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정육면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2 18:36
최근연재일 :
2024.09.17 22: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81,278
추천수 :
1,518
글자수 :
133,319

작성
24.09.03 22:20
조회
3,284
추천
61
글자
12쪽

12화

DUMMY



12.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새벽.


추양건은 천천히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맑았으나, 그의 가슴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듯 무겁고 답답했다.


"하아······."


시간이 꽤 지났건만, 마음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임무 실패에 대한 자책, 남궁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아직도 추양건을 짓눌렀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표행단을 구해준 백무결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남궁연을 하녀처럼 부리던 그의 밉살맞은 태도가 겹쳐 복잡미묘한 감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쉽지 않군."


추양건은 잡생각을 떨쳐내고자 검을 뽑아 들었다. 눈앞의 허공이 마치 자신의 삿된 마음인 양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길 잠시.


저 멀리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연무장 입구에 백무결이 나타났다.


백무결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추양건은 검을 거두며 냉정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이야기는 들었겠지?"


백무결은 고개를 들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추 대협께서 제게 무공을 알려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되었다."


백무결이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제가 스승님이라 불러야 하-"


추양건은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백무결의 얼굴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차분히 되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부르면 좋겠습니까?"


"그냥 교관이라 하거라. 나는 너에게 그저 적당한 무공을 가르칠 뿐이니."


"알겠습니다, 교관님."


추양건은 순순히 자신의 말에 따르는 백무결의 태도에서 내심 불편함을 느꼈다. 이놈이 이럴 리가 없는데.


"그간 배운 것에는 무엇이 있느냐?"


"무공이라고 할 만한 것은 남궁연 형님께 배운 운검초 하나뿐입니다."


"운검초라···."


뻔뻔한 백무결의 대답에 추양건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건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고작 운검초 하나로 지난 백무결의 실력을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습격 당시, 백무결은 자신조차 어지러운 상황에서 정확히 몸을 숨기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비록 조금 비열하긴 했지만, 치열한 전장에서 그쯤은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었다.


그의 검에 떨어진 적의 목이 몇이며, 도움받은 이는 셀 수도 없다. 최소 수십 년은 전쟁통에서 굴러먹어야 겨우 그런 모습을 보일까. 따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고작 운검초 하나?'


이러니 좋게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있나.


"한 번 펼쳐보아라."


백무결은 잠시 추양건의 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칼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지나칠 정도로 충만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그런 백무결의 모습에 추양건의 미간이 더욱 깊게 주름졌다.


'운검초따윈 우습다 이거지? 감히!'


그런데.


그 순간.


백무결의 손에서 운검초가 펼쳐지자, 추양건의 두 눈은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선대의 수많은 천재들이 어린 혈육을 위해 벼려 온 남궁세가의 기초무공, 운검초.


이 썩을 놈의 손에서 그 숨겨진 진의(眞意)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찌하여 이것이 이놈 손에서···?'


남궁연에게 배웠다고 했으니, 그 기간은 대략 여섯 달 남짓. 그마저도 표행 중 잠깐 틈날 때만 익힌 것일테니···.


절대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성취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게 아무리 기초무공인 운검초라 할지라도!


그러던 찰나.


―쨍그랑.


백무결의 손에서 돌연 검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백무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검수가 초식을 펼치는 도중, 목숨보다 소중한 검을 떨어뜨리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실수였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는데···."


추양건은 그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형편없군. 그걸 검이라 휘둘렀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백무결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간신히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끄러움과 혼란이 엉켜있었다.


"하아······."


추양건의 탄식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과 비례해 백무결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져만 갔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이 말은 단순히 백무결의 실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추양건의 눈에 보이는 백무결의 상태가 너무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놈의 정기신(精氣神)이 완전히 흐트러졌어. 혹 무극선령환 때문인 건가?'


원래 추양건은 백무결에게 남궁세가의 기본검법 중 하나인 대연검법(大衍劍法)과 대연심법(大衍心法)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를 보니, 그래선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지금 백무결은 경악할 만한 성취와 별개로 막대한 내공으로 인해 정기신이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이 간단한 운검초를 펼치다 검을 놓치게 된 것이다.


"이리 내 보아라."


추양건은 백무결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운검초라고 하는 단순한 기초무공이었지만, 그의 손에서 펼쳐지자 전혀 다른 경지의 무공으로 변모했다.


추양건은 고고하면서도 초연한 기운을 뿜어내며 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은 매 순간 간결하면서도 치밀하게 이어졌고, 그의 동작들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 자연의 이치를 담아내는 무예의 정수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어떠하더냐?"


백무결은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답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처럼 보였습니다."


추양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내가 보여준 이 운검초다. 이걸 목표로 꾸준히 갈고 닦아라."


남궁세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운검초는 단순한 기초무공이 아니었다. 이 무공은 세가의 어린아이들이 무공을 처음 익힐 때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정기신의 균형을 잡아주고, 몸을 바르게 해주는 숨겨진 효능이 있었다.


정(精)은 생명의 근본이자, 모든 기(氣)와 신(神)의 원천. 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이는 뿌리 없는 나무와도 같아, 아무리 푸르른 잎을 자랑하더라도 쉽게 쓰러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백무결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이 균형이었다. 거기다 운검초에는 동공(動功)의 묘리도 있는바, 이는 현재의 백무결에게 더없이 유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무결은 이러한 추양건의 생각과는 무척이나 다른 듯 보였다.


"그··· 교관님께서 보여주신 운검초가 대단한 것은 맞으나, 제가 알기로는 운검초는 남궁세가의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기초무공이라고 들었습니다. 혹 제게 다른 검법은 알려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추양건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이놈이, 깊은 뜻도 모르고!'


흉신악살(凶神惡殺) 같은 얼굴로 추양건이 목소리를 높여 백무결을 호되게 꾸짖었다.



***



"이런 멍청한 놈! 지금 걷지도 못하는 놈이 날겠다고 하는 것이냐? 고작 운검초 하나도 제대로 시전하지 못 하는 주제에! 쓸데없는 소리말고 내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오기나 해라!"


추양건의 노성(怒聲)이 천둥처럼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처음 듣는 그 거친 음성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어우, 깜짝아.'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하고 흘렀다. 날 보는 추양건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번들번들 살기가 어린 것이, 마치 아주 날 잡아먹을 기세였다.


'······괜히 물어봤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건데,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가 역시나 더 찍히기만 했다.


'첫날부터 이런 건 계획에 없는 일인데···.'


참으로 큰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는 다른 것을 할 필요 없다. 하루 종일 내가 일러준 것만 연습해라. 알겠느냐?"


그 흉참한 표정에 '아무리 검을 떨어뜨렸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아서라. 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속으로 생각만 했다. 생각만.


그 순간.


"대답!!!"


추양건의 목소리가 다시 날카롭게 연무장을 울렸다.


"네, 넵!!! 잘 알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이게 그토록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한 너의 본심이더냐?"


"아닙니다! 추 교관님의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말씀을 가슴에 하나하나 깊이 새기느라 대답이 늦어졌을 뿐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추양건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잘 들어라. 딱 한 번만 더 설명할 터이니. 검을 휘두를 때 절대 서두르지 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야."


추양건은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단호히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나는 꾹꾹 억눌렀던 울분을 터트렸다.


"으아아아, 젠장. 왜 하필 거기서 검을 떨어트려서!"


제일 자신 있는 운검초를 시전해 보라길래 이번엔 점수를 좀 따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점수는커녕 욕만 한 바가지 얻어먹었다.


명문대파의 체계적인 가르침을 기대했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들이나 배우는 운검초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운검초를 무려 30년간 휘둘렀단 말이다.


"내가 지금 운검초에 발목 잡혀 있을 때가 아닌데, 시간이 없어···."


과거 남궁무상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건, 내가 피안혈교에 입교했을 무렵.


대략 지금으로부터 2년 후.


그걸 역으로 계산해 보면 실질적으로 남궁휘가 죽은 것은 그 이전이라고 봐야 하고.


그렇다면.


'아마도 내게 남은 시간은 1년 남짓.'


그래서일까, 더욱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신의가 남궁휘의 치료에 실패한 것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올 줄 모르는 신의를 기다리기보다 최대한 빠르게 천기영혈탕의 재료를 확보해 연구에 들어가야 했다.


연구에 들어가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고, 재료를 구하려면 세가 밖으로 나가야 하고, 밖으로 나가려면 절정이 되어야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혀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우선, 추양건의 가르침에 따라 절정의 경지에 오른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한 번 올랐던 경지인데, 두 번째는 더 쉽겠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무리 내가 마음에 안 들기로서니, 설마 잘못되라고 그러시겠어?"


분명 오늘 본 추양건의 검은 과거 내가 봐왔던 검들과 많이 달랐다.


운검초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그의 초식을 본 순간 그 자신감은 완전히 박살 났다.


천외천(天外天), 광대무변(廣大無邊)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역이 거기에 있었다.


아마도 최대한 지운다고 했지만, 근본 없는 사파 무인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드러난 걸 테다. 그리고 이를 추양건이 정확하게 꿰뚫어 봤을 것이고. 그 때문에 기초를 더 다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연무장에 자리를 잡고 섰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다시 운검초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가 그토록 바랐던 명문대파의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겨 넣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세가 금지옥엽을 구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22시 20분 + 주말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8.25 1,775 0 -
24 24화 NEW +2 9시간 전 657 31 13쪽
23 23화 +3 24.09.16 1,634 50 12쪽
22 22화 +4 24.09.13 2,103 43 11쪽
21 21화 +3 24.09.12 2,087 42 13쪽
20 20화 +4 24.09.11 2,110 46 13쪽
19 19화 +6 24.09.10 2,241 45 12쪽
18 18화 +3 24.09.09 2,379 46 12쪽
17 17화 +4 24.09.08 2,587 53 13쪽
16 16화 +5 24.09.07 2,928 55 12쪽
15 15화 +5 24.09.06 3,047 58 11쪽
14 14화 +2 24.09.05 3,188 55 13쪽
13 13화 +3 24.09.04 3,211 60 13쪽
» 12화 +4 24.09.03 3,285 61 12쪽
11 11화 +2 24.09.02 3,378 58 12쪽
10 10화 +4 24.09.01 3,480 67 13쪽
9 9화 +2 24.08.31 3,558 64 11쪽
8 8화 +2 24.08.30 3,698 67 13쪽
7 7화 +3 24.08.29 3,930 65 11쪽
6 6화 +18 24.08.28 4,237 76 12쪽
5 5화 +2 24.08.27 4,311 87 12쪽
4 4화 +4 24.08.26 4,542 84 13쪽
3 3화 +4 24.08.25 5,210 90 13쪽
2 2화 +5 24.08.24 6,160 101 13쪽
1 1화 +6 24.08.23 7,305 11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