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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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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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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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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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기연이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예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떠돌 때, 좌판을 차리고 무언가를 파는 상인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무성이라는 것을 모르던 그는 어린 마음에 다가가니 한 권의 책을 들려주더라. 인기도 없는 책이니 가져가서 읽어 보라고.


그 안의 내용은 한 명의 평범한 민초가 기연을 얻고 무림인이 되는 내용을 적고 있었다. 마치 그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천진의 심장이 아픈 것도 잊고 거세게 뛰었다.


천진은 홀린 듯 서책을 향해 다가갔다. 마땅히 무공의 이름이라던가 제목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펼쳐서 읽어 보면 될 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글을 배워 뒀기에 읽는 건 문제 없었다.


천진은 서책의 내용을 탐닉했다. 한 자 한 자 음미하듯 읽어 보곤 서책을 탁 덮었다. 내용은 모조리 암기했다.


‘천지인. 이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구나.’


세상천지, 하늘에서 시작된 기운이 땅에 내려서고, 그 은혜로 자라난 인간이 다시금 귀천해 하늘로 돌아가니, 이는 순환이다. 서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러한 내용이었다.


‘모든 건 조화에서 시작된다는 건가.’


서책을 다 읽으니 알 수 있었다. 이게 내가기공을 다루는 심법이라는 것을.


천지인은 흔히 삼재라 부른다. 이 심법에 이름을 붙이자면 삼재심법이라는 이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천진은 두 눈을 감았다.


이 서책의 원문은 짧은 편이다. 하나 책은 두껍다. 인체에 대한 혈도와 세맥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기에 그러했다. 어떻게 기운을 쌓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쌓은 기운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천진은 그 자리에서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서책에 적혀 있는 대로 틀었으나 쉽지 않았다. 평생 마보만 익히다가 이런 자세를 취하려니 쥐가 날 것 같았다.


하나 가장 필요로 했던 심법에 대한 갈증은 그런 자잘한 통증은 신경도 쓰게 하지 않았고, 천진은 즉시 집중을 발휘하며 삼재심법을 떠올렸다.


“스읍, 후우.”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얇게 내뱉었다. 들이마시는 숨결에 자연지기를 축기하고 그를 심법 구결에 맞춰 하단전이라 불리는 장소에 토납한다. 그렇게 쌓은 기운을 정해진 운기 경로에 맞게 돌리면 그것이 운기행공이었다.


천진은 이 중 축기를 건너뛰었다. 이미 몸에 들어선 기운이 있었던 탓이다.


체내에 들어선 미증유의 기운을 곧바로 배꼽 아래로 인도해 흙을 뭉치듯 단을 만든다. 하단전이 완성되었다. 즉시 운기행공에 들어섰다.


천진은 모르겠으나, 수많은 무림인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기함할 일이었다. 보통 재능있는 자도 하단전을 형성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 법이다. 한데 천진은 앉은 자리에서 그 즉시 하단전을 빚어 버렸으니.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운기를 해야 할까.’


천진은 본능적으로 이 심법의 흐름이 미약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기연이라는 이름 치곤 소박하기 그지없는 심법이었다. 하물며 천치도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한 듯 운기의 경로도 짧고, 흐름도 약했으니.


천진은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문뜩 유소찬이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무성이라면 벌레가 아닌가? 벌레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벌레 취급을 받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벌레나 짐승은 별의 가호를 받지 못했었으니. 달리 인간이 가장 우월한 종이라는 증명이었다.


하니 벌레만도 못한 목숨이라 죽임을 받을 뻔했고,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히면서 살았다. 타인의 삶을 짓밟아야만 생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거다.


‘무림은 힘이 곧 법이다.’


누군가 천진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국법이 지엄하다며 크게 경을 쳤을지 모른다. 하나 그가 살아가는 것은 중원이라도, 무림은 이미 거대한 하나의 천하다. 중원은 무림이라는 소용돌이에 삼켜진 지 오래다.


관무불가침이란 말은 촌 동네 무지렁이인 자신이라도 들어봤다. 관군도 무림의 행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어째서 그럴까, 자신처럼 힘이 없는 자는 어쩌라고. 그런 한탄을 하기엔 천진은 이미 많은 것들을 겪었다. 거대한 힘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무림인이 되고 싶었다.


하니 천진은 이 심법을 바꾸기로 했다. 누군가를 위한 것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즉흥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천진은 이제 자신에게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자각했다. 비록 무성이라는 배경은 여전할지언정.


‘녀석의 흐름도 너무 잘 보였으니까.’


유소찬과의 대결이 떠올랐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사결이었음에도 천진은 제 죽음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의 재능 덕분이다.


처음으로 무림인의 운기 행로를 보았고,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천진은 잊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그러했다면 무림에 고수가 아닌 자들이 없었을 것인즉. 천진은 자신이 있었다.


정해진 경로로 순환하던 심법의 흐름을 바꿨다. 천지인이란 가장 거대한 틀은 놔두되, 다른 것들을 손보았다.


구결이 낱낱이 해체된다. 조각난 단어는 천진의 머리를 맴돌았다. 꼭 한여름 밤, 등불에 꼬이던 벌레 때를 보는 것만 같았다.


벌레를 잡아 터트리듯, 천진은 뇌리에 맴도는 단어를 짓눌렀다. 퍽 터지며 그의 새하얗던 심상을 검게 물들였다. 꼭 벼루에 먹을 갈 듯.


천진은 마음속으로 붓을 들었다. 구결이 터지며 생겨난 먹에 붓을 담그곤 새롭게 무공의 구결을 적어 나갔다.


‘삼재심법의 묘리. 그는 일부 가져가자. 하나 더욱 많은 것을 원한다.’


삼재심법의 묘리는 천지인의 순환을 얘기하고 있다. 하나 세상에 죽음을 전제로 강해지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없는 살림에도 자식의 입신양명을 꿈꾸며 학관에 보내고, 고수들일수록 영약 하나에도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판인데.


세상은 욕망의 연속이다. 촌 동네 무지렁이인 천진이라도 안다. 이름난 고수들일수록 등선을 꿈꾼다는 것을.


그들은 부와 명예를 충분히 누렸음에도 속세를 져버리고 하늘로 올라선다. 귀천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삼재심법의 순환은 처음부터 잘 못 되었던 것이 아닐까.


천진은 간절히 원했다. 이 무공이 언젠가 자신이 고수가 될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그 바람이, 그 이상이 모이고 모여 구결을 적어 나간다. 마음속 붓이 일필휘지 글을 적어 나갔고, 이내 그것은 하나의 구결이 되어 무공을 엮었다. 그가 원하던 소망을 담고.


눈을 뜬 천진이 중얼거렸다.


“이 무공의 이름은··· 삼원일귀종(三元一歸宗)으로 하자.”


삼재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자신의 이상일 것이다.

아직은 이루지 못한, 하나 언젠가 이룩할 미래.



───



단전에 정착했던 삼재심법의 기운에 삼원일귀종이 들어선다. 순식간에 제 색으로 물들여 나갔다.


뿌리가 같으니 가능한 것일 터. 결국 삼원일귀종도 삼재심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천진은 삼원일귀종을 꾸준히 돌렸다. 어느새 오른팔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천천히 부목을 떼 오른손을 쥐어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보다 강건해진 육신이 느껴진다. 삼원일귀종의 공능이었다.


하늘의 기운으로 받아낸 양기와 대지에게 얻어낸 음기로 육신을 보듬었다. 그로 인해 뼈가 아문 것이다. 내력이 주는 신비함이다.


“돌아가자.”


이제 몸은 충분히 회복되었다. 마을에 들러 간단히 짐을 챙기고 떠날 생각이다. 마을에 있다간 백응검문주의 화가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굳이 마을로 가는 이유는 곽 씨 아저씨 때문이다. 신세를 진 기간이 긴바, 그에게 어떤 불화가 닥칠지 모른다. 자신 때문에 신세를 진 이가 피해를 보는 건 싫다. 인간의 도리도 아니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키워준 은혜를 그렇게 갚을 수도 없다.


천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발 내디딤에도 그의 운기는 끊이질 않았다.


삼원일귀종은 기본적으로 동공이다. 천지인에서 하늘과 땅이 각기 음과 양의 기운으로 나뉜다면 인은 무엇을 뜻할까. 바로 자신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은 자신의 육신이 결국 먼 미래로 귀결되니, 토대를 닦는 동공이며 미래를 만드는 무공이었다.


천진이 들어섰던 길을 걷다 문뜩 뒤돌아 절을 올렸다. 이곳에 누가 비급을 갖다 놓았는진 몰라도 받은 은혜가 있었다. 그냥 가는 건 예우가 아니라고 느껴서이다.


제자도 아니니 구배지례까진 아니더라도, 정성을 담아 절을 마친 천진이 일어나 들어섰던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장을 살폈으나 무언가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쩝, 입맛을 다신 그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어서 동굴을 나왔다. 하니 하늘엔 이미 해가 떴다.


자신이 동굴에 들어서기 전에 어둑하니 해가 지려고 했었으니 꼬박 하루를 센 샘. 서책을 발견한 장소로 가기 전에도 어두웠으니 사색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모됐는지 감이 잡혔다.


‘절벽을 타고 오르기에는······ 무리다.’


천진이 얕은 절벽의 벽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수들의 걸음은 이런 절벽쯤은 평지처럼 내달린다지만, 자신에게는 불가한 일이다. 발걸음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천진은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산길을 타면 마을로 갈 수 있으니.


그 무렵 무언가가 눈길을 끌었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거리. 하나 내력을 육신에 돌렸다는 것만으로 먼 거리가 눈에 훤하다. 무인이 왜 그토록 자신감에 넘쳐 사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다.


짐승의 꼬리가 보인다. 아까 유소찬의 시체를 탐하던 늑대가 아닌 평범한 여우의 꼬리. 어미와 새끼인지 작은 것 한 마리와 큰 것 한 마리가 있었다.


어미가 몸을 푸욱 숙어진다. 뭐 하나 봤더니 먹이를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시선을 자꾸만 끈다. 곧, 여우가 뛰어들었다.


‘사냥꾼과 같구나.’


천진은 여우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한껏 응축된 근육, 단번에 박차는 뒷발. 그로 인해 튕기듯 빠르게 날아드는 신형까지.


그를 보곤 발걸음의 오묘함을 깨달았다. 빠름의 미학까지도.


천진은 즉시 떠오른 대로 마음속 붓을 들었고, 용천혈에 내력을 흘려보냈다. 그의 걸음에 빠름의 묘리가 깃들었다.


여우가 사냥에 실패했는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토끼가 보인다. 녀석이 자신을 보곤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려고 할 때쯤, 천진의 걸음은 녀석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푸확! 동시에 휘두른 검에서 피가 튀었다.


‘내력의 응축이 생명이었다. 발목으로 향하던 상구혈에서 응축시켜 공손혈에서 터트린다. 어찌 보면 전사경의 일종과 비슷하다 여겨질 수도 있겠다.’


삼재심법에는 각종 혈도와 더불어 발경의 방법에 대해서도 저술되어 있었다. 전사경은 몸을 비틀어 회전력을 가미하는 발경의 일종. 내력을 응축하며 한 번에 터트리는 기술이었다.


크르릉.


천진이 사색에 잠겨 있을 무렵,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어미 여우가 새끼를 지키려고 천진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안하다. 너희들 먹이를 가로채서.”


천진은 사냥한 토끼를 녀석들에게 던져 주었다. 여우는 그를 어찌할 줄 몰랐다. 새끼와 먹이를 동시에 물고 자리를 뜨기에는 부족했던 탓이다.


그를 보곤 몸을 돌렸다. 그제야 새끼 여우의 울음과 뼈를 씹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천진은 산길을 오르며 방금 떠올린 발걸음에 이름을 붙였다.


‘···미보(尾步)로 할까.’


여우의 꼬리를 구경하다 엮어낸 발걸음이었으니. 마땅히 그 이름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보법을 개척한 천진의 걸음은 아까보다 수월하게 산을 올랐다. 비록 쾌의 묘리 하나만 담아낸 미완성의 걸음이라고 해도, 내력을 세분화해서 사용하는 법을 배우니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그렇게 그가 산길을 타고 오르길 잠깐, 그가 살던 마을이 눈에 보였다.


“···뭐냐.”


한데 멀리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저건······.”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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