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깜깜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2:28
최근연재일 :
2024.09.14 12:1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831
추천수 :
82
글자수 :
123,478

작성
24.09.07 12:10
조회
69
추천
4
글자
13쪽

흐름을 주도하는 자

DUMMY

소주 잔을 꺾으면서도 규민의 눈은 스테프들에게 사과하는 지운에게 꽂혀있었다.

저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소주가 맹물처럼 느껴졌다.


“선배님, 오늘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보니까 사정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어떤 놈들이 이런거야.”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딱 봐도 그다지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

“괜히 신고를 했다가 작품에 누를 끼칠까 싶어 아직 신고는···..”


배우를 비롯해 스테프들에게 까지 직접 돌며 사과를 하는 지운에게 분위기는 호의적으로 변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토를 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규민은 속에 천불이 났다.


“현성이형, 어떻게 된거야?”

“아니, 분명 시간만 끌어달라고 했는데···.”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현성의 모습에 규민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저 몰골이 그냥 시간만 끈 모습이야?”

“그렇긴 한데, 아까 통화를 했을 때도 도망치는 거 쫓기만 했다고 했어.”


욕심과 더불어 겁도 많은 현성이다. 무리한 부탁을 했을 리도 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그놈들이 뒷감당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를 리도 없다.


그렇다면?


“씨발···당했네.”

“규민아 뭘 당해?”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하는 현성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 규민은 말을 이어갔다.


“저 새끼, 연기하는 거야. 분명해.”

“연기라고? 아까 쓰러질 뻔한 것 봤잖아.”

“그게 연기라고 이 멍청한 인간아, 저 새끼가 그 지랄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되었잖아. 모습만 보지 말고 상황을 봐라고”

“아!”

“생각을 좀···.”


규민은 말을 멈췄다. 지운이 술잔을 들고 쩔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연기라고 생각을 하니 쩔뚝거리는 행동 조차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건우 역을 맡은 신인 김지운이라고 합니다. 오늘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

“저기, 잠시 합석해도 될가요?”

“어, 그래.”


지운의 이야기에 현성이 서둘러 옆자리를 두드렸다.


“아까 보니 상태가 많이 안좋던데 지금은 괜찮은가 봐?”


규민의 날이 선 말투에도 지운은 웃으며 답했다.


“아까는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봅니다. 참석하지 못할까봐 긴장을 많이 했었거든요.”


아주 말이 청산유수다.

그래서 더 열이 받는 규민, 말이 곱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병원이나 갈 것이지 그 꼴로 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냐?”

“혹시라도 분위기를 흐렸다면 죄송합니다. 정말 꼭 참석하고 싶었거든요.”


지운이 고개를 숙이자 현성은 이때다 싶어 질렀다.


“무슨 빽으로 합류 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 지켜본다. 첫날부터 사고치는 새끼들 중에 제대로 하는 인간은 본적이 없어.”

“전 정당하게 오디션으로 배역을 따낸 겁니다. 아무튼 선배님 말씀대로 사고 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가봐, 옆에 있음 술맛 떨어지니까.”


현성의 축객령에 지운은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 다른 자리를 찾아갔다.


“현성이형, 진짜 대가리가 안돌아가?”

“어?”

“씨발, 거기서 빽 이야기를 왜 하는 건데?”

“아니, 지금 배우들 사이에 다 그런 소문이 돌아.”


답답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로만 이야기를 해야지 저런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에게 빌미를 주기 딱 좋은 것 아닌가.

규민이 볼 때 지운은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인간이다.

분명 오늘 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현성이 저래버리면 용의 선상에 올라가기 딱 좋다.


“하아, 내가 씨발, 널 데리고 뭘하겠냐.”


내가 형인데···새끼가 반말은···.

규민의 살벌한 눈빛에 현성은 애꿎은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우리 지운씨는 연기가 처음이라고?”

“예, 선배님 편하게 불러주세요.”

“하하하, 그럴까? 사실 나도 이게 편해.”


주변을 돌며 사과를 마친 지운이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자 윤석은 냉큼 손을 흔들었다.

지운에 대한 이야기를 김태훈 감독에게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기에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윤석은 질문을 쏟아내었다.


“진짜, 코마 상태였어?”

“예, 27살 때 쓰러져서 37살에 깨어났습니다.”

“그때 주변의 이야기나 상황을 인지 하고 있었나?”


최윤석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언제 어떤 배역을 맡을지 모르기에 늘 사람을 관찰하는 직업병, 간혹 무례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세간의 평가보다는 연기에 대한 욕망이 우선이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주변 상황은 몰랐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깨어나자 말자 연기를 하고자 한건가?”

“늘 꿈을 꿨거든요. 연기를 하는 꿈을.”

“고작 꿈 때문에?”

“10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그 꿈 때문이었으니까요.”


지운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그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윤석은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 했다. 다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만 남겼다.


“그나저나, 37살이라니 외모만 보면 20대 중반인데 말이야 내가 동안인 배우들 여럿 봤지만 자네가 최고야.”

“감사합니다.”


윤석은 얼굴을 쓸어내리는 듯한 손짓을 했다.


“페이스가 좋아, 딱 배우 얼굴이야 연기 스펙트럼이 넓겠어.”


칭찬과 격려가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고 흐트러지는 사람들이 나오자 김태훈 감독은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일어섰다.


“자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다들 집으로 돌아갑시다.”

“감독님 2차 안갑니까!”


몇몇의 스태프들이 2차를 외치자 김태훈 감독은 절대 안된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2차 갔다가는 마누라 등쌀에 촬영 못해.”

“하하하,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계산을 마친 송윤아 대표가 가게 밖으로 나오자 김태훈 감독과 최윤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휴, 감독님 담배 끊었다고 안했어요?”

“평상시에는 참겠는데 술만 마시면 조절이 안되네요.”


송윤아 대표는 연기를 밀어내기 위해 손을 휘저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은밀한 이야기는 이런 곳에서 툭툭 나오는 법이니까.


“최 선배, 지운씨 어땠어요?”

“어떠긴 뭐 어때 싹수가 노란 놈이지.”

“예?”


연기를 길게 뿜어낸 윤석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와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놈이 싹수가 노란 놈 아니겠냐.”


김태훈 감독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연기라고요?”

“그래, 나도 깜박 속을 뻔했어.”


그게 연기였다고?

아무리 그때 상황을 되새겨 봐도 그건 진짜 였다. 안색이 퍼렇게 변하고 온몸을 덜덜덜 떠는 걸 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김태훈 감독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스테프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걸 보니 아주 샛노란 놈은 아니야.”

“예, 맞습니다. 많이 겪어본 건 아니지만 그릇된 친구로는 안보이더라구요.”

“연기 하나 만큼은 제대로 된 놈이야. 아주 같이 연기하는 맛이 나겠더라고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최윤석을 보며 김태훈 감독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운이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하긴 연기에 있어서 온갖 기행을 일삼은 최 선배라면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다.


“다음주 크랭크인이지?”

“예, 선배.”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구만.”


재를 털고 꽁초를 휴지통에 버린 최윤석은 손을 흔들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 * *




집에 돌아온 지운은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온몸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했지만 피곤함이 앞섰다.


“피곤한데 잠은 안오네···.”


정말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왠 양아치 같은 놈들의 시비부터 시작해 고깃집 앞에서 자작극까지, 만약 영화 장르로 친다면 블록버스터급이었다.


“확실히 의심 가는 사람은 있는데.”


고깃집에서 일일이 모든 사람들을 다 찾아서 사과를 했다.

대본 리딩에 빠진 것을 사과하는 것도 있었지만 본론은 사람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10년만에 깨어난 상황, 인간관계는 축소될 때로 축소 되어 있었기에 이런 일을 꾸밀 사람은 영화 관계자들 뿐이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 자신을 배우로 알고 있고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확신을 하는데 한몫을 했다.


“김현성···.”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인간.

범죄 동기까지도 완벽하다.


-원래 건우 역이 김현성 배우로 낙점 되어있었는데 지운씨로 바뀐 것이거든요. 굳이 말 안해도 되기는 한데 현성씨가 김 비서 역이라 촬영 내내 지운씨와 같이 붙어 있을 거라서 참고하라고 미리 이야기 하는 거에요.“


컨셉 아트를 건네 받을 때 한 김태훈 감독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 해보면 딱 답이 나온다.


“까였다고 다 큰 어른이 이렇게 치졸하게 복수를 해?”


일단 김현성은 확실하고 뭔가 의심은 가는데 확실하지 않은 인물, 강규민.

열혈 형사의 주인공이자 톱스타.

물론 상처가 많긴 하지만 어찌 됐건 사자는 사자니까.

묘한 적개심은 느껴지는데 딱 이해 할 수 있는 범주 내의 감정이란 말이지.

선배로서 후배를 꾸짖을 수 있는 절묘한 선을 탔다.


“흐음, 일단 동기도 없고.”


김현성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강규민은 동기가 없다.

잘나가는 톱스타가 무슨 이유로 신인 배우를 굳이 사람까지 동원해서 괴롭힌단 말인가.

상황만 보면 아닌데···.

뭔가 걸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촉이 찌르르 하고 울렸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다. 지금 상황에서 하는 건 추리가 아니라 공상의 영역이다.


“에이, 어차피 계속 현장에서 부딪쳐야 하니 차차 알아가도록 하자.”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하고 지운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열혈 형사 촬영 현장.

수 많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운은 처음 현장을 봤을 때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비슷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여전하구나.”


똑 같은 분위기에 달라진 건 오직 지운뿐이었다.

그때는 그저 구경꾼이었다면 이제는 지운도 톱니바퀴의 한축이다.


“어, 지운씨 오늘 촬영도 아닌데 왜 나왔어요?”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김선우 AD는 지운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 선배님들 어떻게 촬영하시나 구경하려고요.”

“오, 지운씨 좋은 자세인데요.”

“배우분들은 안보이네요?”


지운의 물음에 김선우 AD는 주차 되어 있는 차량을 가리켰다.


“아직 촬영하려면 시간이 남아서 다들 차에서 대기하고 있을거에요.”

“예, 감사합니다.”


감독님과는 이미 인사를 했기에 지운은 규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의심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업계 선배이니 도리는 다해야지.

규민이 있는 차량 근처로 가자 고함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나보고 이런 거지꼴을 하고 촬영을 해라고?”

“배역 컨셉에 맞춰서 영화 의상팀하고 협의를 해서 정한 거라···.”

“아니 누가 컨셉을 몰라? 컨셉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있어 보이게 했어야지!”


저게 말이야 똥이야?

열혈 형사의 주인공 수황은 한번 사건에 집중하면 며칠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수사에 몰두하며 깽값 물어 주느라 저축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잠바를 입고 다니는 구질구질하고 빈티 나는 인물인데···.

저건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작품의 근간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스텔라 스승님에게 걸렸으면 뒤지게 욕먹었을텐데.”


저런 인간이 톱스타라는 것에 지운은 실소가 나왔다.

연기력이 인기와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개념은 있어야 하지 않나?


차안에서 훌쩍이는 여성과 남성이 같이 나왔다.


“지연아, 규민이 성격 알면서 왜그랬어.”

“매니저 오빠, 나도 한 때 연기를 했던 사람이야, 최소한 배역의 컨셉에는 맞게 해야 되는 게 맞잖아!”

“누가 그걸 몰라? 아는데, 우리가 백날 천날 맞다고 해봤자 규민이가 싫으면 그냥 끝인거야.”

“하아···.”

“일단 마음 좀 추스르고 메이크업하고 의상 다시 준비하자.”


매니저가 자리를 떠나자 지연은 쪼그려 앉아 계속 눈물을 훔쳤다.


“씨발, 병신 같은 새끼, 저딴 새끼가 무슨 연기자야, 씨발.”


연기 생활은 접었지만 이 바닥에 미련이 남아 스타일리스트로 돌아왔다.

유명 배우를 담당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현실 속에 강규민의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되었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지금 생각하니 그때 좋아했던 자신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는 그때 누군가 옆에 쪼그려 앉았다.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해맑게 웃으면서 손수건을 내밀었다.


“욕하는 연기였으면 대상은 따놓은 당상이겠네요.”


지운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안내드립니다. 24.09.15 11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연기로 다 씹어 먹는 괴물 배우] 24.09.01 72 0 -
21 열혈 형사 (7) 24.09.14 35 3 13쪽
20 열혈 형사 (6) 24.09.13 44 4 13쪽
19 열혈 형사 (5) 24.09.12 55 5 13쪽
18 열혈 형사 (4) 24.09.11 63 6 12쪽
17 열혈 형사 (3) 24.09.10 61 5 14쪽
16 열혈 형사 (2) 24.09.09 62 5 13쪽
15 열혈 형사 24.09.08 67 4 13쪽
» 흐름을 주도하는 자 24.09.07 70 4 13쪽
13 방해꾼 24.09.06 72 3 13쪽
12 질투와 시기 24.09.05 78 3 13쪽
11 배역 24.09.04 81 5 13쪽
10 첫 오디션 (3) 24.09.03 82 4 13쪽
9 첫 오디션 (2) 24.09.02 82 4 13쪽
8 첫 오디션 24.09.01 90 3 13쪽
7 그래 넌 꼭 배우해라 24.08.31 101 4 13쪽
6 나 배우 할 거다 24.08.30 105 3 12쪽
5 남겨진 자들 그리고 (2) 24.08.29 108 5 13쪽
4 남겨진 자들 그리고 24.08.28 116 4 12쪽
3 아메리카 액팅 스쿨 (2) 24.08.27 130 4 15쪽
2 아메리카 액팅 스쿨 24.08.26 144 2 13쪽
1 톱스타를 품에 안았다. 24.08.26 182 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