형님이 여자란 걸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요."


남궁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너 놀라는 거 보려고 잔뜩 기대했는데···. 재미없어."


"아이, 형님. 사실 방금 말은 안 했지만, 선녀가 강림한 줄 알았다니까요. 내가 남궁세가에 온 건지, 드높은 선계에 발을 들인 건지 헷갈렸다고요."


나는 남궁연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입을 털었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는지, 남궁연의 표정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본 남궁세가는 좀 어때?"


"너무 좋아요.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여기 방도 깔끔한 것이 남궁세가로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그렇지? 거 봐.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잖아."


"에이, 형님이 처음에 방계 어쩌고 하면서 절 속여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남자도 아니고, 방계도 아니고. 거짓말만 하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죠."


"그, 그건···."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궁연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아챘다.


"아참, 이러고 있을 게 아니야. 너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네? 어디를요?"


"일단 따라와."


남궁연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남궁세가의 외각에 위치한 한적한 처소였다. 주변은 적막했고, 뭔가 알 수 없는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는 왜 데려오신 거에요?"


"너에게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친구라 함은···?"


"내 동생, 휘 말이야."


"아!"


안 그래도 남궁휘의 상태를 한번 봐야겠다 싶었는데, 따로 만날 구실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남궁연이 손수 나를 데리고 와주다니, 이것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휘가 널 보면 좋아할 거야."


남궁연은 어딘가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나는 그제야 남궁연이 날 남궁세가로 데리고 온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어찌하여 보잘 것 없는 내게 그토록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사실 회귀를 한 뒤, 남궁연이 여자인 것을 알아차리고 혹시 나에게 반해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을 했었는데, 그것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것 참, 민망하구만.'


나의 상념이 깊어질 무렵, 남궁연이 조심스럽게 처소의 문을 두드렸다.


"나야, 들어가도 될까?"


남궁연의 질문에 방 안에서 아주 가냘픈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그럼요. 누님, 들어오십시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강렬한 약향이 코를 찔렀다. 향이 너무 지독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찡그린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침상에 누워있는 소년, 남궁휘였다. 그의 병세는 한눈에 보아도 매우 깊고 위중해 보였다.


어찌나 심각한지, 볼이 움푹 꺼져있고, 팔다리가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움직이기조차 힘든 듯, 온몸이 뒤틀려 있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궁휘의 외모는 너무도 빛이 났다. 과거의 송옥이나 반안이 이럴까. 이대로 남궁세가 문을 나서도 남궁휘를 보기 위해 여자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 것만 같았다.


"누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먼 여정이었을텐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남궁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어딘가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응, 잘 다녀왔어. 몸은 좀 어때?"


남궁휘는 힘겹게 웃으며 답했다.


"여전합니다. 그래도 오늘 누님의 얼굴을 보니, 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


여전하다는 남궁휘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남궁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남궁휘에게 나를 소개했다.


"아차차, 내가 오늘 너에게 좋은 친구를 한명 소개해주려고 왔어."


"친구요?"


"응, 이번에 나갔다가 만난 아이인데, 아는 것도 많고 너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무결아, 인사해."


나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백무결이라 합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남궁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남궁휘입니다."


남궁연은 우리 두 사람의 경직된 태도를 보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두 사람 너무 딱딱하다. 자주 볼 사이인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 무결이가 형이고, 휘가 동생이니 편하게 형동생처럼 지내는 게 어때?"


나와 남궁휘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어색하게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네, 그러도록 할게요."


"무결아, 세가에서 지내면서 나 대신 휘에게 자주 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구가 되어줘. 휘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많이 심심해 하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형님. 걱정마세요. 제가 자주 들러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남궁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백 형님께서는 어찌 누님께 형님이라 부르십니까?"


"아, 그게 말이야···."


나는 지난 표행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놓으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래서요?"


남궁휘는 이야기에 푹 빠져 마치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던 것처럼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까 이 형님이라는 게 입에 붙어서, 누님이라는 말이 안 나오는 거 있지?"


남궁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에이, 형님도 참. 그래서 아직도 그런다고요? 오늘 백 형님 덕분에 저에게 새로운 형님이 생겼네요."


남궁휘의 표정은 한껏 밝아졌고, 그 표정 만큼이나 방 안의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틈틈이 남궁휘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그 증상이 어딘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낯익은 증상이란 말이지. ···예전에 신의가 말했던 심원고혼이랑 똑같아.'


심원고혼(深淵枯魂).


음양의 조화가 깨어짐으로써 몸속 기혈이 점차 고갈되고, 근육과 신경이 서서히 쇠락하는 병증.


시간이 흐를수록 온몸이 굳어가며, 말하는 것은 물론, 끝내는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마저 고통스러워진다고 한다.


이 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병세가 깊어질수록 의식은 여전히 또렷한데도, 몸은 점점 굳어져 손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남궁휘의 눈빛에는 그러한 절망이 어른거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내 이야기에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과거 신의가 연구했던 심원고혼이 여기서 도움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어? 잠깐만. 이거 설마···?'


문득, 과거 신의가 고치려 했던 사람이 남궁휘였단 사실을 깨닳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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