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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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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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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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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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의 잔음(殘音). 빗방울에 드문드문 섞여 피부를 휘감는 습함.

그리고 눈앞의 여인.


천진의 감각을 채우는 모든 것이었다.


천진은 검을 집어넣지 않았다. 못 보던 얼굴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은 이미 시신으로 확인한바,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녀를 보고 경각심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비록 못 사는 이들이나 입을 법한 복식을 하고 있음에도.


눈앞의 여인은 목에 드리운 검날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두 손을 하늘로 바짝 치켜든 게 스스로의 무해함을 증명하려고 열중이다.


한 치만 더 움직이면 곧장 살갗을 벨 법한 거리. 그를 여인도 느꼈기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거, 검 좀 치워주지 않을래?!”


“넌 누구지.”


“나, 나는 령이야.”


“령? 마을에서 너를 본 기억이 없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옆 마을에서 불이 났다길래 확인하러 온 거야. 어른들이 오지 말라고 해서 이리로 몰래 온 거고······ 좀 있으면 어른들도 올 거야!”


천진은 상대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생긴 의심병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천천히 상대의 기세를 살폈다. 느껴지는 기운은 전무했다. 적어도 무림인은 아니란 소리다.


물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신의 내력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고수들도 존재한다고 하던데, 솔직히 상식 밖의 생각이다. 그런 고수가 왜 이런 곳을 기웃거리고 있단 말인가.


하물며 천진은 자신의 감각에 자신이 있었다. 내력이 없던 시절에도 유소찬의 몸에서 흐르던 진기의 흐름을 완전히 포착했고, 단전에 내력을 안착한 시점에선 백응검문주의 흐름은 눈에 보이듯 훤하게 느껴졌으니.


‘···동공의 떨림, 맥박, 심장의 두근거림까지. 겁을 집어먹은 사람의 그것이다.’


천진은 단전에 얼마 남지 않은 내력을 끌어올려 기감을 곤두세웠다. 저 멀리 이제는 타버린 흔적만 남은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그녀의 말처럼 어른들의 목소리다. 불길이 꺼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자신들의 마을에 화가 닥치지 않는다고.


그제야 의심을 푼 천진이 검을 천천히 거두곤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일을 겪다 보니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아, 아니야. 그보다 그거 진짜 진검이야?”


천진은 검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그걸로 족했다.


여인은 무엇이 그리도 신기한 것인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천진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우와. 역시 무인이구나?”


“무인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는 아니다.”


천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으나 스스로도 답을 정할 수 없었다. 나는 무림인이라 자처해도 되는 수준일까?


‘···아직은 아니야.’


백응검문주를 이겼으나 여러 요인들이 겹치고 겹친 우연에 불과했다. 그가 대업이라 부르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 기습을 먹일 수 있었고, 단전에 낸 상처를 통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 덕분에 그의 검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림에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화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를 꽃피울 노력과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당당히 스스로를 화공이라 자부할 수 있음이니.


고작해야 이름 없는 마을에 들어선 삼류 방파인 백응검문주를 꺾었다고 천진이 당장 무림인이라 자부할 수는 없는 셈이다.


‘역시 힘이 필요해.’


새롭게 정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여인이 말한 말이 뇌리를 울리는 것만 같다.


‘낭인이라.’


확실히, 문파에 들지 않고서도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다.


낭인(浪人). 흐르는 물결처럼 의뢰를 받고 여기저기 떠도는 자들.

그것이라면 의뢰의 보수로 받은 돈으로 영약을 사 먹을 수도 있을 것이며, 여기저기 떠도니 그의 근본적인 목표에도 부합한다. 별의별 사람들이 모이는 낭인의 특성상 자신이 무성이라는 것을 숨기기에도 쉬울 터.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구하면 된다.’


별의 가호를 알아보는 그 물건도 소모품이라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낭인이 무슨 가호를 받았는지 일일이 감별하는 것은 힘들 터. 천진은 거기까지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조언해 줘서.”


“응? 내가 뭘?”


령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천진은 그에 몸을 돌리며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천진은 그 길로 곽 씨 아저씨의 무덤을 일별하곤 산을 내려갔다. 당장의 목표가 생겼다.


‘도원.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낭인은 검을 차고 돌아다닌다고 모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서에 있는 낭인들의 마을. 그곳으로 가 시험을 봐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믿고 의뢰를 맡길 수 있다고.


천진은 그곳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점차 산길을 타고 그의 모습이 점처럼 희미해질 무렵, 령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만 보다 안색을 정비했다.


방금까지 순진무구했던 여인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엷은 미소만을 지은 채 천진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곧, 그녀의 곁으로 사람들이 다가왔다. 한 사내가 여인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불길을 걱정하던 남성의 목소리와 똑 닮아 있었다.


“문주님. 사흑련의 인물이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만 몸을 빼시는 게······.”


“알겠어요.”


“그보다 방금 그 아이는 누구입니까. 감히 문주님의 목에 검을 겨누다니.”


“내버려 두세요. 귀중한 원석일 지도 모르니.”


“예. 분부대로.”


그녀는 주위 수하들을 안전에도 두지 않고 떠나가는 천진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범인의 시야로는 보이지 않을 법한 거리였으나, 그녀에게는 바로 지척에서 보는 것처럼 훤히 보였다.


‘삼재심법이라··· 연이 닿은 모양이다.’


그저 자신들이 만든 비동이 어찌 되었는가 확인 차 들린 마을. 한데 의외의 원석이 눈앞에 있었다.


‘잘 성장해 주기를.’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빌었다.



───



천진이 도원으로 향하고 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마을의 불길은 이미 떨어지는 빗물에 진화되어 다 타버린 폐허만이 그득했고, 이름 없는 마을은 그렇게 아무도 살지 않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 그곳에, 누군가 버젓이 족적을 새겼다.


“쯧쯧. 기껏 쓸만한 술법을 전해 주었거늘. 재밌는 결과가 나올 줄 알았더니만. 버러지의 한계란 건가.”


소맷자락에 한 마리의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수실이 새겨진 검붉은 장포를 입은 사내가 폐허를 헤치곤 과거 백응검문이 있던 장원에 들어섰다.


“음? 이건 검상이거늘. 이런 오지에 협객이라도 당도한 것인가.”


그는 백응검문주의 가슴과 복부를 관통한 검흔을 발견했다. 곧 흥미가 동한다는 듯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어디··· 네놈이 생전에 무슨 일을 겪었나 볼까.”


대답해 주는 사람도 없건만, 그는 꼭 누군가와 대화라도 나누듯 백응검문주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고, 곧 그의 손아귀가 백응검문주의 머리를 탐욕스럽게 낚아챘다.


빗물에 퉁퉁 붇고,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에서 올라오는 진득한 시취가 고약했으나 그는 상관없다는 듯 백응검문주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의 두 눈에 요사스러운 빛이 발광했다.


“오호라. 무성의 아이라. 재밌구나. 재밌어. 어디 더 아는 자는 없단 말인가.”


그는 백응검문주의 시신을 훽, 땅에 던지고는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다 타버린 시신들에 그의 손아귀가 향했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근방을 뒤지던 그의 걸음이 드디어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이놈이 곽 씨인가 하는 그놈인가. 어디 보자······.”


그가 영면에 든 곽 씨의 무덤을 억지로 헤집곤, 그 안에 놓인 곽 씨의 시신을 꺼내 손아귀에 쥐었다. 입꼬리는 아까보다 더욱 올라가 있었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재미난 아이가 아니던가? 광인성에게 넘겨주면 꽤 재밌는 일이 벌어질 법도 하니, 련주에게 말해야겠다.”


그가 입맛을 다시곤 손을 휘저었다.


콰아아앙─!


손끝에서 시작된 경력 여파가 인근 땅을 헤집었다. 산사태라도 일어나듯 주위 땅이 쿠르릉 울렸고, 이내 거대한 토류의 여파가 천진의 고향을 덮친다.


사내는 상관없다는 듯 허공을 즈려밟곤 오연하게 서 이제는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혀진 땅을 내려다보았다.


“심심풀이로 행했던 일이··· 내 예상보다 재밌게 흘러가는구나.”


흐흐···. 그의 웃음소리가 스산함을 풍기며 일대에 아스라이 번졌다.



───



도원이 있는 산서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다 큰 장성들조차 쉬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인바.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천진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나 천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백응검문에서 챙긴 재화가 있었으니.


돌려줄 사람도 이제는 없으니 천진이 모조리 갖기로 했다. 그 양이 꽤 되었다. 마차 하나 얻어타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그런 식으로 목적지까지 향하는 마차를 몇 대 갈아타며 나아가니, 어느새 목적지인 산서에 도착했다.


천진이 마차에서 내리곤 도원을 바라보았다. 현 하나가 낭인으로 꽉 차 있다. 낭인들 특유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주위에서 얼핏 보인다. 저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게··· 도원.’


천진은 그를 보곤 감각적으로 느꼈다. 이 중에 자신보다 아래인 자는 없다는 것을.


‘이곳에서부터 시작이다.’


천진이 마음을 굳게 다잡곤 길을 걸었다. 한데 유달리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고개를 돌리니 한 장정과 눈이 마주쳤다.


“꼬마가 무슨 일로 이곳에 와 있단 말이냐? 의뢰라도 하려고? 아서라. 기껏해야 푼돈이나 모았을까. 그 정도 임금으로 움직일 낭인은 존재하지 않으니.”


“낭인이 되려고 온 것입니다.”


천진의 대답에 사내의 표정이 이죽였다. 고깝다는 듯한 기색이 얼굴에서 묻어나왔다.


“뭐? 낭인? 아직 어미 젖이나 더 먹을 듯한 나이로 보이건만. 낭인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어디 낭인이 쉬워 보인단 말이냐.”


천진은 답하지 않았다. 사소한 곳에 심력을 소모할 이유 따위 없었다. 그저 무시하고 원하던 바를 쟁취하면 그만이다.


하여 그가 걸음을 걸으려는데, 뒤에서 그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예의 그 사내였다.


“어딜 가려고. 아직 이 몸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음을······.”


천진은 수를 헤아렸다. 상대는 자신을 얕보고 있다. 어리다는 이유가 첫 번째요, 행식이 변변찮다는 것이 두 번째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자신보다 아래는 없으나, 방심한 이에게 한 방 먹일 수는 있다. 백응검문주만 보아도 그렇잖은가. 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긴장을 풀었다가 자신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천진은 즉시 몸을 회전했다. 상대가 돌려세우려는 흐름에 순응하며 몸을 비틀어 전사경의 묘리가 발해진다.


땅을 디디고, 허리를 비틀며, 그를 등으로 전달해 손끝으로 방출한다.


상대도 무인인바, 순식간에 수를 읽고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곤 주먹의 궤도를 바꿨다. 순식간에 상대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거한이 일순 주춤한 순간 천진이 몸을 돌아 상대의 오금을 걷어찼다. 그의 한쪽 무릎이 꺾이며 볼품없이 쓰러졌다.


“이······ 이 새끼가!”


그가 시뻘게진 얼굴로 병장기를 뽑으려고 하자 주위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번진다. 방심해서 당해놓고 추태도 모르냐는 어투가 한가득이다.


“···네놈. 얼굴 기억했다.”


사내는 더더욱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대로 떠나갔다. 천진은 그의 말에도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도원에서 낭인이 쉽사리 병장기를 뽑는 건 금하는바. 그를 잊고 저리 섣불리 움직일 정도라면 오래 살 명줄은 아니었다. 성정의 문제였다.


천진이 그를 일별하곤 뒤로 돌아 본래 목적으로 하던 건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누군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재밌는 녀석이구나.”


척 봐도 얕은 내력.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나이.


모든 게 불리한 조건에서 승기를 따냈다. 그대로 병장기를 뽑았다면 어찌 될지 몰랐으나 적어도 방금의 합에는 저 아이가 우세했다.


“손속에 주춤거림이 없었다. 이미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는 소리겠지.”


그야말로 동량지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 그는 히죽 웃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진이 향했던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까 하여.


아니나 다를까. 천진은 낭인이 되기 위한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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