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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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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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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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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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5.




희미한 달빛 아래.

옅은 숨소리가 가득한 전장.


누구 하나 쉬이 움직이지 못한 채,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금방 싸움이 벌어질 거란 예상과 다르게 대치가 길어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양측 모두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으니. 표행단은 습격이 진짜였다는 사실에, 암영단은 되레 표행단이 역공을 해왔다는 사실에.


서로가 눈을 부라리며 탐색하기 바쁘던 그때, 은형귀마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 미묘한 대치를 깨뜨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내 이럴 줄 알았지. 표행을 이끄는 자가 벽파도라고 했나? 정말 대단하군."


감당키 어려운 은형귀마의 기세를 느낀 곽기룡이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그 말을 받았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선배님."


은형귀마는 전장을 훑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습격이 있을 거란 걸 어떻게 알았지? 이리 준비한 것을 보면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자칫 잘못했으면 도리어 우리가 당할 뻔했어."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기습에 실패했다는 사실이지요."


"뭐라?"


"선배님, 혹시 그냥 돌아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대로 정면으로 맞붙으면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당당히 맞서고 있는 곽기룡이었지만, 그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담담한 표정 뒤에 감춰진 떨리는 손이 그 증거였다.


어찌 무섭지 않으랴. 상대는 초절정고수인데. 아마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표행단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두려움을 억누르며 맞서고 있는 거겠지.


"이대로 돌아가라? 하하하, 내 벽파도가 이리 재밌는 사내란 걸 미처 몰랐구먼. 자신감이 대단해. 감히 내 앞에서 그런 깜찍한 소리를 하다니."


"······."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썰어야지 그냥 집어넣어서 되겠는가?"


그 말과 함께 은형귀마의 몸에서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은 곽기룡을 향해 곧장 쏘아졌다.


"커헉···."


곽기룡이 신음성을 내며 잠시 휘청거렸다. 아무리 경험 많은 절정고수라곤 하지만, 초절정고수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살기는 곽기룡에서 멈추지 않았다. 붓끝에서 먹물이 퍼지듯, 표행단 전체로 서서히 번져나갔다.


숨 막히는 듯한 압박감이 야영지에 내려앉았다. 마치 구화산 전체가 은형귀마의 손아귀에 놓인 듯했다.


"벽파도,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해보겠나? 양측의 피해가 어떻게 된다고?"


조소를 머금은 은형귀마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컥."


"으억."


"끄르르륵."


여기저기서 다양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곽기룡을 비롯하여 표행단 전체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으음, 이것이 초절정고수의 진정한 힘인가.'


살기를 간접적으로 받는 것만으로 손발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까무러쳤을지도 몰랐다.


지금 은형귀마는 회귀 전 혈수마군보다 낮은 경지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체감은 그보다 훨씬 심했다. 아마도 이것은 현재의 내 경지가 전보다 더욱 보잘것없기 때문일 터.


분명, 여기서 이 존재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이 사람을 제외하곤.


"도련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추양건이 남궁연의 앞으로 크게 한 발짝 내디뎠다.


―쿠웅.


그러자, 전장에 내려앉았던 압박감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오호."


느긋하게 좌중을 둘러보던 은형귀마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추양건에게 가서 꽂혔다.


그런데.


"으응?"


흥미롭게 추양건을 살피던 은형귀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이 맹하게 생긴 남자가 자신과 같은 경지의 고수라는 것을. 나 또한 직접 본 게 아니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다.


"거 심상치 않은 분은 누구신가?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안휘의 추양건이오."


"추양건?"


"아직 별호는 없소."


"허, 대단한 기세로군. 고작 표사나부랭이는 아닐 테고, 남궁인가? 호오, 남궁에서 아주 물건을 만들었어."


은형귀마가 고개를 돌려 곽기룡에게 말했다.


"벽파도, 내 하나 제안하도록 하지. 일이 이렇게 된 거 보물만 넘겨주면 조용히 물러남세. 어떠한가? 아무리 표물이 중요하다고 하나, 여기 서른 명이 모두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은형귀마는 추양건과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싸움을 피할 모양이었다.


"보물이라면 무엇을 말하시는 겁니까?"


"무극선령환."


"그, 그것은······."


곽기룡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그에겐 이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곽기룡이 표행단을 이끄는 표두이긴 하지만, 이 무리의 실질적인 수장은 따로 있었다. 자연스럽게 곽기룡의 고개가 남궁연을 향했다. 자신의 권한을 넘어선 결정. 남궁연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 시선에 어쩔 수 없이 남궁연이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섰다.


"선배님, 방금 조건은 저희가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누구? 아, 네놈이 남궁이로군. 저놈과 다르게 남궁 특유의 기운이 느껴져."


은형귀마가 남궁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남궁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그 나이에 벌써 절정이라니. 저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남궁세가의 저력이 대단해."


"칭찬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무극선령환은 저희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라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건 안 되겠습니다. 남궁이라는 이름을 봐서 선배님께서 먼저 물러나 주심이 어떠신지요?"


무극선령환이 단순히 누군가의 내공 증진을 위한 거였다면 양보할 수도 있었을 거다. 은형귀마의 말처럼 아무리 영약이 중요하다지만, 승산이 없는 싸움에 서른 명의 목숨을 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영약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휘. 생사지경(生死之境)을 오가는 그를 두고 어찌 무극선령환을 넘길 수 있으랴.


"가문의 이름으로 날 겁박하려는 겐가?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어디를 가더라도 이만한 보물을 또 구하기가 힘들거든."


"이번 한 번만 양보를 해주신다면, 저희 남궁에서 다른 귀물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그 말은 무엇이든 다 줄 수 있단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좋다."


은형귀마의 대답에 이대로 협상이 잘 되나 했지만.


"대환단. 가능하겠느냐?"


"그, 그건······."


이런 미친! 여기서 대환단을 들먹여?


혹시나 했다. 내가 회귀한 것처럼 이 협상 또한 기적적으로 타결되어, 다치는 사람 하나 없이 잘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은형귀마 노선배님께서 무려 대환단을 내놓으시란다. 이건 그냥 무조건 무극선령환을 가져가겠다는 말이잖아. 그러고 보면 혈교놈들이 참 개소리를 잘해.


남궁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환단은 지금,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걸 말씀해 주시면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저 남궁연,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배님, 믿어주십시오."


은형귀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일랑 하지를 마라. 내가 그 약속을 어찌 믿고 너희를 그냥 보내겠느냐? 혹 내가 믿는다 하더라도 과연 자네 조부가 가만히 있을까? 귀물을 구해주는 것이 아닌, 내 목을 가지러 오겠지. 그리고 나는 너와 저놈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다. 이대로 놔두면 장차 우리 교의 걸림돌이 될 터. 그 전에 싹을 자르는 게 맞겠지."


"교? 서, 설마?"


"이런이런, 내가 실언을 했군."


자기 입으로 똑똑히 '교'라고 해놓고선 실언이라니. 그 의도가 너무 투명하게 읽혔다.


"이젠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줄 수가 없겠구나.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으니."


"아, 아니. 자, 잠깐. 그런 억지가···."


"뭣들 하고 있는 게냐! 협상은 끝났다. 모두 죽여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암영단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며 표행단을 덮쳤다.


"젠장할!!!"


추양건이 상소리를 내뱉으며 마주 달려 나갔다. 표사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각자 검을 들고 추양건을 뒤따랐다.


오랜 대치 때문일까.


전투는 과거보다 더욱 치열했다.


―챙챙챙.


날카로운 금속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며, 전장은 일순간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허공에 피가 흩뿌려지고, 살점이 난무했다.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에 귀가 어지럽고,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 혼돈의 중심에서, 은형귀마와 추양건이 맞섰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감히 눈으로 쫓을 수도 없었다. 그저 그 후폭풍만 보일 뿐.


뭔가 번쩍일 때마다 주변의 나무가 쪼개지고, 사람보다 더 큰 바위가 갈라졌다. 반경 일장 이내가 초토화되었다. 경지가 낮은 무인들은 그 여파에 휘말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철저히 숨어서 나보다 약한 상대만 노렸다. 이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무공이 약하다.

뭔가 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이것이 지난 30년간 내가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어린 외모로 방심을 유도해 일격.

다친 다리로 동정심을 유발해 이격.

조금은 비겁하지만, 상대의 배후에서 삼격.


장차 정파의 주축이 될 '대 남궁세가'의 예비 일원이지만, 지금은 그저 전장의 공포에 떨며 살아남기 급급한 아이일 뿐.


'뭐, 다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잖아? ······괜찮겠지.'


비록 절정고수는 넘볼 수 없지만, 그 이하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실력이 떨어지는 암영단 대부분은 내 손에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활약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표사와 쟁자수가 한데 엉키어 용감히 싸웠지만, 부족한 절정고수의 숫자를 메울 수는 없었다.


―턱.


우리는 밀리고 밀려, 결국 야영지 끝자락에 세워둔 표마차에까지 닿았다. 분명 한참 앞에서 싸웠거늘. 벌써 여기까지 밀리다니.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숨이 턱 끝까지 차고, 온몸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하나둘씩 쓰러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사기는 점차 떨어져 갔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물러서지 마라! 쿨럭, 쿨럭."


아랫배에 큰 상처를 입은 곽기룡이 피를 토하며 독려했지만,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표, 표두님!"


···오히려 피를 너무 많이 토해서 역효과가 나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전후좌우 어디를 봐도 도망칠 곳은 보이지 않는다. 추양건, 남궁연의 분전에도 상황은 절망적이기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전멸이라는 단어가 어슴푸레 떠오를 때쯤.


―서걱.


―툭.


무언가 잘리고, 떨어지는 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뭐, 뭐야?"


"히이이익!"


표행단을 유린하던 암영단의 절정고수가 하찮은 쟁자수의 박도에 목이 떨어졌다. 소위 마구잡이로 휘두른 눈먼 검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이, 이럴수가!"


"도,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지쳤거니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장의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순간의 정적이 흐르고.


이름 모를 암영단이 크게 외쳤다.


"도, 독이다!"


"저놈들이 독을 썼다!"


"주변을 살펴라! 독을 쓰는 놈이 숨어있다!"


"모두 숨을 참고, 몸을 점검해라."


독을 쓴 건 한참 전이건만, 암영단은 알아서 혼란에 빠졌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됐다, 생각보다 효과가 빨리 나왔어!'


허둥지둥하는 암영단의 모습에 내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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