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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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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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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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형사 (5)

DUMMY

촬영장은 긴장감으로 가득했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난 설레여서 어제 잠도 못잤다니까.”

“두 괴물이 붙으면 누가 잡아 먹히려나.”

“에이, 그래도 최윤석 배우님이 한수 위지.”

“참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운씨 연기보고 소름 끼친다고 질질 짜던 인간이!”


최윤석이 연기하는 김 반장과 지운이 연기하는 박건우의 첫 대면.

바로 오늘 촬영 할 씬이다.

명품 연기로 널리 알려진 최윤석과 태풍과도 같이 등장한 괴물 신인 김지운의 연기 대결은 현장의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최고의 빅이벤트였다.


“선우야, 최 선배랑 지운씨는 어쩌고 있어?”


김태훈 감독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 였다.


“최윤석 배우님은 차에서 나오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요. 가니까 매니저가 지금은 절대 방해하면 안된다고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그렇단 말이지?

김선우 AD의 이야기를 들은 김태훈 감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최 선배의 전투 모드 진짜 오랜만이네.’


평소에는 동네 마실 나온 사람 마냥 ‘허허’ 웃고 다니지만 저렇게 집중을 하고 온 최윤석은 마치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도검처럼 날카로워진다.

저런 상태에서 펼치는 연기는?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최고다.


‘우리 복덩이 지운이!’


최윤석의 전투 모드를 이끌어내는 작품의 흥행은 무조건이라는 말이 있다.

성적의 압박을 받는 감독의 입장에서 당연히 이끌어 내고 싶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최윤석의 호승심을 자극할 정도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그런데.


쌩 신인인 지운이 그걸 해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지운은 복덩이가 맞다.


“지운씨는?”


김선우 AD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가리켰다.


“지운씨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


선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김태훈 감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쟤, 지금 자고 있는 거 맞지?”

“예···.”


고개를 꾸벅꾸벅 거리며 졸고 있는 지운.

갑자기 몸을 움찔하더니 태연스럽게 자지 않은 척을 하기 시작했다.


“선우야···.”

“예···.”

“가서, 지운씨 입에 침이나 좀 닦아줘라, 많이 흉하다···.”


김태훈 감독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심장이어야 저럴 수 있지?

배우라는 이름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인 배우가 경력 30년 차인 대배우 최윤석과 맞붙는 씬을 찍는데 저리 태평하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하긴 생각해보면 조짐이 보이긴 했어.’


카메라만 봐도 굳어버리는 신인이 능숙하게 애드리브를 하지 않나 하늘 같은 감독에게 왕복 차비를 달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잔돈까지 후려치는 걸로 볼 때 확실히 보통은 아니다.


‘지운아 상대는 지금까지 와는 달라 최윤석이라고 최윤석, 널 단번에 잡아 먹어버릴 거다.’


보고 싶다, 빨리 보고 싶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김태훈 감독은 소리쳤다.


“자자, 준비합시다.”




* * *




“대한민국 경찰들 참 한가해.”


의도가 뻔히 보이는 김건우의 이야기에도 김현식 반장은 개의치 않고 웃었다.


“하하하, 일선의 형사들은 바쁩니다. 저 같은 퇴물들이나 한가한 거지요.”

“거두절미하고 왜 왔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저번에 그 누구지?”


건우의 물음에 김비서가 재빨리 대답을 했다.


“최수황 형사였습니다.”

“그래, 그 인간, 다짜고짜 와서는 내가 형을 죽인 범인이라면서 난동을 부렸는데 이번에는 그쪽이 난동을 부릴 건가?”


손사래를 치는 김현식 반장.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안그래도 그 일 이후 윗선에서 얼마나 난리를 쳤는데요, 역시 제성그룹입니다. 아주 경찰 윗선까지 다 잡고 계시네요.”


건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을 참 뭐같이 하시네?”

“맨날 범죄자들하고 어울리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최수황 그 새끼 아주 꼴통이에요, 뭐하나 눈에 걸리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인간이죠.”

“그런 새끼들 컨트롤 하라고 당신한테 나라에서 월급 주는 거 아냐?”

“어휴, 그 새끼 말 지독하게 안들어요. 그 놈 때문에 흰머리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거 보세요.”


현식은 건우를 향해 자신의 정수리를 내밀었다.


“염색비가 필요하면 갈 때 따로 챙겨줄 테니 어서 본론이나 이야기해.”


건우의 이야기에 능글 맞게 웃던 현식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사람 4명이 죽었다. 후계자 다툼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너희들의 그 얄량한 싸움에 무고한 시민 3명이 죽었어.”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살벌한 눈빛에 불꽃이 튀는 듯 했다.


“이거 최수황 그 인간이랑 똑같은···.”

“정, 지, 은”


현식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이야기 했다.


“고작 7살인 아이의 생일이 이제 부모님과 오빠의 기일이 되어버렸어. 평생을 자책하며 살겠지 생일이라고 부모에게 놀러 가자고 조른 자신을 말이야.”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주저함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식의 생각과는 다르게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펼쳤다.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한 채.


“그게 세상 아닌가? 그 아이는 이제 알게 된 거야!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고된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이런 미친 새끼가!”


현식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건우의 멱살을 잡았다.


“그래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회장 자리를 약속 받은 형을 죽인다고 치자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나왔으면! 양심의 가책은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


절규였다.

실핏줄이 터져 불게 물든 두 눈은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현식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황 만큼이나 범인을 잡고 싶었지만 현식은 알고 있다. 제성그룹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개 형사 따윈 손짓 한번으로 쳐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최소한 스스로 반성을 하기를 바랬다.

어차피 물려 받을 것이 많은 놈들 아닌가?

살인 교사로 흠집은 좀 나겠지만 죽은 사람과 가족을 잃은 아이에 비하면 훨씬 낫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라.”

“지랄하지마, 내가 왜 용서를 구해야 되는데?”


이놈은 그 작은 흠집조차도 용납을 하지 않는다.

현식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건우는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7살도 아는 세상의 이치를 다 늙은 양반이 모르시네, 그래 죽은 3명, 아니다 아이까지 포함해서 그것들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데?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새끼들은 그냥 희생을 하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거고.”

“이 개새끼가!”


현식이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건우도 같이 멱살을 잡았다.

서로의 호흡이 느껴 질 정도로 붙은 두 사람은 한번의 깜빡임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한쪽에는 집념이 한쪽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


“그거 알아? 형사 중에는 순직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런데 내가 보기엔 댁하고 그놈, 둘 다 딱 순직 할 관상이야.”

“너도 그거 아냐? 재벌 2세 중에는 교도소 가는 사람 많다며? 그런데 내가 보기엔 네가 딱 그럴 관상이야. 넌 다른 재벌들과 달리 아주 오래 있을 거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기싸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넌 내가 반드시 쳐넣어주마.”

“이게 표적 수사 그런가? 증거도 없는데 생 사람 몰아가는거?”

“운전수가 일부 자백을 했다!”

“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 운전수 자살했다지?”


현식은 건우의 본질을 이제야 알았다.

빈말이 아니다.

이놈은 진짜로 사람을 그저 부품으로 보고 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 하지만 베테랑 중의 베테랑 현식은 이런 놈들을 수도 없이 겪어봤다.


“그런데 결국 네놈도 갈아치우는 부품 아니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제성그룹 박태영 회장에게는 너도 부품 아니겠냐? 후계자 자리를 얻기 위해 형을 죽인 비정한 동생, 그리고 그 동생이 저지른 각종 범죄들, 알려지면 네놈부터 갈아치우지 않을까?”

“개소리 하시네! 내가 그런 하찮은 놈들하고 같은 줄 알아!”


건우는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는 현식의 이야기에 분을 참지 못하고 감정을 표출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식에게 파고들 틈을 만들어 줬다.


“네 동생 있잖아, 어차피 네 자리도 동생으로 대체 하면 되는 거지 네놈이 한 것처럼, 아마 박태영 회장은 준비하고 있을지도?”


멱살을 놓은 현식은 건우가 손을 놓지 않자 힘을 줘 쳐냈다.

마지막이 충격이었는지 건우는 저항 없이 손을 내렸다.

옷매무새를 다듬은 현식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볼 때는 체포영장 가지고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컷! 좋았어!”





* * *




“후아, 최 선배 진짜 최고였습니다!”


김태훈 감독은 엄지 손가락을 척하고 올렸다.

숨도 쉬지 않고 지켜봤다.

압도적인 두 사람의 열연 앞에서 숨을 쉬는 작은 소리 조차 거슬릴 것 같았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스태프들도 컷 싸인과 함께 숨을 크게 들어 쉬고 있었다.


‘와, 진짜 상상 초월이다.’


잘하는 사람 두 명이 붙으니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100이 되었다.

지금 껏 수 많은 촬영을 했지만 이런 시너지는 본 적이 없었다.

서로를 잡아 먹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우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작이 탄생하는 법이다.


‘최 선배는 정말 대단하구나.’


작정하고 달려는 윤석은 확실히 지운 보다 더 돋보였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결국은 신인, 이 정도로 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대단한 거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생각과는 달랐다.

분명 더 돋보였던 연기를 펼친 윤석의 얼굴은 굳어있고 지운은 웃고있다.


윤석은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가려는 지운을 불러 세웠다.


“지운아.”

“예?”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연기를 펼쳤다.

일반 관객들의 눈에는 그런 것이 안보이겠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안다. 상대를 죽이고 나를 돋보이게 하는 연기의 승부를.

그 승부에서 자신은 이겼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연기가 나왔어.’


연기 경력만 30년이다.

윤석은 자신의 역량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예상한 것 만큼만 나와도 100프로의 역량을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나왔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답은 눈 앞의 지운이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연기에 아주 목숨을 거는 것처럼 하더니 밀렸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분해하는 것 같지가 않네?”


지운은 갑자기 뜬금 없는 소리를 하는 윤석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촬영 잘 해놓고는 갑자기 왠 헛소리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씬은 흠잡을 부분이 없었다.

도덕적으로 결여된 건우의 모습과 선전포고를 하는 현식의 감정이 완벽하게 구현되었기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왜 밀렸다고 하는 거지?


“선배님 밀렸다니요?”

“네가 널 눌렀잖아!”


아!

지운은 이제야 이해를 했다.


“이번 씬의 핵심은 선배님이 연기하신 김현식 반장입니다.”

“어?”

“50 대 50이 나오면 안되고 60 대 40이 나와야 되는 장면이라구요.”


모든 것이 함축된 지운의 이야기에 윤석은 망치로 한 대 맞은 충격을 받았다.

이 녀석, 아예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자신이 이기고 지고를 따지고 있을 때 지운은 작품의 흐름을 봤다.


‘이것 참···.’


윤석은 스스로 생각할 때 나름 연기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자그마치 30년을 연기 밥을 먹었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우고 연기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격정적인 연기를 펼쳐야 하고 모든 것을 표출해야 된다고 믿었다.


‘과연 그게 무조건 옳은 것이었나?’


한 시간 전의 윤석이라면 분명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아직 중간이었다. 그리고 지운은 자신 보다 더 끝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왜 오늘 연기가 자신의 실력보다 더 잘나왔는지.

지운이 유도한 것이다.

호흡, 대사의 속도, 시선 처리, 감정 표현, 동선 이 모든 것을 이용해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윤석아, 윤석아 더 분발해야겠구나.’


윤석은 이해를 하고 인정을 하니 오히려 편안해지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참 멍청한 질문을 했구나.”

“에이,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아셨으면 됐죠.”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매만지는 지운.

참 순수한 녀석이다.

그런데 뭘까 이 묘한 열받음은.


불현 듯 깨달음이 왔다.


‘잠깐, 이 자식이 60 대 40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내 역량을 끌어올려? 이 새끼, 내가 애당초 딸린다고 생각했구나!’


분이 안 풀렸던 윤석은 그날 지운의 식판 위에 있는 쏘세지를 뺏어먹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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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열혈 형사 (7) 24.09.14 35 3 13쪽
20 열혈 형사 (6) 24.09.13 44 4 13쪽
» 열혈 형사 (5) 24.09.12 55 5 13쪽
18 열혈 형사 (4) 24.09.11 63 6 12쪽
17 열혈 형사 (3) 24.09.10 60 5 14쪽
16 열혈 형사 (2) 24.09.09 61 5 13쪽
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14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69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2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0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1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4 3 12쪽
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8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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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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