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축구가 쉽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판타지

새글

으헹헹헹헤
작품등록일 :
2024.08.26 15:57
최근연재일 :
2024.09.17 15:3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5,608
추천수 :
189
글자수 :
144,162

작성
24.09.07 15:31
조회
194
추천
8
글자
11쪽

맞춤 전술 -2

DUMMY

14화


미리 사과한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말 그대로 정말 모든 생각들이 불에 타고 연소되어 하얀 재가 됐다.


미리 사과한다.

이 말은 보통 상대방이 충격적인 말을 듣기 전에 내뱉는 방지턱 같은 발언이 아닌가.

심지어 얼굴까지 잔뜩 구긴 채 그런 말을 하니, 다음 말이 뭐가 나올지 정말 두려웠다.


“예? 그게 무슨···”

“전에 내가 썬, 너를 포리바렌테라고 생각한다 말했었지.”

“그, 그랬죠?”


다시 한번 길게 숨을 푹 내쉬는 감독님.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온갖 폼을 잡는 걸까.

그 뒤로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째깍째깍.

손목에 찬 시계가 만드는 소리가 고막을 뚫고 침투했고, 감독님이 다리를 떠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포리바렌테?

그 발언이 감독님을 미안하게 만들 이유가 뭐가 있지?


처음 집무실 문을 열 때 느꼈던 긴장감은 곱절이 되어 다시 다가왔고, 나의 시선은 오로지 굳게 다물어져 있는 감독님의 입술에 고정됐다.

그리고 천천히 감독님의 입술이 열렸다.


“내가 오해했어. 너를 완전히 잘못 파악한 거였지.”

“예?”

“포리바렌테라니 웃기지도 않아. 나와 요나스의 완전한 실책이야. 미안해 썬. 그걸 사과하고 싶었어. 너를 그런 식으로 평가한 게 너무 미안해서 말이지.”


음?


“다음 입스위치 전부터 팀의 전술이 바뀔 거야.”

“전술이라면···”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모델이지. 내가 너를 영입할 때 우리 팀을 어떤 식으로 운영할 거라 말했었지?”

“유기적이고 공격적인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죠?”


감독님이 정답이란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나는 아직도 지금 벌어진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꽤 먼 길을 돌아왔어. 젠장 벌써 9월 중순이 넘었네.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팀을 정상화 시키려고 해. 물론 유기적이진 못하겠지만··· 그건 천천히 고쳐가야지.”


감독님은 이제 내가 대답을 하건 말건, 고개를 끄덕이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우선 출전시간부터 조금씩 늘릴 계획이야. 플로리안 말대로 45분. 대신 동선을 제한할 거야. 신체 무리가 최대한 덜 가게끔 말이지. 우리 막네 코치의 생각이었어. 물론 오후 팀 트레이닝 시작하면 그때 말해도 되는 일이긴 한데··· 너한테 개인적으로 먼저 사과도 하고 싶었고, 미리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불렀어. 그러니까 표정 풀어. 웃으라고 에이스.”


에이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에이스란 단어가 감독님은 또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곧바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 해리 포터.”


*


오후 팀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다음 경기 상대는 입스위치 타운이었고, 오는 토요일 브라이튼의 홈구장, 더 아멕스에서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오늘은 월요일, 훈련 시간으로 닷새가 남은 상황.


“시스템이랑 게임 모델에 변화가 있을 거야!”


파비안은 선수들을 모아 놓고 전술에 거대한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했다.


“상대는 내려앉아서 수비하는 시간이 긴 팀이야. 끈기 있고 많이 뛰고, 공략하기 힘든 팀이기도 하지.”


다음 경기 상대 입스위치 타운은 이번 시즌 승격된 팀이었다.

이전에 맞붙었던 풀럼, 울브스, 웨스트 햄과 비교해 상대적 약팀으로 분류되는 팀이기도 했다.

프리미어 리그의 특성상 팀들 간의 격차가 작은 리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각 팀들의 특성은 있는 법이다.


입스위치 타운은 브라이튼과 마찬가지로 수비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발 빠른 측면 자원을 활용해 좋은 역습을 가져가는 팀이다.

더불어 팀 내 선수들 대부분이 어린 나이로 구성돼 기동성이 좋은 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린 주도적으로 공을 잡고 공격을 할 거야! 라인을 올리고 소유권 유지에 집중해!”


파비안이 손을 들어 다음 경기 포메이션이 적혀있는 하얀색 전술 보드를 가리켰다.

포메이션은 이전과 똑같은 4-2-3-1.

인원 구성 또한 동혁이 선발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였다.


웰벡

미토마 올리버 동혁

발레바 비퍼르

에스투피냔 덩크 웹스터 펠트만

스틸


하지만, 수비하다가 역습해!- 였던 간단한 전술 지시는 조금 더 디테일 하게 바뀌었다.


“미토마는 넓게 벌리고, 올리버랑 동혁은 양쪽 하프 스페이스에, 그리고 펠트만은 오른쪽 측면을 채워줘!”


양쪽 측면은 넓게 벌리고 중앙 2선과 3선 사이에 동혁과 올리버를 위치시킨다.

사실 특별한 지시는 아니었다.


측면을 넓게 벌리고, 하프 윙어를 활용해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는 것은 현대 축구에서 굉장히 일반적인 전술이었으니까.

하지만 파비안이 준비해 온 전술은 디테일한 면에서 현대 축구가 추구하는 것과 상당히 이질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상대 압박을 측면으로 유도하면서 최대한 중앙에서 분산시켜야 해! 볼을 돌리고 측면을 넓게 활용하면서 중앙에 공간을 만들어!”


파비안이 하얀색 전술판 위, 원형 자석들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대 윙어나 풀백이 충분히 끌려 나오면 그때 썬에게 볼을 보내! 이때 중요한 건 그 누구도 오프더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오프더볼을 하지 말라니.

당최 이게 무슨 지시인가.

선수들은 수비수를 교란시키기 위해 가져가는 오프더볼을 하지 말라는 기괴한 지시를 듣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이미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들은 동혁 또한, 이게 정말 통할까.- 라는 생각에 팔짱을 낀 채 의심스러운 눈으로 감독의 지시를 들었다.


“동혁에게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줘야 해! 동혁이 볼을 잡으면 그때 동시다발적으로 박스 안으로 달려! 모두가 한 번에!”


이 축구는 실제 여러 팀에서 활용하는 공격 방식이기도 했다.

발베르데 시절 바르사가 메시의 공격 효율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했었고, 더 브라위너가 있는 맨시티도 가끔 사용하는 전술이었으니까. (물론 맨시티는 이 방법 말고도 여러 공격 루트를 가지고 있고, 바르셀로나는 결국 파훼 당하며 내리막을 걷긴 했지만.)

하지만 이는 동혁에게 공간을 주고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어느정도 희생하는 전술이기도 했다.


“다들 동혁을 믿고 뛰는 거야! 동혁이 공 잡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냥 뛰어! 상대 수비 등 뒤로 냅다 달려!”


프로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다.

특히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프리미어 리그라면 더더욱.

하지만 브라이튼 선수들은 이러한, 동혁에몽 해줘!- 같은 지시를 듣고도 아무런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감독에게, Yes.- 라는 대답을 남겼다.

그야 정말로 동혁이 매 경기마다 해주고 있었으니까.

그가 보여줬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법 그 자체였으니까.


*


[브라이튼의 홈구장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스타디움에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입니다.]

[오늘 브라이튼의 선발 라인업에 재미있는 변화가 있죠?]

[맞습니다. 평소 선발로 나오던 주앙 페드루 선수 대신 드디어! 썬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썬의 몸 상태가 드디어 풀타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올라왔다는 의미일까요?]

[글쎄요. 혹시 모르죠. 썬이 후반 30분을 뛰는 대신 전반 30분을 뛸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귀신 같은 해설자 양반이 파비안 휘르첼러의 계획을 아주 정확하게 때려 맞췄다.

물론 30분이 아닌, 45분을 뛰는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그것이 30분이건 45분이건, 동혁이 후반전에 투입될 것이라 굳게 믿고 선수들의 체력 리듬을 맞춘 입스위치 타운의 입장에선 머리가 어지러울 변화였다.


물론 머리가 아픈 정도로 끝났다면, 그들 입장에서 다행이었을 것이다.

바뀐 플랜이 가장 위협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은 당연히 바뀐 직후 경기가 아닐까?

심지어 브라이튼의 막내 코치가 떠올린 전략은 꽤 효과가 있었고.


[오늘은 주도적으로 볼을 잡고 운영하는 브라이튼인데요.]

[발레바가 한 번에 길게, 오른쪽 썬에게 연결합니다.]

[패스를 받은 썬, 그가 공을 받자마자 전방의 동료들이 일제히 침투합니다!]

[썬의 로빙패스가 미토마에게, 미토마 박스 안에서 위협적인 찬스를 가집니다! 바로 슈팅을 가져가는 미토마 카오루, 하지만 골키퍼 선방!]

[걷어내는 입스위치 타운, 악셀 튀앙제브가 팀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입스위치 타운은 결국 동혁이 박스 안으로 투입하는 패스를 막을 수 없었다.


“끝까지 처리해!”


튀앙제브가 걷어낸 공은 불행히도 빗맞으면서 그리 먼 거리를 날아가진 못했다.

때문에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불안한 포물선을 그리며 박스 바깥으로 날아가는 공에게 향했다.


“마이 마이!”


흘러나온 볼은 다시 동혁의 발밑으로 들어왔고, 동혁이 크로스를 올리기 전 올리버를 찾는 사이, 박스 안의 모든 선수가 올리버를 놓치고 말았다.


투웅 –


동혁이 왼발을 이용해 공의 밑둥을 가볍게 찍어 찼다.

속도는 느렸지만, 높게 떠오른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한번 입스위치 타운의 박스 안으로 투입됐다.

그러는 동안 올리버 스미스의 침투를 파악한 선수는 골키퍼가 전부였고, 나머지 수비들은 올리버의 발에 맞고 들어가는 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머저리 새끼들아! 저 자식 놓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한 선수들을 향해 입스위치 타운의 감독, 멕케나가 비난 섞인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 목소리는 그들의 귀까지 닿질 못했다.


“Uaaaaaaaaaaa - !”


더 아멕스의 관중석을 가득 채운 갈메기단의 열띤 응원 때문에 비난은 선수들의 귀에 닿기도 전에 모두 조각조각 흩어졌으니까.


*


처음 바뀐 전술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의 부족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보니 그 걱정은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좋은 패스!”


득점에 성공한 올리버가 가볍게 폴짝 점프하며 내 등에 업혔다.


“니 침투가 좋았지.”

“저, 정말?”


내 칭찬을 듣고 올리버가, 으흐흐.- 하고 음침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참 다루기 쉬운 놈이다.


아무튼, 이 전략은 나와 올리버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줄 수 있는 전술이었다.

감독님 입장에선 힘든 선택이었겠지만, 과감한 판단을 내려줬고, 감독님도 지금 본인 앞에서 맺은 결실을 보고 활짝 웃으면서 만족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늘은 경기를 뛰면서 내가 정말로 팀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모두가 나를 위해 움직여줬고, 나도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너무 행복했다.


“해리 포터에게 경배를!”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가 인상적인, 우리 팬들이 보내주는 환호 또한 너무 따뜻했고.


“아브라 카다브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사는 축구가 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공지 24.09.04 132 0 -
24 고장 난 득점 머신 -3 NEW 20시간 전 82 4 12쪽
23 고장 난 득점 머신 -2 +4 24.09.16 98 5 13쪽
22 고장 난 득점 머신 -1 +2 24.09.15 107 5 13쪽
21 전방 압박 -5 +1 24.09.14 132 5 13쪽
20 전방 압박 -4 +1 24.09.13 135 6 12쪽
19 전방 압박 -3 +2 24.09.12 157 7 18쪽
18 전방 압박 -2 +3 24.09.11 178 6 11쪽
17 전방 압박 -1 +2 24.09.10 201 8 13쪽
16 사?나?이? 공격수 +1 24.09.09 192 7 13쪽
15 맞춤 전술 -3 +1 24.09.08 192 9 12쪽
» 맞춤 전술 -2 +2 24.09.07 195 8 11쪽
13 맞춤 전술 -1 +1 24.09.06 212 9 15쪽
12 해리 포터 -2 +4 24.09.05 206 7 14쪽
11 해리 포터 -1 +2 24.09.04 221 8 13쪽
10 올리버 토마스 -2 +1 24.09.03 231 8 13쪽
9 올리버 토마스 -1 +1 24.09.02 240 6 13쪽
8 시즌 개막 -2 +2 24.09.01 255 10 16쪽
7 시즌 개막 -1 24.08.31 276 9 15쪽
6 인생사 새옹지마 -6 +2 24.08.30 279 7 12쪽
5 인생사 새옹지마 -5 24.08.29 288 10 13쪽
4 인생사 새옹지마 -4 24.08.28 310 8 14쪽
3 인생사 새옹지마 -3 24.08.27 387 11 13쪽
2 인생사 새옹지마 -2 24.08.26 462 12 15쪽
1 인생사 새옹지마 -1 +4 24.08.26 572 1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