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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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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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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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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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DUMMY

천진이 먼저 제안에 응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비류검객의 표정이 벌겋게 물들었다.


치욕스럽다는 듯한 느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자질은 인정해도 동격의 고수로서는 여기지 않는 모습이 눈에 훤했으니.


기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내력은 얕다. 칠 할의 승률도 그의 재능을 포함하여 점쳤을 때 나오는 수치였으니. 느껴지는 내력으로 비교하면 구 할도 높게 쳐주는 셈이었다.


그런 인물이 검파를 매만진다는 것은 명백히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 무림에서 그런 모습에 치욕을 느끼지 않을 인사는 없을 것이다.


“주제를 모르는군.”


비류검객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 서린 절제된 분개가 목덜미를 싸늘하게 훑는 듯하다.


고수는 쉽사리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오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천진은 그 자세를 본받아 오연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가르침은 좋지. 그렇다면 하나 가르쳐주마. 그런 자세가 네 놈 명을 재촉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하나 저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편인지라.”


천진의 대답을 들은 비류검객이 입매를 다물었다. 고운 아미가 구겨진 선지처럼 주름이 잡혔다. 이 말을 달리하면 너 정도에게는 죽지 않는다는 도발과 같이 들렸음이니.


멀리서 킥킥대는 음성이 들려온다. 듣는 것만으로 상대의 배알을 꼴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웃음이었다. 예령의 웃음에 비류검객의 표정이 더더욱 사납게 굳어졌다.


‘기껏 구주상단의 객으로 들어왔거늘. 여기서 더 이상의 망신을 보일 순 없다.’


고수라면 응당 고수로서의 체면을 중시해야 한다. 그게 객으로 들어온 자신 나름의 배려였고, 그녀 자신의 앞길이 순탄해질 방도였다.


비류검객이 끓는 속을 삭이곤 무덤하게 말했다.


“세 수를 양보하마.”


아랫것에게 보여줄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자신이 지닌 가치를.


“선배의 호의,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천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포권까지 취하며 발을 빼지 못하게 못을 박아 버렸다.


이번 비무 한 번으로 보수의 질이 달라진다. 영단을 받고 돈을 추가로 받든, 혹은 받기로 한 영단이 더욱 좋아질 수도 있는 노릇. 무엇이 되었든 천진에게는 이만한 이득이 없었다.


천진이 검파를 쥐곤 재빠르게 검을 뽑았다.


황유가 준 검. 그는 별로 귀한 물건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천진이 느끼기에는 아니었다. 검파를 쥐는 감각부터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선사한다. 처음부터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 손아귀에 알맞았다.


검을 중단세로 들었다. 검신부터 찬란하게 빛나는 그 검은 동정호의 위에서 내리쬐는 뙤약볕마저 잘게 쪼개며 다시금 허공에 스며들게 했다. 마치 그 예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듯.


‘명검이구나.’


검을 타고 흐르는 내력이 자유롭다. 백응검문의 싸구려 철검을 사용했을 때는 무언가 막히는 듯한 기색이 가끔 들었는데, 이 검은 그러한 점이 없다. 탁 트인 혈도처럼 인체의 연장선이 되어 내력을 온전히 전달했다.


천진은 그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며 하단전 내력을 이끌었다.


삼원일귀종으로 쌓은 공력이 치솟는다. 대퇴근 너머로 느껴지는 진기의 흐름이 곧 발목에 응축되어 한계까지 몸을 비튼다.


비류검객(比溜劍客).


견줄 비(比)에 방울져 떨어질 유(溜)를 별호로 쓴다. 검법의 흐름이 쏟아지는 장대비와 맞먹는다는 호사가들의 평일 것이다.


그를 예상하며, 천진이 미보를 밟았다.


한계까지 응축된 진기의 흐름이 곧 천진의 신형을 포탄처럼 쏘아냈다.


“흡.”


비류검객은 절안도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그만큼 무림에서 겪은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달리 경험의 차이다.


‘좋군.’


이런 상대를 원했다.


그가 무엇을 하든 대처할 수 있는, 하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시금석이 되어줄 만한 인물. 그래야 자신의 모든 것을 시험할 수 있을 터이니.


천진의 검이 흘렀다.


백응검문의 백응검식. 비록 삼류 방파이나 천진의 손에 제 색이 물들어가며 그 원형이 조금씩 비틀리고 있었다.


비류검객은 그 검을 가뿐히 쳐내곤 진각을 내리찍었다. 쿠웅! 거센 발 구름에 담긴 경력 여파가 자욱하게 번지며 배를 흔들었다. 주위 동정호의 물결이 거세게 출렁이는 게 보인다.


예령이 띄운 배가 일순 기우뚱거릴 정도의 위력. 천진은 그 속에서 중심을 잡았다. 아까까지 연습했던 무게 중심의 이동이 도움이 되었다는 듯.


천진은 그 상태로 검을 휘둘렀다. 백응검식 제 4초. 강응소양(江鷹捎糧).


강 위를 노니는 매가 먹이를 낚아챈다. 그러한 이름을 담은 그 검식은 흘러가던 흐름 속에 부드럽게 곡예 하듯 검의 방향을 바꾸었다. 비류검객의 검면을 가볍게 쓸며 그대로 나아갔다.


“합!”


하나 비류검객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경력 여파를 발산했다. 검을 타고 울리는 충격에 천진의 검이 위로 튕겨 올라갔다.


‘백응검식으론 무리겠군.’


벽이 보였다. 상대에 대한 것이 아닌, 오로지 천진의 눈에만 보이는 무공의 한계가.


눈앞을 가로막은 벽은 크고 두꺼웠다. 달리 삼류 방파인 백응검문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만든 삼원일귀종은 저 멀리 벽이 놓여 있고, 미보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백응검문주는 이걸 사술로 깨려고 했던 모양이겠지.’


과거의 천진은 몰랐다. 하나 이제는 안다. 그딴 방법으론 검법의 고강함을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짜 맞춰야 할 수준이군.’


자유롭게 노니는 매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음이니. 백응검식이 지닌 검의 요체였다. 천진이 유검이라 평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말은 좋군.’


천진은 그동안 많은 무공을 보았다. 낭인 시험장에서 본 개성이 천차만별인 무인들의 무공부터, 그중 가장 강했던 황유의 검식까지. 그런 천진이 평하기에 백응검식은 허우대만 좋은 빈 껍데기였다.


그 순간 비류검객이 말한 세 합이 끝났다. 그녀가 그를 방증하듯 짧은 기합성을 내뱉곤 검을 휘둘렀다.


“하압!”


그녀의 손아귀에 단단히 쥐어진 검이 천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보인다.’


천진만이 오롯한, 집중의 시간이 다가왔다. 세상의 흐름마저 느리게 보이며 둥실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 입자마저 그 안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은 보자. 그리고 배우자. 그게 자신의 싸움이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도였다.


검 끝이 첨예하게 벼려져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다. 황유의 검으로 그 검봉(劍鋒)을 정확하게 쳐낸다. 그녀의 검은 아무런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듯 수월하게 튕겨 나갔다.


하나 거기서부터가 비류검객의 시작이었다.


튕겨 나간 검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날아든다. 튕겨 나간 검의 흐름을 존중하고, 그 흐름 그대로 이어가며 다시금 짓쳐들어오는 찌르기. 마치 정면에서 퍼붓는 소나기를 보는 듯했다.


미보를 밟았다.


순식간에 발목에 응축된 진기가 용천혈에 포탄처럼 쏘아지니, 천진의 신형이 뒤로 훌쩍 뛴다.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하는 건 잘하는구나.”


비류검객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지어졌다. 승기를 잡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눈 사위다.


한데 돌연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비무를 벌이던 도중 천진이 난데없이 검을 허공에 찔러넣으며 무언가 동작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검식이다.


‘비우검법? 아니다. 조금 틀려.’


비류검객은 천진의 그 모습을 부정했다. 무공이란 하나의 초식을 구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진기의 운용이 불가피한바.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저러는 건 무공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춤사위일 뿐이지.


비류검객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네놈은 어디까지 나를 우롱하려는 게냐!”


그녀의 화는 정당했다. 같은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서야 어찌 그녀의 검을 따라 하려고 한단 말인가. 비류검객의 눈에는 그저 천진이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 벌이는 하나의 잡기(雜技)처럼 보였다.


하나 그녀는 천진을 모른다. 그가 검법을 보고 익힌 적이 없다는 것을, 상대의 진기 운용이 기감에 여실히 느껴진다는 것을.


‘좋은 검이다.’


튕겨 나가도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검으로 쌓은 경력의 빗방울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상대에게 조금씩, 조금씩 상흔을 새길 것이니. 시간을 들여 승기를 잡는 검법이라 할 수 있다.


‘백응검식과는 천양지차군.’


그녀의 검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그를 통하니 백응검식이 지닌 한계점이 더더욱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흐름에 변주를 줘 볼까.’


천진이 두 무공의 요체를 해체했다. 검식부터 진기의 운용까지. 마땅히 하나의 ‘식(式)’이라 부를 만한 것이 사라졌다.


그렇게 두 무공을 결합하듯 포갠다.


하늘 위를 자유롭게 노니는 매에게 새로운 흐름이 부여되었다.


‘아니. 매라는 심상도 지우자.’


삼류 방파이면서 너무도 드높은 것을 바라던 백응검문의 결말을 알지 않던가. 그 욕심이 결국 자신이라는 화를 불러일으켰었다.


아직은 어떠한 심상도 담기지 않은, 그저 두 무공의 요체만을 분해해 검에 스민 천진의 검이 휘둘러졌다.


백응검식의 마지막은 비상한 매가 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를 꿰뚫는 듯한 심상을 지니고 있다. 천진의 검에는 그러한 예기가 담겨있지 않았다.


한데도 그의 검이 더욱 고강했다. 백응검문주가 끝내 오르고 좌절한 그 경지. 천진은 보란 듯이 그 경지를 넘어 더욱 드높은 곳으로 검의 영역을 이끌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 그 짧디짧은 천진의 시간이 백응검문주의 평생을 넘어섰다. 그가 살아 이 광경을 봤다면 검에 베이지 않고도 요절했을 것이다. 속에서 들끓는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지금은 여기까지 하자.’


천진은 비무의 본 목적을 잊지 않았다. 새로운 검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기 위함이었다.


지금 느낀 점을 충분히 갈무리한다면 그럴싸한 검이 나올 것이다. 그는 나중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천진은 이제야 비로소, 이기기 위한 비무에 임했다.


‘분경.’


공력의 여파가 갈라진다. 단전에서 시작된 진기의 흐름은 나선으로 나뉘어 서로 부딪치며 그 경력 여파를 나누었으니. 그를 내력의 흐름에 실어 손아귀로 전달한다.


우웅. 황유의 검이 울었다. 그가 지녔던 검처럼 보기 말끔한 검명은 아니었으나, 천진의 얕은 내력으로 발했다기엔 너무도 선명한 울림.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검으로 비류검객의 검을 쳐냈다. 쩌엉! 소나기처럼 퍼붓던 그녀의 검이 일순 크게 휘청인다. 손아귀에서 전달되는 강한 반탄력에 흐름을 잇는다는 생각조차 일순 지워진 것이다.


‘뭣?!’


비류검객은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그만한 강맹함이 돌연 상대의 검에 서린 것이었다.


‘저 내력으로 어찌···.’


비류검객의 의문은 해소되지 못했다. 천진의 검이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흐름을 타며, 멈추지 않고 짓쳐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천진은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명한 획의 흐름을 느꼈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예령의 방에서 보았던 하나의 기연.


조화롭게 맞물리고, 결코 끊어지지 않던 선의 분절이, 천진의 검에 미약하게나마 그 편린을 더하였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검이 조화롭게 맞물리는 듯한 감각. 그를 느끼며 천진은 무아지경으로 상대의 검을 쫓았다. 그리고 쳐내었다.


쩌엉!


분경의 강한 경력 여파를 느끼며 비류검객이 이를 으득 짓씹었다. 검파를 쥔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려온다.


“하압!”


그녀가 단전에서부터 끓어 올린 기합성과 함께 내력을 퍼 올렸다. 그녀의 검이 천진을 향해 비우검법의 절초를 시전했다.


소나기처럼 나뉘던 검의 형상이 돌연 하나로 모인다. 바깥으로 나돌던 경력의 여파를 일점에 집중한 것이다.


“······.”


천진은, 그를 보고 검을 내리쳤다. 한계까지 응축된 집중의 시간은 그녀의 검봉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도록 만든다.


천진의 검이 그녀의 검봉을 정확히 내리치자 비류검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안 된다!’


그녀가 다급히 검을 흘리듯 옆으로 뉘었다. 미끄럽게 흘러간 검의 흐름에 천진의 검이 그녀의 검을 짓누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쩌엉!


마지막 분경이 검의 위력을 더하듯 터져 나왔고, 비류검객은 그를 받아내지 못하고 끝내 갑판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진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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