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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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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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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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겨진 자들 그리고

DUMMY

“지운아!”

“어,어머니···”


산발이 된 머리, 하얗게 질린 얼굴, 한쪽만 신은 고무 슬리퍼. 누가봐도 허겁지겁 달려온 듯한 몰골이었다.

자식의 사고 소식에 버선발로 달려온 지운어머니의 모습에 준혁은 가슴이 아려왔다.


“지운이 지금 머리 CT찍으러 갔어요.”

“아침에만 해도 멀쩡히 나간 지운이가 사고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니!”


임순은 아침에 연예인을 보고 오겠다며 웃으며 나가던 지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게 어찌 된 일이냐면···.”


준혁은 하나도 빠짐 없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자신이 지운을 부른 것 까지.


“······.”

“죄,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너 때문에···너 때문에 지운이가 두번이나···.”


준혁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어머니 말대로 자신 때문에 지운이 사고를 당한 것이 두 번째였다.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가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저, 정말···죄···송합니다.”


애처롭게 우는 모습에 임순은 그제서야 준혁의 몰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피로 물든 옷, 산발이 된 머리 그리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신발 한짝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준혁은 동네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다. 불량한 학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임순은 준혁과 어울리는 지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준혁이가 괴롭히는거 아니지?]

[엄마, 아니에요. 준혁이 이제 예전처럼 나쁜 짓 안해요. 저한테는 진짜 소중한 친구에요.]


친구라고 말하며 밝게 웃는 지운의 모습.

병실에 누워있던 모습만 떠올려도 가슴이 아려왔지만 전보다 더 밝아진 지운의 모습에 임순은 어찌 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사고가 날 뻔한 친구를 구하고 얻은 상처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 누군가를 원망하기 싫었다.

싫은 소리를 하면 지운의 숭고한 마음까지 뭉개는 것 같이 느껴졌으니.


그런 지운이 믿고 좋아했던 친구가 준혁이다.

임순은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준혁의 손을 잡았다.


“준혁아···.”

“흐흑, 흐흑.”

“아줌마가 잠시 정신이 어찌 되었나 보다. 우리 준혁이 때문이 아닌데, 아줌마가 괜한 소리를 했어, 정말 미안해.”


임순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감정들은 준혁의 심장을 더욱 옥죄었다.

차라리 욕이라도 퍼부었다면···.

차라리 손찌검이라도 했다면···.

임순의 따듯한 마음은 준혁의 감정을 완전히 무장 해제 시켰다.



“흐흐흑, 정, 정말 죄송···흐어엉.”


험상궃은 인상의 준혁은 아이처럼 목놓아 소리 내어 울었다.


“준혁아 네가 왜 죄송해, 그런 말 하지 말아. 우리 지운이 멀쩡하게 일어날 거야.”


임순은 준혁은 품에 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 * *




“또 거기 가는 거지?”

“어.”


지은의 매니저 현수는 답답한 마음에 백미러를 통해 지은을 쳐다봤다.

무심한 표정으로 창밖만 보고 있는 지은.

괴리감이 느껴졌다.

예의 바르고 밝고 배려심이 넘치던 지은이었다. 하지만 5년 전 사고 이후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언제나 사람 사이에 벽을 세우고 있는 지은에게 오늘 만큼은 이야기 해야했다.


“언제까지 이럴거야.”

“뭐가?”


퉁명스러운 대답에 현수는 노골적으로 쏘아붙혔다.


“사람이 왜 이렇게 날카로워. 이번에 이사님이 네가 출현하는 드라마에 우리 새끼 하나 끼워 넣는거 네가 날뛰면서 극구 반대했다며.”

“걔 연기력 엉망이야.”

“소속사 선배로서 좀 챙겨 줄 수 있잖아!”

“웃기시네 걔내들이 날 선배로 생각은 한데?”


늘 이런 식이다.

양보와 배려 따위 없는 모습.


“걔들이 너보다 나이 많잖아 그러니 그건 존중해줘야지.”

“참 웃겨, 연기 경력이 많아도 걔들이 나이가 많으니까 존중해줘야 하고 나보다 어린 애들한테는 내가 어른이니까 존중해줘야 하고, 그럼 난 누가 존중해주는데?”


지은의 이야기에 현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소속사 간판으로서 소속 배우들을 이끌어줘야 하는 지은은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은에 대한 뒷말이 항상 나왔다. 그건 지은의 귀에 고스란히 전해졌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하아,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고 팬들이 싸인 좀 해달라고 하는데 왜 안해주는데 조금씩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대신 사진 찍잖아.”


팬들에게 만큼은 5년 전과 다름 없이 잘하는 지은이었지만 딱 하나 싸인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번거로운 사진도 찍고 대화도 하고 다 하면서 말이다.


“아니 새로운 싸인 만든다고 그 고생을 해놓고 왜 안해주냐고.”

“내맘이야. 도착하면 깨워줘.”


눈을 감아버린 지은.

겉돌기만 했던 두 사람의 대화는 무거운 침묵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지운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오빠는 어때요?”

“늘 똑같지.”


순간 임순의 표정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본 지은은 더욱 밝게 행동했다.


“저번에 촬영 현장에서 먹은 아주머니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스태프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래? 입에 맞았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다음부터는 너무 많이 주문하지 말어.”

“집에 싸가지고 간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부족했다구요”


과장스럽게 행동하는 지은을 보며 임순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지은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운이 좋은 일을 했다는 걸 알지만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운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피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은 꾸준히 찾아왔다.


연예인의 흔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었다.

지운의 병원비부터 시작해, 퇴원 후 집으로 옮긴 지운에게 필요한 각종 의료기기를 구입해 보낸 것이 지은이었다.

매달 생활비까지 보내겠다는 걸 임순이 한사코 만류했다.


“새로 작품 들어가서 바쁠 텐데···.”

“에이, 오빠가 제 팬이잖아요. 혹시 알아요 제가 와있는 거 알고 벌떡 일어날지.”

“그랬으면 좋겠네.”

“앞에 신발 보이던데 아저씨도 왔어요?”

“응, 지운이 방에 있어.”


지은은 잘되었다는 듯이 양 소매를 걷히며 지운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밖에서 시끄러운 것이 딱 네가 온 것 같더라.”


투덜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준혁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나오고 이젠 국민 여동생이라고 못하겠네.”

“성인 되자 말자 그 딱지는 땠다고요.”


이제 어엿한 성인 된 지은은 아역 시절부터 갈고 닦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에 출현하며 성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주위 동료 중에 나 좀 소개 시켜 줄 사람 없냐?”

“거울을 보세요. 인상 보고 다들 도망가겠네.”


준혁은 툴툴 거리면서도 지운의 몸을 주무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빠는 어때요?”

“똑같지 뭐···근데 지운이는 오빠고 난 왜 아저씨나?”

“얼굴을 봐요. 얼굴을.”


준혁은 지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 같이 보는 얼굴이지만 신기했다.

32살의 자신과는 다르게 세월의 풍파를 피한 듯한 5년 전의 얼굴 그대로인 지운.

야윈 얼굴이 이 정도 인데 살이 오르면 오히려 더 젊어 보일 것 같았다.


“신기하단 말이지.”

“진짜 잘생겼어.”


지은의 중얼거림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인 자신이 봐도 지운은 잘생겼으니까.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지은이 차분해 지자 준혁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아오, 하도 주물렀더니 손이 아파 죽겠네, 교대!”


너스레를 떨던 준혁이 나가자 방안에는 의료기기의 소리만 울러 퍼졌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언제까지 누워 있을거에요···.”

“그거 알아요. 지금 껏 살면서 날 위해 나선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해 돈과 명성을 거머쥔 사람들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일을 지은도 고스란히 경험 했다.

역겨운 돈 냄새에 꼬이는 벌레들은 언제나 지은을 이용하려 했고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밝은 지은이었지만 속은 시커멓게 곪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 지운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너무 힘들어요···.”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은은 지운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 * *




죄책감은 후회를 동반하고 후회는 마음을 좀먹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과거는 잊지 않는 이상 언제나 귓가에서 속삭인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


그렇게 사람은 말라 죽는다.

임순은 누구보다 이 느낌을 잘 알았다.

어릴 적 또래 아이들 보다 느렸던 지운이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된 낮은 지능,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면 정상 지능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임순은 하루 종일 목 놓아 울었다.

지운이 겪게 된 모든 불행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고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운이 아니었다면 임순은 무너졌을 거다.


[엄마, 난 엄마가 날 건강하게 낳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상처 투성이인 채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구구절절 이야기 하던 지운.

그렇게 임순은 살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지운의 역할을 해야 할 차례였다.


“지은아 잠시 앉아볼래.”

“예.”


자리에 앉은 지은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지방에서 일하느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보면 언제나 웃음을 짓던 지운의 아버지도,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시는 어머니도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하는데 이렇게 굳어계세요.”


말 없이 눈빛을 교환하던 경수와 임순은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임순이 말을 꺼내려고 하자 경수가 임순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일 때문에 항상 집을 비우는 자신을 대신해 온갖 궂은 일을 하는 임순에게 이것까지 맡길 순 없다.

결심을 한 경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은아, 네가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

“우리 지운이가 널 구한 건 옳은 일을 한거야. 만약 널 구하지 못했다면 지운이는 더 괴로워했을지도 몰라.”

“······”

“그러니 이제 널 위해 살아.”


지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런 일을 일어 날까 싶어 더욱 밝은 척을 했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연기했지만 지운의 부모님은 연기 너머의 본질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정말 괜찮아요. 지운 오빠 깨어날 때까지만이라도···이제 겨우 6년이에요.”

“지은아, 무려 6년이야. 넌 충분히 할만큼 했어.”


임순은 지은의 손을 마주 잡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에서 지은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전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꽃다운 나이의 미래가 창창한 아이다. 마음 한켠에 짐덩이를 두고 앞으로 나아 갈 수는 없다.

단호해야 한다.


“정말 지운이를 위한다면 네가 지운이 몫까지 멋지게 살면 되는 거야.”

“이렇게 찾아오면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건 너도 우리도 그리고 지운이도 모두 힘들게 하는 거야.”


임순은 고개를 푹 숙인 지은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지난 6년간 틈만 나면 찾아왔던 지은이다.

그 수 많은 방문 중에 한번도 허투루 온 적이 없었다. 매번 진심을 담았던 그 마음을 알기에 임순도 괴로웠다.


“이제 앞으로는 안봤으면 좋겠다.”


마음에도 없는, 하지만 지은에게 필요한 매정한 말을 내뱉은 임순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쾅


행여나 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일부러 방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그렇게 6년간의 인연은 끝났다.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지은은 그 뒤로 몇 번이나 지운의 집을 찾아갔다.

소리도 질러보고 울기도 하고 멍하게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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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69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1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0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1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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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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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7 5 13쪽
»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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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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