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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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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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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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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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액팅 스쿨

DUMMY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생각이 멈춰버린다.

지금 내가 딱 그렇다.

분명 깨기 바로 전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왜 깨어났는데 이런 곳이며 처음 보는 서양인들이 눈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

그것도 능숙하게 한국말로.


“♪환영합니다. 100번째 입학생이여♫”

“♪우리는 아메리카 엑팅 스쿠울♫”

“♪위대한 존재, 연기의 시작과 끝♫”


아, 꿈이구나.

드디어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이해한 나는 미소를 지었고 자신이 한 판단의 근거를 찾기 위해 손을 들었다.

꿈이라는 근거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자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고통이 없다면 그건 꿈이니까.


-짜악.


“어허, 왜 갑자기 자기 뺨을 치고 지랄인가?”


이러면 안되는데.

아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방 더.


-짜악. 짜악.


“스텔라, 아무래도 저 녀석 머리가 어찌 된 것 같은데?”

“성격이 특이하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날 두고 평가하는 코쟁이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시발, 꿈이 아니다.

뺨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은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지?

결국 이 상황을 설명 할 수 있는 건 눈 앞의 존재들이다.


“···저기, 이거 꿈 아닙니까?”


이야기를 들은 3명의 외국인은 배를 부여잡고 폭소했다.


“푸하하하하, 꿈인 줄 알고 그랬던 거구나.”

“호호호호, 언제나 동양인의 접근 방식은 신선하네요.”

“크큭, 뭐 꿈이라면 꿈이지.”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저들의 반응에 분노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늘 하던데로 나의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언제나 조롱의 시발점은 나였으니.


“딱 보아하니 또 자책이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만 놀리고 설명을 해주마.”


뭐야? 점쟁이인가?

아, 외국인이니까 심령술사라고 해야되나?


외국인은 헛기침을 한 후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은 꿈속에 존재하는 현실이란다..”


꿈이면 꿈이지 꿈속에 존재하는 현실이라니.

내 표정에 황당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실의 네 육체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고 너의 의식만이 이곳 꿈속의 세계에 있지 하지만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기에 현실과 같다 라고 할 수도 있다.”

“······.”

“그렇기에 이곳은 연기를 익히기에 완벽한 곳이다! 배우고 또 배우고 그렇게 연기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뜬금없는 기승전 연기라.

간단하게 요약하면 사고가 나서 의식을 잃은 내가 꿈속에서 연기를 배워야 한다는 소리.

참 개소리다.

차에 치인 주인공이 이세계에 간다 거나 회귀를 하거나 상태창이 생긴다는 건 들어봤어도 연기를 배워야 한다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내 눈 앞에 벌어진 모든 정황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계속 믿지 못하고 부정하기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겠지.


“그럼 그 연기만 배우면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 건 확실한거죠?”

“그렇지.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걱정 말게나 이곳의 시간은 현실보다 10배는 늦게 흘러 간다네.”


10배나 느린 시간, 이곳에서 10년을 보내도 현실에서는 1년만 지난 다는 건 요상한 세계에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제법 희망적인 이야기다.

다만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 기시감이 뭔지는 저들의 이야기에 답이 있었다.


“아까 100번째 입학생이라고 했는데 그 중 졸업생은 몇 명이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그들이 서로의 등을 떠미는 모습은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저 정도로 대답을 서로에게 떠미는 정도면 50명 미만? 최악의 경우 20명 미만 일지도.


“흠흠, 아직 졸업생은 한 명도 없다.”


시발.

나보고 졸업하고 현실로 가라며!

일단 침착하자. 지금 중요한 건 졸업하지 못한 99명의 상태다.


“그럼 그 입학생들은 어찌?”

“다, 현실로 돌아갔지.”


어라, 생각보다 긍정적인 결과다.

그래,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했다.


“현실의 육체의 시간이 다되어 돌아간 녀석, 훈련 중에 미쳐서 다시 돌아간 녀석, 뭐 어찌 됐든 다 돌아갔긴 했네.”

“혹시···입학을 물릴 수는 없나요.”

“에이, 그런 방법이 있었음 다른 입학생들도 다 물렀지. 없어!”


미치거나 늙어 죽거나의 이지선다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듯 하다. 시발.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이 날 포기하게 만들자.

나에게 최고의 핑계가 있지 않은가.

27년을 살면서 내 낮은 지능이 고맙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제가 정말! 정말! 연기를 하고 싶은데 제가 지능이 좀 많이 낮아서 학습 능력이 아주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쩔 수 없···.”

“괜찮아, 네 머리는 진즉 고쳐졌어.”

“에?”

“네 뒤통수를 찍은 돌, 그거 보통 돌 아니다.”


어쩐지 몸을 날린 자리에 있는 돌이라더니 역시 비범한 돌이었다.

단순히 재수가 없는 줄만 알았더니 알고 보니 겁나게 재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뒤로 넘어져서 코가 깨지는 수준이 아니라 살짝 발을 헛딛었는데 전치 6주는 나온 꼴이다.

이쯤 되면 말이 곱게 나오진 않는다.


“왜 하필 접니까! 전 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요! 왜 멀쩡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원래라면 현실에서의 사고로 자네는 죽을 운명이었지 하지만 우리 덕분에 한번의 기회를 더 부여 받은 거라네.”


어라, 그럼 죽을 걸 살려줬다는 말이잖아?

그럼 이거 고마워 해야되는건가.

그건 그거고 아직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그럼 왜 같은 백인이 아니고 뜬금 없이 동양인인 접니까?”


아주 합당한 질문이었다.

3명의 백인과 동양인 1명 이것보단 백인 4명이 위화감도 없고 딱 좋지 않나.


“어허, 시대의 흐름이 백인은 배제하는 분위기라네.”

“그럼 흑인으로 하면 되잖아요!”

“흑인은 이미 기득권이라네 미래에는 인어 공주도 흑인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

아리엘의 트레이드 마크라 하면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다. 그런데 흑인을 쓴다고?

장르가 호러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있나!


“아니, 그럼 영국 여왕도 흑인 배우가 연기 하겠네요!”


뭔데? 왜 눈알을 굴리면서 대답을 못하는 건데.

반박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의 반응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좋은 역할 만들어서 흑인들이 하면 되지 왜 굳이 기존 인물을 바꾼답니까?”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는 걸 어쩌겠나. 더군다나 흑인 중에 아주 걸출한 배우가 나와서 다 해먹는다네.”


세상의 변화라.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저기, 그 흐름이 동양권까지 오는 건 아니죠?”


내 불안한 기색을 느낀 건지 씨익 웃는 노인.


“한국에는 아주 유명한 위인이 있더군, 그 뭐드라 이순···.”


갑자기 판옥선 위에서 전장을 호령하는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레게 머리에 24k 금목걸이, 힙합 리듬에 맞춘 북소리···.

안돼!! 이순신 장군님은 아니 된다!


“아, 세종인가 하는 왕도 있었지.”


전하, 오늘 점심 수라는 치즈버거와 감튀이옵니다.

세종대왕이 기억, 니은 대신 알파벳을 부르짖을 걸 생각하니 피가 꺼구로 솟는다.

이래서 흥선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쳤던 거구나.

망할 할리우드 놈들이 한민족의 뿌리를 침식하다니! 이대로 가면 “자, 오늘은 이순신 장군님을 그려보겠어요.” 라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전부 검은색 크레파스부터 들겠지.

이렇게 된 이상 마틴 루터 킹을 내가 연기한다는 각오로 간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아니겠나.


“콜!”


나의 항복 선언과 함께 이후 진행은 막힘 없이 술술 흘러갔다.

우선 통성명부터.

3명 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것이 오늘 내일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요단강에 몸을 많이 담그고 있는 듯한 인물.

리 스타라스버그.

극중 인물에게 주어진 상황과 유사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감정적 동화를 일으켜서 메소드 연기를 한다나 뭐라나.

말도 어렵다.


다음은


홍일점 스텔라 애들러.

철저한 대본 분석과 상황에 어울리는 신체적 행동을 통해 연기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하도록 교육한다고 했다.

대본 분석이라는 것이 조금 겁나긴 했지만 그래도 3명 중 가장 부드럽게 이야기 했기에 그나마 편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샌님같이 생긴 샌포드 마이즈너.

리 스타라스버그와 스텔라 애들러는 뭔가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것 같았다면 샌포드 마이즈너는 전혀 달랐다.


“분석 따위는 배우의 본능에 방해가 된다! 연기는 직관적이고 자유롭고 즉흥적인 거다.”


상대 배우에 의해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야 말고 진정한 연기라는 그의 이론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케미 터진다’ 라는 이야기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떠 있는 푸른 포탈.


“그러니까 여기에 들어가라는 말씀이죠?”

“그렇지, 앞으로 수 많은 삶을 경험하게 될 거다. 그건 그대로 자네의 연기에 큰 자산이 될 거고.”

“포탈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삶을 산다니 신기하네요.”


리 스타라스버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짜 삶은 아니네, 가상의 인물이지 하지만 진짜라네.”

“그냥 영화 속 인물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또, 또 못알아 먹을 소리를 하시네.

가상 인물인데 진짜는 뭐야.

어차피 이런 건 백날 설명을 들어봐야 의미는 없다.

결국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법.


“그럼 갑니다!”




* * *




지운이 포탈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이내 포탈도 사라졌다.

그 모습은 본 세 사람은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이번에는 빨리 받아드렸네요.”


스텔라의 이야기에 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내 전략의 성공 아니겠나.”

“진짜 한국인에게는 직빵이네요. 이걸 뭐라고 하드라. 그···.”


샌포드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kukbbong.”

“아, 맞다. 그거 였어요. 발음도 힘드네.”

“99번째 제자 녀석에게서 좋은 걸 배웠지.”


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 연기에 혼을 불태우던 99번째 한국 입학생이 떠올랐다.

타고난 연기 재능, 훌륭한 발성까지 연기에 대한 모든 장점을 가진 학생이었다.

거기다 스승인 자신들에게까지 얼마나 잘했 던가.

수업 시간에 뺀질 거리는 서양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기에 최초의 졸업생은 그가 될 것이라 자부했었는데···.


“그 녀석이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은···.”

“어쩌겠어요. 사람이 다 가질 순 없으니까요.”


연기에 대해서는 완벽했던 no.99 하지만 끈기와 약한 정신력이 문제였다.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정말 그 녀석 만큼은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나약할 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겨우 60년도 못버틸줄은 꿈에서도 몰랐죠.”


No.99가 훈련을 받은 지 59년이 되던 해 그의 굳건했던 정신력은 무너져버렸다.

어떤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같이 웃고 떠들고 있었을 때였다.


“벌써 59년이나 흘렀네요. 이제 거의 끝자락에 다 온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롭네요.”

“그게 무슨 말인가? 이제 기본기 땠네만?”


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갑자기 동공이 죽어버린 그의 눈빛을.

한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린 no.99는 소시오패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대상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버렸다.


“요즘 뭐하고 있대요?”

“아직도 정신 병원에 있는 것 같더군.”

“하긴 사람들이 이곳 이야기를 믿어 줄 턱이 없죠.”

“참, 아쉬운 인재를 잃었어.”


씁쓸한 마음에 리는 오래전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실하게 났다.

분위기가 심해 끝까지 쳐지자 스텔라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인어 공주 이야기는 신선했어요.”

“그치?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 싶긴 했는데 속이려면 확실하게 블러핑을 쳐야지.”

“아무리 화이트워싱이 지금 화두라고 해도 그걸 믿을 줄이야.”

“그 녀석,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영국 여왕도 흑인 입니까 하고 물어보는데 내가 깜짝 놀랬다니까.”


세 사람은 소리 내어 웃었다.

말도 안되지 않는가.

인어 공주가 흑인이고 영국 여왕을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니.

뇌가 이상한 것에 절여 지지 않고 서야 맨정신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


“이제 더는 기회가 없는데 꼭 졸업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엄격하게 선발했지 않나.”

“신념과 정신력 하나 만큼은 지금까지 인원 중에 최고야.”


이미 포탈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세 사람은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포탈이 있던 자리를 그윽하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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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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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30 4 15쪽
»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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