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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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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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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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20.




남궁검영은 남궁세가의 창천대주로서 가문의 중책을 짊어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있어선 타협이 없는 걸로 유명하고, 그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하고 철두철미한 인물이었다.


그의 손에 맡겨진 가문의 대소사들은 하나같이 중차대한 것들이었으며, 하루를 잘게 쪼개어 써도 항상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토록 바쁜 그였지만, 이번 남궁무상의 부탁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가주의 간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돌았다.


결국, 남궁검영은 어쩔 수 없이 남궁연의 호위를 맡아 대별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대별산은 예로부터 천하의 영기가 모이는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깊은 산속에는 수많은 기화요초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과거 남궁검영은 남궁휘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창천대의 전력을 기울여 대별산 전역을 철저히 수색했었다. 이런 곳을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대별산이라니···.'


과거의 수색이 모두 헛수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번 여정에 불만이 없을 수 없는 노릇. 남궁검영은 비록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백무결, 이 뺀질거리는 놈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지금 지쳐 쓰러진 백무결의 한심한 모습은 그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리 속도를 낸 것도 아닌데 벌써 힘들어하는 꼴이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놈이 추 호위에게 무공을 배운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가주님께서는 오성이 뛰어난 인재라 하셨으니, 이건 필시 놈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백무결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던 찰나, 남궁연이 조용히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당숙부님, 지금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습니다. 수색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무결이에게 경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궁검영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 뒤처지면 뒤처지는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을."


남궁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금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면 우리가 예상한 시일 내에 세가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휘가 위급한 상황인데,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숙부님, 부탁 드리겠습니다."


백무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남궁연의 진심 어린 부탁을 모른채 할 수는 없었다. 남궁검영은 부녀에게 부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결국, 남궁무상은 과거 자신이 정립한 경공의 구결을 백무결에게 전수했다.


"이제 경공을 익혔으니, 다시는 약한 소리를 하지 말거라. 앞으로는 전력으로 갈 테니, 뒤처지지 않도록 해라."


그리하여 일행은 다시 전력을 다해 대별산의 험준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지체된 시간만큼 속도를 높이다 보니, 이제는 남궁연마저도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이가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이대로는 어렵겠어. 그렇다면 백무결 이놈은 보나마나··· 으응?'


문득, 그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리 뒤처져 허둥대던 녀석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떻게···?'


하루가 다르게 점점 가까이 따라붙더니, 어느순간 자신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무결의 발놀림에서 느껴지는 힘과 속도는 며칠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미친! 이게 말이 되는 성취인가?'


일취월장(日就月將),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천재(天才),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남궁검영은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비로소 가주님께서 오성이 뛰어나다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놈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



어느덧 남궁세가를 떠나온 지도 보름이 지났다.


"하, 분명 여기 근처인데······."


옛 기억을 더듬어 대별산을 샅샅이 뒤졌건만, 며칠 째 비슷비슷한 풍경이 이어질 뿐. 아무리 걸어도 내가 알던 대별산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가 아는 대별산이 되려면 이곳이 최소 세 번은 바뀌어야겠구나.'


남궁세가를 떠날 때만 해도, 대별산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기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 기억과 전혀 달랐다. 너무 낯설었다.


며칠을 그렇게 헤매다 보니,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지쳐갔다. 아무리 내공이 뛰어난 고수라도 풍찬노숙(風餐露宿)이 길어지면 지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지금 내 옆의 남궁연도 힘든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응,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남궁연의 대답은 늘 그렇듯 담담했다.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는데. 나의 부족함으로 그녀를 더 고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남궁연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야, 무결아. 이게 왜 네 탓이겠니. 너도 확실하지 않다고 했잖아. 우리 조금 더 힘내서 찾아보자."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 말에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가 남궁연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건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 여기가 확실한 것이냐?"


"네, 맞습니다. 분명 제가 들은 건 이쪽 근방에 삐쭉 높게 솟은 바위가 있을 거라고···."


남궁검영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얼굴을 꿰뚫었다. 그 눈빛 속에서 무언가 낯익은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아, 추 교관님. 그립··· 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만으로 구지선엽초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할 즈음, 저 멀리 내 시야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대별산에 오르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구부정한 허리, 바닥에 고정된 듯한 눈, 낡고 초라한 옷차림에 망태기를 둘러맨 걸 보니, 이 산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약초꾼임이 틀림없었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약초꾼이라면 주변 지리에 훤할 테지.'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공손히 물었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네?"


약초꾼은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의심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깊은 산중에서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맹수보다 더 무서운 법이니까.


나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차분히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해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 주변 지리에 대해 조금 여쭙고 싶어서요."


내 행동에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는지, 약초꾼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딜 찾고 계십니까?"


"제가 알기로 이 근방에 하늘을 향해 칼날처럼 치솟은 바위와 그 근처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런 곳을 아십니까?"


내 말을 곰곰이 듣던 약초꾼이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딘지 알 것 같습니다. 천검봉(天劍峰)을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그 주변 풍경이 설명하신 그대로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 한 줄기. 천검봉 주변의 기운이 남다르다던 신의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네, 맞습니다! 바로 거깁니다!"


내 격한 반응에 남궁연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그곳까지 저희를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것이···."


약초꾼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걱정마십시오. 저희를 데려다 주신다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약초꾼이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좀 애매해서···."


남궁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는 아직도 머리 위에 높이 떠 있었고, 산길을 찾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처럼 보였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약초꾼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산이란 곳이 원래 그렇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쨍쨍해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어두워집니다. 특히, 아까 말씀했던 천검봉은 저조차도 함부로 갈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곳입니다. 곰이나 범 같은 맹수들도 많고, 길도 험해서 한 해에도 몇 번씩 저 같은 약초꾼이 죽곤 하지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서두르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은전 몇 개를 꺼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희가 조금 급해서 말입니다. 최대한 빨리 그곳을 찾아가고 싶은데요."


약초꾼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대답했다.


"으흠, 정 그러시다면 내일 아침, 저와 함께 일찍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때는 제가 그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약초꾼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집이 있는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약초꾼에게 천검봉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초꾼, 양호(楊浩)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동생은 어찌하여 이 험한 산 속을 헤매고 있는 겐가?"


"가족 중에 아픈 이가 있어, 귀한 약초를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소문에 그 근방에 영초가 있다고 하더군요."


양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깊어. 그런 진심이라면, 하늘도 도와줄 게야. 반드시 좋은 결실을 얻을 걸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 앞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이제 다 왔습니다. 바로 저깁니다."


양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열 가구 남짓 되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여정 끝에 마주한 이 산골 마을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남자 하나가 길을 막아섰다. 가죽 옷을 걸친 걸 보니, 사냥꾼임이 분명했다.


사냥꾼이 경계의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양 형,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양호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찾아오신 분들이네. 내일 일찍 마을을 떠날 테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으흠···. 알겠습니다."


사냥꾼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외부인을 오랜만에 보아서 그렇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양호는 우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의 집은 아담했지만, 아늑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저녁을 내어오겠습니다."


잠시 뒤, 양호의 딸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상을 내어왔다.


"여기··· 제가 아버지와 함께 정성 들여서 만들었습니다."


소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앞에 밥상을 놓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냉혈한 남궁검영도 웃음을 지었다.


"고맙구나. 아버지께 잘 먹겠다고 전해다오."


"네, 맛있게 드세요."


오랜만에 마주한 따뜻한 밥상. 비록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여기 물도 마시면서 천천히 드세요. 헤헷."


"소예야, 고맙다."


"별 말씀을요. 오라버니."


소녀의 이름은 양소예(楊素藝)였다. 소예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짓자, 남궁연이 뾰로통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좋아? 아주 좋은가 보네."


"귀엽지 않습니까? 이런 동생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남궁연은 느닷없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결 오라버니~. 여기 물 좀 드세요."


"누, 누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남궁연은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좋아하길래 똑같이 해줬더니. 칫."


"아이고, 제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누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그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그녀의 투덜거림을 받아넘겼다. 험난한 여정 속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양호의 안내를 받아 아침 일찍 천검봉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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