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축구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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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헹헹헹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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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압박 -2

DUMMY

18화


“이걸 보시죠.”


뉴캐슬의 스카우팅 디렉터, 마이크 재거가 본인이 작성한 리포트를 토대로 피칭을 이어갔다.


“썬이 볼을 잡는 위치와 패스 방향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마이크가 작성한 자료는 동혁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볼을 잡은 위치와 패스의 방향을 평균값으로 나타낸 자료였다.


“여기 보시면 볼을 잡는 위치가 아주 한정되어 있죠.”

“그렇군.”

“선수 성향이 애초에 좌우종횡 활동폭이 좁은 선수일 수도 있지만··· 이정도로 구역이 계속 한정되는 건 아마 감독의 지시일 것 같습니다.”

“자네 추측이잖아.”


에디 하우는 여기까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최근 동혁이 높은 위치에서 볼을 잡는 것 자체는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재거가 내뱉은 다음 발언은 에디 하우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자료를 보시면 감독님도 확신으로 바뀔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뭔데?”

“시즌 초반 썬이 볼을 잡는 위치와 활동폭을 나타낸 자료입니다.”


재거는 스크린 앞으로 걸어가 동혁의 활동폭 Before/After 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 자료를 보시면 썬의 활동폭이 완전히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브라이튼은 시즌 초반 세 경기와 이후 두 경기의 경기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기점으로 썬이 전반에 출전하고 있고, 출전 시간도 대폭 늘어났죠.”

“흐음···”

“그리고 기용 위치와 활동폭 역시 바뀌었습니다. 중앙에서 좌우종횡 길게 뛰던 선수가 지금은 우측 하프스페이스에만 고정돼 있죠.”

“그래서?”

“이건 썬이 어떤 이유가 됐건, 저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재거는 이번엔 지표가 아닌, 다른 코치들과 에디 하우 감독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까지는 유추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분명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면 신체에 무리가 가거나, 아니면 그만큼 빨리 교체를 해줘야 한다는 의미겠죠.”


이번 정보는 에디 하우도 마음에 드는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희 플랜에서 썬이 저 우측 하프 스페이스에서 내려오는 상황을 배제하고 플랜을 짜도 될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건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나?”

“리스크가 큰 대신 리턴도 크겠죠. 만약 썬이 저 지점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저희의 라인 설정을 더 세밀하게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이를테면 전원 하이 프레싱 대신 미들 블록을 구성하는 게 나을 수도 있죠. 물론 전방 압박은 그대로 가져가면서요.”

“그럼 2선과 3선이 너무 벌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브라이튼의 전진 패스는 무조건 썬의 발에서만 나갑니다. 2선과 3선에서 공간이 주어져도 썬이 내려와서 공을 받지 않으면 이 공간으로 공이 투입될 일은 없을 겁니다.”


*


“어제 가게에 웬 손님이 개를 데려왔어.”


삼촌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여러 재료들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본인만의 레시피를 은색의 쉐이커 안에 담아 흔들기 시작한다.


“개?”

“그래 개. 음, 아니 강아지에 가까웠지. 그 뭐더라 다리가 짧은···”

“웰시 코기?”

“그래 맞아. 커다란 고구마같이 생긴 놈.”


커다란 고구마라니.

전 세계 3천만 웰시 코기들한테 사과해···


“뚱실한게 귀엽더라고.”

“웰시 코기 귀엽지.”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꼬리가 없는 건 조금 안타깝긴 했지만 뭐··· 그래도 귀엽더라고.”

“그래 귀여워.”

“그러니까. 참 귀엽더라고 녀석 참···”


어쩌라는 거지?

이번엔 별 반응하지 않고 대충 무시하니 삼촌은 쉐이커를 흔들다 말고 슬그머니 내가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말인데···”

“안돼.”

“뭐가. 뭐가 안 되는데?”

“강아지 키우자고 말하려는 거잖아.”

“미래 예지?”

“뻔하잖아.”


내가 단칼에 거절하니 삼촌이 섭섭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야 동혁아, 삼촌은 말이야? 다 너를 위해서, 너를 생각해서 한 말이야. 축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말도 있잖니?”

“처음 듣는데?”

“짜식이 왜 이렇게 단호박이야?”

“삼촌, 개 키우는 게 쉬운 줄 알어?”

“누가 쉽게 키운데?”

“안 돼. 털도 날리고 매일 산책 시켜야 하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야 해. 스트레스받지 않게 놀아줘야 해. 미용도 시켜야 하고, 똥도 치우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산책은 내가 시키면 되고, 아프면 병원 그거 엉? 데려가면 되고, 스트레스받으면 놀아주면 되고, 털은···”

“털은?”

“거 쪼만한게 빠져봤자 얼마나 빠진다고.”


이 싸람이···

어디 털 폭탄 한 번 겪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물론 나도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개를 키우는 건 반대다.

하지만 삼촌에겐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야 동혁아, 삼촌이 너를 위해 해주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 불쌍한 삼촌을 위해 그거 하나 동의 못 해주니?”

“삼촌이 뭘···”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나를 위해 해주는 것?

나를 필드 위의 마법사로 만들어준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쉽게 물러설 순 없었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운다는 결심은, 이렇게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할 만큼 쉬운 결심이 아니지 않나.

결국 나는 도망을 택했다.


“아무튼! 삼촌 그거 완전 충동적인 거야. 내일··· 아니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해.”

“얌마! 어디가!”

“훈련!”

“이 저녁에?”


*


뉴캐슬 전까지 닷새가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시간.

우린 그 기간동안 최대한 경기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더 빠르게! 볼 오래 잡지 마! 뉴캐슬은 절대 그만큼 시간 안 줘! 더 빠르게!”


그렇기에 감독님도 이번 주는 우릴 더욱 모질게 몰아붙이고 있다.


뉴캐슬은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가져가는 팀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했듯, 우리 팀 선수 구성 자체가 압박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압박을 풀어 나올 때 가장 중요한 자원들인 두 센터백과 더블 피봇은 뉴캐슬의 거센 압박에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았다.


수비 리더인 루이스 덩크는 그나마 압박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웹스터는 후방 빌드업 시 강한 압박에 노출되면 잔 실수가 많아지고, 비퍼르는 뒤에 선수가 있으면 전혀 돌아서질 못한다.

발레바는 돌아서는 능력 자체는 괜찮은데 짧은 패스에 불안함이 많았고.


“동혁! 너무 아래야! 더 높은 위치에서 받아!”


때문에 내 위치가 자연스레 아래로 치우쳤고, 감독님은 그 상황을 계속 경계했다.

물론 내 위치가 상대 골문에서 멀어질수록 우리 팀이 득점하는 확률이 내려갈 테고, 내가 뛰는 거리도 늘어나니 신체에도 무리가 간다는 것은 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대 팀 또한 그걸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야 우리 팀이 지향하는 발베르데 시절, 바르사 공략법이 이것이었으니까.


“비퍼르! 받기 전에 주변 상황 빠르게 파악하고 하프 턴을 해야지! 그렇게 꾸물s거리면 공이 전진을 못 하잖아! 속도가 죽는다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가 내려가질 않으면 공이 전진을 못 했다.

더욱이 올리버나 퍼거슨이 내려가면 전체적으로 라인이 내려오면서 나만 외딴섬처럼 남게 됐고.


왠지 불안했다.

4승 2무, 4위.

좋은 스타트를 끊긴 했으나, 상대한 팀의 면면이 그리 좋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아스날과 첼시의 경기 결과에 따라 3위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

우리 팀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긴 했으나, 동시에 위기이기도 했다.

이번 경기에서 진다면 후끈해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고, 기세를 많이 타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기세가 죽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테니까.


“젠장.”


더욱이 우리 팀은 이미 직전 시즌, 전반기 좋은 스타트를 보이고 중반부터 폼이 떨어지며 나락을 보여준 경력이 있는 팀이었다.

때문에 선수단 머리 위에 어떤 감정이 짙게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불안함 말이다.


*


모든 트레이닝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훈련 때만 하더라도 어깨 위로 소심하게 내리던 비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기세 좋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센지, 차 천장에서 우박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거친 소리를 내뿜었다.

차창에서 흘러내리는 빗줄기 또한 너무 거세 와이퍼가 움직이는 정면의 창문을 제외하면 모든 시야가 희미하게 가려졌다.


그때 휴대폰이 작게 진동했다.


-삼촌 : 비 많이 온다! 조심히 와!


부우우우웅 –


나는 삼촌의 조언에 따라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더 아멕스 (The Amex) 에서 런던으로 가는 길.

차창을 때리던 빗소리는 이제 조금 익숙해졌고, 그 사운드를 벗 삼아 쭉 뻗은 해안 길을 달렸다.

도로는 한산했고, 퍼붓는 비와 도로를 나뒹구는 잎사귀를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였을까, 문득 원래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도로를 달리면서 운전에 집중하는 편이고, 좀 전에도 말했듯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거셌으며 와이퍼가 일을 하는 앞창을 제외하면 모든 시야가 차단된 상태였다.

그런데 라이트가 비추는 정면의 도로 말고, 옆에 있는 갓길에서 무언가 흰 물체가 내 눈을 스쳤다.

언뜻 보면 귀신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것.

상체는 흰색, 하체는 갈색의 어떤 물체가.


끼이이익 –


나는 그 물체를 보고 홀린 것처럼 차를 멈춰 세우고, 갓길에 있는 그 흰 물체를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21세기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은 아니겠지?- 하고.

이윽고 차를 완전히 멈춰 세운 뒤 시야에 온 정신을 집중하니 그 흰 물체의 정체가 드러났다.


갈색의 박스와 하얀 개였다.

하얗고, 주둥이가 긴, 그리고 덩치는 조금 큰.

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보단 여러가지가 섞인 그런.


그런 개가 거센 빗줄기를 맞으며 올곧게 서서 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이윽고 녀석과 나의 시선이 교차한다.

나는 차에서 내린 뒤 트렁크를 뒤져 우산을 꺼내 녀석에게 다가갔다.


“뭠!”


빗물 때문에 축 처진 털 사이로 까만 콩 3개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각각 눈과 코였다.


“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긍정적마음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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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 압박 -2 +3 24.09.11 179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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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맞춤 전술 -2 +2 24.09.07 195 8 11쪽
13 맞춤 전술 -1 +1 24.09.06 212 9 15쪽
12 해리 포터 -2 +4 24.09.05 207 7 14쪽
11 해리 포터 -1 +2 24.09.04 222 8 13쪽
10 올리버 토마스 -2 +1 24.09.03 232 8 13쪽
9 올리버 토마스 -1 +1 24.09.02 241 6 13쪽
8 시즌 개막 -2 +2 24.09.01 255 10 16쪽
7 시즌 개막 -1 24.08.31 276 9 15쪽
6 인생사 새옹지마 -6 +2 24.08.30 280 7 12쪽
5 인생사 새옹지마 -5 24.08.29 288 10 13쪽
4 인생사 새옹지마 -4 24.08.28 311 8 14쪽
3 인생사 새옹지마 -3 24.08.27 388 11 13쪽
2 인생사 새옹지마 -2 24.08.26 462 12 15쪽
1 인생사 새옹지마 -1 +4 24.08.26 574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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