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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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작품등록일 :
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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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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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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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DUMMY

“뭐냐, 네놈은.”


총표두 단귀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의 동공은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분명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다. 그도 이번 일에 공을 들였기에 정보를 수집하였다. 예령의 호위인 천진에 대한 정보도 조금은 알 수 있단 소리다.


그저 널리고 널린 이 급 낭인. 기실 저 나이에 도원의 이 급 낭인이라면 기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무언가였으나, 그를 떨리게 하기엔 부족했다.


‘한데 방금 그 수는 대체.’


총표두 단귀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무렵, 천진은 방금 그 감각을 되새기고 있었다.


‘흐름을 잇는다.’


비류검객이 그러했던 것처럼, 검이 튕겨 나와도 그 또한 일련의 흐름이다.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흘러라.


싸움의 모든 흐름을 보고, 느끼며, 스스로를 바로 세워라. 그렇게 끊임없이 흐름을 잇는다. 떨어져도 언젠가는 만나 조화롭게 순응하는 물결처럼.


‘낭파검륜(浪波劍輪)이라 붙여야겠다.’


심상 속 검에게 이름을 새긴 순간, 천진의 안광이 조금은 밝게 빛났다. 새벽의 끝을 고하는 여명처럼.


천진은 검파를 느슨하게 잡으며 녀석을 향해 입을 뗐다.


“뭐 하나. 네놈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천진은 총표두 단귀문과의 승률을 점쳐 보았다. 분경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많이 쳐줘도 삼 할. 낭파검륜을 창안하기 전의 얘기였다.


“애송이가.”


천진의 도발을 들은 단귀문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방금 한 수는 분명 놀라웠다. 인정한다. 수많은 무림의 무학을 보았으나 방금과 같은 수법은 그도 처음이었으니.


하나 무림에서 먹은 밥은 그가 더욱 많았다. 달리 경험에서 차이가 난다는 소리다. 무림 초출에게 저런 건방을 들을 이유가 하등 없었다.


천진은 단귀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했다. 스스로를 드높이며,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을 터. 알량한 자존심의 반항이었다.


‘비류검객이 훨씬 낫군.’


천진은 무림의 모두가 감정을 내리누르진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파의 잡졸 출신의 인물에게 무얼 기대하겠냐마는.


그런 점에서 비류검객이 단귀문보다 더욱 높았다. 경지의 고하를 떠나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총표두 단귀문의 신형이 땅을 박찼다. 푹 꺼지듯 몸이 기울더니 단번에 치솟으며 검을 뽑았다.


인간이라기보단 원숭이에 가까운 몸짓. 곡예라고 봐도 좋을 듯한 짐승의 몸놀림이다.


하나 그 검에 담긴 기세는 강맹했다.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은 하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천진은 우회를 택했다. 동북동으로 일 보. 유의 묘리가 담긴 미천보의 이 식이 펼쳐지며 그의 신형이 굽이치는 물결처럼 단귀문의 공세를 빠져나갔다.


“도망치는 게 고작이더냐!”


총표두 단귀문의 검이 그 즉시 따라붙는다. 흡자결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진의 몸과 검이 가까웠다.


천진은 그제야 검을 휘둘렀다. 검 날로 베는 것이 아닌, 검면을 가져다 대며 상대의 공세를 막았다. 황유의 검을 믿고 행한 일이었다.


쩌엉!


천진의 몸이 단귀문의 검격에 뒤로 밀리며 떠올랐다. 그만큼 강맹한 공세였다.


상관없다. 이 또한 하나의 흐름일지니. 천진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미보를 발현했을 때처럼, 전사경이 휘몰아치며 그의 흐름에 강맹함을 더했다.


쩌엉!


곧바로 추격한 단귀문의 검과 천진의 검이 충돌했다. 이번에 밀려난 쪽은 단귀문이었다.


“무슨?!”


당황 서린 음성이 들려온다. 하나 천진은 그런 시간마저 주지 않았다. 한 번 잡은 흐름을 끊어선 안 된다.


낭파검륜. 도도히 흐르는 물결처럼 천진의 검이 흘렀다. 챙! 채앵! 허공에서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치며 아스라한 불똥이 튄다. 해가 뜨기 직전. 가장 어두울 때를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과연. 강하군.’


경지를 날로 얻은 것은 아닌 모양인지, 그의 경험은 천진을 압도했다. 흐름을 타고 몰아치는 천진의 검을 눈치채자마자 그의 흐름을 끊으려고 했다. 단귀문의 검이 천진의 검을 거세게 후려쳤다.


튕겨 나가는 검. 검파에서부터 팔까지 찌르르 울리는 감각. 단귀문은 그를 보곤 곧바로 승기를 잡았다 여겼다. 한데 돌연 사각에서 천진의 검이 치솟았다.


촤악!


단귀문의 뺨을 스치고 가는 검격. 그가 검에 서린 예기를 느끼자마자 고개를 돌린 것이다.


“아깝군. 목을 벨 수 있었는데.”


“네놈.”


단귀문의 눈에 진중함이 서렸다. 분노를 갈무리하며 오로지 상대를 죽이려는 살의만을 머금었다. 고수의 눈이 상대의 검식을 탐닉한다.


‘기묘한 검이다. 초식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


정확히 보았다. 천진이 창안한 낭파검륜은 아직 이렇다 할 초식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감각에 맞게, 상황에 맞게 흐르며 검의 위력을 더할 뿐이다.


하나 감각이 예민한, 시야가 뛰어난 천진에게는 큰 한 수가 되었다. 정형화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유롭다. 한계까지 응축된 집중이 상황을 통제하니, 그의 검은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래 더욱 강맹해져 있을 거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그렇게 생각해 마음이 편하다면 좋을 대로 생각해라.”


총표두 단귀문의 이가 갈렸다. 별말이 아니나 말하는 이의 어투, 음의 높낮이에 따라 듣는 이의 기분이 결정된다. 녀석의 태도는 시종일관 가라앉아 있다. 하잘것없는 이를 상대한다는 듯.


그게··· 단귀문의 기분을 끝모르게 가라앉혔다.


“죽여주마.”


단귀문의 두 눈에 살광이 번들거렸다. 강맹한 고수의 살기는 유형화된다고 했던가. 그의 몸을 타고 자욱하게 살기가 내려 서리는 듯했다.


총표두의 검이 성큼 다가섰다. 지금까지는 전력이 아니었다는 듯, 그의 검은 가일층 빨라져 있다. 느릿하게 번진 세상 속에서도 그의 검은 쾌속했다.


천진의 검도 그를 따라 흘렀다. 몸을 뒤로 눕히듯 젖히곤 그의 검면에 자신의 검을 맞대듯 가져다 뎄다. 흡자결의 수가 발휘되며 단귀문의 검이 흐르는 방향으로 천진의 검이 향했다.


단귀문의 검이 허공에서 멈칫할 무렵, 천진은 흡자결을 풀고 몸을 비틀었다. 한계까지 비틀린 허리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으나 무시했다. 지금의 경험이 내일의 강함으로 이어짐을 그는 알기에.


전사경을 발했다. 단귀문의 검보다 먼저 출수 되었으나 상대는 그 즉시 검을 회수하며 천진의 검을 막아섰다. 쩌엉! 강맹한 일격이 검신을 타고 흐르며 천진의 손아귀를 찢는 듯했다.


천진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흘렀다. 굽이치는 물결처럼, 흐르는 강물은 나뉘더라도 언젠가 만나면 서로를 거부하지 않듯이. 그의 검은 그러한 조화로운 흐름을 닮아 있었다.


튕겨 나가도 다시금 흘렀다. 상대의 내력을 이기지 못하고 흐른 검이 회전하며 그 위력마저 갈무리해 나아간다. 천진의 몸이 연신 회전하며 전사경을 한계까지 응축했다.


총표두 단귀문은 문뜩 자신이 밀리고 있음을 느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의 몸에 검흔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해지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처음 그가 서 있던 자리가 눈에 보였다. 세 발자국은 이미 멀어졌다.


‘어찌?!’


상대는 고작 애송이다. 아직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나이. 아무리 무림의 격언에 어린아이와 여인, 노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어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기실 그 말의 정의는 무림의 고명한 인사들은 언제든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니 방심하지 말라고.


상대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느껴지는 얕은 내력은 그가 그 나이 또래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하니 무림 초출이 분명했다.


한데도 자신이 밀리고 있다. 귀수황문의 이대 제자였던 자신이.


한 번 흐름을 잡은 천진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되어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하면 어느덧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듯, 그의 검격도 점차 흐름을 타고, 시간을 타고 더욱 강맹해지고 있었다.


“애송이가!”


단귀문이 더없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검파를 쥐었다. 우웅. 그의 검이 울었다. 검의 운율을 타고 흐르는 살기는 맑은 음성이라기보단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와 엇비슷했으니. 고강한 절초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분경.’


천진도 진기의 흐름을 나눴다. 이제껏 아끼고 있었던, 단귀문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그만의 구명절초를 꺼내 들었다.


나선으로 치솟는 내력의 흐름이 서로 부딪치며 경력 여파를 나눈다. 물밀 듯 밀려 올라가며 그 위력을 더했다. 천진의 검 또한 울었다.


쩌엉!


단귀문의 절초가 일순 멈췄다. 분경이 담긴 검이 그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하나 그 대가로 천진의 검은 팔이 꺾이듯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럼에도 검파를 놓지 않았다.


‘이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얕은 내력으로, 어찌 귀수황문의 절초를 파훼하겠는가. 멈춘 것만으로 족했다. 천진의 머리는 이미 이다음을 그리고 있었음이니.


허공에 나부끼는 분경의 경력 여파가 느껴진다. 자신의 바람대로 향한 흐름에 천진이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천진이 이를 으득 갈며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나부끼는 경력 여파를 다시금 검에 두른다.


이미 체내 밖으로 빠져나온 경력 여파를 온전히 갈무리하기란 불가능한 법이다. 하나 그저 붙잡는 형식이라면? 검에 담지 않고 검 밖에 흐르게 둔다면?


흡자결의 묘리와 분경을 동시에 발현했다. 검 밖에서는 일부로 흘린 경력 여파를, 검 안에서는 온전한 분경을.


천진의 검이 사선을 그리며 날아들었고, 단귀문이 다급히 검을 들고 막았다.


소용없다. 이만한 위력은 자신도 처음이었으니. 기실 황유가 준 검이 버티고 있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콰앙!


촤아아악!


단귀문의 검을 그대로 부수며 나아간 천진의 검이 그의 몸을 베어 갈랐다. 도저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겨지지 않는 검흔. 뼈가 드러나고, 얼핏 내부 장기의 모습도 비쳤다.


단귀문의 눈동자가 점차 생기를 잃고 빠르게 죽어간다. 그의 손아귀에서 조각난 검파가 떨어지며 땅을 굴렀다.


“그 검법은···.”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죽인 최후의 절초를 물어보았다.


“능파검륜이다.”


“이런, 미친 괴물이······.”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생을 끊었고, 육신이 뒤로 넘어갔다. 쿠웅. 장대한 체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야욕을 탐하던 자의 최후였다.


“······.”


천진은 단귀문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하늘의 적막함을 깨듯, 밝게 타오르며 산등성이 너머로 모습을 보이는 태양은 환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침은 돌아온다.



───



예령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기감으로 생사결의 결과를 알아챈 것이다.


산공독은 이미 하독했다. 산공독이란 영구적인 독이 아닌바,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해독할 수 있는 독이었다.


단귀문과 천진의 생사결이 벌어지던 도중, 그녀는 기감이 돌아온 것을 느꼈고, 그 뒤로 쭉 생사결에서 몸을 돌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피하라고 어깨를 부여잡았을 때조차.


‘···최소 삼 급의 상위권. 내력만 받쳐 준다면 사 급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예령이 평가한 천진의 등급이었다.


도원에게 듣기로 분명 낭인의 자격을 취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거늘, 이만한 속도가 말이나 되는 것일까? 문뜩 전율이 올랐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옆에서 마찬가지로 생사결의 결과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천혜상단주가 딸아이의 부름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귓가에 딸의 나직한 부탁이 들려왔다.


“비고의 반출을 허락해 주세요.”


“보은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알겠다. 뒷수습은 나에게 맡기려무나.”


예령이 고개를 작게 주억였다. 내력이 부족하다면 채워주면 그만인 일. 그녀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한 향일화(向日花, 해바라기)와 닮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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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영점
    작성일
    24.09.16 12:05
    No. 1

    어제 선작하고 정주행 중입니다.
    독학 무공이라지만 깨달음이 남 달라서 성취 속도가 장난 아니군요.
    이 재밌는 무협에 왜 무플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건필하십시요 작가님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글운율
    작성일
    24.09.16 22:07
    No. 2

    퇴근하고 이제 보게 되었네요.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입니다.
    영점님 댓글 감사합니다. 작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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