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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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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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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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첫 오디션 (3)

DUMMY

당돌했다.

‘리얼하게 해도 됩니까?’ 라니 얼마나 연기에 자신이 있길래 저런 건방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

마치 내 연기를 너희들이 감당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듯한 태도 아닌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투닥거렸던 그들은 이 순간 만큼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김혜은 작가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살짝 꺽인 고개,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태도였다.


“자신감이 넘치네요. 그럼 상대 연기도 우리가 직접 하는 게 어떨가요?”


김태훈 감독은 김혜은 작가의 제안을 냉큼 받았다.

연기에 제법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운의 태도에 난이도를 높이기로 결심했다.

연기를 잘 하기 위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다.

그 호흡이 만약 엉망이라면? 감정의 중심을 잡기 힘들 것이다.


“좋습니다. 송 대표님도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뭐 읽기만 하면 되는 거니 재밌겠네요. 한번 해보죠.”

“민철 역은 제가 하고 상호 역은 작가님이 해주시고 미자 역을 송 대표님이 하시면 되겠네요.”


심사 위원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지운을 지켜보았다.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 지운은 기억의 서고에서 오늘 연기할 수황 캐릭터와 가장 비슷한 인물을 찾았다.

형사 존 맥기어난.

NYPD의 골칫 거리이자 범죄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인물.

건들먹 거리며 능글 맞은 성격, 범죄 앞에선 물불 가리지 않는 태도, 수황과 딱이었다.

존의 기억과 능력, 감정 등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여기서 멈춘다면 아무리 비슷하다고 한들 지운이 연기하는 것은 결국 수황이 아닌 존이다.

대본 분석을 통해 알게 된 수황의 캐릭터에 맞게 존을 변형시켰다.

조금 더 능글 맞게, 동료 조차 믿지 않는 존의 성격을 동료에게 신뢰를 가진 인물로, 말투는 조금 더 거칠게, 범죄자 응징이라는 관점을 더 크게···


‘됐다.’


덧붙이고 때어내는 과정을 통해 지운이 생각했던 수황이 탄생했다.

내면 속에서 만들어진 수황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 * *




수황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양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살짝 굽은 허리, 팔자 걸음,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아,침 내 행,복,한 아,침,을 말,아,먹,은 놈이 좋,은 아,침.”

“반장님 어제 과음 했어요? 말하는 게 무슨 국어책 읽는 것 같네, 정신 좀 차려요.”

“······.”


강력계 1팀 반장 민철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딱 보니, 나 때문에 약주 한잔 한 것 같은데 감사는 내가 받았는데 반장님이 왜 심각하게 그래요.”


민철은 결심한 듯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수황아 제발 사고 좀 치지 마라 어, 나도 무궁화 3개 좀 달아보자 응 제발 부탁이다.”


수황은 민철의 이야기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민철의 심각한 표정과는 상반되게 수황은 여전히 건들거렸다.


“나중에 길가다가 무궁화 보이면 하나 꺽어 드릴게. 합치면 무궁화 3개 딱이네. 아 그렇다고 머리에 꼽지는 마요, 까닥하다가는 미친놈으로 오해 받으니. 크큭.”


민철은 분통이 터진 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이고,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제명에 못산다.”


민철이 울분을 토하건 말건 수황은 관심을 끊었다.

눈 앞에 새로운 먹잇감이 있었으니.


“상호형, 뭔데요?”

“꽃뱀, 무려 별을 3개나 달고 있는 화려한 분이지.”


상호의 이야기에 미자는 소리쳤다.

어색하게.


“내,가 왜, 꽃,뱀,이,야.”


수황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민철을 쳐다보았다.


“반장님 어제 얘랑 같이 술마셨어요?”

“······.”

“그게···.”


당황해 하는 민철과 미자를 위해 상호가 서둘러 나섰다.


“음음, 돈을 3억이나 뜯어냈으니 꽃뱀이지!”


모두의 시선이 미자의 입을 향했다.


“그 새끼가 나 좋다고 준거라고! 사랑이 죄야? 어!”

“이제 술 좀 깨셨나보네.”


수황은 여전히 건들거리며 미자의 곁으로 가 책상 위에 걸쳐 앉았다.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눈빛이 번들거렸다.

마치 먹잇감을 눈 앞에 둔 뱀과 같았다.


“그럼, 사랑이 죄는 아니지. 암!”

“이 아저씨가 말이 통하네, 나 담당 형사 바꿔줘요 이 아저씨로.”

“그런데 말이야.”


수황의 눈빛이 강렬하게 바뀌었다.


-꿀꺽


폐부를 뚫어버리는 듯한 눈빛에 압도된 미자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돈이 사랑보다 우선이면 죄야.”

“······.”

“너무 정곡을 찔렀나?”

“···어머 이 아저씨 봐, 여잘 치겠네?”


그 순간 수황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말아 쥐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범죄에 여자 남자가 어딨냐!”


고함과 함께 수황은 미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 * *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해맑은 지운의 인사.

평소 같았다면 수고했다고 답이라도 했겠지만 지운이 선보인 충격적인 연기에 모두 말문이 막혔다.


-툭.


미자를 연기했던 송윤아 대표의 선글라스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격을 맞은 송 대표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 쩍 벌어진 입은 충격의 여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예···일단 나가셔도 됩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김태훈 감독의 이야기에 지운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아무 말 없는 것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펼쳤기에 미련은 남지 않았다.


‘그래 할 만큼 했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던 지운의 눈에 출입문 옆에 있는 전등 버튼이 들어왔고 아무 생각 없이 전등의 불을 껐다.

없는 형편 덕분에 항상 근검절약을 외쳤던 부모님이 남겨준 습관이었다.


-탁.


“······.”

“······.”

“······.”

“······.”


어둠 속에 있던 그들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자신들의 놀란 표정을 어둠으로 감출 수 있었으니.


“이 사람 놓치면 절대 안돼요.”


가장 먼저 침묵을 깨뜨린 건 김혜은 작가였다.

그만큼 급했다.


‘무조건 수황이야.’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수백, 수천 번은 상상했던 인물이 바로 수황이었다.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인물, 그렇기에 다른 캐릭터보다 몇 배는 더 공을 드렸다.

그런 수황이 자신의 앞에서 살아 숨 쉬며 움직였다.

아니 자신이 그렸던 수황 보다 더욱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다.

이런 사람을 놓친다?

이건 그냥 영화를 접자는 이야기다.


“연기력이라는 것을 수치화 할 수 있다면 아마 방금 그 연기는 100점이겠지.”


연기 여파가 진즉 지나갔음에도 김태훈 감독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수황의 등장 씬에서부터 이미 전율이 느껴졌다.

대본에도 없는 디테일한 행동 하나까지 표현한 지운의 연기력은 그냥 미쳤다 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물며 국어책 읽듯이 대본을 읽는 자신까지 하나의 상황으로 접목시켰다.

이제야 그가 말한 ‘리얼하게 해도 될가요’ 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단순하게 자신의 연기를 리얼하게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 연기를 펼치는 상황 자체를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건 그냥 연기의 신이잖아!’


말아먹은 작품이 꽤 있지만 그래도 13년 차 감독이다.

그 말인 즉슨 내노라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꽤나 접했다는 이야기.

수 많은 배우 중 그 누구도 이런 감정을 품게 만든 이는 없었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죽어도 고다.


“김 감독님, 아까 연기력은 상관 없다는 이야기, 사과드리죠.”


어두컴컴한 오디션장, 송윤아 대표는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은 10차 선 고속도로 마냥 훤하게 뚫렸으니.


‘연기력이라는 건 무섭네.’


영화에 투자를 하며 이 바닥에 꽤나 오랜 시간 발을 담궜다.

하지만 연기를 해본 적은 없다.

가끔 이번 경우처럼 대본을 읽어 주는 경우는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냥 숨쉬듯이 대본을 읽은 것을 연기라고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지원자의 말도 안되는 연기력은 부끄러움과 조바심을 이끌어 냈다.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린 지원자 앞에서 평범하게 대본을 읽는 다는 건 마치 죄악처럼 느껴졌다.

결국 할 줄도 모르는 연기를 펼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연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이 이런데 만약 배우 대 배우로 상대한다면?


‘시너지가 장난 아닐거야!’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는 연기 차력쇼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하물며 스타성은 어떠한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

처음 등장할 때의 순박함.

막상 연기를 시작하면 돌변하는 모습.

태연스럽게 불을 끄는 모습까지.


‘뜬다. 이 사람은 무조건 떠.’


송윤아 대표는 결심했다.

반드시 영화에 출현을 시키겠노라.




* * *




강남 논현동 유흥 주점.


“자, 우리 강규민 배우님의 영화 복귀를 축하하며 건배!”

“건배!”

“아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해.”


규민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으면서도 속으로는 기뻐 미칠 것 같았다.

겨우 다시 출발점에 섰다.

승승장구하며 커리어의 금자탑을 쌓아갔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쌓았던 금자탑은 고작 음주운전과 별일 아닌 사생활 논란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억울했다.

자신은 유명인이 아니던가, 함부로 차를 맡길 수도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기에 운전대를 잡았을 뿐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비루한 국민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욕하기 바빴다.


‘내가 나라에 국위 선양을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음주운전 정도는 덮어줘야지.’


사생활 문제도 그렇다.

잘난 놈에게 여자 여럿 꼬이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굳이 죄를 따진다면 오는 여자를 안막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고리타분한 세상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뭐 알파 메일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렇지.


“야야, 술 더 따라.”


그래, 어차피 지나간 일 무슨 상관인가.

다시 잘나가면 그만인 것을.

규민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며 술잔을 비웠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얼큰하게 술에 취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


“박 팀장님이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하셨지?”

“야, 분위기 깨지 말고 나가서 전화 받아.”

“어, 미안.”


규민의 이야기에 매니저 준태는 최대한 굽신거리며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에이, 병신 새끼.”

“규민 형님, 화 푸세요, 여자들도 곧 온답니다.

“그래? 역시 진우 뿐이네.”


소속사 후배인 진우의 이야기에 규민는 굳었던 인상을 풀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규민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기는 없었으니.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며 값비싼 양주를 부어라 마셨다.


“저기···규민아···.”


통화를 하고 온 매니저 준태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규민의 이름을 불렀다.


“왜? 박 팀장이 술 마시지 마래?”

“아니, 그게 아니고···.”

“아 진짜 답답하네 그냥 말해 새끼야!”


한참을 고민하던 준태는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 했다.


“열혈 형사 김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는데···배역을 바꾸자고 하시네···.”

“뭐? 무슨 배역으로?”

“주인공 수황 말고 메인 악역인 건우로···.”


-짜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올라온 규민의 손찌검에 준태의 얼굴이 돌아갔다.


“야이 새끼야, 생각이 있는 인간이야? 내가 구설수에 올랐다가 영화판에 복귀하는 건데 악역을 해라고? 와아 이새끼 진짜 도움 안되는 새끼네.”


뺨이 얼얼했지만 준태는 어루만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차렷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괜히 티를 내면 아픈 척한다고 더 때리는 놈이 규민이다.


“박 팀장님도 안된다고 했는데 김 감독이 완강하게 이야기를 한다네, 대신 김 작가가 건우 역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시발, 악역이 매력적이어봤자 악역이지!”

“······”

“절대 안돼, 난 무조건 수황 역이야, 박 팀장에게 똑똑히 전해, 수황 아니면 안한다고.”

“어, 알겠어.”


준태의 인격을 완전히 뭉개버렸지만 규민은 부족한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TG의 힘을 이럴 때 보이란 말이야. 내가 그동안 벌어 준 돈이 얼마야? 어? 밥값 좀 해라고!”


준태는 이미 자숙 기간에 언론사 로비 금액으로 엄청 까먹었다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내뱉었다가는 오늘 두 발로 서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

그저 규민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작가의말

일교차가 많이 심해지네요.

우리 소중한 독자님들 항상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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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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