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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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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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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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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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눈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당장 담당관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침묵하기에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 모두가 결과에 심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네가 졌단 말이냐.”


그 순간 담당관이 황유를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몰라서 묻는다기보단, 황유의 의사가 궁금하다는 듯한 어투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황유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자신이 느낀 바를 천천히 고했다.


“제 검이 소형제의 검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검신을 하루의 일과라도 되는 듯, 기름 먹인 천을 꺼내 다시금 문질렀다. 일종의 광기마저 엿보이는 듯한 행태였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뭐 하나, 제 검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의 검보다 분명 뛰어날 것입니다. 돌아가신 스승님이 남겨주신 명검이기 때문이지요.”


황유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바닥에 조각나 흩뿌려진 천진의 검이 비쳤다.


“그에 반해, 소형제의 검은 싸구려였습니다.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확실하게 하고 가야겠지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의 병장기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저 말이 맞다. 천진은 황유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끼는 바가 적잖이 있던 까닭이다.


‘상대의 검격에 검이 깨진 게 아니다.’


천진의 검이 조각난 이유는 그가 새롭게 창안한 방식을 검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류 방파인 백응검문이 지닌 검이 어찌 고절할까. 삼류의 한계란 명백한 법이다.


“소형제. 방금 그 수법의 이름이 무언가. 심히 궁금하네.”


“뭐를 물어보시는지요.”


천진은 대답하지 않기 위해 에둘러 회피했다. 무림에서 익힌 실력의 삼 할은 숨기라는 격언이 있다. 하나 다수의 이목이 집중된다.


“검에 담긴 경력 여파가 실로 강맹했네. 느껴지는 내력에서 보일 법한 위력이 아니야. 모두의 납득을 위해서라도 증명해 주지 않겠나?”


천진은 그의 말을 듣고 상념에 잠긴 듯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론 방금 떠오른 수법을 생각하며.


기본적으로 흡자결의 원리를 이용한 한 수였다. 나선으로 꼰 진기의 흐름과 내력이 가속하던 황유의 방식을 보곤 대략적인 구상을 마친 수법이란 소리다.


두 갈래로 나눈 진기의 흐름을 각기 조절한다. 하나의 흐름을 먼저 출발시키고 나머지 하나의 수법을 뒤늦게 움직인다. 그리고 먼저 이동 중인 내력의 흐름에 인위적으로 부딪치며 경력 여파를 자아낸다.


천진은 이 수법의 이름을 정했다.


“분경(分勁)입니다.”


“분경이라, 증명할 수 있나.”


담당관의 말이 들려왔다. 푹. 동시에 그의 앞으로 검 한 자루가 바닥에 박혀 들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담당관이 허리춤 요대에 꽂은 검파를 매만지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천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바닥의 검을 쥐었다. 백응검문의 검보다 더욱 좋은 검이었다. 비교하기 미안해질 정도로.


“준비되었다면 언제든 들어와라.”


담당관의 말을 들은 천진이 고개를 끄덕이곤 단전을 자극했다. 삼원일귀종의 진기가 치솟으며 분경을 자아낸다.


충돌하며 발생한 여파가 진기 흐름에 맞게 이동한다.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듯한 기분이다. 우웅. 검이 떨리며 천진이 즉시 검을 휘둘렀다.


쩌엉!


다시금 강맹한 울림이 있었고, 담당관의 눈매가 아까보다 더욱 커져 있었다. 검파를 쥔 손아귀가 조금이나마 떨리고 있다.


‘저만한 내력에 이런 위력이라. 내력이 더욱 쌓인다면 어찌 될까.’


담당관은 문뜩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추천했는진 몰라도 개눈깔이라고.


‘개눈깔은 추천한 인물이 아닌 나였군.’


그가 처음으로 무감한 표정을 깼다. 입꼬리가 치솟더니 벽안이 사납게 휘었다. 기쁜듯하나, 이 자리에 모인 시험생들이 보기엔 두렵기만 한 몰골이었다.


“벽안검호. 내 별호를 걸고 인정하지. 이 수법은 정통했다. 뒷말은 하지 말도록.”


사람들의 표정은 그제야 뒤바뀌었다. 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망울에 놀라움이 스민 것이다.


황유가 포권을 취해 오며 말했다.


“분경이라. 멋진 한 수였네. 동등한 검이었다면 필히 내가 졌을 테지.”


“많이 배웠습니다.”


“허. 겸손도 그만하면 오만이 되는 법. 승자라면 마땅히 승리의 기쁨을 누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네. 그래야 패자가 노력할 줄도 알지.”


그가 씨익 웃으며 천진의 승리를 공언했다.


삼 연승을 쌓아 올리며 이 자리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용을 보이던 그가, 단 한 사람을 인정했다. 까마득한 담당관의 덤덤한 인정보다 그게 시험생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들이 천진을 바라보던 눈빛이 또다시 변했다. 철 지난 애송이에서 동등한 강자로.

천진은 마땅히 그들과 같은 선에 서게 된 것이다.


“좋다. 승자가 가려졌군. 승자는 천진이다.”


담당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자 천진이 포권을 취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의 귓가로 벽안검호의 전음이 뒤따랐다.


-너는 합격이다. 아까의 무례를 사과하마. 철없는 애송이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자신감의 발로였던 모양이다.


천진은 그 말에 문뜩 뒤를 돌아보았다. 벽안검호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 보인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주시하는 그의 모습이.


천진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인정을 받았다. 무성의 아이라고 멸시만 받던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저런 고강한 고수에게.


전음을 하지 못하기에 천진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이기만 했다. 벽안검호가 이곳을 바라보지 않고 있음에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이다.’


천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장 큰 난관. 그를 통과하게 되었다. 천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엷은 설렘을 느끼며 인파를 가르곤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좋은 검이었습니다.’


황유. 그가 천진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검신을 매만지고 있었다.


우웅. 그의 검이 곧 잘게 떨리며 손아귀에 진동을 전했다. 마치 무언가를 보채기라도 하듯.



───



밖으로 나오자 접수처의 여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천진을 살피다 짐짓 눈매를 찌푸렸다. 아까 들어갔을 때보다 한껏 안정된 기도가 느껴진 탓이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뭐지? 느낌이 다르다.’


그녀는 곧 안색을 바로잡곤 천진에게 물었다.


“소협. 시험은 어떻게 되었나요?”


“합격했습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렇게 급작스럽게 바뀐 기도를 선보이는데 어찌 안 좋은 결과를 말할까. 저런 인재들은 드물었다.


‘혈안부호의 안목이 맞았군. 놓쳤다면 후회할 뻔했어.’


그녀는 처음과는 달리 싱긋 웃으며 천진에게 말했다.


“축하드려요. 무슨 등급이 책정될지는 시험관들의 평이 나와봐야 알겠으나,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게요.”


천진은 그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낭인의 등급에 대해서는 그도 조금 안다. 어머니와 같이 천하를 떠돌 때 들어본 적이 있었으니.


‘낭인의 등급은 총 열. 일 급부터 십 급까지 나뉜다지.’


대게 낭인의 시험에 합격한 자는 일 급에서 시작한다고 들었다. 한데 좋은 결과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천진이 그에 관해 의문을 표하려고 할 때, 시험장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황유였다.


“오. 소형제. 다행히 아직 안 가고 있던 모양이군.”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도 나왔다는 건 전음을 들은 모양이지. 합격이라고.”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 황유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더니 입술을 말아 올렸다. 사뭇 호쾌한 표정이다.


“나도 그렇다네.”


“축하드립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천진에게 쉽사리 승리를 양보하긴 했으나 그는 잘 싸웠다. 그와 비무하기 전에 세 번의 비무에서 연달아 이기는 것으로 이미 실력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감히 장담하건대, 그 자리의 시험생들 중 황유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천진도 분경을 만들고 그가 승리를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면 졌을 게 뻔했으니.


“이런. 승자에게 이를 듣다니, 배가 아프군.”


“딱히 승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황유 소협이 양보해주신 결과이지 않습니까.”


“소형제. 아까도 말했지만, 승자라면 그 권위를 조금은 누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네. 소형제는 스스로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해. 무릇 고수들이라면 자존감으론 천하 어디를 가도 지지 않는 자들이지 않던가.”


천진은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다물었다. 스스로를 받아들인다라, 무성으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무성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도 싫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터이니.


“용건은 그게 끝입니까?”


천진의 말이 절로 딱딱하게 나갔다.


황유는 그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답했다.


“하하. 소형제는 참으로 딱딱하군. 그렇게 말하니 용건만 말하겠네. 내 자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네.”


“주고 싶은 것?”


“어떻게, 잠깐 시간 괜찮겠나?”


천진은 그 제의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앞으로 등급이 나올 때까지 일정은 없다. 끽 해봐야 만들어낸 무공을 조금 점검하는 정도일까? 그 정도에는 딱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천진은 황유를 따라 길을 걸었다. 한 객잔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는 천진을 잠시 세워두곤 객잔의 안으로 들어섰다. 날쌔게 움직인 그의 몸이 땅을 밀었고, 이내 빠른 속도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려있었다.


“아까 내 말 했지. 비슷한 검이었다면 승기는 자네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순간적인 위력은 나도 주춤할 정도였네.”


“이게 뭡니까?”


“그래서 말이네, 내 자네에게 검 한 자루를 선물하고 싶지 뭔가. 비록 내 검과 비슷한 명검은 아니나, 그래도 나름 좋은 검이야. 여분의 검이 없다면 이걸 쓰지 않겠나?”


“그걸 왜 저에게···.”


천진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의 손에 들린 검을 억지로 받았다. 명검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황유가 준 검은 척 보기에도 뛰어난 검처럼 느껴졌다. 손에 잡히는 감각부터 달랐음이니.


‘그런 검을 선뜻 내어주다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나 황유는 쾌활하게 웃더니 말했다.


“내가 수련할 때 쓰던 검이니 너무 괘념치 말게. 그리고 자네는 잘 될 것 같아. 이는 투자라고 봐도 좋네.”


“투자?”


황유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래 봬도 내 안목은 잘 들어맞는 편이네. 자네는 크게 될 것 같아. 그런 인물이 크기 전에 빚을 지워 둔다? 낭인의 세계에서는 여벌 목숨이 하나 는 것과 다름없지.”


천진은 그를 일별하곤 검을 바라보았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묵직했다. 검의 무게가 아닌, 그의 호의 때문에.


“어차피 팔지도 못하네. 손때가 탄 검을 누가 받아주겠나.”


거짓말이다. 검이야 녹여 새롭게 단조하면 될 일. 그래서 검을 파는 자들도 많은 법이거늘.


황유도 천진의 이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다급히 말했다.


“개인적으로 녹여서 새롭게 검을 만드는 것보다 소형제 같은 사람이 써 주면 좋을 듯하여 주는 것이네. 검이란 자고로 자신의 분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나는 내 분신에게 그러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천진이 포권을 취하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유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얼. 앞으로 잘 해 보자는 의미지.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이제는 동기이지 않은가?”


천진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대가 없는 호의를 받은 것이 얼마만일까. 아마 곽 씨 아저씨가 돌아가시곤 처음이지 싶다.


‘아니.’


그조차도 생전 어머니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보살펴 준 것이다. 그가 준 호의와 다정함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으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게 맞다.


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곤 이게 처음일 듯하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천진은 그게 너무도 어려웠다.



───



시간이 흘렀다. 낭유원을 통해 머무는 객잔에 서신이 전달되었다. 결과가 나왔으니 찾아오라는 말.


천진은 이른 아침부터 채비를 마치곤 곧장 낭유원으로 향했다. 건물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모두가 천진을 주목하고 있었다.


“오셨네요.”


접수대로 향하니 여태 보았던 그녀가 싱긋 웃으며 천진에게 손짓했다.


“결과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예. 결과가 나왔죠.”


천진은 아무런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안절부절못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분명 시험을 치르기 전만 해도 자신이 저러했을 텐데.


‘아마 일 급일 테지.’


일 급에서 시작해 차차 의뢰를 해결해 나가며 등급을 올려야 한다고 들었다. 그게 정석이라고.


그렇게 등급이 올라갈수록 무림에서 끼치는 영향력과 유명세는 차츰 늘어만 간다고 하였으니, 그만큼 무림인들도 낭인을 자주 찾는 거다.


하나 어중이떠중이를 모두 찾지는 않는다. 낭인 시장도 포화 상태다. 기실 이 급은 되어야 어엿한 낭인이라고 불린다 했다.


천진이 그에 대한 것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접수대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천진 소협의 등급은 이 급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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