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축구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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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헹헹헹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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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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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득점 머신 -1

DUMMY

22화


선수도 사람이다.

아무리 그들이 수십, 수백억의 연봉을 받고, 필드 위에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뛰어다니고, 믿기 힘든 장면을 연출한다 할지어도, 그들은 초인이 아니다.


이들 또한 필드 밖에선 보통 사람과 똑같은,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사나이 중의 사나이 (본인 피셜) 에반 퍼거슨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감독님,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필드 위의 진정한 사나이 에반 퍼거슨은 비록 좌절까진 하지 않았으나, 본인이 생각해도 처참한 골 결정력과 기록적인 빅찬스 미스에 적잖은 데미지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어느정도 사나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놈이긴 했다.

세간의 치욕스러운 평가와 손가락질에도 좌절하지 않고 그는 해법을 찾아냈다.

이런 그가 사나이가 아니라면 그 누굴 사나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요즘 제 득점력에 문제가 있잖아요?”

“그렇지. 처참하지.”

“흠, 운이 없었죠. 많이 놓치긴 했어요.”

“퍼거슨, 그걸 놓친다고 표현하기엔 좀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그럼 무슨 표현이 있죠?”

“걷어찬다. 라는 표현도 있지.”

“Fu··· 아니, 걷어차다뇨. 제가 차는 건 공뿐인걸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뭔데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오케이. 사나이답게 바로 본론으로 가자는 거죠?”

“그래 뭔데.”

“그, 저한테···”

“너한테 뭐.”

“그···”

“답답해 죽겠네. 빨랑 말해! 너 때문에 점심에 먹은 거 다 올라오겠다!”

“피케이를 제가 차면 안 될까요?”

“뭐?”

“피케이요. 페널티 킥. 그럼 제 부진한 골 결정력을 끌어올릴 수 있ㅡ.”

“안돼.”

“왜요!”

“안돼. 피케이 키커는 썬이야.”

“Fuck!”

“뭐 이 새끼야?”

“감탄사입니다 감독님. 대단하단 뜻이죠. Fuck! 동혁!”


*


아무래도 삼촌이 전날 말한 것들이 신경이 쓰였다.

옆에서 보는 나도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본인은 어떻겠는가.


실제로 퍼거슨은 요새 굉장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낯빛도 어둡고, 어깨가 축 처졌으며, 안 그래도 처진 눈꼬리는 이제 마시마로처럼 급경사 비탈길을 그리고 있다.


“퍼, 퍼거슨이 요즘 조, 조용하지 않아···?”


올리버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퍼거슨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나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긴 해.”

“그래? 난 모르겠던데.”


미토마는 딱히 못 느끼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내 머리가 정의하는 사나이란 단어에 더 적합한 인물은 미토마 카오루가 아닌가 싶다.

이 녀석은 굉장히 둔감하다.

굉장한 먹보에 어떤 비판을 받아도, 흠 그런가?- 하며 되받아칠 놈이기도 하고.


“저, 저것 봐.”


그런 둔감한 사나이를 위해 올리버가 손을 들어 퍼거슨을 가리키며 설명을 덧붙였다.


“하, 한 일주일 굶은··· 고, 고릴라 같잖아···”

“고릴라라니 올리버, 너무한 거 아니야?”

“그, 그런가··· 고, 고릴라한테 사, 사과를 해, 해야 하나···”


이 녀석, 퍼거슨을 대체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한없이 소심하고, 한없이 친절한 올리버가 퍼거슨만 보면 기를 펴는 게 좀 기묘하고 웃기기도 하다.


“우울하면 음···”


그때 우울한 퍼거슨을 위해 미토마가 해결책 하나를 제시했다.


“우울할 땐 먹을 거지.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이라도 먹을래?”


어떻게 이야기가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먹을 걸로 흘러갈 수 있는 거지?


“우울할 땐 밥이지. 밥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 밥을 통해 정을 나누고! 동혁 너네 나라에도 식구(食口) 라는 말이 있지 않아?”

“그게 그렇게 되나?”


음, 집에서 저녁 안 먹으면 삼촌이 섭섭해 할 텐데.

여름이도 놀아줘야 하고.


“어, 음··· 미, 미토마. 나, 나도··· 가, 가도 될까?”

“당연하지!”


반면 올리버는 동료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매우 설레는 분위기다.

녀석이, 으흐흐.- 하고 특유의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우, 우리 집에 품질 좋은 바, 바, 바나나가 있어···”

“바나나?”

“으, 응··· 퍼, 퍼거슨이 조, 조, 좋아할 거야···”


이 자식, 혹시 정말로 퍼거슨을 조금 똑똑한 고릴라쯤으로 생각하는 건가?


*


“이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지. 허 참··· 아무튼 고마워 다들. 사나이로서 조금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젠장.”


모든 일은 미토마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우린 브라이튼 시내에 있는 그의 집, 그의 식탁에 모였다.


모인 인원은 미토마, 올리버, 퍼거슨, 그리고 나.

다행히 삼촌이 오늘 조금 이른 시간 퇴근할 수 있다 말했고, 덕분에 여름이 걱정 없이 집을 나왔다.


미토마는 먹을 것도 좋아하지만 요리에도 꽤 소질이 있어 보였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테이블이 가득 채워져 있다.


“다 내가 차리진 않았어. 스시는 근처 일식집에서 가져왔고, 음··· 우동도 소스는 받아왔지.”

“오.”


퍼거슨도 감동을 받았는지, 미토마가 직접 차린 음식을 보고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고마워 미토마. 음, 근데 이 바나나는 뭐야? 이것도 일식인가?”

“그, 그건 내, 내가 준비했어···”

“흠,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고마워.”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퍼거슨의 발언을 듣고 충격을 먹은 듯 입을 떡 벌리는 올리버.

흠··· 뭐,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는 시작됐다.


“나, 나, 스, 스시는 처음 먹어봐···”


올리버가 어색한 젓가락질로 초밥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처음 먹는다고?”

“어, 으, 응.”


그럴 수 있지.

이곳은 영국이고, 일식이 그리 흔한 나라는 아니니까.

나는 올리버에게 스시를 어떻게 즐기는지 알려줬고, 내 설명을 듣고 그가 난생 첫 스시에 도전해 본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스시 하나를 집어 들고, 와사비를 조금 푼 간장에 살짝 적신 뒤 입에 그대로 직진.

씹으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올리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적당한 찰기의 밥알이 그의 입안에 퍼지고, 탱글탱글한 생선의 질감이 그의 진실의 미간을 움찔거리게 만든다.


그렇게 스시에 빠진 올리버의 손이 바삐 움직이다가 순간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뭐, 뭐, 뭐, 뭐약!”


먹었나 보군.


“쿠, 쿨럭. 무, 물! 미, 미토마 물!”


아마 내가 와사비를 잔뜩 집어넣은 광어 뱃살 초밥을 먹었나 보다.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올리버를 쳐다보니 그가 초롱초롱한 눈을 내게 부라린다.


“그래도 다행이야. 하도 기운이 없어 보이길래 다들 걱정이 많았거든.”


미토마가 잘 먹고 잘 마시는 퍼거슨을 보고 안심이라는 듯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퍼거슨도 미토마의 말을 듣고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사나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이지.”

“고, 고, 고릴라는 기억력이 아, 안 좋은 법이지···”

“뭐 이 자식아?”

“노, 농담.”


우린 호스트가 차려준 식탁 위의 음식들을 빠른 속도로 해치워 나갔다.

올리버는 당한 게 있어서 그 뒤로 초밥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퍼거슨은 우동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지 사발째로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야, 이거 국물 죽이네.”

“그치? 근처에 괜찮은 집이 있어. 알려줄까?”

“좋지. 크흐, 사나이의 국물이야.”


아무튼, 퍼거슨의 축 처진 어깨를 펴주겠다는 미토마의 계획은 성공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 성공이 맞았다.

실제로 그는 동료들이 본인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꽤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미토마가 후식 거리를 내오는 동안 퍼거슨이 나를 한번 스윽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혁.”

“응?”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말이야.”

“부탁? 뭔데?”

“흠. 그거 있잖아. 피로 시작하는 거.”

“피?”

“그래 피. 축구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인데.”


뭐지?

갑자기 분위기 스무고개?


“세트 피스 상황 중 하나이기도 하지.”


피로 시작하고, 축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세트피스 상황?


“피케이?”

“그래! 피케이 흠.”

“피케이가 왜?”

“그게, 오늘 감님독한테 물어봤거든. 다음에 기회가 나면 내가 피케이를 차도 되겠냐고 말이야. 그런데 감독이 우리 팀의 피케이 키커는 너라고 딱 잘라 거절을 하더군.”

“아.”

“그래서 말인데 흠.”


퍼거슨이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피케이를 통해 한 번 득점포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이후로 봇물 터지듯 득점을 터트릴 수 있을 거란 말일 테지.


나는 퍼거슨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이런 건 차도 되냐고 물어보기 전에 당사자가 차라고 하는 것이 더 민망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솔직히 득점에 그렇게 욕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으니 뭐.


“너가 차. 피케이.”

“정말?”

“정말.”


흔쾌히 수락하니 우물쭈물 퍼거슨이 원래의 퍼거슨으로 돌아왔다.

으하하!- 하고 호쾌하게 웃더니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역시 동혁이야. 올리버같은 쫌생이랑은 비교할 수가 없지.”

“뭐, 뭐?”


그 뒤로 투닥대는 올리버와 퍼거슨.


그래도 이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


퍼거슨이 동혁에게 피케이를 차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동혁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으니 큰 고민 없이 수락한 요구이기도 했다.

득점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피케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케이가 그리 득점하기 어려운 상황도 아니며, 본인이 원한다는데 안 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동혁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피케이?

원래 팀의 피케이 키커가 본인이니 줄 수는 있었다.


득점 기회?

피케이 말고 다른 득점 기회가 많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피케이! 피케이를 선언합니다! 스템포드 브릿지에서 브라이튼이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 동점 또는 지고 있는 상황, 그리고 동혁이 벤치에 있는 상황.

그 모든 상황이 겹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전반 30분, 은쿤쿠의 득점으로 앞서 나갔던 첼시, 하지만 후반 10분 썬에게 동점 골을 얻어맞았고, 이젠 피케이를 내주며 역전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후반 25분 썬이 나가는 걸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던 엔초 마레스카 감독이었는데요, 이젠 얼굴이 잔뜩 일그러집니다! 후반 40분, 포파나 선수가 올리버 스미스를 뒤늦게 발견하고 거친 태클을 날린 게 문제였습니다!]

[브라이튼 이번 시즌 첫 피케이입니다. 누가 차게 될까요.]

[어 이게 무슨 일이죠? 주앙 페드루 선수와 에반 퍼거슨 선수가 싸우는 것 같은데요?]

[아 이럼 안되죠! 브라이튼 역전 기회입니다. 키커가 누구든 저러면 부담될 수밖에 없어요.]


공격수라면 득점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피케이를 차고 싶은 사람은 많았고, 골이 고픈 것은 주앙 페드루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아무리 동혁이 퍼거슨에게 기회를 준다 약속했다지만, 동혁은 벤치에 있는 상황이었고, 감독이 다음 키커로 지정한 선수는 에반 퍼거슨이 아닌 주앙 페드루였다.


“동혁이 나보고 차라고 했다고!”

“그게 뭔 상관이야? 감독님이 나보고 차라 했다니까?”


하지만 둘 다 찰 수는 없는 일.

결국 키커는 정해져야 했고, 피케이를 얻은 올리버 스미스의 지목 아래 키커는 에반 퍼거슨의 몫이 됐다.


“저 머저리는 또 날려 먹을 걸!”

“Fuck off 페드루. 집중해야 되니까 저리 꺼져.”


[아 키커가 정해졌나 보군요. 에반 퍼거슨이 페널티 스팟으로 공을 들고 갑니다.]

[음, 꽤··· 흔히 있는 일이죠? 뭐 공격수라면 득점을 원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이래선 서로 좋을 게 없어요.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맞는 얘기죠. 하지만 결국 키커는 정해졌고, 퍼거슨 페널티 킥을 준비합니다.]

[퍼거슨 도움닫기. 퍼거슨! 아 이게 뭔가요!]

[퍼거슨의 슈팅이 골 퍼스트에 맞고 튕겨져 나갑니다! 주심 골킥을 선언합니다!]


“병신 그럼 그렇지!”


퍼거슨의 등 뒤로 주앙 페드루의 거친 욕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퍼거슨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머리를 감싸 쥔 채 주저앉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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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고장 난 득점 머신 -3 24.09.17 121 4 12쪽
23 고장 난 득점 머신 -2 +4 24.09.16 123 5 13쪽
» 고장 난 득점 머신 -1 +2 24.09.15 127 5 13쪽
21 전방 압박 -5 +1 24.09.14 147 5 13쪽
20 전방 압박 -4 +1 24.09.13 149 6 12쪽
19 전방 압박 -3 +2 24.09.12 172 7 18쪽
18 전방 압박 -2 +3 24.09.11 193 6 11쪽
17 전방 압박 -1 +2 24.09.10 216 8 13쪽
16 사?나?이? 공격수 +1 24.09.09 207 7 13쪽
15 맞춤 전술 -3 +1 24.09.08 208 9 12쪽
14 맞춤 전술 -2 +2 24.09.07 211 8 11쪽
13 맞춤 전술 -1 +1 24.09.06 230 9 15쪽
12 해리 포터 -2 +4 24.09.05 225 7 14쪽
11 해리 포터 -1 +2 24.09.04 240 8 13쪽
10 올리버 토마스 -2 +1 24.09.03 249 8 13쪽
9 올리버 토마스 -1 +1 24.09.02 259 6 13쪽
8 시즌 개막 -2 +2 24.09.01 275 10 16쪽
7 시즌 개막 -1 24.08.31 298 9 15쪽
6 인생사 새옹지마 -6 +2 24.08.30 304 7 12쪽
5 인생사 새옹지마 -5 24.08.29 318 10 13쪽
4 인생사 새옹지마 -4 24.08.28 340 8 14쪽
3 인생사 새옹지마 -3 24.08.27 421 11 13쪽
2 인생사 새옹지마 -2 24.08.26 498 12 15쪽
1 인생사 새옹지마 -1 +4 24.08.26 618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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