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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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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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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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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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들 그리고 (2)

DUMMY

“새끼야 도대체 언제까지 쫓아올 건데.”

“네가 병태 패거리를 막아 준다고 약속 할 때까지.”


질린다. 질려.

준혁은 엉망이 된 얼굴로 자신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지운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날파리 같은 이녀석은 윽박을 질러도 쥐어 패도 끊임 없이 귓가에서 날라다닌다.


“아, 이걸 더 쥐어박을 수도 없고···.”

“넌 힘이 있잖아! 네 말 한마디면 병태도 꼼짝 못해, 그러니 더는 반 애들 괴롭히지 못하게 네가 막아줘.”

“너 진짜 애들을 위해서 이러는 거냐?”

“어, 옳은 일이니까.”


미친놈이다.

히어로물을 너무 많이 봐서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힘 꽤나 쓰는 놈들은 만만해서 괴롭혔고 약해빠진 녀석들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괴롭혔다.

그런 동네북인 녀석이 오히려 애들을 구해달라고 이러고 있다니. 미친 것이 분명하다.


“네가 구해달라는 애들도 다 너 욕하는 건 알고 있냐?”

“알아.”

“혹시 착한 아이 증후군 뭐 그런건가?”

“착한 일하는데 증후군이 왜 나와.”


고집불통에 말도 안통하는 인간이네.


“너 괴롭힘 당하니까 벗어나 보려고 머리 쓰는 것 같은데 헛수고 하지 말고 꺼져.”

“나는 멍청하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괴롭힘을 당하는 거지만 다른 애들은 아니야!”


지운의 고함에 준혁은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입으로는 거짓을 내뱉을 수 있어도 눈은 오직 진실 만을 말하기에.

녀석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거짓이 아니라고 진심이라고.

이 미련한 인간은 진심으로 다른 애들을 위하고 있었다.


‘진짜 미친놈이었네.’


뭐 같은 세상에 이런 미친놈도 하나 있는 건 괜찮지 않을가?


“멍청한데 신념만 있는 놈은 위험하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준혁은 지운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런데 내가 그런 놈을 좋아해.”


준혁과 지운의 생각이 처음으로 일치한 날이었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어, 그냥 옛날 생각.”


이제는 볼 수 없는 지운의 활발했던 모습을 떠올렸던 준혁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크음.”


괜히 헛기침을 하며 감정을 추슬렸다.

이 인간들 앞에서 눈물이라도 흘렸다가는 두고두고 술안주 감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이번에 영화사 투자 건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수석에 타고 있던 변호사의 이야기에 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주호야 우리 고문 변호사에게 이야기 안했냐?”

“형님, 죄송합니다. 미쳐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주호의 살벌한 눈초리를 받은 변호사는 말을 삼켰다.


‘개버릇 남못준다더니···.’


아무리 합법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결국 근본은 조폭 집단이다.

돈에 혹해서 온 것이 벌써부터 후회가 되었다.


“형님, 오늘 신호빨도 잘받고 뭔가 운이 좋은 날 같습니다.”

“운이 좋은 날이라···.”


준혁은 자신에게 찾아온 작은 행운도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다.

이 작은 행운이 그 친구에게는 큰 행운이 될 수도 있으니.


“차 돌려라, 지운이에게 가자.”




* * *




지운의 마지막 연기를 본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여운이 가슴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래 이거다.

리가 추구했던 메소드 연기.

스텔라가 추구했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디테일한 행동 연기.

샌포드가 추구했던 상대 배우와의 완벽한 케미.

이런 것들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리의 말처럼 지운은 연기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냥 지운은 배역 그 자체였다.

그저 극중의 인물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더는 붙잡을 수 없겠구먼.”

“그건 우리 욕심이겠죠.”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해.”


이미 배우로서 완성 되었지만 그들은 지운의 연기를 더 보고 싶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토록 추구했던 연기의 끝을 비로서 볼 수 있게 되었기에 늙은 망령들은 차마 놓지 못했다.

그래서 온갖 핑계를 대며 지운을 붙잡았지만 이번의 연기로 더 이상의 명분은 없어졌다.


“no.100 아니 지운의 눈을 보니 진짜 보내줘야겠어.”


자신들의 욕심으로 붙잡고 있다는 걸 분명 지운도 알고 있다.

하지만 녀석은 단 한번도 투정을 부리거나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오직 묵묵히 연기를 펼칠 뿐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더 해달라고 해도 지운은 받아드릴거에요.”

“이정도면 착한 게 아니라 바보인 것 아닌가?”

“그게 지운의 진짜 대단한 점이죠.”


하긴 수백 명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건 어찌 보면 연기력 이상의 능력이었다.

연쇄살인마,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등 입에 담기도 힘든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모든 것을 느낀 다는 건 폭풍우 치는 망망대해를 돛단배 하나로 건너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동화되지 않고 자신을 지킨다? 그냥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저 연기를 지탱 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미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지운은 그들의 기대를 가볍게 부숴버렸다.

물론 좋은 쪽으로.

다양한 삶을 경험하며 오히려 지운은 완성되어 갔다.

마치 자신에게 없는 장점을 가져오는 것 마냥 성격과 인성에서 오히려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다.


“부처가 살았다면 딱 저럴지도.”

“딱 어울리는 표현이군요.”


동양의 신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십니까.”


어느새 감정을 추스른 지운은 세 사람에게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그렇게 배역에 몰입을 하는 것도 빠른 녀석이 빠져나오는 건 더 빨랐다. 아주 우사인볼트 저리가라다.


“네녀석, 욕하고 있었지!”

“아, 욕할 만한 껀덕지가 없었을텐데요.”


지운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행여 자만심으로 비춰 질 수도 있는 상황.

이 장소에 있는 그 누구도 자만심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력이 없는 자가 거들먹거릴 때나 자만심인거지 지운에게는 그저 충만한 자신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이제 슬슬 힘들어서 이 짓도 못하겠다.”


리의 이야기에 스텔라와 샌포드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해 애둘러 표현하는 세 사람이었다.


“지운아 한가지만 묻자.”

“예.”


이제는 속내를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성장한 지운을 보며 리는 쓴 미소를 지었다.


“왜 이 작품을 선택한 거냐?”


지운이 선택한 작품은 가벼운 오락 영화로 느낄 수도 있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꽤나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코믹에 가까운 일상 연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

연기력을 평가 받는 지운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

그렇기에 리는 지운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가 궁금했다.


“지금의 제 상황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니까요.”

“그건 그렇구나.”

“그런데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는 다른 작품이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지운은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연기에 난이도가 있나요?”


리는 지운의 대답에 절로 박수를 쳤다.

그래 연기에 높고 낮음이 있던가.

무덤덤한 일상 연기는 가볍고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를 무겁다 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표현하는 연기는 모두 어렵고 무거운 것이거늘.


“하하하하, 네가 이제 나보다 낫구나.”


리는 웃음을 멈추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눈으로 지운을 바라보았다.

그런 리의 반응에 스텔라, 샌포드도 의도를 알아채고 리의 옆에 섰다.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할 때다.


“지운아.”

“예.”


세 사람은 지운의 손을 잡고 동시에 이야기 했다.


“졸업을 축하한다.”


졸업이 확정 된 순간 의외로 지운은 덤덤했다.

그저 오랜 기간 자신에게 연기를 가르친 스승들과 옛 추억을 되새길 뿐이었다.


“어휴 연기 못한다고 어찌나 잔소리를 하던지 귀에서 피나올 뻔 했다니까요.”

“중요한 건 피는 안났다는 거지.”


“대본 분석 못했다고 몽둥이를 드신 건, 진짜 너무했어요.”

“다 사랑의 매란다.”


“파트너에게 주눅 들었다고 절대 졸업 못할 거라고 악담은 너무 심했다구요.”

“난 정말 네가 졸업을 못할 줄 알았지.”


돌이켜 볼 수록 구박하고 닦달한 기억만 떠오르는 것에 세 사람은 참 민망했다.

99번의 실패와 뒤가 없다는 절박함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운에게 이곳은 지옥과도 같았으리라.

갑자기 끌려와 연기를 강요했으니 가는 마당에 욕을 퍼부어도 겸허하게 받아드려야했다.


“진짜 지독하게 가르치셨어요.”


예상했던 원망이 나오자 리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제자에 대한 미안함과 아주 약간의 서운함이 담긴 헛기침이었다.


“그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승님들 덕분에 연기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지운은 허리를 숙이는 것을 넘어 세 사람에게 절을 했다.

절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지만 다양한 문화를 섭렵했던 그들이었기에 이 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고맙다. 우리를 이해해줘서.”

“제가 이해 안하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마음의 짐을 덜어낸 세 사람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고 이제는 정말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지금 껏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하며 수도 없이 푸른 포탈을 탔었지만 눈 앞에 있는 검은 포탈은 색을 넘어 풍기는 기운부터가 달랐다.


“뭔가 돌아가는 거면 좀 밝은 색 포탈로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은 슬픈 법이란다.”

“이제 돌아가는데 슬플 일이 뭐가 있어요.”


희희낙락거리는 지운에게 리는 그동안 미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뭐든지 결정적일 때 때려 박는 게 임펙트가 최고 아니던가.


“아, 참고로 돌아가거든 딴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배우가 되거라.”

“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0년.”


뜬금 없는 이야기에 지운은 샐쭉해진 눈으로 리를 쳐다보았다.


“10년 안에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 못타면 원래 운명대로 죽는다.”

“예에? 아니 그 무슨 개 같은···”

“그동안 배웠으면 성과를 내야지! 거 수상 소감 말할 때 우리 이름 빼놓지 말고!”


지운은 이대로는 못간다며 지랄 발광을 했지만 나이에 비해 짱짱한 세 사람에게 제압을 당했다.


“이딴 졸업이 어딨냐고!”


소리를 지르며 울분을 토했으나 피도 눈물도 없는 3인방에게 먹힐 리는 전무했고 그들은 노련하게 지운을 달랬다.


“원래 죽을 운명 한참을 더 사는 거니 네 입장에서는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

“네 연기력이면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그냥 따논 당상이지!”

“상을 못 타도 일단 10년은 더 사는 거잖아 개이득!”


반쯤 마음이 동한 지운은 서서히 닫히는 검은 포탈과 이번에 못가면 영영 못간다는 스텔라의 막타에 궁시렁거리며 결국 포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법이라고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지운이 사라지자 왠지 모르게 지금 이 공간이 더욱 공허하게 느껴지는 세 사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제자는 잘키웠어. 마지막에 스승이라고 절을 하는 것 봐.”

“동양에서는 스승에게 3번 절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화기애애한 순간 샌포드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어, 그놈 절 2번만 했는데?”

“감정이 격해져서 한번은 까먹었나 보죠.”

“그래 2번이나 3번이나 크게 의미가 다른 건 아니겠지.”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스승이나 제자나 서로 통수 치는 건 똑같았다.


“그나저나 그놈 마지막 대사가 계속 생각나는 구만.”


리는 조용히 지운의 마지막 대사를 곱씹었다.


-In case I don’t see you (못볼지 모르니까 미리하죠.)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 * *




“임마, 형왔다.”


답이 없을 걸 알지만 준혁은 괜히 큰소리로 말했다.

기적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오늘도 신나게 주물러 볼···.”


방문을 열고 들어가던 준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


지운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표정과 함께 분명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10년만에 깨어난 지운의 입이 조금씩 움직였다.

꿈에서만 그렸던 상황에 준혁은 지운의 입에 온 신경이 쏠렸다.

기적처럼 10년만에 깨어난 지운의 첫마디는.


“···씨···발···오스···카···.”


27살에 잠든 지운, 37살이 되어 깨어났다.


작가의말

지운이 연기한 작품은

트루먼쇼(1998) 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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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69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2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0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1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4 3 12쪽
»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8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29 4 15쪽
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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