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820
추천수 :
82
글자수 :
123,478

작성
24.08.31 12:10
조회
100
추천
4
글자
13쪽

그래 넌 꼭 배우해라

DUMMY

지운은 어깨를 부딪힌 사내와 마주 보고 섰다.

준혁을 보고도 피하지 않은 놈들이다. 그 말인 즉슨 어설픈 액션은 어림도 없다는 것.

이럴 땐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면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친놈.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꿈속의 세계에서 그는 분명 수 많은 사람의 삶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운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기억의 서고에서 잠들어 있던 인물.

연쇄 살인마 찰스 멘더스.

보기만 해도 섬뜩하고 기괴함이 넘쳤던 그의 모든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감정, 생각, 표현 방식, 가치관 등 모든 것이.


“후우···.”


그 중 감정과 표현 방식을 자신에게 적용하자 순둥이 같았던 지운은 사라지고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 찰스 멘더스가 나타났다.


“건드는거지? 왜? 왜? 날?”

“뭐야···.”


사내는 당혹스러웠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상반되는 공허한 눈빛.

말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만만하다 생각했던 지운의 표정과 말투는 기괴함 그자체였다.


“되는거야? 뭐라도?”

“어, 어···.”

“아니야, 아무것도. 넌 아무것도 아니야,”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보다 키는 크지만 마른 체형의 지운. 체격은 자신이 훨씬 더 컸다.

단순히 육체적인 면만 본다면 지운의 옆에 있는 준혁이 더 위협적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눈 앞의 지운이 더 무서웠다. 아니 소름이 끼쳤다.

특히 어순에 맞지 않는 기묘한 말투는 섬뜩함까지 느껴졌다.


사람이 귀신이나 괴물을 무서워하는 건 인지 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지금 사내들에게 지운이 딱 그랬다.


“씨, 씨발···.”


지운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광기에 번들거리는 지운의 눈빛에 얼큰했던 취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미친놈이다.

그것도 건들면 안되는 위험한 미친놈.


“다가와 가까이 나에게···.”

“······.”

“그럼 나는 면도칼이 될 수 밖에 없어!”


지운이 고함과 함께 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자 사내와 일행들은 소리치며 도망쳤다.


“으아아아아아.”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 지운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갔네?”


싱긋 웃는 지운.

준혁은 이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거친 주먹의 세계에 있으면서 미쳤다고 자부하는 인간들 여럿을 만나봤다.

겁을 주겠다며 자기 배를 칼로 긋는 인간.

깨진 맥주병을 씹어 먹는 인간.

정말 별에 별 미친놈들을 다 겪어 봤지만 지운처럼 표정과 말로만 광기를 드러낸 인간은 없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세상에···.’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누구보다 지운을 잘아는 준혁이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죽이는 그런 녀석이 지운이다. 만약 누군가 지운이 살인마라고 한다면 코웃음을 쳤을거다.


‘정말, 찌를 것 같았어···.’


보는 내내 준혁의 머릿속에 지운의 걱정은 없었다. 시비를 건 상대의 걱정으로 가득했다.

지운이 언제 칼을 꺼내 상대를 찌를지 몰랐기에.


“지운아···.”

“응?”

“방금 그거···연기 맞지?”


연기라고 해도 문제고 만약 연기가 아니라면?

그건 더 큰 문제다.


“당연히 연기지.”


그래, 그래도 연기인 것이 낫다.

최소한 친구놈을 교도소에서 면접하는 일은 없을 테니.

해맑게 대답하는 지운을 보며 준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 배우해라. 꼭.”




* * *




오랜만에 기름진 것을 먹어서 그런가 속이 거북했지만 지운의 신경은 눈 앞의 모니터에 쏠려 있었다.


“생각보다 오디션이 많네.”


오디션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인터넷 카페를 탐방하던 지운은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오디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데뷔 난이도가 내려간다는 이야기니까.

그중 한 오디션의 안내 글이 지운의 눈에 꽂혔다.


-영화 열혈 형사 남자 주인공 모집 오디션.


주인공이라고?

물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말도 있듯이 단역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이왕 가는 거 중간 까진 KTX타고 가면 편한 것 아닌가.

주어진 시간은 10년.

조금이라도 오스카에 가기 위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줄여야지 암.


제출 서류는 보자.

프로필, 자기소개서.

다른 건 크게 문제가 없는데 프로필에 쓰이는 사진이 문제다.

명색이 배우 오디션에 쓰는 사진인데 대충 휴대폰으로 찍었다가는 서류 심사에서 광탈이 분명 할터.


먹고 살기도 힘든 집안에 카메라가 있을 리도 없고 37살이나 되어서 사진 찍게 카메라 사달라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다.

물론 이야기하면 부모님은 빚을 내서 라도 사주실 것이 분명했지만 더는 짐을 안겨드릴 순 없지.


이럴 땐.


“준혁아 집에 카메라 있냐?”


친구 버프가 최고지!


한편 뜬금 없이 지운의 카메라 타령을 들은 준혁은 휴대폰을 내려놓자 말자 이사들을 호출했다.


“지운이 오디션 보기 위해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오, 그럼 전문 스튜디오에 예약 잡을까요?”


준혁은 답답한 마음에 혀를 찼다.


“야, 그럼 지운이가 아이고 고맙다 하고 받아드리겠냐!”

“그럼 어떻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린 준혁은 소리쳤다.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으이구 이 인간들아 맨날 주먹만 쓰지 말고 머리 좀 쓰라고!”


지운이 준혁을 잘 알 듯이 준혁 또한 지운을 잘안다.

스튜디오를 예약해주면 펄쩍 뛰며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거 생각해보니 열받네.“


제깟 놈은 날 위해 목숨도 걸었으면서 내가 돈 좀 쓰는 거에 지랄 발광을 해?

아주 지운이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유전자만 빠져버린 것이 분명했다.

지운이 쓰러졌을 때 치료비부터 생활비까지 다 부담하려고 했던 자신을 극구 거부했던 지운의 부모님, 자신의 사업을 넘겨준다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지운.

아주 판박이다.

물론 그래서 더 정이 가고 좋은거지만.

준혁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 만큼은 어림도 없지.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겠구만, 딱 티 안나게 도와주는 걸 보여주마.”

“역시 형님 이십니다!”


씩씩한 직원들의 대답 만큼이나 준혁은 자신이 있었다.




* * *




“저기 준혁아 저거 대포냐? 아님 카메라냐?”

“···어 당연히 카메라지···.”


1KM 밖에서 찍어도 모공까지 생생하게 나올 듯한 카메라를 보고 지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 뿐이라면 말도 안꺼냈다.


“저기 사진 작가님은 왜 불렀어···.”

“야, 무슨 사진 작가야 그냥 우리 동네 사진관 하시는 사장님이야. 사장님 어서 와서 이야기 좀 해줘요.”


타칭 동네 사진관 사장님은 어색하게 다가와 말했다.


“에이스 스튜···가 아니라 에이스 사진관 사장 김선희입니다.”

“아예···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네요. 예능이었나.”

“하하하하, 제가 좀 흔한 얼굴입니다. 하하하하.”


식은 땀을 흘리는 소개가 지나가고.


“그럼 이분은?”

“아 이분은 우리 동네에서 작게 미용실 하시는 분인데 스타일링을 위해 모셨어.”

“아, 안녕하세요 작게 미용실을 운영하는 조철입니다.”

“어휴, 강남에서 연예인들 대상으로 헤어 메이크업 하시는 분 같습니다. 귀티가 흘러넘치시네요.”

“하하하하하, 제가 보기엔 좀 그렇게 보입니다. 하하하하하.”


준혁이 모셔온 분들은 참 웃음이 많은 사람들이다.

땀도 많이 흘리고.


“자자, 이제 시작합시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촤르르륵.


백화점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양한 옷이 걸린 행거를 펼쳤고 지운의 눈은 그대로 준혁을 향했다.


“동묘! 동묘 시장!”


아, 10년 사이 동묘에 백화점이 들어섰구나.

내가 미처 몰랐네.

조질까?


“흠흠.”


준혁의 눈치에 반듯한 자세로 있던 직원은 서둘러 자세를 풀었다.


“···저도 동묘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는···.”


지운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동네 미용실 사장님의 헤어 메이크업은 지운을 탈바꿈 시켰고 동네 사진관 사장님의 신들린 듯한 촬영 스킬은 그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전신, 상반신, 얼굴 필요한 것은 단 3장이었지만 촬영은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아 피사체가 완벽하다 보니 욕심이 났습니다 하하하하.”


연신 웃으면서도 준혁의 눈치를 보는 사진 작가.

돈으로 구슬렸는지 주먹으로 구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사진 작가는 일생 일대의 역작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거다.


“저희 스튜···사진관에서 멋지게 편집해서 프로필 완성본을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요즘 사진관은 못하는 게 없네요.”

“어휴, 먹고 살려면 다 해야죠. 하하하하.”


참 웃음이 많은 사진 작가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현장에는 지운과 준혁만이 남았다.


“하하하하, 나도 약속이 있었는데 어서 가봐야겠네.”

“앉아.”


일어나려 던 준혁은 지운의 이야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분명 계획을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하면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0년전의 지운은 고집불통이었지만 눈치가 그렇게 좋은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긴 했지만 그 외는 둔감 그자체였다.


“얼마나 들었냐?”

“3장 정도···.”

“미친 새끼가 카메라 빌려달라고 부탁 했을 뿐인데 삼백을 써?”

“어?”


지운의 물음에 준혁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금전적으로는 둔감한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하는 건데 최대한 좋은 걸로 해주고 싶어서 그러지.”

“······.”


우물쭈물 거리는 준혁을 보며 지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준혁의 마음은 당연히 알고 있다.

친구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만약 반대 상황이었다면 자신도 뭔가를 해주기 위해 노력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친구 사이에 우정이 아닌 돈이 개입 되는 건 막고 싶었다.

지금이야 준혁이도 해주고 싶어하고 하니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시간이 흘러 만약 자신이 이런 걸 바라게 된다면?

그때의 준혁이는 지금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욕심이란 녀석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아는 지운이기에 사전에 막고 싶었다.


이미 벌어진 일 누굴 탓하기 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준혁이의 마음에 대한 감사 표현.

친할수록 더 표현을 해야 하는 거니까.


“준혁아 고맙다.”

“어?”


험상궂은 얼굴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준혁을 보자 덩치에 안어울리게 제법 귀여웠다.


“네 마음 왜 모르겠냐.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네가 해주는 고마운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드리지 말라고.”

“야, 당연하게 받아드려도 돼! 내가 널 모르냐!”


지운이 웃자 그제서야 안심을 한 준혁도 따라 웃었다.


“다음에는 꼭 그냥 집에 있는 카메라를 빌려줘. 동네 선생님들 부르지 말고.”

“걱정마, 내가 이젠 그냥 중고로 가지고 올게.”


중고가 별거 있나 그냥 새거 사서 흠집 좀 내면 중고지.


“너, 새 제품 일부러 흠집 내서 중고라고 속이면 뒤진다.”



준혁은 자신의 마음 속을 훤히 맞추는 지운의 눈을 괜스레 피했다.

어떻게 알았지?

이 인간은 10년 누워있더니 점쟁이가 다되었다.

일단은 넘어가자, 기껏 좋아 진 분위기를 다시 다운 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알았어, 임마.”

“내 말 들어줘서 고맙다.”


지운과 준혁 두 사람은 무안한지 괜히 서로의 등짝을 후려쳤다.

서로가 더 강하게 때리기 위해 몇 번의 손이 더 오고 갔지만 그것 조차 즐거웠다.

친구란 이런 것 아니겠나.

속에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도 당연히 상대가 받아드릴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는 존재.

우정을 확인 한 채 이렇게 마무리 되면 딱 좋았겠지만.


“형님, 이야 사진 보니까 멋지던데요 역시 돈을 삼천이나 바른 보람이 있습니다.”

“야이···.”


사진 작가를 보내고 온 주호의 이야기에 우정이고 나발이고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 미친놈이 프로필 사진에 삼천을 태워?”


살벌한 지운의 분위기에 준혁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뭐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몇 일전에 본 그 살벌한 모습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아니, 그게 삼천원···.”

“······.”

“시발, 내가 생각해도 짜치네.”

“그치? 뒤져 이새끼야.”


37살 먹은 성인 두 사람은 머리채를 잡고 뒹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안내드립니다. 24.09.15 11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24.09.01 71 0 -
21 열혈 형사 (7) 24.09.14 35 3 13쪽
20 열혈 형사 (6) 24.09.13 44 4 13쪽
19 열혈 형사 (5) 24.09.12 54 5 13쪽
18 열혈 형사 (4) 24.09.11 63 6 12쪽
17 열혈 형사 (3) 24.09.10 60 5 14쪽
16 열혈 형사 (2) 24.09.09 61 5 13쪽
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69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1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0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1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4 3 12쪽
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7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29 4 15쪽
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1 톱스타를 품에 안았다. 24.08.26 181 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