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최근연재일 :
2024.09.17 22: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81,324
추천수 :
1,520
글자수 :
133,319

작성
24.09.12 22:20
조회
2,089
추천
42
글자
13쪽

21화

DUMMY



21.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양호의 안내를 받아 천검봉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을 듯 높게 솟아, 지난 며칠간의 수색이 억울할 만큼 늠름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럼, 저는 유시(오후 5시)에 맞춰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세 분 모두 혹여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양호가 자리를 뜨자, 남궁검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눈에 띄는 곳을 며칠간 헤매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남궁검영의 지적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양호 형님은 여기 대별산에서 수십 년 동안 약초를 채취해 오신 분입니다. 당연히 저와는 길눈이 다른 법이지요."


"말이나 못하면···. 자, 이제 네가 이야기하던 곳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저기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천검봉 아래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을 가리켰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절벽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찔했다.


남궁검영은 그 광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으흠, 어지간한 경공이 아니고서야 내려가기 쉽지 않겠군. 이 아래에 동굴이 있다고?"


"네, 맞습니다."


문득, 과거 신의와 함께 이곳을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온몸을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고 온갖 난리를 치며 고생했었는데···.


그러나 나는 더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런 절벽쯤은 일취월장한 경공으로 손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럼, 가보자."


남궁검영이 먼저 경공을 펼치며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경신법은 강호 일절이라는 위명에 걸맞게 군더더기 없이 매우 유려했다.


"누님, 조심하십시오."


"응, 무결이 너도."


나는 남궁연과 함께 곧장 남궁검영을 뒤따랐다.


절벽 중간쯤 내려갔을 때, 바위 틈새로 동굴 입구가 보였다. 그곳은 전생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깁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동굴 입구에 내려선 남궁검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허, 이리 깊은 곳에 정말로 동굴이 있다니.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네 말이 맞았구나."


"이제야 제 말을 좀 믿어주시는군요."


동굴 속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손을 뻗어 앞을 더듬으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연아, 조심해라. 위험해 보인다."


"네, 알겠습니다. 당숙부님."


얼마나 걸었을까. 동굴 안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마침내 눈부신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와아아!"


"이럴 수가! 이런 곳이 있다니······."


거대한 폭포가 맑은 물을 쏟아내고, 그 물줄기는 작은 호수로 이어져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했고, 그 뒤로는 복숭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마치 신선들이 기거한다는 무릉도원과 똑같았다.


두 번째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여기서 휘를 치료할 영초를 찾아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는 남궁검영과 남궁연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진귀한 약초들이 널려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전생에 신의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약초를 모두 채취해 간 후였던 모양이다.


"누님, 여기 좀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다 엄청난 영초입니다. 이건 천년초이고, 저건 학령초 그리고 여기 하수오도 있습니다. 못해도 백 년은 묵은 듯 보입니다."


남궁연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배, 백년하수오라고? 와··· 그거 엄청 귀한 거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얼핏 보이는 것만 가지고 돌아가도 세가의 웬만한 사업장의 1년 치 수입은 족히 나올 것입니다."


"정말?"


남궁연은 눈이 휘둥그레져 날 바라봤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목적은 이 약초들이 아니었다.


남궁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그것들이 귀하다고 하나, 휘를 고칠 영초는 아닐 터. 네가 말한 영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계곡 안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저기 안쪽에 있을 겁니다. 이런 지형에서는 대개 좋은 기운이 안쪽으로 모이기 마련입니다."


나는 구지선엽초가 있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뛰었다. 분명 그때와 마찬가지로 저기 풀숲 한가운데에 구지선엽초가 자신의 아름다운 잎을 자랑하며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 ······입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구지선엽초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아직 여물지 못한 작은 구지선엽초가 있을 뿐이었다.


"어, 이게 아닌데···."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30년이나 빨리 와서 그런 것일까. 지금 여기 있는 구지선엽초는 약효를 발휘하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았다.


"······."


내 표정을 읽은 두 사람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남궁검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로는 부족한 거냐?"


"······네. 너무 작습니다. 약효를 제대로 발휘하려면 지금 이것보다 적어도 배는 더 커야 합니다."


"그런데 꼭 이것이 필요한 것이냐? 다른 약초들은? 그것들도 모두 진귀한 약초라 하지 않았느냐?"


"다른 것들도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 구지선엽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찾아낸 것은 분명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이 작디작은 구지선엽초로는 휘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이놈이 성초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모두가 망연자실한 채 서 있을 때, 내 눈에 무언가 특이한 것이 들어왔다. 구지선엽초 옆에 사람 손이 닿은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다른 약초라도 챙겨서 돌아가도록-"


"잠시만요!"


나는 급히 남궁검영의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 남궁검영이 멈춰 섰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내게로 향했다.


"왜 그러느냐?"


"여기, 뭔가 흔적이 있습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바닥을 가리켰다. 구지선엽초 주변의 흙이 어색하게 뒤집혀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흙을 만져보았다. 아직 흙이 완전히 굳지는 않았다. 분명히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흔적은 아닌 듯합니다. 대략 일주일 이내에 누군가 다녀갔습니다."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니, 희미한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를 보아하니 성인 남성의 발자국이었다. 그 깊이가 일정하지 않고, 보폭도 제각각. 이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거나, 매우 낮은 경지라는 뜻이었다.


남궁검영도 내 시선을 따라 발자국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군. 누군가 얼마 전에 다녀간 모양이야. 발자국을 보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로 보인다."


나와 똑같은 결론이었다.


"네! 아마도 이 흔적들로 볼 때, 구지선엽초 혹은 그에 준하는 약초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궁검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른 약초들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무공이 부족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 부피가 커지면 쉽게 움직일 수 없을 테니."


"맞습니다. 가장 비싼 구지선엽초만 챙긴 걸 보면, 약초의 가치를 잘 아는 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궁검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그자는 필시 약초꾼일 확률이 높겠군."


"네. 이곳을 떠나 양호 형님께 도움을 받아 근처 약초상을 뒤져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구지선엽초가 매물로 나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궁검영이 결단을 내렸다.


"서둘러야겠군. 그 전에 이곳에 있는 약초들을 모두 챙겨가자."


우리는 발 빠르게 약초들을 챙겼다. 누군지 모르는 그와 달리 우리는 이곳의 약초를 모두 들고 나가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



우리는 양손 가득 약초를 들고 양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주위에 붉은빛을 더하며, 산속의 긴 여정을 더욱 길게 느끼게 했다.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이미 도착해 쉬고 있던 양호는 우리가 짊어진 약초 더미를 보고 기함했다.


"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약초를 따오신 겁니까? 천년초, 천혈초, 학령초, 백년하수오까지? 이거 대별산의 귀한 약초들은 다 싹쓸이하신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양호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 정도면 엄청난 성과인데, 왜 그리 표정이 안 좋으신 겁니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원하는 약초를 못 구했습니다. 딱 그것만 없더군요."


"그게 뭐길래?"


양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구지선엽초입니다."


"아, 구지선엽초······."


그는 잠시 말을 망설이다가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했다.


"제가 평생을 약초만 캔 무지렁이지만, 세상일이 원래 그런 법입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런 정성이라면 근시일 내에 분명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혹시 이 약초들을 팔고, 구지선엽초를 구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날이 저물고 있으니, 오늘은 마을로 돌아가 쉬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보지요. 분명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양호의 말에 따라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 저거 뭐지?"


내가 걸음을 멈추며 마을을 가리켰다.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궁검영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불이 난 모양이군."


"네? 불이요?"


내공을 이용해 안력을 돋우자, 마을을 집어삼키는 불길이 또렷하게 보였다. 규모가 심상치 않았다. 검붉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서, 설마?"


그때, 양호가 딸의 이름을 외치며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갔다.


"소예야! 소예야!!!"


우리는 양호의 뒤를 쫓아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탄내와 피비린내가 섞여 코를 찔렀다.


"허억!"


"이, 이게 다 무슨···."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숨을 삼켰다. 한때 소박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집들은 불타서 재가 되어 있었고, 남은 잔해들은 삭막하게 무너져 있었다.


"소예야! 소예야!!!"


양호는 절망에 빠져 딸의 이름을 부르며 폐허 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그저 피투성이가 된 몇몇 건장한 남자들의 시체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남궁검영은 냉정하게 시체를 살피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상처의 단면이 매우 거칠고, 검의 궤적이 투박해. 무공을 제대로 익힌 자들의 짓은 아닌 듯하다."


그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비참함에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찌··· 어찌 이토록 잔악한 짓을···."


그 순간,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윽.···."


우리는 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잔해를 치워냈다. 그곳에는 어제 우리를 막아섰던 사냥꾼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었다.


"양, 양호 혀, 형님···."


"조, 종성아, 괜찮으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샤냥꾼 종성은 피를 토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사, 산적입니다···. 그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쿨럭."


양호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물었다.


"소, 소예는? 소예는 어디 있느냐?"


종성은 고통 속에서 힘겹게 대답했다.


"그놈들이···.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갔습니다. 소예도··· 그놈들이··· 커헉."


종성의 마지막 말에 양호는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아, 아···."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을 데려갔다면, 멀리 가진 못했을 것입니다. 서두르면 분명 잡을 수 있습니다!"


남궁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바로 추격하자."


우리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불타버린 마을을 뒤로 하고, 산적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22시 20분 + 주말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8.25 1,775 0 -
24 24화 NEW +2 9시간 전 664 32 13쪽
23 23화 +3 24.09.16 1,639 51 12쪽
22 22화 +4 24.09.13 2,107 43 11쪽
» 21화 +3 24.09.12 2,090 42 13쪽
20 20화 +4 24.09.11 2,111 46 13쪽
19 19화 +6 24.09.10 2,241 45 12쪽
18 18화 +3 24.09.09 2,380 46 12쪽
17 17화 +4 24.09.08 2,589 53 13쪽
16 16화 +5 24.09.07 2,932 55 12쪽
15 15화 +5 24.09.06 3,049 58 11쪽
14 14화 +2 24.09.05 3,188 55 13쪽
13 13화 +3 24.09.04 3,213 60 13쪽
12 12화 +4 24.09.03 3,286 61 12쪽
11 11화 +2 24.09.02 3,378 58 12쪽
10 10화 +4 24.09.01 3,480 67 13쪽
9 9화 +2 24.08.31 3,559 64 11쪽
8 8화 +2 24.08.30 3,699 67 13쪽
7 7화 +3 24.08.29 3,930 65 11쪽
6 6화 +18 24.08.28 4,239 76 12쪽
5 5화 +2 24.08.27 4,311 87 12쪽
4 4화 +4 24.08.26 4,544 84 13쪽
3 3화 +4 24.08.25 5,213 90 13쪽
2 2화 +5 24.08.24 6,163 101 13쪽
1 1화 +6 24.08.23 7,307 11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