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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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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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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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형사

DUMMY

신나게 혼잣말을 했는데 옆에서 누군가 나올 때 그 뻘줌함은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아···.”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지연은 자신의 치부가 들킨 것 같아 울음이 쑥 들어갔다.


“누구?”

“아 소개가 늦었네요. 신인 배우 김지운이라고 합니다.”


지연은 이름을 듣자 단번에 누군지 알았다.

화제의 인물 아니던가.

송 대표의 낙하산, 사명감이 투철한 배우, 불성실한 배우, 연기력이 미친 배우, 분명 한 사람의 별명인데도 극과 극의 평가였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격이었다.


“여긴 무슨 일로?”

“선배님들 연기하는 거 구경하러 왔죠. 덤으로 그쪽 우는 것도 보고.”


지운의 이야기에 지연의 얼굴은 붉어졌다.

쪽팔림이었다.


“참 세상 살다보면 별에 별 인간들이 다있어요. 그쵸?”

“맞···.”


지연은 순간적으로 생각 없이 대답할 뻔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무리 미워도 자신이 담당하는 배우를 오늘 처음 본 사람 앞에서 까는 건 좀 그러니까.


“자리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있어요.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잘난 건 자기 덕, 안된 건 남의 탓을 하죠.”


지연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제는 개편이라고 배우면 배우편을 들지 않나 보통?

신인 배우라면 당연히 강규민과 친해져야 하니 오히려 자신을 핍박하는 것이 더 좋을 텐데···.


“저기 그런데 왜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잘생기고 배우인 것을 떠나 옆에서 웃고 있는 이 인간의 뇌 구조가 궁금했다.


“저도 많이 당해봤거든요.”

“고생이라고는 안해 본 얼굴···.”


지연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운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삶의 고뇌를 느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저 같은 신인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는 지운의 표정은 해맑게 변했다.

사람의 눈빛이 어쩜 저리도 투명하고 순수할 수 있을까?

분명 낯선 사람이기에 경계를 해야 하지만 마치 7살 꼬마 아이 같은 눈빛에 지연의 경계심은 무너져내렸다.


“힘내세요. 전 그쪽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요.”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처음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항상 자신이 틀렸다고 이야기했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그저 참으라는 말 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나중에 욕하는 연기나 좀 가르쳐 주세요.”

“에에! 저 욕 못해요!”

“어휴, 방금 제가 똑똑히 들었는데 귀에서 피날 뻔.”


뭐지 이 말도 안되는 친화력은?

지연은 자신이 불과 몇분 전에 본 사람과 웃고 떠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이해가 안되는데···.

상대방과 농담을 주고 받고 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앞으로 자주 마주 칠 텐데 보면 인사하기입니다.”

“네, 그래요.”


걸어가면 손을 흔드는 지운을 향해 지연은 뭐에 씌인 사람 마냥 같이 손을 흔들었다.




* * *




지운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진짜 오지랖 부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구나.

솔직히 자신의 성격은 변했다.

예전의 설명이 안되는 성격에서 이제는 굉장히 합리적인 성격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꿈속에서의 경험은 그정도로 강렬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걸 보면 그냥 예전 김지운 그대로다.

그나저나 일상 생활에서도 연기를 하는 건 고쳐야 하는데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최적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나도 모르게 연기를 해버리니 참.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일상파 연기?


혼자 미친놈 마냥 낄낄대던 지운은 어느 새 현장을 체크하던 김태훈 감독에게 도착했다.


“지운씨 다들 배우들과 인사는 다 했어?”

“예, 한분 빼고는 다했어요.”

“누구?”

“규민 선배요 바쁘시더라구요.”

“그래? 곧 촬영 시작 할거니까 옆에서 모니터링이나 해.”

“예.”


잠시 후 촬영 시작을 위해 배우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이내 김태훈 감독의 고함에 모든 것이 멈추었다.


“강규민! 의상이 그게 뭐야! 패션쇼 나가냐!”


항상 배우들에게 존칭을 쓰는 김태훈 감독이 이렇게 말할 때는 매우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김태훈 감독이 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댄디한 느낌의 분장과 의상을 입고 나온 규민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까.


“아···.”


규민이 매니저에게 눈치를 주자 매니저는 김태훈 감독의 옆으로 뛰어가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저희 스타일리스트가 컨셉을 잘못 이해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상팀! 규민씨 쪽이랑 논의 안했어?”

“했습니다!”


모두가 매니저와 김태훈 감독에게 주목되어있을 때 지운은 눈은 규민의 스타일리스트를 찾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이 쩍 벌어진 그녀가 보였다.

이내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지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이제 분위기 좋게 갑시다.”


현장을 다독인 김태훈 감독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제 첫 촬영이다. 아까는 너무 화가나 고성을 질렀지만 내심 후회가 되긴 했다. 시작부터 주연 배우 기를 죽여봤자 좋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의상 교체로 시간이 조금 소비되었지만 촬영 현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지 않던가.


“선우야 시작하자.”

“예.”


대답을 한 김선우 AD(조연출)는 슬레이트를 든 채 소리쳤다.


“촬영 시작합니다. 1에 1에 1”

-딱!


드디어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규민은 자신 있었다.

소속사 연기 트레이너에게 오케이 싸인이 날 때까지 연습을 했다.

특히 이 첫 촬영씬은 더욱 만전을 기해 준비했다.

첫인상이 끝까지 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에 잘한다는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요량이었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껄렁껄렁한 말투와 행동, 규민은 완벽하게 수황으로 변신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컷! 규민씨 뭔가 좀더 건들거리는 느낌이 살면 더 좋겠는데.”


그래, 첫 촬영이라 약간의 긴장으로 본 실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암.

규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에 1에 2.”

-딱!


“좋은 아침입···.”

“컷! 규민씨 왜 그래 좀 더 느낌을 살려보라니까!”


몸이 좀 덜 풀렸나?


“1에 1에 3”

-딱!


“좋은 아침···.”

“컷! 아니 규민씨 내 말을 못알아듣겠어?”


아니 그 느낌을 살려서 최대한 건들거리고 있잖아!

물론 속으로만 이야기 했다. 아무리 막나가는 강규민이라고 해도 감독의 눈 앞에서 저럴 수는 없으니까.


“1에 1에 7.”

-딱!


“좋은···.”

“컷! 안좋다고! 안좋다고!”


고작 경찰서 내부로 걸어가서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단순한 컷이다.

그런데 벌써 NG가 6번이나 났다.

그게 진짜 대사를 씹었거나 실수를 했다면 이리 억울하지도 않겠지.

고작 느낌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속 NG가 나니 규민도 슬슬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독님 조금 쉬었다 하시죠.”

“30분만 쉬었다 합시다.”


규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주 많이.


“감독님, 규민씨 연기가 이렇게 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촬영 감독도 답답했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냥 걷다가 대사 하나 치는 거에 이리 하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알아, 아는데···.”


김태훈 감독은 뒷말을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김지운의 연기는 달랐다고!’


미칠 노릇이었다.

하필 오디션 당시 지운이 연기 했던 씬이다. 이미 김태훈 감독의 머릿속에 가득 차있는 그때 그 연기와 비교를 하다 보니 도무지 규민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때 그 연기를 봤는데 이걸 만족 할 수 있겠냐고···.’


김태훈 감독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괜히 옆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지운을 흘겨봤다.

기준치가 너무 높아져버렸다.

분명 강규민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했던 것 보다 더 괜찮았다.

하지만 수황 그 자체였던 지운의 연기는 넘사벽이다.


‘지운씨에게 살짝 조언을 해달라고 해볼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 김태훈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큰일 날 소리.

자존심 빼면 시체인 것이 배우 아니던가 그것도 자존심이 하늘 같이 높은 강규민이다. 그런 강규민에게 신인 배우인 지운에게 조언을 구해라?

이건 촬영 엎자는 이야기다.


‘어휴, 이게 복덩이인지 짐덩이인지 당최 알 수가 없네.’


타는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는 지운을 보니 괜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방법은 없어, 최대한 기준치를 낮추자 낮추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자, 규민의 연기도 나쁘지 않잖아!’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 규민이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김태훈 감독이었다.


다시 재개된 촬영.


“컷!”

“컷!”


규민의 입장에서는 야속하겠지만 ‘컷’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 아른 거리는 지운의 연기가 당최 사라지지 않는 김태훈 감독이었다.




* * *




볼살이 핼쑥해진 김태훈 감독.

근 3일간의 촬영에서 하도 ‘컷’을 외쳤더니 목까지 다 쉬어버렸다.

감독의 상태가 이러니 다른 스태프들도 모두 예민 MAX 상태였다.

마치 누구 하나 걸리면 죽인다는 느낌이다.


“지운씨 기대해도 되겠죠?”


목소리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애절한 목소리, 김태훈 감독의 심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선 체크는 했죠?”

“예.”

“오늘 포인트는 소독제로 거칠게 손을 비비는 거에요, 마치 더러운 것을 모두 씻어내듯이 빡빡!”


행동까지 시범을 보이는 김태훈 감독.


“손소독제는 건우의 성격을 드러내는 포인트에요, 더러운 것을 혐오하는 건우에게 오아시스 같은 물건이죠.”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짜 지운씨 때문에 지난 촬영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이거 지운씨가 치료해줘야해!”


뭔 소리야?

강규민 때문에 고생한 걸 뻔히 아는데 갑자기 내탓을?

지운은 슬쩍 김태훈 감독과의 거리를 벌렸다.

상태를 볼 때 아무래도 맛이 간 것 같다.


“감독님!”

“왜?”

헐레벌떡 달려온 김선우 AD는 숨도 고르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허억, 허억 소, 소품팀에서 이번에 쓸 손소독제 케이스를 분실했다고 합니다.”

“야이···.”


당장 근처 마트만 가도 있는 것이 손소독제였지만 재벌 3세 박건우가 쓰는 손소독제는 특별해야 한다는 김태훈 감독의 주장으로 특별 제작한 손소독제 케이스였다. 어차피 내용물은 다른 소독제를 넣으면 되니.


“분명 아침에 확인 할 때는 있었는데···.”

“됐고 지금 그런 이야기 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돼.”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미련스럽게 잃어버린 케이스만 붙잡고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심을 한 김태훈 감독은 신속하게 전달했다.


“일단 현장에 있는 손소독제 쓰고 카메라 앵글에서 최대한 안보이는 방향으로 가자고.”

“그리고 지운씨 일단 명품 손소독제 이야기 하는 대사는 빼야겠어.”

“소품팀 다음 촬영까지는 제작 가능하지?”

“일단 다음 촬영 때 그 대사를 넣을 수 있는 김 작가하고 논의 해볼게.”

“지운씨 대사 수정은 이렇게 하면 되겠지?”


지시를 하면서도 김태훈 감독은 아쉬움이 들었다.

명품 손소독제는 박건우를 보여주는 장치다.

전혀 명품일 필요가 없는 손소독제를 굳이 명품으로 구입하는 허황된 모습, 어차피 알코올 냄새 밖에 안나는 손소독제 냄새를 맡으며 ‘흐음, 확실히 프랑스제 알코올냄새가 찐해’ 하는 모습은 짐짓 무겁기만한 박건우에게서 허당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 작가가 열내겠구만.’


원래는 없었던 장면, 박건우의 매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추가된 씬이었다.

나름 지운을 위한 김 작가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크큭···.”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현성은 누가 들을까 몰래 숨죽여 웃었다.

바뀐 대본을 보고 얼마나 분통이 터졌던가.

배역이 바뀌자 건우 역에 추가되는 씬들, 이건 대놓고 엿을 먹이는 것이었다.


‘낙하산 새끼한테 좋은 일? 절대 못참지. 흐흐.’


현성은 결국 소품으로 준비된 손소독제를 훔쳤다.

지금 그에겐 작품이 잘되어 모두가 잘되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오직 지운을 끌어 내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성은 품안에 있는 설탕물이 든 병을 매만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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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열혈 형사 (6) 24.09.13 44 4 13쪽
19 열혈 형사 (5) 24.09.12 55 5 13쪽
18 열혈 형사 (4) 24.09.11 63 6 12쪽
17 열혈 형사 (3) 24.09.10 61 5 14쪽
16 열혈 형사 (2) 24.09.09 62 5 13쪽
» 열혈 형사 24.09.08 68 4 13쪽
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70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2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1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2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5 3 12쪽
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8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30 4 15쪽
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1 톱스타를 품에 안았다. 24.08.26 18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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