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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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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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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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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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DUMMY

‘찾았다고?’


속삭이는 듯한 어투였으나 천진에게는 유달리 뚜렷하게 들려왔다. 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휘몰아친다.


사파의 거두 광인성 출신의 인물이 왜 자신에게 저러한 말을 한 것일까? 그는 광인성과 연고도 없거늘.


살면서 광인성의 이름을 들어만 봤지, 그가 광인성과 직접 엮인 일은 없었다. 자신이 무림에 나와 위명을 떨친 협사인 것도 아니다. 그저 널리고 널린 이 급 낭인일 뿐. 아직 그렇다 할 별호도 없는 무림 초출일진대.


‘별에 미친 자식들이 왜.’


그러다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찝찝하고, 따끔거리는, 마음 한편을 계속해서 찔렀다.


‘···무성.’


유일하게 별이 없는 인간. 그게 자신이었다.


‘녀석들이 무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른다. 하나 별의 가호에 환장해 산 사람의 심장도 꺼내는 녀석들이니 무성이란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결코 가만있지는 않을 터.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천진은 쥐고 있던 검파를 더더욱 세게 잡았다. 단전에서 내력이 용솟음치며 다리로 향했다. 본능에서 이뤄진 행위였다.


그 순간 광인성 측 인물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 마치 지금은 볼 일이 없다는 것처럼.


“그럼, 나중에 보지.”


“뭔 헛소리냐.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데 그냥 돌려보내라고? 어림없는 소리.”


천진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혈안부호가 움직였다. 그가 땅을 박차며 얕은 능선을 훌쩍 넘었다. 삽시간에 이뤄진 움직임이며, 고수의 발걸음이었다.


광인성의 인물은 그런 혈안부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너와 놀 건 내가 아니다.”


녀석의 말과 동시에 강렬한 경력 여파가 휘몰아쳤다. 뒤돌아선 광인성 인물의 공격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였다.


혈안부호가 허공에서 부를 휘두르며 그를 쳐낸다. 반탄력은 어찌할 수 없는지 그가 올라섰던 것보다 빠르게 땅에 내려섰다.


“큭.”


떨리는 도낏자루의 진동이 느껴진다. 잠깐이나마 쳐냈으나 강한 공력이었다.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사제. 적당히 하도록.”


“예. 사형.”


수풀을 가르며 한 인물이 더 나타났다. 그도 남색의 장포를 입고 별이 수 놓인 복색이다. 광인성의 인물이란 소리다.


검을 쥔 그에게서 강대한 공력이 느껴졌다. 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광인성이 하나 더. 사제라고 부른 것을 보니 사형제지간이군.’


사제 측이 더 강하다. 천진의 기감은 자연적으로 그를 헤아렸다.


‘사형 측은 진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어딘가 꼬인 듯, 원활하지 못해.’


거기까지 판단한 천진은 입마를 떠올렸다. 간혹 진기의 운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주화입마다.


심마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 마음의 병이던 갑작스러운 충격이든 무인은 언제나 심마를 경계해야 한다고 들었다.


‘병력은 저기서 끝인가?’


천진이 기감을 더 끌어 올렸다. 사위를 포진하듯 몸을 웅크리고 있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를 방증하듯 수풀을 가르며 나타나는 병력이 있었다. 사제라 불린 이의 뒤를 따르고 있다.


천진은 이를 으득 갈았다.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선배.”


천진이 혈안부호에게 말을 건넸다. 땅에 떨어진 충격을 해소하고 있던 혈안부호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


“저는 방금 그자를 뒤쫓겠습니다.”


“안 된다.”


혈안부호는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하나 천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방금 그자의 진기 운행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위험할 수 있다. 단독 행동은 불허한다.”


천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필요하다. 녀석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방금과 같은 언행은 내뱉지 않았을 터이니.


‘확인해야 한다.’


하나 혈안부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천진은 조급함을 삭이며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당장 설득하는 것은 무리.’


그는 이번 의뢰에 혈안부호의 제의로 참여한 것이다. 달리 그의 낭인대에 소속되진 않아도 일원이 되어 동참한 것이란 소리다. 하면 그의 말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증명하면 될 일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에게 광인성 측의 인물을 추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하니 저들도 위험하고.’


평생을 받아온 경멸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아내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마음을 식히고 한 걸음 뒤에서 현실을 직시하니 남은 광인성 인물들도 위험했다. 저들이라고 비밀을 알고 있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


‘지워버리면 될 일이다.’


어렸던 천진은 세상의 가혹함을 많이 겪었다. 못난 이들끼리도 서로 급을 매겨 더 못난 이를 낮잡아 부르며 알량한 자존(自尊)을 챙겼더랬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까지 싸잡아 모욕을 듣던 나날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천진은 무성이라는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일신의 능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일 터이나, 세상은 여전히 천강삼십육성을 광적으로 신앙한다. 무성이라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오는 의뢰가 뚝 끊길 수도 있다. 고강해질 방법이 사라진단 소리였다.


‘저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온 자들이다. 망설일 필요 따윈 없다.’


천진의 눈이 낮게 가라앉으며 검파를 쥔 손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그를 느낀 혈안부호의 입이 우물거렸다. 무어라 나오려던 말이 목구멍에 걸려 도로 삼켜진다.


그는 낮은 한숨과 함께 천진에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꾸나.”


지금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도대체 광인성과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 아이에게서 저러한 반응이 흘러나온단 말인가. 모르겠다. 무림의 은원이란 깊게 알려고 해도 쉽사리 알 수 없었으니.


혈안부호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상대는 광인성이다. 각별히 주의해라.”


“예!”


혈안부호의 말에 그의 낭인대가 우렁차게 답했다. 여유로움은 씻은 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광인성의 문도들은 그런 낭인대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벌레가 주제도 모르고 사람을 물려고 할 때 나오는 듯한 조소였다.


“들개들이 겁을 상실했군. 우리가 왜 사도구패라 불리는지 잊은 모양이구나.”


낭인대도 그냥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왜 사도구패라 불리긴. 사람을 하도 해치는 잡것들이라 그런 것 아니냐. 산에 서식하는 짐승들이랑 너희가 다를 게 뭐냐.”


거침없는 언사에 칼이 섞여 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광인성의 문도들이 저마다의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충돌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처럼 이루어졌다.


“저 오만방자한 입을 찢어놔라.”


“가자. 사파의 잡것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자.”


광인성 측이 능선을 뛰어넘듯 내려섰다. 장포에 수 놓인 별이 나풀거리며 밤하늘에 뜬 별처럼 보였다. 대부분 두 개를 넘는 개수를 가진 자가 없었다.


그들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허리춤의 검을 뽑으며 뭉쳤다. 오랜 세월 합을 맞춰왔다는 듯 행렬에 맞춰 방위를 점하고 낭인대를 주시했다.


“합격진이다. 포위되지 않게 몸을 잘 움직여라.”


낭인대를 이끄는 자는 부대주 사필군이었다. 혈안부호는 저 멀리 사제라 불린 광인성 오 성 제자와 병장기를 맞대고 있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그들이 자아내는 경력 여파가 이곳까지 치밀었다.


부대주 사필군을 필두로 낭인대가 저마다의 병장기를 패용했다. 광인성의 합격진과는 달리 낭인대의 움직임은 각자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계승하듯 각기 움직였다. 하나 그 안에 연격이 살아 숨 쉬었다.


저마다 같은 팔을 공유했다는 듯, 각자의 개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았다. 한 사람이 공세를 취하면 다른 방위에서 날아드는 검을 다른 낭인이 쳐낸다. 쉽사리 승기가 기울지 않는 싸움이었다.


“······.”


천진은,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 비로소 확신이 섰을 때 그가 땅을 박찼다.


흐름을 본다. 한계까지 집중한 눈이 일련의 흐름을 통제한다. 하니 흐름과 연계를 중시하는 합격진에게 천진은 하나의 재해였다.


“큭!”


미천일보로 광인성에게 빠르게 짓쳐 든 천진의 검이 분경을 머금었다. 합격진을 이루던 한 축의 검을 쳐내자 그의 검이 찌르르 울리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팔이 벌리며 자연스레 몸이 열렸다.


“어딜!”


다른 광인성의 제자가 빠르게 그 자리를 채우며 천진에게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그는 이미 후퇴 보법을 밟은 뒤였다. 이미 뒤에서 짓쳐 드는 흐름을 인지하고 있었다.


천진이 연 틈을 향해 자연스레 들어서는 낭인대의 공격. 잘 짜인 합공을 보는 듯했다. 광인성의 문도 한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승기가 단번에 이쪽으로 기울었다. 사제라 불린 자를 혈안부호가 전담하고 있으니 천진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도 광인성의 오 성 문도. 문파의 한 축을 담당할 고수라는 소리다. 혈안부호는 그런 인물과 대등한 싸움이란 것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천진은 자신만의 싸움을 했다. 흐름을 읽고, 통제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율한다. 미천일보와 이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치고 빠진다. 낭파검륜의 움직임이 상대의 흐름을 빼앗고 자연스레 아군의 흐름은 조율했다.


“합격진이 원활하지 않다. 저 꼬마가 원인이다. 저놈부터 죽여라!”


“어딜!”


검을 쳐냈다. 동시에 짓쳐 드는 다른 검을 보곤 천진이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촤악. 그의 옷자락이 베였으나 살갗에는 닿지 못했다.


동시에 어깨에 내력을 집중해 상대의 검면을 밀쳤다. 발검하듯 검을 하단에서 위로 치켜드니 광인성 문도의 정중선에 혈선이 그어지며 그가 허물어졌다. 처음 검을 쳐낸 인물이 다급히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낭인대의 인물들이 병장기를 쑤셨다. 그의 몸을 수많은 병장기가 관통하며 눈동자에 생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광인성의 합격진이 와해되었다. 이 성 문도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때마침 혈안부호도 오 성 문도를 끝낸 듯하다. 오 성 문도의 목이 땅을 구르고 있었다.


하나 혈안부호의 상세는 빈말로라도 멀쩡하다 평하진 못했다. 복부에 길게 혈선이 그이며 피가 흐르고 있다. 손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보니 장기가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였다.


“흡!”


혈안부호가 복부 근육으로 이를 조이곤 혈을 점해 출혈을 잡았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깊게 그어진 복부를 지졌다. 탄 내가 훅 번지더니 강제로 상처가 아물었다.


낭인대는 승리의 기쁨에 취할 새도 없이 가부좌를 튼 혈안부호의 근처에 모이며 호법을 섰다. 그런 인물들의 중심에서 혈안부호의 나직한 목소리가 천진에게 울렸다.


“가야겠느냐.”


“예.”


“방금 겪어서 알 터. 아무리 사파의 잡것들이라 무시해도 명문은 명문이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천진은 그의 말에 고민했다. 음성에 서린 걱정이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 것이다.


하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고민을 끝낸 천진이 애써 모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 마을에서 이상한 술수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아까 그자는 저를 보고 분명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연관이 있을 겁니다.”


“그런가. 광인성은 술법에도 해박한 녀석들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혈안부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여전히 걱정이 어린 음성이었다.


“조심해라.”


“···예.”


힘겹게 얻어낸 승낙을 가지곤 천진이 땅을 박찼다. 진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원활하지 못한 운행 때문에 몸에서 공력 파편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그게 길을 깔 듯 천진을 안내하고 있었다.


‘기다려라.’


이 길 끝에, 녀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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