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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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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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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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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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오디션 (2)

DUMMY

영화 열혈 형사 2차 오디션 대기실.

오늘 연기 할 대본을 받은 지원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대본을 분석하고 외웠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대본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 내 대본을 외우는 사람, 분석한 내용을 대본에 필기하는 사람.

각기 방식은 달랐지만 합격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만큼은 똑같았다.

그리고 그건 지운도 마찬가지 였다.


‘내심 불안했는데 그래도 붙었네.’


알딸딸하게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한 지운은 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질렀다.


-1차 붙었다!


지운은 오디션에 붙었다는 것 이상으로 기뻤었다.

확신.

오디션의 합격은 지운이 자신의 연기에 조금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에.


‘후우, 일단 대본부터 살펴보자.’


정해진 시간은 30분,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짧은 대사지만 파악해야 될 것이 제법 많았다.


대본

과잉 진압으로 감사를 받은 수황이 자리에 앉자 강력2팀 반장이 째려본다.

수황 : 좋은 아침입니다.

민철 : 좋은 아침? 내 행복한 아침을 말아먹은 놈이 좋은 아침?

수황 : (대수롭지 않는다는 듯이) 감사는 내가 받았지 반장님이 받았습니까?

민철 : 수황아 제발 사고 좀 치지 마라 어, 나도 무궁화 3개 좀 달아보자 응 제발 부탁이다.

수황 : (너스레를 떨며)나중에 내가 길가다 무궁화 보이면 꺽어드릴게

민철 : 아이고,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제명에 못산다.


수황은 민철을 뒤로하고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는 미자를 본다.

수황 : 뭔데요?

상호 : 꽃뱀, 무려 별을 3개나 달고 있는 화려한 분이지.

미자 : 내가 왜 꽃뱀이야!

상호 : 돈을 3억이나 뜯어냈는데 꽃뱀이지!

미자 : 그 새끼가 나 좋다고 준거라고! 사랑이 죄야? 어!


수황은 미자의 옆으로 다가간다.

수황 : 사랑? 죄 아니지.

미자 : 이 아저씨가 말이 통하네, 나 담당 형사 바꿔줘요. 이분으로.

수황 : 근데 돈이 사랑보다 우선이면 죄야.(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본다.)

미자 : 어머 이 아저씨 눈빛 봐, 여잘 치겠네?

수황 : 범죄자에 여자 남자가 어딨냐!(서류뭉치를 들고 미자의 머리를 후려친다.)


지운은 대본을 읽을 수록 오늘 연기할 수황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영화 열혈 형사의 주인공이자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 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형사.

이 짧은 분량의 대본에서도 수황의 캐릭터을 알 수 있는 정보는 많다.

윗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반골 기질의 성향이며 범죄자에겐 도덕적 잣대를 대지 않는다.

“과잉 진압”을 했다는 걸로 볼 때 꽤나 과격하고 주변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딱 형사물에 어울리는 캐릭터네.’


답답한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 날 수 없는, 그렇기에 관객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캐릭터.

식상한 만큼 확실한 검증이 된 스타일이다.

지운은 눈을 감고 조용히 캐릭터를 조형하기 시작했다.




* * *




“뽑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욕을 담은 인사와 함께 6번째 지원자가 밖으로 나가자 김태훈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연기를 곧잘 하는 지원자였지만 사람을 확 끌어들이는 임펙트가 부족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내는 건가?”

“감독님 욕심 맞아요.”


시큰둥한 표정의 김혜은 작가는 답답한 현실에 옆자리에 앉자 있는 송윤아 대표를 째려보았다.


“이미 소문 다 났다구요, 수황 역에 강규민이 확정되었다고.”

“지금 분노의 형사 측에서 오디션을 하는데 그럼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요?”


시네마 벤쳐 대표 송윤아는 혜은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2년간 떠돌던 시나리오, 입봉작으로 올리게 되었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드려요.”


그랬다.

충무로에서 이리저리 떠돌던 열혈 형사 시나리오는 송윤아 대표의 눈에 들어 제작을 현실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희망편이고.

OC 기업에서 나와 투자 회사를 차린 송윤아 대표가 열혈 형사를 컨택 했다는 소문이 돌자 OC 기업의 투자 배급 사업부에서 열혈 형사와 비슷한 컨셉의 영화 분노의 형사에 투자를 결정했다.


유명 작가와 감독을 앞세운 분노의 형사 측은 열혈 형사에 비해 제작 규모가 훨씬 거대했으며 대대적인 배역 오디션까지 실시해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에 질 수 없다며 송윤아 대표는 맞불 오디션을 열었고 한술 더 떠 주인공 배역을 걸었다.

문제는 이미 주인공 수황 역에는 인기 배우 강규민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다른 배역으로 오디션을 열면 되는 거잖아요.”

“그럼 분노의 형사 측과 다를 것이 없잔아요.”

“왜 분노의 형사 쪽을 못이겨서 안달···.”


김혜은 작가는 말을 흐렸다.

이 바닥에서 유명했다. OC 총수 일가의 후계자 다툼은.

현재 OC의 이사이자 투자 배급 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는 송연아는 현 회장 송태훈의 뒤를 이를 1순위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이 시네마 벤쳐의 대표 송윤아.

그 둘의 앙숙 관계는 영화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건 누가 봐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잖아!’


자매의 후계자 경쟁에 치가 떨리는 혜은이었다.


‘안되겠어, 작가로서 이야기 할 건 해야겠어.’


투자자는 신이고 하늘이지만 이대로 가다 간 작품이 하늘로 가게 된 형국이라 혜은은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동안 여러 불만이 있었지만 이것 만큼은 꼭 이야기 해야 했다.


“꼭 주연을 강규민으로 해야 되요?”


그래 강규민이 인지도 좋고 연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지저분한 사생활과 3년전 거하게 친 음주운전은 인정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거대 소속사 TG가 아니었다면 끝나고 진즉 끝났을 배우였다.

김혜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첫 작품인 만큼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배우는 쓰고 싶지 않았다.


“강규민 정도의 인지도에 얼굴이면 작가님의 입봉작에는 넘치지 않나요? 저도 황규석, 주지현 이런 배우들 쓰고 싶죠 그런데 아시죠 그런 S급 배우들은 작가나 감독 따지는 거.”

“······.”


김혜은 작가는 말문이 막혔다.

송윤아 대표의 이야기는 틀린 말이 없다.

입봉작인 이름 없는 작가, 홍대병에 걸려 배우의 연기력에 목숨 걸다가 전작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김태훈 감독, 최악의 조합이다.


“양준호 캐디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김혜은 작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양준호 캐디(캐스팅디렉터)를 쳐다보았다.

혜은의 눈빛을 받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 대표님 말씀이 무조건 옳습니다.”


기회주의자 새끼.

김혜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혜은을 보며 김태훈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믿을 놈을 믿어야지.’


송윤아 대표의 꼭두각시 마냥 행동하는 양준호에게 저런 질문을 하다니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태훈은 나섰다.


“규민씨 쪽하고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니 배우 문제는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치만···.”

“나도 강규민의 연기력을 생각하면 엎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야. 어쩌겠어.”

“······.”


김혜은 작가 고개를 숙이자 송윤아 대표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말했다.


“연기력? 중요한 건 시나리오와 누가 출연하는 가에요 솔직히 잘나가는 배우나 강규민이나 연기력으로는 관객 입장에서는 별 차이도 없어요.”

“연기력은 중요해, 훨씬 몰입을 가능하게 하고···.”


송윤아 대표는 손짓을 하며 김태훈 감독의 이야기를 잘랐다.

저런 구닥다리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망하는 거다.

OC에 있으면서 수 많은 투자를 성공 시킨 경험이 있기에 자신이 있었다.

독립해서 처음으로 투자한 작품이기에 절대 망해선 안된다.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


“흔히 말하는 발연기가 문제지 기본만 하면 거기서 거기에요. 인지도에서 강규민은 우리가 기용 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에요. 이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이 안나왔으면 하네요.”


싸늘해 진 분위기.

아무도 토를 달진 않았지만 마음 속에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김태훈 감독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자자, 마지막 지원자 프로필이나 살펴봅시다.”


김태훈 감독의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은 지원자의 프로필로 향했다.


“페이스가 좋네요.”

“샤프한 이미지가 괜찮네요.”

“밋밋하지가 않아. 선이 굵어.”


얼굴에서 받은 기대감을 가지고 신상 정보를 보던 심사 위원들의 표정은 구겨졌다.

김태훈 감독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어, 37살?”

“이게 37살 얼굴이라고?”

“사진은 영락없이 20대 중반인데···.”

“설마, 과거 사진을 사용한 건가?”

“생각이 없는 친구네.”


모두가 불쾌함을 내비치고 있을 때 김혜은 작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사진으로 장난질 쳐봤자 오디션이라 의미도 없는데 아마 나이를 잘못 기재했나보죠.”

“그게 맞는 것 같긴 한데 뭐가 됐건 감점 요소야.”


자신을 선보이는 첫 관문이 프로필이다.

완벽하게 작성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한 판국에 오타를 냈다는 건 성의와 기본의 문제였다.


“이 사람 연기 경력이 하나도 없는데요?”


김혜은 작가는 뒷장이 또 있나 싶어 뒤적거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오디션의 마지막 1차 합격자는 프로필 실수에 경력도 없는 쌩 초짜였다.


“하아, 학원 수강 기록도 없는데···1차를 어떻게 붙었지?”

“특이사항 한번 봐 보세요.”

“10년간 식물인간?”


식물인간이라는 단어에 김태훈 감독은 지금까지 가졌던 불쾌함이 모두 사라지고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프로필로 볼 때 지원자는 연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았다.

무슨 사연으로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었을까?

10년만에 깨어나 뜬금없이 연기를 시작하는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당장 지원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다음 참가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무전기를 내려 놓은 김태훈 감독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디션을 보면서 이렇게 지원자가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지원자의 연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뼈속까지 영화쟁이인 태훈은 다양한 사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기에 기대하는 것이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지원자가 들어왔다.


“풉.”


같은 방향의 팔과 다리가 나오며 걷는 지운을 보며 김혜은 작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긴장한 모습에서 순수한 느낌이 들어 호감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7번 참가자 김지운입니다.”


송윤아 대표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사진 보다 더 괜찮은데?’


특히 눈빛이 괜찮았다.

살짝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은 뭔가 신비로운 느낌까지 풍기고 있었다.

물론 걷는 건 멍청했지만 상품성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김지운씨 긴장을 푸시고요.”

“예, 감사합니다.”


목소리, 발성 모두 합격점이다.

특히 중저음의 목소리는 김태훈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연기를 배운 적이 있습니까?”

“예.”

“그런데 따로 기재되어 있지 않네요?”

“그게.”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 지운은 난감해졌다.

‘꿈속에서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다. 그렇다고 스승님들을 없는 존재로 하기도 싫었다.


“지인들에게 배웠습니다.”

“아. 지인분들이 이쪽에 계신가보네요.”

“네.”


김혜은 작가의 질문이 끝나자 김태훈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내었다.


“프로필에 보니 힘든 경험을 하셨던 것으로 나왔는데.”

“예, 10년간 누워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연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왜 연기를 하고 싶냐라···

단순하게 연기를 배웠기에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뭘 배워도 느렸고 자신감이 없던 지운에게 연기는 처음으로 성장하는 기분이 들게 해줬다.

즐거웠다.

그 긴 시간 동안 즐겁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연기는 지운에게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연기를 하는 것이 즐거우니까요.”

“흐음.”


덤덤하게 이야기 했지만 지운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김태훈 감독은 그 진심을 보았다.


“좋습니다. 아주 기대가 되네요. 지정 연기를 하도록 하죠.”

“예.”

“대본을 보고 하셔도 됩니다.”

“다 외웠습니다.”


김태훈 감독은 놀람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대본 없이 시작하는 지원자가 한 둘은 아니었다.

그중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외워서 한다고 해도 가산점 같은 건 없으니까 편하게 보고 하세요.”

“아닙니다. 대본을 들고 하면 거추장스러워서요.”


어쩌겠는가 본인이 외워서 하겠다는데.

김태훈 감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지운은 연기를 시작하기 앞서 심사 위원들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리얼하게 해도 됩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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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열혈 형사 (6) 24.09.13 43 4 13쪽
19 열혈 형사 (5) 24.09.12 54 5 13쪽
18 열혈 형사 (4) 24.09.11 63 6 12쪽
17 열혈 형사 (3) 24.09.10 60 5 14쪽
16 열혈 형사 (2) 24.09.09 61 5 13쪽
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69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1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0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1 4 13쪽
»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0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4 3 12쪽
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7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5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29 4 15쪽
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1 톱스타를 품에 안았다. 24.08.26 18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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