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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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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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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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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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배우 할 거다

DUMMY

10년만에 깨어난 세상은 예전 그대로였다.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 그리고 준혁이.

특히 엄마는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 날 보고는 너무 놀라 기절을 하셨다. 그덕에 나도 놀라 다시 의식을 잃을 뻔.


재활을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도 그다지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에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가는 정말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10년쯤 지났으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여전히 버스 기사님은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다.


변한 거라고는 더욱 험상궂게 변해 버린 준혁의 인상과 몰라 보게 늙어버린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현실에서 10년, 꿈속에서 200년 남짓한 시간, 아무래도 내 200년 보다는 부모님의 10년이 더 힘들고 괴로웠을 거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인데 꿈속에서의 너무 많은 경험은 부모님의 마음을 구구절절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가슴 아팠다.

에이, 좀 더 열심히 해서 빨리 졸업했어야지!

단 하루라도 빨리 돌아왔다면 부모님 얼굴의 주름이 하나 쯤은 줄지 않았을까?


온갖 후회들이 내 마음을 옥죄었다.

하지만 꿈속에서 난 배웠다. 후회는 그저 내 마음속의 짐일 뿐이라는 것을.

과거는 과거고 나에게 중요한 건 돌아왔다는 현재와 앞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거라는 미래다.


엄마, 아빠 딱 기다려! 내가 진짜 호강시켜줄게!


“엄마, 오늘은 같이 가요.”

“어디 가려고?”

“반찬 가게 가서 일 도와야죠.”

“어휴 쉬어, 무조건 집에서 쉬어.”


37살의 장성한 아들이지만 일련의 사고로 엄마 눈에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알려드려야지 그 아이가 수영이 펠프스급이라는 걸.


“병원에서도 이제 멀쩡하다고 활동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깨어 난지 이제 겨우 3개월이 지났는데 무리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우리 박여사, 말투는 저러면서도 입은 웃고 계신다.


“엄마 왜 혼자 가! 같이 가요!”




* * *




10년 전에도 지운은 주말마다 반찬 가게 일을 도왔었다.

자신이 일을 잘한다는 걸 보이고 싶었어 열심히 했지만 언제나 서툴렀다.

친절한 것이 일을 잘한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임순도 지운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조마조마했다. 행여나 실수를 해 손님이 불쾌한 티를 내면 자책하는 지운이 걱정되어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자자, 갓 담근 파김치 맛 한번 보세요. 라면에 같이 먹으면 한끼 그냥 뚝딱입니다.”

“내가 요즘 입맛이 없는데···.”

“아 그러면 잘왔습니다. 입맛 없을 때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 마시면 집 나간 식욕 바로 돌아옵니다.”

“이모님, 안사도 되니까 나물 맛만 한번 보세요. 제가 사라고 안합니다. 딱 맛만 봐보세요.”


임순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항상 주눅 들어 있던 지운이 아니었다.

완전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지운의 모습은 과거를 기억하는 주변 상인에게도 놀라운 변화였다.


“지운 엄마, 지운이 10년만에 깨어났는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네?”

“나도 적응이 안되네.”

“그런데 세월이 이리 지났는데 더 젊어 진 것 같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지금 껏 왜 몰랐지?”

“착한거야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싹싹한지는 몰랐네.”


주변 상인들의 이야기에 임순은 미소를 지었다.

타인에게 자식 칭찬 듣는 것 만큼 부모에게 기쁜 일은 없다.

목숨 같은 내 새끼가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니 바랄게 없었다.


“파김치 5천원치, 나물 모듬 하나, 동그랑땡 하나, 장조림 하나, 소고기 국 두 개 맞죠.”

“응, 잔돈이 없어서 5만권 뿐이네.”

“다해서 28,000원 서비스로 미역 줄기 하나 드리고 잔돈 22,000원 여기.”


정말 별 것 아닌 것이었지만 임순에게는 아니었다.

계산하는 것이 느려서 매번 계산기를 쓰던 지운 아니던가.


“지운아? 계산이 왜 이렇게 빨라졌어?”

“엄마, 내가 회계사 생활을···이 아니고 그동안 많이 쉬어서 그런가 계산이 잘되네.”


갑자기 회계사?

임순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모른 척하고 장사에 열중하는 지운이었다.


지운의 눈부신 활약으로 6시가 되기 전에 준비했던 반찬이 다 소진되었다.


“지운아 오늘은 장사 이쯤 하면 되겠다.”

“엄마, 오늘 같이 팔리면 우리 곧 부자 되겠네.”

“다 우리 아들 덕분이지.”


임순은 지운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된다는 것도 잘 아는 임순이다.


“지운아 오늘 번 돈은 기부하자.”

“오, 박여사 갑자기 그런 생각을.”

“나는 지금 기분 같아선 매일 같이 기부를 하고 싶어.”

“찬성입니다.”


지운과 임순은 서로를 마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해질 녘 무렵 껍데기 집.


“얼마만에 껍데기냐.”

“10년만이지 임마.”

“눈물 날 것 같구만.”


이 별 것 아닌 것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때 한국인의 삶을 산 적도 있었으나 그의 행동을 내 의지 마냥 받아들이는 것이지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때는 스님이었다.

껍데기는 언감생심, 고기 자체를 구경을 못했다.


“소고기 사준다니까.”

“호주에서 농사일 할 때 소고기 실컷 먹었어.”

“호주? 너 호주 간 적 없잖아.”


아차. 이 망할 입이 오늘 따라 실수를 왜 이렇게 하냐.

낮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꿈 속에서의 경험을 무심코 내뱉었다.

나에게는 실존했던 일지만 남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 뻔한 내 경험은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야 한다.

더군다나 10년만에 깨어난 상황 아니던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 한다면 당장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터.

일단 대수롭지 않게 스무스하게 넘기자.


“꿈속에서 가봤다 새끼야.”

“10년 동안 개그 좀 늘었는데?”

“그렇지? 크크크큭.”

“푸하하하.”


10년만의 술자리에서 떠들썩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아까 보니까 어머니 표정 너무 좋으시더라.”

“응, 이제 항상 그렇게 웃게 해드려야지.”

“그래.”

“부모님한테도 너한테도.”


고마운 감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준혁을 응시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

그에 대한 고마움을 어찌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새끼, 느끼하게 뭐야.”


쑥스러운 듯 얼굴이 붉어진 준혁은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지랄하지마, 어차피 반대였어도 너도 똑같이 했을 거 아냐.”


당연한 것 아닌가?

준혁의 물음에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했다.


“어.”

“그럼 된거야. 아씨 오늘 따라 소주가 써서 그런가 빨리 취하네.”


괜히 소주 탓을 하는 준혁.


“그나저나 너 지은이 한테는 연락할거야?”

“지은씨? 글쌔···.”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이름에 말문이 막혔다.

준혁과 부모님에게 그동안의 과정을 전해 들으면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이지은.

6년 가까이 자신을 찾아오고 진심을 다한 그녀, 만약 부모님이 그리 하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까지도 계속 찾아왔을 것이라 준혁은 장담했었다.


자신이 지은을 구한 것이라고 해도 6년이나 그리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고마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준혁이나 부모님은 친근하게 ‘지은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브라운관에서만 봤던 연예인 ‘이지은씨’다. 딱 팬과 연예인의 관계였다.

호칭의 벽 만큼 난 그녀의 마음을 모른다.

그것이 미련이었는지 후회였는지 사죄였는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며?”

“어, 난 연예인은 다 독사 같이 강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약해빠졌어.”

“지금은 잘지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 뒤로 연락을 안해. 그런데 가끔 방송으로 보면 잘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그럼 답은 정해졌네.”

“그렇네.”


아무리 가벼운 물건이라도 잔잔한 호수에 던지면 파문이 인다. 그 파문이 흘러 흘러 그대로 사라져버릴지 큰 파도가 되어 호수 전체를 쓸어버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잔잔해 진 지은의 마음에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건 분명 작든 크든 울림을 만들어 낼 터.

그것의 방향을 예측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삶을 지켜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대신 누구보다 지은씨가 잘되기를 기도하자!”

“지은이는 이미 잘되고 있다고.”

“야, 그런데 너 아까부터 왜 지은이 지은이 거리냐?”


준혁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험상궂은 인상 덕분에 전혀 가볍지 않았지만 아무튼 익살스러운 표정이었다. 꾸러기 새끼.


“지은이가 나한테는 오빠라고 했다고!”

“나한테는?”

“넌 아저씨.”

“아···얼굴 보면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액면가로 보면 심하게 차이가 나는데.

아무리 봐도 당시 지은씨가 받은 충격이 컸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저 얼굴을 보고 오빠란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의문과 함께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 * *




“지운아.”

“왜.”

“너도 이제 37살이네.”

“어휴, 한 것도 없이 누웠다 일어나니 37살이다.”

“이제 몸도 괜찮아 졌으니 일자리를 구해야지.”

“어.”


37살, 도전을 하기에는 늦었고 안정을 찾기에는 빠른 나이.

준혁은 사회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알고 있다.

기술도 경력도 없는 37살이 새로운 일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주류 유통, 네가 한번 해볼래?”

“주류 유통?”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도 다 있어서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넌 그냥 수익만 챙기면 돼.”


주류 유통은 준혁이 하고 있는 사업 중에서 꽤나 큰 매출을 담당하는 사업이었다.

그런 핵심 사업을 통으로 지운에게 넘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운은 돈보다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마음만 받을 게.”

“임마, 진짜 좋은 기회라고 부모님 언제까지 고생 시킬거야. 너도 자리 잡아야지.”

“됐어.”

“너 혹시 불법일까 봐 그러는 거냐?”


준혁의 언성이 높아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운은 준혁에게 늘 이야기 했었다.


[준혁아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마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항상 정도(正道)를 걸었다. 그러다 보니 손해 보는 것도 많았고 조직을 키우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지운과의 약속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목숨을 걸고 지켰다.

그래서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내가 다른 조직놈들은 까도 일반 시민은···.”

“구구절절 설명 안해도 돼. 나랑 예전에 약속했잖아, 그럼 당연히 넌 지켰겠지. 난 그런 건 의심 안해.”


준혁은 머쓱한 마음에 괜히 죄 없는 뒷머리만 매만졌다.


‘그래, 그랬지 지운이는 이런 녀석이지···.’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녀석.

모두에게 질 나쁜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때도 꿋꿋이 옆을 지켰던 녀석.


“아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37살이면 꽤나 먹었지.”

“미안···.”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준혁을 보며 지운은 미소를 지었다.


“나 배우 할거다.”

“어?”


예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준혁은 당황스러웠다.

배우?

연기라고는 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었던 지운이 배우를?

말도 안된다.


“야 그거 아무나 하는···.”


준혁이 말을 하려는 순간 지나가던 행인과 지운의 어깨가 부딪쳤다.


“씨발, 앞에 똑바로 안보고 다니냐!”


약간 취기가 오른 듯한 사내는 두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고 일행인 무리들이 지운과 준혁을 둘러쌓았다.


“오늘 잘걸렸다. 새끼들아.”


혼자였다면 준혁의 인상만 보고 꼬리를 내렸겠지만 얼끈하게 오른 취기와 수적 우세는 객기를 상승시켰다.


“하아, 이런 애새끼들이···.”

“준혁아 잠시만.”


나서려는 준혁을 지운이 만류했다.


“내가 정리할게.”

“네가 어떻게 하게?”


지운은 준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잘봐, 내가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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